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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55화 (122/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55화

“뭐…… 음…… 정리해 보면 네 목표는 월드컵 우승이고, 나를 도와주려는 이유는 나랑 같이 월드컵에 나가고 싶어서. 맞냐?”

“정확해.”

“나보고 세계 최고가 되라는 거고?”

“맞아.”

“내가 할 수 있냐?”

“몰라.”

공현성은 또 말문이 막혔다. 부끄럽지만 송현준의 말에 설레고 있었는데, 저렇게 단호하게 모른다고 하다니.

“할 수 있을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어. 확실한 건 내가 원래 기대했던 것보다는 잘해질 것 같아. 해볼 만한 도박이지.”

“원래 기대했던 거?”

송현준이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송현준이 느릿하게 말했다.

“……친선경기 때 보고 느낌이 왔거든. 잘할 애들은 보기만 해도 알아.”

“그러냐…… 그럼 원래는 어느 정도를 기대했는데?”

공현성은 송현준의 반응에 개의치 않았다. 궁금한 건 송현준의 평가였다.

“8년쯤 뒤에 국가대표팀 주전?”

“구체적이네.”

“뭐…… 그렇지.”

말을 마친 송현준이 하하, 하고 소리 내서 웃었다.

공현성은 덤덤한 척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국가대표팀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을 거라니. 송현준이 자신을 이긴 상대라서 그런지 그럴듯하게 들렸다.

“어때? 관심 있지?”

“뭐…… 네가 미친놈이라는 건 알겠다.”

솔직히 흥미가 생기고 있었지만 쑥스러워서 아닌 척했다. 그러자 송현준이 이어서 말했다.

“부폰처럼 되고 싶지 않아? 칸처럼 되고 싶지 않아?”

“부폰? 이탈리아 골키퍼 아니야? 우리나라한테 졌잖아.”

송현준의 말문이 막히더니 또 변명하듯 말했다.

“아니…… 세계 레벨에서 경쟁하는 대단한 선수라고.”

“사실 잘 알아. 그냥 해본 말이야.”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공현성이 골키퍼로 전향하고 싶게 만들었던 골키퍼들의 영상에 부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송현준이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

“어쩔래? 내 도움받고 야신상 노려볼래, 아니면 그냥 국가대표 선수로 남을래.”

“……이상한 제안이네.”

야신상은 월드컵에서 활약한 골키퍼 중 최고에게 주는 상이다.

세계 최고를 노릴 건지 그냥 국가대표 선수로 남을 건지. 둘 다 공현성에게는 꿈같은 일인데도 송현준은 국가대표 선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흥미로웠다.

공현성은 송현준과 함께 훈련하기로 결심했다. 일단 송현준이 골키퍼로서 어느 정도인지 보는 게 먼저일 거 같았다. 자신보다 잘한다면 송현준 말대로 배우면 된다. 손해 볼 일 없는 장사였다.

그런데 순순히 알겠다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공현성은 송현준에게서 등을 돌리며 말했다.

“가자, 운동장 다 왔어.”

“뭐?”

“같이 훈련하자면서. 일단 네가 골키퍼를 어느 정도 하나 봐야겠어.”

공현성은 송현준의 표정이 밝아지는 걸 똑바로 보기가 어려워 일부러 쳐다보지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송현준이 뛰어와서 공현성의 옆에 섰다. 히죽히죽, 언제 진지했냐는 듯 실실거리면서 웃고 있다.

“하겠다는 거네.”

“네 실력 보고 한다니까.”

“그게 하겠다는 거지.”

“뭐 이렇게 자신이 넘쳐?”

“열심히 해왔으니까 그런 거야.”

“이상한 놈.”

둘은 신영 중학교 운동장에 들어와서 골대 앞에 섰다.

“소화 다 됐으니까 바로 시작하자.”

둘의 대화가 길어진 덕분이었다.

“일단 내 실력을 보고 싶다고 했지? 페널티킥으로 한 판 붙자. 네가 먼저 차.”

