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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56화 (123/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56화

“아오…… 왜 우리는 안 되냐…….”

“우리가 아닙니다. 저는 빼주세요.”

“와…… 박종혁. 이 치사한 놈아. 너도 말 못 해놓고.”

“분위기가 가라앉았는데 어떻게 띄워요. 안 될 자리는 포기하는 게 맞습니다. 선배님.”

박종혁의 일침에 정두식이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박범철은 정두식 옆에서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두식과 박범철, 박종혁은 시내 거리를 정처 없이 걷고 있었다.

셋 중 정두식과 박범철의 얼굴에는 패배감이 짙게 깔려 있었다. 아침에 신영 중학교를 이기고 얻었던 승리의 기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왜 티알 그 자식이 말하는 것만 빵빵 터지지?”

정두식이 억울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게요.”

박종혁은 속으로는 다르게 생각하면서 적당히 대답했다.

티알은 이들과 대영중학교의 여학생들과 함께 노래방에서 놀았다. 티알은 점심때부터 노래방에서 놀 때까지 인기가 많았다. 정확히는 특이한 말투 덕에 여학생들이 재미있어했다.

그래서 그런지, 티알이 떠난 후의 저녁 식사는 끔찍했다.

티알이 빠지니 분위기가 처졌고,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정두식과 박범철이 재미없는 농담을 던지고, 같이 놀던 여자애들은 지루한 표정 짓다가 부모님에게 혼난다면서 저녁을 먹자마자 도망치듯 떠났다.

한마디로 정두식과 박범철이 재미없어서 벌어진 참사였다.

“우리는 여친 언제 생기냐…….”

정두식의 중얼거림에 박범철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종혁은 두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서 질문했다.

“그러게요. 선배님들. 그런데 꼭 여자친구가 필요할까요?”

두 사람, 특히 정두식이 여자친구와 숙소에서 꽁냥거리는 노태신을 워낙 부러워해서 박종혁이 여자 사람 친구에게 부탁해서 만든 자리긴 했다. 하지만 박종혁은 여자친구가 굳이 필요한지 의문이었다.

박종혁이 오늘 자리를 만든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두식과 박범철을 위해서, 하나는 티알을 포함한 친구들과 놀기 위해서였다.

“이 기만자 새끼. 너는 안 사귀는 거잖아. 너 고백받았다는 얘길 올해만 네 번 들었는데.”

“저는 선배님들이랑 노는 게 더 좋으니까요. 여자애들도 놀 때는 재미있는데 여자친구가 되면 피시방도 못 가게 하고, 얼마나 답답한데요.”

“어휴.”

“말을 말자.”

두 사람이 한숨을 쉬면서 투덜댔다.

정두식과 박범철은 평소 휴가를 받으면 둘이 가볍게 운동했는데, 오늘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이들은 이성에 관심이 많은 한창때의 중학생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네가 자리 만든 거 아니었으면 넌 죽었어.”

“다음에도 만들어 드릴게요. 성공은 선배님들 몫이지만요.”

그래서 박종혁에게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

“……너밖에 없다.”

박종혁은 좋아하는 선배들과 놀 시간이 늘어났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아무튼, 피시방이나 가실래요?”

박범철과 정두식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좋아.”

“좋지, 나 요즘 피방 가면 저글링 블러드 하는데 재밌더라. 같이 하자.”

“방장 사기맵 하시는 거 아니죠?”

“아! 누굴 뭐로 보고!”

정두식이 발끈하면서 어느새 분위기가 밝아졌다.

셋은 자연스럽게 피시방으로 향했고, 피시방에서 막 나와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잠시 물러났다.

그 사람들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바깥으로 나왔고, 셋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무리의 중앙에 있는 남학생이 박종혁을 보며 말했다.

“뭐야? 종혁이 아니야?”

“안녕하세요!”

박종혁이 꾸벅 인사했다.

“잘 지냈냐?”

“예! 건강하시죠?”

“뭐. 그렇지.”

