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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57화 (124/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57화

대영중학교의 축구부원들이 휴가에서 복귀해 자율 훈련을 하고 있을 때였다.

격분한 목소리가 운동장 전체로 울려 퍼졌다.

“뭐라고요!? 그 자식들 미친 거 아니에요?!”

삼삼오오 모여 있던 축구부원들이 일제히 한 곳을 바라봤다. 다음 경기 상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감독 로베르토와 코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자식들을 그냥…….”

흥분해서 발광하려는 1학년 중앙수비수 김성호를 다른 1학년생들이 붙잡으면서 말렸다.

“야, 다 쳐다보잖아.”

“조용히 해 봐. 선배님 얘기 안 끝났잖아.”

“아…….”

김성호는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다가 자신의 격한 반응 때문에 당황해서 멈춘 정두식을 먼저 봤다. 이어서 자신을 바라보는 운동장 곳곳에 모인 축구부원들의 시선을 확인했고, 감독과 코치들까지 자길 보고 있는 걸 깨달았다.

정두식 옆에 서 있던 박범철이 말했다.

“성호야. 진정해.”

“예…… 죄송합니다. 너무 화가 나서.”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정두식은 박범철과 함께 박범철을 따르는 1학년생들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줬다. 처음에는 정두식이 화를 내면서 이야기했지만, 홍준서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들은 1학년들은 격분했고, 가장 흥분한 김성호가 소리를 지른 것이다.

김성호는 주변에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로베르토에게까지 몸짓으로 사과하자 로베르토를 시작으로 축구부원들도 시선을 거두고 자신들이 하던 일을 했다.

“또 소리 지르기만 해 봐.”

“죄송합니다. 조용히 들을 테니까 다 말해주세요.”

김성호의 사과에 정두식은 홍준서와 자신이 나눈 나머지 대화를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렇게 된 거야.”

정두식의 말이 끝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린 1학년들이 한마디씩 했다.

“와.”

“미친놈 아니에요?”

특히 김성호는 목소리를 억누르라고 애를 쓰면서 말했다.

“준서 선배…… 아니 홍준서 그 새끼는 말을 뭐 그딴 식으로 한대요? 범철 선배, 괜찮으세요?”

박범철도 어제를 생각하면 기분이 상했다. 그래도 1학년들이 이렇게 반응해 주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괜찮아.”

“괜찮긴 무슨. 나는 아직도 열받아.”

정두식은 그렇게 말하면서 모랫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두식이 계속 투덜댔다.

“짜증 나 죽겠어. 우리 축구부를 버리고 나간 놈들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맞아?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뭔 말을 그딴 식으로…….”

무능한 감독한테 버림받은 놈들.

홍준서의 그 말이 정두식과 박범철의 가슴을 후벼팠다.

“두식 선배가 너무 참았어요. 저였으면 턱을 한 대 후렸어요.”

김성호의 격한 말에 정두식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올? 그러면 다음에 같이 갈래?”

“어…… 네? 정말요?”

김성호가 자기도 모르게 꼬리를 내렸다. 홍준서는 대영중학교에 있을 때 무서운 선배였다. 밤에 따로 1학년생들을 불러 군기를 잡곤 했는데, 엎드려뻗쳐 자세를 시켜놓고 배를 걷어찬 적도 있었다.

정두식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농담이야. 말은 고맙다.”

“아…… 가죠! 저 혼자라도 갈래요! 선배님들도 무시한 거지만 저희도 무시한 거잖아요!”

정두식의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에 자존심이 상한 김성호가 허세를 부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야야, 진정해라. 출전정지 당하고 싶어?”

“아뇨…….”

박범철의 만류에 김성호가 진정했다. 김성호의 왔다 갔다 하는 반응 덕에 마음이 더 풀린 박범철이 살짝 웃으면서 김성호의 어깨를 두들겨줬다.

“마음은 고마워.”

“아니에요. 근데 선배님들이랑 우리 축구부가 어떻게 되든 지들 생각만 해서 떠난 놈들이 엄청 뻔뻔하네요.”

“올, 김성호, 맞는 말 하네.”

정두식이 동조했고 박범철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1학년생들도 마찬가지로 김성호의 말에 공감하는 행동들을 했다.

박범철은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다.

“진현중학교 대비해서 열심히 준비해 보자. 우리는 축구하는 놈들이니까, 경기로 갚아주는 게 최고잖아.”

정두식이 벌떡 일어나면서 박범철의 말에 공감했다.

“그렇네, 진현중학교 상대로 지금부터 준비하자.”

김성호를 비롯한 1학년들이 서로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김성호가 대표로 말했다.

“저희는 주전이 아니라 경기에는 못 나가겠지만, 선배님들이 준비하는 걸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지.”

김성호의 힘이 들어간 말을 들은 박범철이 부드럽게 웃었다.

다만 정두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와주는 건 정말 고마웠지만 무언가가 찝찝했기 때문이었다.

찝찝한 것이 뭔지 정두식이 생각하는 동안 1학년들과 박범철의 대화가 이어졌다.

박범철이 말했다.

“이번에는 감독님한테 보고하고 하자.”

“아.”

“맞네요.”

“말하죠.”

이들은 야간 훈련을 하다가 송현준에게 걸리고, 호되게 혼난 적이 있었다. 감독에게 걸린 건 아니었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배운 게 있었다. 훈련량이 늘어날지도 모르는 일은 총책임자인 감독에게는 반드시 말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조용히 있던 1학년생 후보 골키퍼, 조제근이 손을 들었다.

“다른 축구부원들도 어제 있었던 일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찝찝한 것의 정체를 찾던 중인 정두식이 생각을 멈추고 끼어들었다.

“그건 안 돼.”