송현준이 공현성에게 공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 * *

공현성은 송현준을 상대로 페널티킥에서 한 골도 넣지 못했다. 뿐만아니라 송현준의 세세한 움직임을 보며 벽을 느꼈다.

송현준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로 골키퍼를 자신보다 잘했다.

“시키는 대로 할게.”

그래서 공현성은 송현준의 말을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송현준은 막힘없이 공현성을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온갖 상황을 가정해줬고, 공현성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막는지 뚫어지라 관찰하다가 한마디씩 했다.

“그거 그렇게 하면 안 돼.”

처음에는 지적에 열 받았지만, 송현준의 조언은 전부 훌륭해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쉬는 시간에는 전술 얘기를 나눴는데 논리에서도 완벽하게 밀렸다.

아까는 왜 송현준을 못 이겼는지 짐작했다면, 지금은 실감하고 있었다.

공현성은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승부욕이 들끓었다.

“슬슬 어두워지네, 그만하자.”

공현성은 깜짝 놀랐다. 송현준의 말대로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겨울이 가까워져서 다섯 시 정도밖에 안 됐는데 주변이 어두워져 있었다.

송현준과 함께한 두 시간의 훈련은 정말 가치 있었다. 공현성은 자존심을 부릴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일도 할 수 있을까?”

입장이 바뀌었다. 아까는 송현준이 권유했다면 지금은 공현성이 부탁하는 형태가 되었다.

“정말? 좋지. 우리 내일 휴가거든.”

다행히 송현준은 시원하게 대답했다. 공현성은 안도감을 느끼면서 말했다.

“그러면 감독님한테 얘기해서 내일 훈련 뺄 테니까 내일 하루 종일 알려줄 수 있냐?”

“좋지!”

기쁜 듯이 답하는 송현준을 보면서 공현성은 송현준이 했던 말들이 진심이었다는 걸 확신했다. 공현성은 앞으로 송현준의 부탁이라면 다 들어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송현준이 물었다.

“그러면 연락처 좀 알려주라. 핸드폰 있어?”

“……없는데.”

방금 결심했는데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메일은? 버디버디는?”

“……없는데.”

“…….”

“……미안.”

공현성은 사과했다. 결심한 지 몇 초 만에 실패라니.

공현성이 심하게 우울한 얼굴을 하자 송현준이 당황해서 위로해줬다.

“아니, 괜찮아. 나도 핸드폰 없어. 일단 내일 여기서 아홉 시에 보자.”

* * *

축구부 숙소에 돌아오니 이모님이 저녁을 준비해 주셨다.

“맛있겠다…… 감사합니다!”

“뭘~ 현준이 오늘 경기 잘했다더니 기분 좋은가 보네? 반찬 많이 퍼.”

사실 지금은 경기보다는 직접 확인한 공현성의 기량이 기대 이상이라 기분이 좋은 거였지만,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당연하죠. 본선 가면 이모님도 꼭 보러 오세요. 그런데 오늘은 사람이 없었나 봐요.”

이모님이 준비해 주는 식사는 대부분 뷔페식이었다. 반찬이 잔뜩 남아있어서 그렇게 물었다.

“로 감독님은 코치들이랑 회식한다고 했고, 애들이 생각보다 없네. 다들 집에 갔나 봐.”

“그럼 잔뜩 먹어야겠어요.”

“그래그래, 먹고 싶은 만큼 먹어.”

점심을 그렇게 많이 먹었는데도 허기가 졌다. 평소보다 반찬을 많이 퍼서 자리에 앉았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내밀어 확인하니 티알이 있었다.

티알은 경기 때 가지고 갔던 가방을 메고 있었다.

“이제 오는 거야?”

“현준! 오늘은 집 안 가나?”

“응. 너도 부모님 안 왔어?”

“그렇다. 오늘은 박종혁이랑 시내 갔다 왔다.”

“오오, 그래?”

“안녕하세요.”

나와 대화하면서 부엌에 온 티알이 이모님에게 인사했다.

“어이구, 티알도 왔네. 저녁 챙겨 먹어.”

“네, 감사합니다.”

