리마인드 축구천재 153화
화가 난 공현성의 뒷모습을 보니 미안함이 몰려왔다.
“너무 들떴네…….”
모처럼 재미있는 경기를 해서 흥분했다.
두 골을 먹힌 공현성이 화를 내는 건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전력을 다해 이기고 싶어 하는데 득점한 쪽에서 ‘좋은 경기였다~.’라는 느낌으로 손을 내미는 건 기만으로 보일 테니까.
“무슨 일이야?”
“저 자식 뭐야?!”
노태신의 득점을 축하하던 우리 축구부원들이 뒤늦게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별일 아니에요. 골 넣고 기분 좋아서 제가 좀 장난쳤어요.”
“와, 송현준 인성 봐.”
“돌아가기나 하자.”
박종혁의 말을 자연스럽게 받으면서 화제를 돌리는 데 성공했다. 흥미를 잃은 우리 축구부원들은 진영으로 하나둘 복귀했다.
박종혁이 윤태상에게 불려가서 전술 얘기를 하는 바람에 나 혼자 가고 있었는데 어느새 티알이 다가왔다.
“현준, 쟤한테 왜 시비 걸었냐?”
“들었어?”
티알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공현성에게 손을 내밀기 직전 티알과 얘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비를 걸었다니, 억울했다.
“시비 건 거 아니라고…….”
“그러면 뭔가?”
“일으켜 세워주려고 했던 거야.”
티알이 갸웃했다.
“쟤랑 같은 팀 아니다.”
“친해지고 싶기도 하고, 쟤 정말 잘하잖아.”
이유를 설명해 주자 그제야 티알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연거푸 끄덕거렸다.
“알겠다. 그러면 현준, 앞으로는 뭘 하면 되나?”
“이제는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돼.”
“하던 대로?”
“전반전에 막혔던 거 다 먹힐 거야.”
표정과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들은 무너졌다.
잠시 후 경기가 재개되고, 예상은 적중했다.
신영 중학교 축구부원들은 지난 친선경기의 악몽이 되살아난 건지 움직임이 굼떠지고, 소극적으로 변했다. 심지어 공현성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난 경기처럼 존재감을 줄였다.
공격에 가담하지 않고 뒤에서 기본적인 패스 위주로 하면서 멍해 보이는 공현성을 살폈다.
공현성은 내가 들어오고 연속으로 두 골을 먹혔다.
프리킥과 움직임을 이용한 공간 창출이라는 완전히 다른 두 분야에서 당했으니 충격을 받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기운이 없어 보여도 봐줄 생각은 없었다.
공현성은 아직 중학생이다. 발전할 여지가 많았다.
슈팅을 막는 것만 발전시켜야 하는 게 아니다. 최후방에서 모든 선수를 지켜보고, 수비수들의 움직임을 조율해 줄 수 있는 골키퍼는 머리가 좋으면 좋을수록 좋다.
지금 신영 중학교는 공현성이 처음 시킨 대로 중앙에 밀집해서 수비하고 있었다.
저게 문제다.
무작정 측면수비를 안 하는 전술 같은 건 깜짝 전술이라면 모를까 두 경기 연속으로 하는 건 아쉽다.
이번에는 전술의 문제점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공현성은 정신력이 강하니 충격요법이 좋을 거다.
“종혁, 티알 내가 너희한테 패스해 주면 공을 가지고 있다가 나한테 패스해 줘. 계속. 크로스는 올리지 말고.”
코너킥을 준비하는 동안 둘에게 말했고, 이후 나는 왼쪽 측면과 오른쪽 측면으로 반복해서 공을 돌리면서 상대 수비수들의 집중력을 흐트러지게 만들었고, 중앙 공간이 헐거워진 틈에 노태신에게 스루패스를 찔러줬다.
공을 받은 노태신은 공현성을 앞에 두고, 옆에 있는 윤태상에게 패스했고, 윤태상은 빈 골대에 쉽게 골을 넣었다.
3-0이다. 세 번째 골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나왔다.
공격을 대놓고 허용하는 수비 전술을 수행하는 선수들이 집중력을 90분 내내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선수가 문제가 아니라 전술이 문제다. 선수들이 할 수 있는 전술을 지시하는 건 감독과 경기장 위의 리더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었다.
4-0, 5-0, 골이 끊임없이 들어갔다.
최종 점수는 7-0,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우리 축구부원들과 부모님들이 환호했고, 공현성은 고개를 떨궜다.
* * *
“자자, 다들 옷부터 갈아입어라. 오늘은 정말 잘했다.”
