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154화
“또 뭐야? 빨리 말해.”
공현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독님이 말 안 했어?”
공현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빨리 용건이나 말하고 가라고.”
“알겠어. 너 지금부터 일정 있냐? 집에 간다던가, 팀 훈련이 있다던가.”
팀 훈련이나 휴가가 있었다면 감독이 내게 말해줬을 거다. 예의상 물어보는 거였다.
“없어.”
“그럼 같이 훈련하자.”
“……?”
공현성이 아까처럼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서 자세히 말해줬다.
“용건이 뭐냐고 물어봤잖아. 너랑 같이 훈련하자는 게 용건이야. 그러면 짐 챙겨서 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잠깐만.”
“너희 감독님도 허락했어. 빨리 와라. 저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멀리 보이는 버스정류장을 가리켰다.
“야야.”
“왜 같이 훈련하고 싶은 거냐고 묻고 싶은 거지? 설명은 따라오면 해줌.”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공현성은 경기장에서 독불장군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평소에도 상식은 있지만 자기주장이 또렷한 편이다.
그래서 공현성을 대할 때는 정신 못 차리게 막 밀어붙여야 한다.
어릴 때부터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커서 자기 뜻대로만 살아서 주도권이 넘어가면 몹시 당황한다.
“야, 야! 아이 씨, 기다려 봐!”
“저기서 기다린다.”
“하…….”
공현성의 한숨 소리를 들으며 작게 웃었다. 전생의 즐거운 추억들이 몇 개 떠올랐다. 국가대표팀 숙소에서 후배들 데리고 공현성 방에 쳐들어갔을 때나 휴가 가자고 해놓고 훈련장으로 데려갔던 적도 있었지.
추억을 회상하고 있으니 공현성이 가방을 메고 왔다.
“자, 챙겨왔다. 설명해 봐.”
씩 웃으면서 말을 돌렸다.
“잘했어. 설명은 밥 먹으면서 해줄게.”
“뭐? 밥?”
“이제 열두 시잖아. 점심은 먹어야지. 내가 살 테니까 따라와.”
“어? 굳이…….”
“오리 구이 먹을 거야. 혹시 싫어하냐?”
“뭐!?”
공현성은 오리고기를 아주 좋아했다.
-특히 향이 좋아.
전생에서 향이 좋다고 말했었다. 유전자가 끌리는 걸까. 그 이상의 이유는 못 들었다. 이유가 더 필요한가 싶기도 하다.
“으음…… 그렇다면…… 버스는 뭐 탈 건데.”
공현성이 못 이기는 척 말했다.
검지를 들어서 노선표를 가리켰다.
“저거 타자. 너네 학교랑 우리 학교 근처로 가야 해.”
* * *
오리구이 전문점은 내가 다니는 대영 중학교와 공현성의 신영 중학교 중간 정도에 위치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전화로 예약을 해둬서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음음…….”
전생의 공현성이 알려줬던 가게였다. 당연하게도 공현성의 입맛에 잘 맞았다. 나도 마찬가지, 방금 경기를 뛰고 와서 그런가 배가 고파서 정신없이 먹기만 했다.
그래서 본격적인 대화는 오리가 두 마리 정도 사라졌을 때부터 할 수 있었다.
공현성이 오리보다 날 쳐다보는 빈도가 늘어서 먼저 말을 건넸다.
“너 오늘은 잘 막더라. 솔직히 첫 번째 슛은 막힐 줄 알았거든? 근데 두 번째 건 못 막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더라.”
“친선경기 때 본 슛 떠올리면서 열심히 연습하긴 했지…….”
공현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다가 젓가락을 멈췄다.
“……또 놀리냐?”
공현성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나는 고개를 열심히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 진짜라니까. 지난주에도 정말 놀랐어. 실력이 그렇게 빨리 느는 건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오늘 경기도 전반전은 좋았고.”
지난주 경기 얘기 중에는 고개를 끄덕이던 공현성이 또 멈췄다.
“진짜 놀리는 거냐?”
“아니라니까!”
공현성은 뚱한 얼굴을 하더니 젓가락을 움직여서 입에 고기를 넣고 씹으면서 말했다.