티알은 반찬을 퍼서 내 앞에 앉았다. 티알의 표정이 밝았다. 여기 와서 매일 열심히 했으니 쉴 시간이 필요했을 거다. 박종혁이 큰일 했다.

“시내 처음 가는 거 아니야? 재미있었어?”

“응, 응. 두식 선배랑 범철 선배도 있었다.”

“그래?”

“두식 선배나 박종혁이랑 친한 여자애들도 있었는데 맛있는 거도 먹고 구경도 많이 했다.”

“재밌었겠네. 근데 벌써 왔어? 더 놀지.”

티알이 고개를 저었다.

“훈련하겠다고 먼저 왔다.”

기특한 놈이다.

“그러면 저녁 먹고 가볍게 같이 뛰자.”

“같이 훈련할 수 있나?”

“당연하지.”

티알이 환하게 웃었다. 보기 좋았다. 티알은 밥을 먹으며 시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잘조잘 얘기했다.

예선 리그가 빨리 시작해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는 것 같았는데 밝은 모습을 보니까 안심이 되었다. 흐뭇하기도 했다.

사실 시내에서 논다는 것에 특별한 건 없다. 티알의 이야기 소재는 금세 바닥났다. 대화가 멈추고 식사에 집중하고 있으니 티알이 물었다.

“공현성이랑은 무슨 훈련 했냐?”

“어떻게 알았어?”

“박종혁이 말해줬다.”

딱히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니니 편하게 말했다.

“걔가 잘하는 골키퍼잖아. 이것저것 연습해 봤어.”

“그러냐?”

“응. 내 기대보다 더 잘하더라고. 그동안 안 해본 슈팅도 해볼 수 있었어.”

직접 확인한 공현성은 다른 능력보다 유난히 선방 능력이 성장해 있었다. 덕분에 공현성이 얼마나 잘 막나 테스트한다고 우리 축구부에서 연습할 때는 하지 못했던 슛을 맘껏 차 봤다.

또, 공현성은 정말 열심히 배우려고 했다. 내가 말을 시작하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고, 자세에 관해 조언을 하면 자세를 바꿨다.

덕분에 이런 생각까지 했다.

“어쩌면 공현성은 세계 최고의 골키퍼가 될지도 모르겠어.”

어린 공현성의 흡수력은 그만큼 대단했다. 어느 순간에 성장이 멈출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기대해 보고 싶기도 했다.

티알이 날 신기하다는 듯 보고 있었다.

“현준,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거 처음 본다.”

“그랬나?”

“그렇다.”

그랬다니까 맞겠지.

티알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아직 반찬이 남아 있었기에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얌전히 기다리니 티알이 물었다.

“그…… 현준, 나도 열심히 하면 공현성처럼 최고가 될 수 있나?”

“으음…… 어떨까.”

바로 그렇다고 대답해 주고 싶었지만, 고개가 움직이지 않았다.

전생에서 적게 보거나 지금의 공현성처럼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모를까, 나는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의 재능만큼은 꿰뚫어 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불가능했다.

티알은 기복이 심한 스타일이라 잘할 때와 못할 때가 분명하게 나눠진다. 하지만 잘할 때도 최고라고 부르기엔 애매했다.

그래도 사람의 가능성은 모르는 거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말로 꺼낼 필요는 없다.

“열심히 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좋게 말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티알은 눈을 내리깔았다. 우울한 얼굴이다.

대답이 애매해서, 너무 늦게 대답해서 그럴까? 수습해 보려고 입을 열었는데 티알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티알은 언제 우울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

“오, 결심한 거야?”

“그렇다. 그러니까 오늘도 부탁한다.”

“그래. 너도 나 도와줘야 한다?”

“당연하다.”

이후 티알은 전투적으로 남은 반찬을 입에 쓸어 담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알겠다.”

티알은 정말로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순순히 말을 듣는 티알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세계 최고라.

전생의 티알들은 세계 최고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지금의 티알도 공현성처럼 어느 전생보다 뛰어난 선수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세계 최고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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