정두식과 박범철은 인사를 하려다가 멈칫했다. 상대도 둘에게 인사하지 않고, 복잡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이들의 이름은 홍준서, 이민재, 박상호. 대영중학교 축구부에서 지상철을 따라 진현중학교 축구부로 옮긴 이들이었다.

박종혁의 인사를 받은 홍준서가 고개를 돌려 정두식과 박범철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는 반갑지도 않냐?”

“……깜짝 놀라서. 안녕.”

박범철이 느릿하게 인사했다.

하지만 정두식은 팔짱을 끼며 인사 대신 되물었다.

“너희는 안 반갑냐? 인사도 안 하고 쳐다보기만 하길래. 우리도 가만히 있었지.”

“에이, 두식아. 말을 왜 그렇게 하냐? 우리도 당황해서 그랬지. 어떻게 지냈어?”

“……잘 지냈어.”

박상호가 정두식에게 좋게 말하면서 말을 걸었다. 이민재도 가볍게 인사했다. 하지만, 홍준서는 가만히 서서 정두식을 빤히 쳐다보았다. 안부 인사를 마친 정두식도 홍준서를 다시 바라보았다.

“…….”

“…….”

둘이 눈싸움을 시작하자 박상호가 화제를 바꿔보려고 했다.

“둘 다 왜 그래…… 아 참, 두식아. 너 왜 연락도 안 받냐? 우리가 아무리 전학 갔다지만…….”

박상호는 원래 정두식과 친했다. 대영중학교에서 둘이 중앙수비수 파트너였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인사도 안 하고 나가버리고, 여름방학 내내 연락 하나 없길래 우리가 싫은 줄 알았지. 2학기 시작하고 연락했지? 받아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안 받았어.”

정두식의 솔직한 말에 박상호가 웃던 채로 굳었다.

침묵이 흘렀다. 그동안 정두식은 이들이 나갔을 때를 떠올렸다.

홍준서, 박상호, 이민재 이 셋은 전학 간 부원중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으면서, 자기들이 먼저 떠나놓고 방학 내내 연락 한 통 없었다.

정두식은 지상철에게 버려졌다는 사실에 자존심이랑 자존감이 동시에 깎여 나갔었다.

반년 정도밖에 안 지났는데 무척 오래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았다.

정두식은 전국대회 지역 리그 순위를 떠올렸다. 자신감이 생겼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말이 심했네. 너희들은 잘 지내냐?”

정두식의 여유가 있는 표정에 홍준서가 갸웃하며 대답했다.

“……오늘 13-0으로 이겼지.”

“올.”

정두식이 호응을 했다. 하지만, 정두식에게는 큰 감흥이 없었고 그게 태도로 드러났다.

심기가 더 불편해진 홍준서가 말했다.

“여유 있어 보이네.”

“우리도 오늘 7-0으로 이겨서 2연승이거든.”

“그러냐?”

“응, 우리 축구부 잘해. 계속 이길 거 같아.”

홍준서는 정두식의 여유로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도발했다.

“우리랑 마지막 경기지? 그때까지 즐겨 봐.”

정두식은 바로 반응했다.

“너네한테 우리가 진다는 식으로 말하네?”

“당연하지. 급이 다른데.”

다른 건 몰라도 경기에서만큼은 물러날 수 없었다. 정두식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급 있는 팀이 1승 1패야?”

“그건…… 운이 없었던 거고.”

“우리는 오늘 신영중학교에 7-0으로 이겼는데.”

정두식이 그렇게 말하면서 박종혁과 박범철을 바라보았다.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박종혁은 긴장하며 양쪽을 살폈다. 홍준서를 만류하던 박상호와 이민재의 표정이 나빠져 있었다.

홍준서가 생각을 쥐어짜 내는지 느리게 반박했다.

“……우리가 마지막에 이기면 그만이야. ……몇 골 넣었든 승패가 똑같으면 이긴 팀이 더 높은 순위 받는 거 모르지?”