대영 중학교의 축구부원들은 들뜬 로베르토의 지시에 따라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축구부원들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로베르토는 경기에 출전한 축구부원들에게 일대일로 칭찬을 연발했다.
“노태신, 전반전 내내 고생했는데 끝까지 안 흔들린 거 좋았다. 박종혁…….”
다들 옷을 갈아입으면서 로베르토의 칭찬을 차례로 들었다.
티알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오늘 경기를 되새겨 봤다. 두 번째 골을 어시스트했고 일곱 번째 골은 직접 넣었다.
무엇보다 중간에 교체되지 않고 끝까지 뛰었다.
티알은 몹시 기분이 좋았다.
“티알, 오늘은 저번 주보다 나아졌더라.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
“가, 감사합니다!”
로베르토의 칭찬이 화룡점정이었다. 티알은 기분이 너무 좋아서 콧김이 느껴질 정도로 힘차게 숨을 쉬었다.
더 잘해지고 싶다.
기쁨을 누리던 중 자연스럽게 든 생각에 티알은 빠르게 짐을 쌌다.
“송현준, 무슨 말을 하겠냐. 오늘 최고였다.”
“감사합니다.”
차분한 목소리에 티알은 손을 멈추고 시선을 옮겼다. 상의만 갈아입고 가방을 멘 송현준이 로베르토를 보며 씩 웃고 있었다.
티알은 가방을 만지작거렸다.
송현준은 요즘 운동량이 많이 늘어났다. 오늘도 틀림없이 훈련을 할 거다. 티알은 송현준과 함께 훈련할 생각에 들떴다.
오늘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낸 것도 송현준이 이번 주 내내 도와줬기 때문이라는 걸 티알은 잘 알았다. 티알은 오늘 훈련이 끝나면 송현준에게 한턱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더 할 말은 없고, 푹 쉬다가 내일 오후 다섯 시까지 숙소로 복귀해라. 게임 하다가 밤새우는 건 당연히 금지다. 훈련시켜 보면 아니까 거짓말할 생각 말고. 그럼 내일 저녁에 보자. 해산!”
“감사합니다!”
축구부원들과 함께 티알도 소리쳤다.
“예선 리그 좋다.”
“덕분에 휴가 엄청 늘어났네.”
“이것도 우리 축구부만 그런 거지 다른 데는 경기도 하고 훈련도 하고 죽겠다던데?”
“그래?”
“오늘 놀러 갈래?”
로베르토가 떠나자 축구부원들이 잡담을 하면서 삼삼오오 모였다. 티알도 송현준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런데 송현준은 로베르토, 그리고 박종혁과 몇 마디 나누더니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송현준이 가는 방향은…… 오늘 경기에서 진 신영 중학교 쪽이었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기울인 티알에게 박종혁이 다가왔다.
“야, 티알.”
“현준이 어디 가나?”
박종혁과 티알이 동시에 말했다. 먼저 박종혁이 티알의 질문에 대답했다.
“공현성이랑 얘기 좀 하고 싶다는데? 같이 훈련하면서 친해지고 오겠단다.”
“……그래도 되는 건가?”
“자기가 하고 싶다니까. 우리 감독님도 허락했고.”
티알은 송현준의 뒷모습을 봤다.
‘친해지고 싶기도 하고, 쟤 정말 잘하잖아.’
경기 중에 송현준이 했던 말과 송현준을 처음 만났던 날이 동시에 떠올랐다.
“송현준은 축구하는 사람이면 다 친해지고 싶은 건가.”
“오, 티알, 탐정이야? 그럴듯한 추측인데.”
티알은 박종혁의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면서 송현준의 뒷모습을 봤다.
처음 만났을 때 잘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축구부에 들어와서 본 송현준은 축구의 신 같았다. 축구에 관해 아는 게 많아질수록 그랬다.
다른 축구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3학년생들도 송현준의 말이라면 일단 믿고 볼 정도로 송현준은 축구부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티알은 축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송현준이 특별하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알았다. 송현준은 틀림없는 천재였다.
심지어 끊임없이 발전하는 천재였다.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송현준은 빨리 자라는 키만큼이나 실력도 눈에 띄게 늘었다. 더 늘 게 없어 보였는데도 잘해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방금까지 적이었던 공현성과 훈련이라니, 송현준은 축구를 잘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려는 걸까. 저런 면이 끊임없는 발전의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송현준의 실력이 더 늘면 어떻게 될까. 그만큼 수준 높은 곳에서 뛸 테고, 같이 축구 하기 어려울 정도로 멀어지겠지.
