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162화
새벽부터 일어나 훈련을 한다. 훈련이 끝나면 축구부원들과 함께 로베르토의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다들 수고 많았다. 오늘은 할 말 많으니까 바로 시작하자. 이번 주 상대인 송일 중학교 축구부는 양쪽 윙의 속도가 정말, 정말 빠르다.”
월요일마다 열리는 팀 미팅은 축구부원들에게 당연한 일과가 되었다.
미팅에서는 이번 주의 훈련은 뭘 목표로 하는지, 어떤 훈련을 하는지 간략하게 들을 수 있었다.
예선 리그가 열린 후, 목표는 항상 같다. 토요일에 상대할 팀을 이기기 위한 훈련들이다.
가벼운 훈련으로 몸을 깨운 축구부원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로베르토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 둘 말곤 다 부족해. 윙들도 킥이 별로라서 위협적이지도 않고. 우리가 무조건 이겨야 하는 팀이라는 얘기다. 알겠지?”
“예!”
“그러니까 이번 주 훈련은…….”
로베르토는 화이트보드를 나무막대기로 가리켰다.
화이트보드에는 김정빈 코치가 작성한 이번 주 훈련일정표가 적혀 있었다.
설명은 금세 끝났다. 아무래도 상대가 약팀이다 보니 리그가 열리기 전에 했던 공격적인 전술훈련과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 뭐냐?”
“소시지야채볶음에 소고기미역국.”
“와…… 미쳤네.”
평소였다면 로베르토는 여기서 미팅을 끝냈다. 그래서 축구부원들은 아침 메뉴 얘기를 하거나 일어나려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변동사항이 두 개 있다.”
로베르토의 말에 모두가 멈췄다.
로베르토가 나와 정두식을 슬쩍 보고 모두를 둘러보며 이어 말했다.
“우리는 매주 경기를 치르고 있다. 주전으로 출전한 부원들과 출전 시간이 적거나 없는 부원들의 체력이나 상태가 다르다. 따라서 해야 하는 훈련도 다르다. 대놓고 쉬어야 하는 선수들도 있지.”
축구부원들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를 풀타임으로 뛰는 건 체력을 많이 소비한다. 반면 출전하지 않은 선수들은 체력 소비가 없다. 로베르토와 코치들이 그룹을 나눠 조절해 보려고 했지만, 인원도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하니 합리적인 훈련이 이뤄지진 않았다.
“자유 시간에 의무적으로 하던 기본기 훈련을 자율로 바꾼다. 기간은 예선 리그가 끝날 때까지다.”
“오오…….”
참고로 기본기 훈련은 더럽게 재미없다. 지루하다. 축구부원들 대다수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열심히 하는 축구부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지루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알겠나?”
“예!”
힘찬 대답에 로베르토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 두 번째 변동사항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몇몇 선수들이 우리 조에서 가장 강한 팀이면서 마지막 상대인 진현 중학교 축구부와의 경기를 중심으로 준비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이들은 자유훈련 시간에 모여서 연습할 거다. 담당은 김정빈 코치다. 만약에 이들처럼 특별한 요구 사항이 있다면 얼마든지 날 찾아와라. 이상! 밥 먹으러 가라!”
“예!”
이번에도 힘찬 대답이 나왔다.
로베르토는 이번에 잠깐이지만 멈칫했다. 내가 아는 로베르토라면 그들을 편애하는 거 아니냐는 불만이 나올 걸 예측하고. 답변을 준비해 놨을 것이다.
하지만 축구부원들은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어제 정두식네가 내게 훈련을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과정은 정말 소란스러웠다. 당연히 운동장에 있었던 다른 축구부원들은 무슨 일인지 궁금해했고, 그들에게 직접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시내에서 있었던 정두식과 홍준서의 사건을 들었다.
홍준서의 발언을 들은 축구부원들은 분개했고, 이 사건을 모르는 축구부원들에게도 전달했다. 덕분에 모두가 분노할 수 있었다.
