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158화
정두식은 화가 났다. 마음에 안 드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주전이 될 생각도 안 하는 박범철을 추종하는 1학년들과 출전 자체를 포기한 듯한 태도를 보여주는 박지훈을 비롯한 중간에 들어온 부원들. 그들에게는 자신의 옛 모습이 겹쳐 보일뿐더러 자신도 저들이 왜 저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싫었다.
그래서 정두식은 이해심을 버리기로 했다.
“주전이 아니라서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면 너희들은 왜 평소에 훈련하냐?”
박지훈이 항변하려는지 입을 열었지만, 정두식은 계속 몰아붙였다.
“박지훈 너 같은 1학년이나, 3학년 선배들이나, 2학년들 다. 왜 훈련하는데? 왜 축구부에 남아 있는데?”
박지훈의 무리에서 발끈한 부원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너희도 마찬가지야.”
정두식은 박범철을 추종하는 1학년들에게도 목소리를 높였다.
박지훈의 무리나 박범철의 추종자들이나 하나같이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정두식은 생각했다.
이들은 후보 선수가 맞다.
하지만 후보 선수라는 건, 경기 출전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도전하는 게 맞다.
정두식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확신했다.
“너희 중에 중앙수비수만 세 명이지?”
정두식과 가장 가까이 있던 1학년 김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까놓고 말하자. 솔직히 내가 너희들보다 실력이 좋아. 경기에서 이기고 싶다면 날 써야 해. 그래서 내가 주전인 거야.”
건방지게 들릴 수 있는 말이었지만, 다들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정두식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이게 영원할 거 같아? 우리 새 감독님은 공정해. 너희들도 알잖아? 영원한 주전이 어디 있어? 훈련에서 더 좋은 모습 보이고, 실력도 는다면 주전 명단이 안 바뀔 거 같아?”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정두식은 대답을 원했기에 박지훈 무리의 대표인 박지훈을 빤히 노려봤다. 박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알면. 비에 젖은 개처럼 축 처져 있으면 어떡해? 주전 자리 뺏을 각오로 더 열심히 해야 할 거 아니야? 우리 감독님은 다른 감독 새끼들이랑 다르다고. 뒷돈 같은 것도 안 받고 실력으로만 뽑아준다고.”
“알죠! 아는데…….”
박지훈이 목소리를 높였다. 정두식은 박지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실력으로 뽑으시니까 더 답답한 거라고요. 우리, 같이 훈련하잖아요? 우리가 주전보다 한참 모자란 건 우리가 더 잘 알아요. 실력으로 밀린 거 알고 있다고요. 근데, 주전들은 놀아요? 주어진 시간은 똑같고, 방법이 없으니까 답답해서…….”
박지훈은 기운 없이 말을 끝맺었고, 박지훈 무리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숙였다.
정두식은 고개를 홱 돌렸다. 위로해 줄 생각 따위 없었다.
“나는 그딴 거 몰라. 야, 김성호랑 니들.”
“엇, 예!”
김성호를 비롯한 박범철 추종자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나랑 범철이 도와주고 싶으면 주전을 뺏을 각오를 해. 도와주는 게 아니라 동등한 조건에서 훈련하는 게 아니면 안 돼.”
정두식은 박범철을 바라보았다.
박범철은 정두식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을 정리한 상태였다. 박범철이 자신의 추종자들과 박지훈 무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나도 두식이 말에 동의해. 너희들 태도는 축구부에도 안 좋고 너희들한테도 안 좋아.”
“예…….”
1학년들의 대답을 들으며 박범철이 박지훈을 바라보았다.
주어진 시간이 똑같고, 방법이 없으니까 답답하다.
박지훈이 자신의 무리를 대표해서 한 말은 박범철이 송현준에게 했던 하소연과 같은 내용이었다.
“어쩔 수 없는 걸 알았으면 선택할 때가 온 거야. 계속 도전할 거면 마음 굳게 먹고, 포기할 거면 빨리 포기하고 새로운 길 찾아.”