1학년생들은 대답 없이 표정으로 궁금하다는 듯 쳐다봤다.

박범철은 정두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홍준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솔직히 2승 한 거, 너희 둘이 잘해서 이긴 거 맞냐? 태신 선배나 태상이나 송현준이나, 아니면 네 말대로 감독 빨로 이긴 거 아니냐? 우리는 우리 힘으로 하고 있는데?’

어쩌면 핵심을 찌르는 말일지도 몰랐다.

그만큼 송현준과 에이스들의 영향력은 막강했으니까.

솔직히 말하기에는 1학년들에게 체면이 안 섰기에 박범철은 적당히 돌려 말했다.

“3학년 선배들은 별생각 없을 테고, 태상이도 그럴 테고, 1학년 주전 애들도 우릴 위해서 너희처럼 화내주긴 어려울 것 같은데. 괜히 얘기하면 우리만 부끄럽기도 하고…… 뭣보다, 우리 힘으로 하는 게 멋있을 거 같지 않냐?”

“오오.”

마지막 말에 1학년생들이 감탄했다.

하지만 한 명, 조제근에겐 의문이 남아 있었다.

“선배님들을 위해서라면 다들 화내줄 거 같은데…….”

조제근의 진심 어린 말에 정두식과 박범철은 마음이 찔렸다.

박범철은 적당히 얼버무렸다.

“너희들만큼 친하지 않으니까 그래…… 하하.”

“아…… 그런가요.”

박범철의 말에 조제근이 감동한 얼굴을 하면서 드디어 납득했다. 박범철과 정두식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아.”

“또 뭔데.”

김성호의 무언가 깨달은 것 같은 탄성을 듣고 정두식이 물었다.

“저쪽에 있는 선배님들이랑 쟤네들한테는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두식과 박범철이 김성호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쪽에는 1학년생 박지훈과 성동현을 비롯한 2, 3학년들이 섞여서 모여 있었다. 그들은 전 감독 지상철이 축구부 인원을 채우기 위해 급하게 데려온 축구부원들이었다.

지상철이 정두식과 박범철을 버린 것처럼 그들도 지상철이 떠나면서 낙동강 오리알이 될 뻔했다.

전지훈련 이후 축구부에 적당히 녹아들어서 자신들을 장난삼아 6두품이라고 부르는 무리였다.

정두식은 그들을 보며 말했다.

“쟤네들한테는 같이 할 건지 물어보는 게 맞겠다.”

* * *

“저희가요?”

함께 진현중학교와의 경기를 대비하자, 라는 제안에 무리의 대표 박지훈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성동현도 그렇고 나머지 축구부원들은 기운 없어 보였다.

박지훈이 이어서 말했다.

“솔직히 열받는 일이긴 한데…… 저희는 도움이 안 돼요.”

정두식이 물었다.

“……무슨 소리야?”

“저희는 주전이 아니잖아요. 복수 못 해요.”

박지훈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제야 정두식은 찝찝한 감정의 정체를 깨달았다. 후배들은 자신을 도울 생각만 했다.

박지훈이 박범철을 따르는 동기들을 보면서 말하고 있었다.

“저희도 그렇고 쟤네도 그렇고 두식 선배랑 범철 선배 제외하면 주전이 아니잖아요. 나갈지도 모르는 경기를 준비한다니…… 저희는 아직 부족한 게 많아서 그럴 여유가 없어요.”

박범철을 따르는 1학년생들은 자신들이 주전으로 나서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박지훈의 말에 김성호를 비롯한 1학년생들은 그게 뭐 어때서? 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박지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힘없이 말했다.

“그래서 안 될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애써 냉정하게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말투에서 패배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두식은 박지훈과 박지훈의 말에 동조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축구부원들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들도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다. 새 감독이 오고 희망을 품고, 부족한 만큼 더 열심히 하려고 했다. 실력도 확실하게 늘었다.

하지만, 많은 친선경기를 치르면서 점점 주전이 정해지기 시작했고, 최근 치러진 공식 경기 두 번 다 선발명단이 비슷했다.

사실상 주전이 정해진 것이다.

이들은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기회가 없는 3학년은 체념을 1, 2학년들은 앞으로에 대한 불안감으로 훈련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박지훈이 우울하게 말했다.

“저희를 대신해서 열심히 해주세요.”

“……알겠어. 열심히 할게. 파이팅이다.”

“감사합니다.”

박범철이 좋게 마무리하려고 했지만, 정두식은 팔짱을 꼈다.

박지훈의 무리는 과거의 자신이 잔뜩 모여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재능 차이를 입에 달고 살았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물론, 그 생각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사실이니까.

하지만 정두식은 전지훈련에서 자신이 재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로베르토 감독님의 말대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 있었다.

감독님의 말대로 앞으로 무슨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열심히 하면 무언가라도 남을 테니까.

박지훈네와 함께한 지도 거의 1년이었다. 사적으로 친한 건 아니지만 팀으로서의 끈끈함은 있었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으니까.

하지만 이들 무리에 속한 몇 없는 2학년생들은 자기들끼리만 모여 다녀서 더 친해질 수가 없었다.

“뭐 해? 가자.”

박범철이 가만히 있는 정두식의 어깨를 쳤다. 다들 각자 훈련을 위해 흩어지려고 했다.

‘윤태상 망할 자식. 이런 건 주장이 해야 하는 일인데.’

정두식은 속으로 윤태상을 욕하면서 속에 있는 말을 꺼낼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정두식의 눈에 패배감에 짓눌린 것 같은 박지훈의 축 늘어진 어깨가 보였다.

결국 정두식은 참지 못했다.

“야, 박지훈. 너 왜 이렇게 패기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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