아침 훈련을 하러 나올 때 노태신이 정두식의 어깨를 말없이 두드려 주기도 했다.
“나 먼저 간다!”
“야야야! 같이 가!”
“지금은 박종혁이 옳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박종혁과 티알이 어제 일을 생각하며 앉아 있던 나를 버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옆에 앉은 엄태영만 선한 미소를 지으면서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침 빨리 먹겠다고 아주…… 근데 나도 배가 고팠다.
“태영아, 우리도 빨리 가자.”
“어차피 망했어…… 천천히 먹자…….”
엄태영이 느긋하게 말해서 나도 김이 빠졌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고 있으니 김정빈 코치가 내게 다가왔다.
“현준아.”
“네.”
김정빈이 엄태영의 눈치를 봤다.
“괜찮아요.”
엄태영도 어젯밤에 내가 훈련을 도와주기로 했다는 걸 들었다.
김정빈이 본론을 꺼냈다.
“감독님이랑 지훈이한테 사정은 들었어. 나는 명목상 같이 있어 주는 거니까 네가 알아서 다 하면 돼. 지훈이랑 애들을 잘 부탁한다.”
“열심히 할게요.”
인원이 많으니 어른을 하나 붙여준 거다. 이해가 가는 결정이었다.
그 후 우리는 아침을 먹고,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로 향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이제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고 멍하니 생각을 비웠다. 수업이 끝나고 나선 오후 팀훈련을 한 후에 저녁을 먹었고, 자유훈련 시간이 되었다.
* * *
박범철에게 10분 정도 오늘 할 훈련의 요령을 알려준 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박지훈과 김성호를 비롯한 축구부원들에게 다가갔다.
다들 기대 가득한 눈빛들을 하고 있었다.
박범철에게 했던 것처럼 이들에게도 할 말이 있었다.
“잠깐만 모여 볼래요? 시작하기 전에 할 얘기가 있어서.”
2, 3학년도 있었기에 존댓말로 시작했다. 아침 미팅처럼 내 주변으로 선수들이 모여 앉았다.
“솔직히 터놓고 얘기해 보죠.”
그들이 다 모이자마자 바로 말문을 열었다.
“공격수 세 자리는 박종혁, 티알, 태신 선배. 미드필더에는 태상 선배, 범철 선배, 저. 수비수는 태영이, 두식 선배…….”
엄태영은 양 측면 풀백을 다 소화할 수 있어서 경기마다 왼쪽과 오른쪽을 오갔다. 따라서 골키퍼와 중앙수비수는 노태신과 동기인 3학년으로 고정됐고, 남은 한 자리의 풀백도 3학년들이 교대로 뛰고 있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선발로 출전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내 앞에 앉아 있는 이들, 이들을 한 무리로 묶어 이름을 짓는다면, ‘후보 선수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할 훈련을 위해선 먼저 현실을 알아야 했다.
“알아.”
박지훈의 대답을 듣자마자 다시 입을 열었다.
“앞으로 감독님이 누굴 선발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박범철이 빠지게 되면서 이들 중 몇몇이 기회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박범철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확신한다.
“주전이 되긴 어려울 거예요. 기분이 나쁘겠지만, 솔직하게 말하는 게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괜찮아.”
“그게 더 좋아.”
다들 좋게 대답해 줬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짧은 시간에 경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들 본격적으로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작게 호응하는 소리가 군데군데서 들려왔다.
“기본기나 기술은 이 시간에 안 합니다. 알아서 하세요. 저는 특정 상황을 가정하고 부분 전술훈련을 도와줄 겁니다. 감독님이 좋아하는 상황설정 후 미니게임이죠.”
어떤 부분 전술인지 설명이 필요했다. 뭘 목표로 훈련하는지 알아야 한다. 나와 로베르토는 같은 훈련관을 가지고 있었다.
“저는 여러분이 뭘 잘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있습니다. 각자가 잘할 수 있는 걸 살린 최적의 움직임들을 조합해서 변칙적인 움직임을 반복 연습할 겁니다. 정석적인 움직임이 아닙니다.”