“뭐, 밥 사줬으니까 놀리려면 놀려. 경기 끝났으니까 바뀌는 것도 없고.”
“아니, 놀리는 거 아니라니까. 의심병이 있는 건가.”
“……의심병? 별말을 다 하네.”
“의심병 맞잖아.”
“칭찬 한번 하기 힘드네.”
“칭찬을 할 거면 경기에서 지고 해야지.”
“맞는 말이야.”
“그렇지?”
공현성은 자기가 먼저 물어놓고는 아차 하는 얼굴을 한 후 다급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내가 워낙 편하게 얘기하니까 공현성도 어느새 휩쓸려 있었다.
전생을 아는 건 참 좋은 일이었다. 충분히 알아들은 것 같으니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앞으로는 주의할게. 사장님! 한 마리 더요!”
“예!”
우렁찬 주문에 가게 사장님도 신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 번째 추가 주문이었고 이번이 네 마리 째였다. 180㎝가 넘는 중학생 남자 두 명의 위장이란 이 정도로 대단했다.
우리는 네 번째 오리도 순식간에 해치웠고, 밥과 반찬도 텅텅 비웠다.
배가 꽉 차서 죄책감이 살짝 들었지만, 평소에 식단을 잘 지키니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괜찮다고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성인이 되면 더 엄격하게 할 거다.
“슬슬 나가볼까?”
“그래, 근데 너무 비싼 거 아니냐?”
“괜찮아, 괜찮아. 풋살대회에서 받은 상금이 있거든.”
후원사에서 용돈을 받는다고 말하면 또 설명해야 할 거 같아서 풋살대회 상금이라고 말했다.
“풋살대회?”
“축구부에 들어오기 전에 친구랑 아는 형들이랑 나가서 우승했었거든.”
“오…….”
신기해하는 공현성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일어나자.”
“그래도 비싼 거 같은데…….”
공현성이 벽에 걸린 메뉴판을 보면서 덩치답지 않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됐어. 너는 아이스크림이나 퍼 줘.”
“얼마나?”
“콘 하나에 두 덩이.”
공현성은 가게 출구에 마련된 후식 아이스크림을 퍼서 내게 건네줬다. 우리는 사장님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바깥공기를 마시며 포만감을 느꼈다.
“포식했다.”
“잘 먹었다. 땡큐.”
“그래.”
공현성에게 대답하면서 가게 옆에 있는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공현성이 졸졸 따라오며 물었다.
“또 어디 가?”
“같이 훈련하기로 했잖아. 이온 음료 두 병 사려고.”
공현성은 내 용건을 잊고 있었나보다.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그건 내가 살게.”
“그래라.”
시원하게 대답하자 공현성의 표정이 조금 편해졌다.
우리는 잠시 후 이온 음료 한 병씩을 각자 들고 슈퍼마켓에서 나왔다. 내 가방에 매달린 축구공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시각은 두 시 쯤.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였지만, 구름 한 점 없이 맑아서 그런지 포근한 날씨였다.
“날씨 좋네.”
“그러게.”
“훈련은 어디서 할까? 우리 중? 너희 중?”
“상관없어.”
“그럼 너희 중학교에서 하자. 더 가까워.”
공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걷기 시작했다.
공현성의 옆에서 걸으면서 젊은 몸의 위력을 느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소화가 아주 잘 되는 게 체감됐다.
묵묵하게 걷고 있는 공현성을 슬쩍 봤다.
훈련을 같이 하자고 한 이유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공현성의 능력치를 파악하고, 조언해주기 위해서였다. 지금 잘 가르쳐 놓으면 첫 월드컵부터 마지막 월드컵까지 국가대표에서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재능이다.
자신은 있었다.
왜냐면 몇 번의 전생에서 골키퍼로 월드베스트를 받아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뭘 봐?”
뒤늦게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공현성이 날 본다.
밥을 먹여서 누그러지긴 했지만, 공현성의 자존심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실력은 자신 있지만, 전생을 말할 수는 없었다. 공현성에게 잘 먹힐 말을 떠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 * *
공현성에게 있어 송현준은 이상한 녀석이었다.
