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163화
“다 알아.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경기야.”
많은 것이 담긴 말이었다. 이들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박지훈의 대답을 들으니 두 번째 계획을 실행해도 되겠다는 결심이 섰다.
“좋아요. 그만큼 열심히 할 자신이 있다는 거죠?”
“당연하지.”
“더 힘들어도 괜찮죠?”
“응.”
사실 모두가 지독하게 하는 건 싫었다.
공현성처럼 마지막 인생인 지금까지 가늠이 안 되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거나, 윤태상과 휘경중학교의 축구부원들처럼 높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높은 기준을 가지고 대하는 게 맞다. 에너지를 투입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박종혁이나 티알처럼 여러 전생을 통해 한계를 확인한 사람들은 과한 훈련을 하지 않길 바랐다. 이들은 정해진 훈련량이면 충분히 자신의 한계에 도달할 수 있으니까.
아마 이들도 잠재력이 대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전생의 이들과 매번 친하게 지냈던 게 아니라 이들의 잠재력을 다 봤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이들이 포기하지 않았을 때를 위해 준비한 게 있었다.
나는 사악하게 웃었다. 박지훈이 움찔했다.
“앞으로 학교에서 쉬는 시간마다 리프팅 연습을 추가할게요.”
“뭐?”
다들 당황했지만, 말을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학생들한테 피해 안 가게 축구공으로 하지 말고, 제가 숙소에서 나눠줄 스폰지공으로 하면 돼요. 아무리 생각해도 기본기는 등한시할 수 없거든요.”
김채아가 훈련했던 방법이다.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데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싫지 않다. 좋아한다.
그렇다면 지독하게 굴려줘야지.
또, 이들이 쉬는 시간에 리프팅을 하고 있으면 윤태상이나 노태신 같은 선수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다들 최소한은 할 것이다.
일석이조다.
스폰지공은 오늘 등교하기 직전에 아르드의 직원에게 연락해서 부탁했고, 저녁 먹을 때 이모님이 직원이 주고 갔다면서 내게 전해줬다.
“쉬는 시간마다?”
“어디서 해?”
박종혁을 떠올리며 말했다.
“교실 맨 뒤에서요. 종혁이도 매일 점심마다 발목단련 하거든요.”
“…….”
대답이 없었다.
전술훈련만 생각하고 왔는데 추가된 게 있으니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갈피를 못 잡는 그들을 도발했다.
“설마 그것도 못 하는 건 아니죠? 중요한 경기라면서요.”
“……할 수 있지!”
몇몇이 소리쳤다.
“좋아요. 제가 안 시켜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한 박스 가져왔으니까 축구부 숙소에 놓을 거고, 마음껏 가져가세요.”
“하…… 그 박스가 그거였냐…….”
내가 박스를 가져가는 걸 봤던 김성호가 탄식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모두가 차례로 알았다는 의미로 대답을 하거나 고개를 끄덕여줬다.
“정말 열심히 해야 해요. 저도 축구부 그만두고 나서 지독하게 했어요.”
사실 방황했던 시기지만, 전생들에서 구른 경험이 있었기에 진심을 담을 수 있었다. 항상 잘됐던 건 아니었다. 후보, 명단 제외까지 당했던 적도 꽤 있었다.
그래서 아는 진리가 있다.
“한 팀에서 주전으로 자리를 잡으면 경기를 뛰면서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죠. 또, 코치들은 주전들에게 더 좋은 훈련을 제공할 거고, 마음이 편하니 훈련 효율도 좋아져요. 그러면 실전에서 또 성과를 낼 수밖에 없죠. 흐름이라는 건 그런 거예요. 주전들은 흐름을 타고 계속 성장하고, 후보 선수들은 평소처럼 하면 주전이랑 기량이 점점 차이 나게 돼요.”
비과학적이지만, 어떤 분야에서든 흔히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주전이 되기 위해서 발악해야 해요. 경기를 덜 뛴 만큼 더 훈련해서 따라잡아야 해요. 알겠죠?! 다들 일어나요!”
어느새 내 말에 몰입하고 있던 모두가 벌떡 일어났다.
“좋아!”
다양한 기합성이 들려왔다.
“얘기가 길어졌네요. 시작하죠. 일단 두 그룹으로 나눌게요. 제 왼쪽으로는 김성호…….”
두 그룹으로 나눠서 한쪽은 수비, 한쪽은 공격역할을 맡겼다.