마지막 문장은 두 번 강조하고 싶었다.
왜냐면.
“일반적인 경기에서라면 먹히지 않을 비효율적인 움직임의 비율이 높을 겁니다. 하지만, 후보 선수들에게 필요한 건 한 방입니다. 한 방을 먹이려면 정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 말이 길어질수록 모두가 조용해졌고, 눈빛이 깊어졌다. 몰입하는 게 느껴져서 다행이었다.
“이게 두식 선배랑 범철 선배를 따로 빼고, 여러분을 모아서 훈련하는 이유입니다.”
미니게임이나 전술훈련은 사람이 많아야 할 수 있다. 할 말을 마친 나는 질문했다.
“궁금한 거 있나요?”
동갑내기 김성호가 손을 들었다.
“현준아, 근데 우리끼리 합 맞추면 뭐 해? 누구랑 출전할지 모르는 거잖아.”
김성호의 질문은 핵심을 찌르긴 했다. 물론 대답은 준비돼 있다.
“내가 무조건 주전으로 출전할 거니까 괜찮아. 날 중심으로 연습하면 돼.”
“이야…… 재수 없는 놈.”
김성호와는 적당히 친한 사이다. 김성호가 장난스럽게 야유했다. 여러 시선이 느껴졌다. 부러움도 느껴졌고,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시선도 보였다.
“저를 높게 평가해 줘서 도움을 요청한 거니까, 당당하게 나가겠습니다.”
“오히려 좋아. 너랑 합 맞추면 실전에서도 가능성 있는 거잖아.”
모두에게 말했는데 김성호가 대답해서 이상한 대화가 됐다. 하지만 괜찮았다. 김성호의 말에 여론이 잡히기 시작했다. 다들 좋아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때 박지훈이 손을 들었다.
“다 좋은데, 우리가 뭘 잘할지 파악하고 있다는 건 뭐야?”
“말 그대로예요. 같이 훈련하면서 여러분이 뭘 잘하는지 관찰했어요. 처음 입부 했을 때부터요.”
“뭐? 왜?”
전생에서 봤다고 설명할 수 없으니 진심 절반과 이들이 좋아할 말 절반을 담은 대답을 해줬다.
“전국대회에서 우승하고 싶고, 우승하려면 모든 팀원이 제 역할을 해야 하니까요. 주전들도 언제 부상을 입을지 모르고, 언제 슬럼프가 올지 몰라요. 그래서 몰래 준비했어요.”
다들 놀라워했다.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직접 해보면 알 거예요. 마지막으로…….”
나는 김성호를 보고, 박지훈을 비롯한 1, 2학년생들을 봤다.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남았다.
3학년 후보 선수들은 독특한 훈련을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진학할 고등학교가 정해진 선배들도 있는데 이들은 중도 입학이니까 강한 인상을 줘야만 했다.
“1, 2학년들한테 물어볼게요. 앞으로 전국대회가 최소 세 번은 남아 있다는 건 알죠? 한 시간 한 시간이 소중해요.”
갑자기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날 바라보는 그들. 그들을 향해 솔직하게 말했다.
“솔직히 지금부터 할 훈련은 여러분한테는 비효율적이에요. 이기기 위해서 전술훈련을 반복하면, 그만큼 기본기가 뒤처질 수밖에 없어요.”
진심으로 훈련하는 게 아니면 시키고 싶지 않았다. 단점은 다 설명해 주는 게 좋다.
“또, 수비수나 골키퍼는 훈련을 돕는 역할 위주로만 하게 될 거예요. 제대로 봐줄 수가 없어요.”
이 시절 한국 유소년 축구의 단점과 유사한 문제였다. 프로축구에서 해야 할 걸 성장기에 하는 건 성장에 방해가 된다.
“이걸 감수하고도 할 거예요?”
마지막 질문이었다. 이들은 말없이 서로를 둘러보고, 박지훈을 바라보았다. 박지훈이 대표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