첫 만남은 친선경기였다. 난생처음 보는 슈팅으로 공현성에게 짙은 패배감을 안겨줬다. 이 슈팅은 공현성의 머릿속에 각인돼 매일 떠올리며 악착같이 훈련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두 번째 만남은 오늘 있었던 전국대회 예선경기였다. 후반전에 들어온 송현준은 그때보다 더 강한 슈팅을 보여줬다.
공현성은 머릿속에 각인된 슈팅을 두 번이나 막아내고 확신했다. 이제 내가 저 녀석보다 위다. 하지만, 송현준은 처음 보는 궤적의 프리킥으로 한 골을 넣었고, 움직임만으로 동료에게 골을 만들어 줬다.
골을 먹힌 공현성이 망연자실해서 주저앉아 있으니 손까지 내밀었다.
공현성은 송현준이 자길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기분 나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자기보다 위라고 생각하는 녀석이 그런 자식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이후 송현준은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했다.
감독을 어떻게 꼬드겼는지 같이 훈련하자고 하고, 제멋대로 점심을 먹이고, 활기차게 대화를 주도했다. 웃기는 건 그런 점이 공현성에게 불쾌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래서 공현성은 송현준에 대한 평가를 바꿨다.
[이상하지만, 나쁜 녀석은 아님.]
경기가 끝나고 내내 실실거리던 이상한 녀석이 이번에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훈련을 같이 하자고 했는지 궁금하다고 했지?”
“어…… 그랬지.”
송현준의 태도가 바뀌자 공현성도 괜히 어깨를 바로 세웠다. 무슨 말을 할지 정말 궁금했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마. 사실 나 골키퍼도 잘해. 그래서 너한테 이것저것 알려주고 싶어.”
“……뭐?”
공현성은 무슨 얘길 들은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송현준의 말은 대부분 그랬다. 그리고 이해하게 되면 감정이 격해진다.
또 무시하는 건가.
공현성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팔짱을 꼈다. 따지지 않은 건 송현준이 여태까지 중에 가장 진지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번 대회 끝나면 나는 프로로 갈 거야. 그 전에 알려줄 수 있는 건 알려주고 싶어.”
다음 말을 들었지만, 공현성은 여전히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물었다.
“나한테 골키퍼를 가르치겠다고? 왜? 내가 너보다 골키퍼도 못 한다 이거냐?”
“응.”
공현성은 애써 이성을 붙잡았다.
“……미쳤냐?”
“사실인걸.”
“나한테는 감독님이 있어.”
“알지, 좋은 분인 것도 알지. 하지만, 그분의 가르침만으로는 안 돼. 너는 더 대단한 선수가 되어줘야 하거든.”
송현준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고, 목소리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공현성은 송현준의 말에서 깊은 자신감을 느꼈다. 감독님을 나쁘게 말한 걸 따지고 싶었지만, 대단한 선수가 되어줘야 한다는 말이 더 궁금했다.
“왜? 내가 왜 대단한 선수가 돼야 하는데?”
송현준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공현성을 빤히 바라보다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 후에 천천히 말했다. 송현준의 목소리는 약간이지만 떨리고 있었다.
“너는 나랑 월드컵에 같이 나가야 하니까.”
“……뭐라고? 월드컵?”
“내 소원은 월드컵 우승이야. 지금 너는 우리 나이대에서 최고야. 확신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만이야. 나는 네가 세계 최고가 되길 원해. 다른 포지션은 몰라도 골키퍼만큼은 최고여야 해.”
송현준의 말은 묘한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공현성은 송현준을 두 번 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침착하고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송현준이 눈과 손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강한 열망이 느껴졌다.
월드컵 우승이라니, 세계 최고라니.
공현성은 월드컵을 멋지다고는 생각했지만, 저 정도로 간절하게 원하진 않았다.
“월드컵은 혼자 우승할 수 없어. 우승을 하려면 훌륭한 동료가 많이 필요해. 너는 아직 한참 모자라지만 앞으로 발전할 수 있어.”
왜 송현준에게 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릇이 달랐다. 보고 있는 그림의 크기가 달랐다.
한참 모자란다는 말도 이제는 불쾌하지 않았다. 송현준은 서 있는 곳이 달랐다. 그만큼 기준이 높았던 것이다.
공현성은 입을 몇 번 뗐다가 다물었다가를 반복하다가 어렵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