그리고 나는 공격역할에 들어가서 처음 축구부에 들어왔을 때처럼 선수들의 장점을 하나씩 짚어주며 어떻게 해야 할지 설명했다.
이어서 얼마 전에 본 진현중학교의 전술, 아니, 전생 내내 본 지상철의 전술을 완벽하게 파훼할 수 있는 부분 전술들을 하나씩 입력하기 시작했다.
* * *
평범한 일상이 흐르고 금요일 자유시간이 되었다.
후보 선수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내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반복해서 가르친 부분 전술들을 자기들끼리 복습해 보고 있었다.
몇 가지를 지겨울 정도로 반복만 하는 건데도 그들의 표정은 밝았다.
“으랴아아아앗!”
이어서 박범철의 비명 같은 기합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월요일 훈련이 끝나자마자 눈동자가 풀려서 바닥에 누워 있는 거 보고 한마디 했는데 효과가 좋다.
-억지로 기운 나는 척이라도 하세요. 지치면 홍준서 앞에서도 그럴 거예요?
“으아아아악!”
도발은 효과적이었다. 박범철은 열심히 하고 있었다.
운동장이 시끄러워졌지만 만족스러웠다.
“쟤 왜 이렇게 시끄럽냐?”
그리고 내 앞에는 정두식이 있었다.
“열심히 하는 거죠.”
“맨날 죽으려고 하더라. 근데…….”
정두식이 눈을 가늘게 떴다. 불만스러운 얼굴이다.
“난 뭐 없냐?”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정두식에게 숙제를 줬는데 마음에 안 드나 보다.
“숙제는 해오셨어요?”
“선생님이 내준 숙제도 안 해오는데…….”
“설마 안 했어요?”
놀라서 물으니 정두식이 검지로 근처 벤치에 있는 자신의 가방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해왔어. 시끼야.”
“역시 두식 선배.”
정두식은 내 칭찬을 무시하고 투덜댔다.
“왜 나만 공부를 하라는 거야. 나도 뛰어다니고 싶어.”
정두식은 몇 개월 전부터 리프팅 훈련을 통과하는 사람이 됐다. 기본기는 많이 좋아진 편이었다. 단기적으로 더 좋아지는 건 어려웠다.
그래서 정두식은 다른 방향성을 추구해야 한다.
“중앙수비수, 그것도 두식 선배처럼 목소리 큰 수비수라면 똑똑해야 하니까요.”
“지금 난 멍청하다는 거야?”
정두식이 뚱한 얼굴로 되물었다.
“아니, 아니라고요. 왜 그러세요.”
“장난이야.”
정두식이 씩 웃었다.
“……이따 숙제 검사할 때 보죠.”
“와, 후배가 선배 알기를 우습게 보네.”
정두식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익숙했기에 나도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또 이러시네.”
“아무튼, 똑똑해지면 좋다는 거지?”
“네. 선배님은 기술적으로는 할 만큼 했어요. 선배님이 가장 부족한 건 이거잖아요?”
내 머리를 가리키고, 한 번 더 말해서 강조했다.
“가장 부족한 걸 채우는 게 가장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이에요.”
전생의 경험 덕분에 정두식이 기술적으로 눈에 띄게 성장하는 게 무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 머리 나쁘다고 또 긁은 거지?”
“오해예요.”
“그런데 왜 지금 검사 안 하냐? 나름 열심히 했는데?”
정두식은 궁금한 게 남아서인지 더 태클을 걸지 않았다.
정두식은 벤치에 놓은 가방을 보고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공을 정두식에게 양손으로 건넸다. 정두식이 공을 받았다.
“방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공부만 할 건 아니라서요. 공부는 앞으로도 숙제처럼 내드릴 거고, 검사는 훈련 끝나고 뻗어 있을 때 할게요.”
“뻗어 있을 때?”
뭘 할 건지 궁금해하는 눈빛을 보며 웃었다.
“저랑 일대일이요. 최고 수준의 드리블을 보여드릴 테니까 막아보세요.”
“뭐? 얼마나?”
“한 시간이요.”
“…….”
내 실력을 아는 정두식은 한숨을 내쉬었다. 막막해하는 기색이다.
정두식에게도 다른 사람들처럼 이유를 설명해 줬다. 이번엔 간단하다.
“상대 공격수 최진균, 공격형 미드필더 조호선은 중앙에서 뛰면서 개인기가 좋고 발이 빨라요. 태신 선배처럼 버티는 스타일이 아니죠.”
“알지.”
나와 동갑인 최진균과 조호선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역에서 유명했다.