슬픈 결론에 도달한 티알은 홀린 듯이 박종혁에게 제안했다.
“종혁, 숙소 돌아가서 같이 훈련하자.”
“응? 아니, 너한테 시내 놀러 가자고 하려고 온 건데. 같이 가자. 같이 노는 여자애들이 너 데리고 오래. 송현준도 놀자고 했는데 저놈은 축구밖에 몰라.”
“…….”
박종혁이 쯧쯧거리면서 혀를 찼다.
예상 못한 엉뚱한 제안에 말문이 막혔던 티알이 말했다.
“……잘못 들었다. 다시 말해줘라.”
박종혁이 음흉한 얼굴로 한 번 더 말해줬다.
“내 친구들이 너 보고 싶어 하니까 같이 점심 먹고 놀자고. 설마 부끄러운 거야……?”
티알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손사래 쳤다.
“아, 아니. 그렇지 않다. 경기 끝났으니까 훈련 더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감독님도 쉬라고 했고…… 아, 모르겠다.”
“감독님이 경기 끝나면 쉬어야 한다고 많이 말했잖아.”
“그렇지만…….”
티알이 송현준을 바라봤다. 송현준은 어느새 신영 중학교 축구부에 도착해서 신영 중학교의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똑같이 송현준을 본 박종혁이 말했다.
“쟤도 쉴 땐 쉬어. 심지어 너랑 나는 풀타임 뛰었고 쟤는 후반전만 뛰었잖아. 경기 끝나면 맛있는 거 먹으면서 쉬어줘야 한다고.”
“그런 건가…….”
박종혁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로베르토가 해준 말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송현준은…… 어려웠다. 티알은 단순한 사람이었다. 생각이 많아지니 머리가 아팠다.
“티알, 가자. 너 여기 와서 시내 간 적 없잖아. 궁금하지 않아?”
티알은 생각을 포기했다.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다.
“그럴까……?”
“그럼 가자!”
티알에게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기 무섭게 박종혁이 어깨동무했다. 박종혁은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다.
“너랑 놀고 싶었는데 잘 됐다.”
박종혁도 송현준처럼 친한 친구였다. 티알은 기분이 좋아진 채로 박종혁과 함께 시내로 향했다.
* * *
신영 중학교의 축구부원들이 모인 곳에 다가가니 신영 중학교의 감독이 내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니?”
“오늘 경기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너 정말 잘하더라. 그런데 무슨 일로 여기에…….”
신영 중학교의 감독이 궁금하다는 얼굴로 말을 흐렸다.
공현성을 비롯한 신영 중학교 축구부원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공현성이랑 같이 훈련하고 싶습니다.”
여기 오기 전 내 말을 먼저 들은 로베르토는 선선히 그러라고 했고, 시내에 놀러 가자고 말했던 박종혁인 축구에 미친놈이라는 칭찬을 해줬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신영 중학교의 감독은 평범한 질문을 해 왔다.
“너희 감독님은 뭐라고 했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래? 그런데 혹시…….”
감독이 불안하다는 얼굴로 말을 흐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긴 쉬웠다.
“절대, 우리 축구부에 들어오라고 안 합니다.”
“그래?”
감독이 들켰다는 얼굴로 머쓱하게 답했다. 물어보기 전에 이유를 말해줬다.
“오늘 저희가 운 좋게 이기긴 했지만, 공현성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같이 훈련하고, 얘기하면서 교류하고 싶습니다.”
“으음…….”
감독이 머뭇거렸다. 나는 공현성의 감독이 좋아하는 말을 알았다.
“공현성이 우리 나이대 골키퍼 중에서 가장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그으래? 우리 현성이가 잘하긴 하지.”
“고등학교에서도 먹힐 거 같습니다.”
“그렇지. 알아주는구나.”
감독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아들 칭찬을 들은 아버지처럼 기뻐하는 게 보였다. 공현성은 역시 이 감독 밑에서 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좋아, 허락한다. 잠깐만 기다려 봐라.”
“네.”
감독은 빠른 걸음으로 공현성에게 향했다.
자연스럽게 신영 중학교의 축구부원들과 눈이 마주쳤다.
적개심도 보이고 별 표정이 다 보인다. 전체적으로 험상궂다.
그중 가장 험상궂은 공현성이 감독의 부름에 일어났다. 감독이 나를 가리키면서 무언가 말했다. 공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인상을 찌푸리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두 번째 골을 먹혔을 때처럼 화난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