박지훈이 눈을 크게 떴다. 박지훈의 뒤에 선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범철아. 가자. 괜히 왔어.”
정두식이 박범철의 어깨를 툭 쳤다. 박범철은 할 말 다 했다고 생각해서 후련한 마음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정두식은 아직도 화가 남아 있었다. 생각할수록 열받았다. 함께 훈련하고 경쟁하는 축구부원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박지훈 무리는 부정적인 생각만 하고 있었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이들에게 몇 번 다가가려고 했던 적이 있었지만, 이들은 항상 자기들끼리만 다녔다. 그 결과 부정적인 생각을 이 정도로 키워 버렸다.
결론에 도달한 정두식이 박지훈 무리에게 쏘아붙였다.
“맨날 자기들끼리 뭉쳐 다니면서 위로만 해주면 기분은 좋겠지? 근데, 아무것도 안 바뀔걸?”
“야야, 적당히 해.”
박범철이 정두식을 붙잡고 끌고 가기 시작했다. 정두식은 자기가 심한 말을 많이 했다는 자각은 있었기에 더 말하지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잠깐만요. 들으면 들을수록 열받는데.”
정두식이 발을 멈추고 박범철의 손을 떼어냈다.
박지훈이 정두식을 노려보고 있었다. 정두식이 말했다.
“말하는 거 봐. 축구부 그만두게?”
“……그건.”
“어쩌게?”
박지훈의 자신의 무리를 둘러봤다. 다들 눈을 부릅뜨고 있었고, 고개를 저었다.
“안 그만둡니다. 축구부 그만두기 싫습니다. 그리고 말 함부로 해서 죄송합니다. 저희 입장을 얘기하고 싶어서…….”
정두식은 속으로 안심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말해 보든가.”
“그만두기도 싫고, 주전도 되고 싶고, 지상철에게 복수도 하고 싶습니다. 지상철은 저희 이름도 기억 못 하겠죠? 저희를 데려와 놓고선…… 잘렸다고 해도 한마디 없이 떠난 그런 놈한테 버려지고 저희가 얼마나 혼란스러워했는지 아십니까? 학교생활 하다가 축구부에 들어왔는데, 또 잘리면…….”
“학교생활 꼬였겠지. 근데 말이야. 너희들끼리만 속닥거린 걸 내가 어떻게 아냐?”
울컥한 정두식이 박지훈을 향해 또 한 번 쏘아붙였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누구랑 친하게 지내든 말든, 생각해 보면 간섭할 문제가 아니었다. 저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말을 했고, 가장 중요한 대답은 들었다. 그렇다면 끝이다.
“아무튼, 포기 안 한다니 다행이네. 앞으로도 잘 해봐. 그럼 우린 간다.”
말을 마친 정두식이 손을 흔들고 박범철과 추종자들과 함께 박지훈 무리를 떠났다.
잘 마무리된 것 같았지만, 박지훈은 찝찝했다. 박지훈은 옆에 서 있는 친구 성동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두식과 박범철, 그리고 박범철을 따르는 1학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두식의 발걸음은 이상하게 느려 보였다.
박지훈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저희도 같이 훈련하고 싶습니다. 저희도 복수하고 싶고, 진현 중학교를 대비해서…….”
정두식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그러든지.”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박지훈은 정두식이 자신들을 위해 쓴소리를 했다는 걸 확신했다. 박지훈은 다급하게 앞으로의 다짐을 말했고,
“앞으로는 주전을 목표로 할 거고…….”
“마음대로 해.”
정두식이 진심으로 원하는 말을 꺼냈다.
“더 섞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두식의 걸음이 멈췄다.
박지훈은 성동현을 비롯한 친한 축구부원들을 둘러봤다. 그들은 박지훈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박지훈은 대답하지 않는 정두식의 뒷모습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감사 표시였다. 고개를 살짝 돌려 박지훈을 확인한 정두식은 황급하게 고개를 돌린 채로, 멋쩍게 대답했다.