홍준서의 말을 느긋하게 기다린 정두식이 바로 공격했다.

“당연히 모르지. 우리는 그냥 단독 1등 할 거니까 관심이 없어서. 너희들은 빠따가 알려줬나 봐? 나머지 경기 다 이기면 1등으로 본선 토너먼트 직행이라니까 더 맞기 싫으면 목숨 걸고 하라고 그랬지?”

“이익…….”

홍준서가 이를 악물자 정두식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정두식이 웃음을 감추지 못한 채로 말을 이어나갔다.

“빠따랑은 비교도 안 되는 우리 감독님은 그런 쓸데없는 것보다는 경기에 이기는 것만 신경 쓰거든.”

지상철을 별명으로 부르면서 대놓고 조리돌림을 하는데도 홍준서를 포함한 셋은 화내지 않았다. 셋도 지상철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홍준서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눈을 크게 뜨더니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맞아. 네 말대로 우리 감독 무능하긴 해.”

“…….”

정두식은 맞장구치지 않았다. 홍준서의 표정이 기분 나빴기 때문이었다. 홍준서의 입에서 본격적인 도발이 튀어나왔다.

“근데, 그런 무능한 새끼한테 버림받은 너희 둘은 뭔데? 초 무능한 놈들인가?”

“뭐?!”

이번에는 정두식이 발끈했다. 홍준서가 눈을 크게 뜬 채로 웃으면서 말을 덧붙였다.

“솔직히 2승 한 거, 너희 둘이 잘해서 이긴 거 맞냐? 태신 선배나 태상이나 송현준이나, 아니면 네 말대로 감독 빨로 이긴 거 아니냐? 우리는 우리 힘으로 하고 있는데?”

정두식의 머릿속에는 순간 송현준의 대활약이 떠올랐다. 말문이 막혔다.

“저, 저기…… 그만하시죠.”

박종혁이 중재하려고 두 무리 사이로 끼어들었다.

하지만 홍준서는 박종혁을 무시하고 악담을 쏟았다.

“정두식, 그런 식으로 남 등에 업혀서 좋은 성적 내고 졸업해 봤자 다른 팀 가서 경기나 뛸 수 있을 거 같아? 응? 범철아, 너도 마찬가지야.”

“범철이한테는 왜 지랄이야.”

정두식이 발끈해서 말했다. 흥분한 홍준서는 앞뒤 안 가리고 시비를 걸고 있었다. 홍준서는 대영중학교에 있을 때도 이런 성격이었다.

홍준서가 정두식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면서 말했다.

“엿이나 먹어. 네가 지랄하는데 가만히 있는 거 보면 네 편이잖아. 둘 다 지상철한테도 버림받은 주제에.”

“뭐? 이 개새끼가!”

홍준서의 막말에 정두식은 손을 번쩍 들었고, 예상했던 박종혁이 정두식을 껴안고 홍준서에게서 멀어졌다. 박범철도 울컥했지만, 박종혁의 간절한 눈동자에 애써 참아냈다.

“준서야. 적당히 해라.”

“너 지금 너무 흥분했어.”

“아, 놔보라고. 야, 정두식. 너 대영중에 있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박상호와 이민재에게 붙잡힌 홍준서가 둘을 비집고 나오려고 하면서 악담을 계속했다.

“지랄! 나도 마찬가지거든!”

정두식도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시내 한복판이었기 때문에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뭐야?”

“싸움하나?”

“중학생들 아니야?”

“싸우게 두지 왜 말려.”

“놔 줘!”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부추기는 사람들에게 박종혁이 화를 내려고 했다.

삑! 삑! 삑!

그때, 힘찬 휘슬 소리와 함께 고함이 들려왔다.

“야! 너희들! 뭐 하는 거야!”

순찰을 돌던 경찰관이었다.

박종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싸움까지는 가지 않았던 덕분에 정두식과 홍준서를 비롯한 주변인들은 훈계받고 귀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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