“근데, 두식 선배의 발은 평범해요. 빠른 것도 아니고 느린 것도 아니에요.”
“……알지.”
“그러니까 더 수준 높은 드리블을 막아볼 기회를 드릴 거예요. 경험만 쌓이면 그 아래는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어요.”
정두식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자신감이 미쳤네. 걔네보다 네가 잘한다는 거 아니야.”
“사실이니까요.”
“어휴…… 할 말이 없네. 요즘 왜 이렇게 자신감이 넘쳐 보이냐?”
성장기를 무사히 지나갔고,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훈련도 제 궤도에 올랐다. 최근 몸 상태는 항상 최상이다. 경기에서 존재감을 줄이는 게 답답할 지경으로 컨디션이 좋다.
“오늘 폼은 올해 들어서 최고거든요.”
“……그 정도라고?”
정두식의 얼굴 한편에 걱정이 자리 잡았다. 자기가 계속 당할 게 상상되겠지. 하지만 도망칠 수 없다.
“자, 시작하죠. 시간은 30초, 제가 페널티박스 안으로 30초 동안 못 들어가게 하거나, 제대로 된 슈팅을 못 하게 하면 돼요. 슈팅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수비에 성공한 걸로 할게요.”
“좋아.”
한 시간이면 중간에 공을 주우러 가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쉬지 않고 40~50번은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내기도 하죠. 수비에 세 번 성공하면 두식 선배를 따르는 부원들한테 제가 치킨 쏠게요. 1인당 한 마리씩.”
“……세 번?”
“세 번은 너무 어려웠나요? 두 번으로 줄일까요?”
“…….”
회식 얘기는 물어보지도 않는다. 의도한 대로 정두식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화난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개소리 그만하고 세 번으로 해. 뭐 해, 빨리 덤벼.”
* * *
“아아아…… 악! 진짜! 송현준 이 개자식아!”
대결이 끝났다. 운동장에 대자로 드러누운 정두식이 하늘을 향해 울분을 쏟아냈다.
드리블 대결 결과는 다음과 같다.
1시간 동안 42회를 시도했고, 정두식은 한 번 막았다. 공 주워오는 시간이 생각보다 더 걸려서 50회까지는 못 했다.
누운 채로 숨을 헐떡이고 있는 정두식 옆에 쪼그려 앉았다.
“한 번이나 성공하다니, 잘하셨어요.”
정두식이 발작했다.
“으아악! 놀리냐!”
“칭찬인데요.”
“한 번 성공도 말도 안 돼. 아까 네가 성공이라고 했을 때, 네 슈팅은 제대로 나갔잖아.”
“아니에요. 흔들렸어요.”
33번째였나, 지친 정두식이 악을 쓰면서 달려들었다.
지쳐서 잡생각이 없어져서 그런지 정두식은 내 속임수를 다 간파했고, 처음으로 옷깃을 붙잡았다. 때문에 순간 당황해서 슈팅 임팩트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납득 못 해…….”
물론, 정두식이나 축구부원들이 보기엔 내 슈팅이 평소와 다를 거 없을 거다. 하지만, 내 기준으로는 확실히 별로였다.
“전 거짓말 안 했어요. 아무튼, 수비는 혼자 하는 거 아니니까 실전에서는 더 막을 수 있을 거예요.”
“…….”
정두식이 대답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여전히 숨을 헐떡이는 게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안색도 안 좋아진 거 보면 집중력도 다 나간 모양이고.
“아무튼 선배님이 저한테 부탁한 거니까, 제 기준대로예요. 선배는 한 번 막은 거고, 세 번은 못 막았으니까 제가 이겼어요.”
“……그러던가.”
이어서 다음 주 일정을 알려줬다.
“오늘은 최고 난이도였어요. 다음 주부터는 난이도를 조절할 거니까 더 쉬울 거예요.”
정두식이 눈을 번쩍 떴다.
“안 돼! 다 최고 수준으로 해!”
“안 돼요. 마음이 꺾여요.”
단호하게 반박했다.
정두식이 날 빤히 노려보듯 바라보다가, 픽 웃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진지하게 말했다 보니 정두식도 느낀 모양이다.
“참 나…… 어이가 없어서. 놀리려고 하는 말이 아닌 걸 아니까 더 어이가 없네.”
정두식이 언더테이커처럼 몸만 일으켜서 주저앉은 자세로 바꿨다. 그리고 검지로 내 뒤를 가리켰다.
“근데, 얘네는 왜 여기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