“그, 그러든가…….”
박범철은 이제 정두식을 보면서 재밌다는 듯 웃고 있었다. 정두식의 귀는 새빨개져 있었다.
정두식과 박범철, 그리고 박범철의 추종자들은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정두식이 또 한 번 걸음을 멈추더니 박지훈을 향해 소리쳤다.
“뭐 해? 왜 안 따라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얘기해야 할 거 아니야. 그리고 선배님들 말 함부로 해서 죄송합니다.”
박지훈 무리에 속한 3학년생들이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는 의미였다.
“예! 공 챙겨서 따라가겠습니다.”
박지훈은 힘차게 대답했다.
동시에 정두식의 걸음이 빨라졌고, 박범철과 추종자들이 황급히 정두식을 쫓아가서 나란히 섰다. 박범철이 말했다.
“너 좀 멋있었다.”
“닥쳐.”
박범철의 놀리는 듯한 칭찬에 정두식이 말을 잘랐다.
정두식은 뒤를 흘끔 바라보았다. 박지훈과 축구부원들이 자기를 따라오고 있었다.
“……개 오버했네.”
홧김에 저지른 일이 너무 커졌다. 근데, 답답해서 어쩔 수 없었다.
정두식은 히죽거리고 있는 박범철에게 물었다.
“일이 너무 커졌는데. 우리 대체 몇 명이냐? 이거 내가 감당 가능하냐?”
“나는 너만 믿는다. 그렇지 얘들아?”
“맞아요. 두식 선배만 믿겠습니다.”
“따봉입니다.”
“니들도 닥쳐봐.”
정두식이 그렇게 말해도 박범철과 추종자들은 히죽거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잠시 후, 정두식과 박범철, 박범철의 추종자들과 박지훈 무리가 운동장에서 가장 큰 나무 밑에 모였다.
모두가 정두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두식은 애써 태연한 척을 했지만, 머릿속은 태풍이 치고 있었다.
지상철과 홍준서네에게 복수하기 위해 진현 중학교를 이기고 싶었다. 박범철과 자신, 그리고 박범철을 추종하는 1학년들끼리 하던 대로 열심히 하면 괜찮을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박지훈 무리가 합류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축구부의 절반이었다. 절반이 정두식의 말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솔직히 정두식은 훈련 같은 건 잘 몰랐다.
그동안 로베르토에게 배운 것들을 복습하거나, 인터넷이나 TV로 본 해외 스타들을 흉내 내보는 게 다였다.
“진현 중학교랑 붙는 건 마지막 경기니까…….”
정두식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지만, 뒷짐을 진 채로 운동장을 둘러보면서 시간을 끌었다. 박범철이 키득거리는 게 보여서 나중에 명치를 한 대 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로베르토가 보였다. 감독님한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티알! 패스가 너무 느려!”
“너무 멀다!”
“그래도 너무 느리면 안 돼! 이렇게 차면 된다니까?!”
송현준의 발을 떠난 공이 완벽한 높이, 완벽한 속도로 티알의 가슴에 도착했다.
“……그걸 어떻게 따라 하라는 거냐!”
“잘!”
“현주운!”
티알이 항의하자 송현준이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잠시 후 티알도 송현준에게 긴 패스를 했다.
그 모습을 오래 지켜보던 정두식이 어느새 다가온 박범철에게 말했다.
“범철아. 나 자존심 같은 거 없는 거 알지.”
“갑자기? 너 자존심 세잖아.”
정두식은 박범철의 말을 무시하고 1학년 김성호, 박지훈에게 차례로 물었다.
“너도 자존심 없지? 너희들도 없지?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 잘하는 사람한테 배우는 건 당연한 일이야.”
정두식은 모여 있는 축구부원들의 대답을 듣지 않고, 송현준을 가리켰다.
“쟤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누구인지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모두가 송현준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