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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64화 (131/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64화

내 뒤에는 후보 선수들이 모여 있었다.

“이것 때문에요. 봐요. 세트피스 노트에요.”

정두식이 뻗어서 욕하는 동안 가져온 노트를 정두식에게 보여주고, 내 뒤에 모인 박범철을 제외한 후보 선수들에게 보여줬다.

“으랴아아앗!”

박범철은 여전히 체력훈련 중이다.

“세트피스 노트?”

박범철의 목소리는 이제 배경음 같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는 내가 내민 노트에 집중했다.

정면 프리킥이 아닌 이상, 완벽한 크로스를 올려도 상대 수비수들을 흩뜨려 놓을 준비가 필요하다. 이때 필요한 게 세트피스다.

세트피스는 코너킥이나 프리킥을 찰 때, 어떤 식으로 패스할 거고 어떤 식으로 움직여 골을 넣을지 준비해서 공격하는 방법이다.

“지금부터 세트피스 연습을 할 거예요. 공격 세트피스에서 공격수와 수비수의 차이는 없어져요. 전부 공격수가 되죠.”

말하는 동안 후보 선수들이 정두식을 바라보았다. 나도 이 훈련을 하는 목적을 얘기하며 정두식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거기서 선배가 골 넣어요. 내가 완벽하게 올려줄 테니까.”

정두식은 헤딩을 잘하는 편이다. 보통 걷어 내는 데만 쓰였지만, 그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노태신이나 윤태상이나 박종혁이 헤딩을 더 잘하지만, 상대도 그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을 미끼로 사용해서 정두식이 골을 넣는다. 이게 내 계획이다.

“…….”

정두식이 앉은 채로 말을 못 하고 있었다. 손을 내밀었다. 정두식이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골 넣고 멋지게 세레머니 해주세요.”

“……그래도 되나?”

“그래야죠. 복수하고 싶다면서요. 골 넣은 것만 봐도 배알이 뒤틀릴 텐데 세레머니 하는 것까지 보면 정신 나가겠죠. 너무 대놓고 도발하진 말고요. 그건 서양에서도 징계행위에요.”

“그러냐? 그건 좀 아쉬운데?”

정두식의 말에 모두가 웃었다.

“아무튼 고맙다. 다들.”

정두식이 입을 꾹 다물며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의지가 느껴진다.

주변에 모인 후보 선수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다들 두식 선배 훈련 도와달라니까 신나서 왔다니까요?”

실전에서는 주전 선수들이 자신들이 연습한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두식 선배는 무조건 출전하잖아? 우리도 보험은 있어야지.

후보 선수들은 정두식을 자신들의 대표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도와드리고 싶기도 하고.

그리고 다들 정두식을 좋아했다.

내 말을 들은 후 그들의 시선을 피하는 정두식에게 말했다.

“참고로 이 세트피스는 감독님이 준비해 준 거니까 실전에서도 쓰일 거예요.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서 연습해 주세요.”

“……어.”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정두식에게 후보 선수들이 한마디씩 보탰다.

“선배님 파이팅입니다.”

“제대로 도와드리겠습니다.”

“두식아 잘해보자.”

그들의 말이 쌓일수록 정두식은 얼굴이 점점 붉어졌고, 결국 못 참고 소리쳤다.

“알겠다고! 고마워 죽겠으니까 잡소리 그만하고 훈련이나 하자고!”

우리는 웃음을 참으면서 세트피스 훈련을 시작했다.

* * *

시원한 늦가을 바람에 정두식이 들고 있던 텅 빈 비닐 봉투가 힘없이 흔들렸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비닐 봉투에 들어 있던 아이스크림은 축구부원들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세트피스 훈련을 도와준 게 고마웠는지 정두식은 훈련이 끝나자마자 아이스크림을 사 와서 나눠줬다.

함께 훈련하지 않는 사람들의 아이스크림까지 사 온 걸 보면 확실히 팀의 분위기를 이끌 자질이 있다. 선수든 코치든 말이다.

“넌 안 먹는다고 해서 안 사 왔어.”

정두식이 그렇게 말하며 내 옆에 앉았다.

“알아요. 그러면 이제…….”

정두식이 아이스크림을 사 오는 동안 다 읽은 공책을 정두식에게 내밀었다.

“숙제 검사 시간이에요.”

정두식은 질색하는 얼굴을 하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아…… 차라리 훈련을 한 시간 더 하자.”

투덜거리긴 했지만.

“이것도 훈련이에요. 그리고 내일도 해야 하는 거 알죠?”

“……내일은 경기인데?”

“두식 선배는 금요일, 토요일이라고 했잖아요. 경기 끝나고 해야죠.”

“맞네. 그랬었지. 그러면 뭐 할 건데? 오늘처럼 너랑 일대일? 세트피스?”

정두식은 주전으로 출전할 예정이었다. 박범철과는 경우가 달랐다. 그래서 몸을 쓸 생각은 없었다.

“아뇨, 경기 날이니까 몸은 쉬어야죠.”

“또 공부야……?”

“공부긴 한데…… 평일에 하는 거랑은 달라요. 진현중학교가 경기하는 모습을 저랑 같이 보면서 얘길 나눌 거예요.”

정두식의 표정이 변했다. 진지하다.

“뭐에 대해서?”

“진현중학교가 뛰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점들을 저한테 얘기해 주면 검토해 드릴게요.”

“오…….”

정두식이 기대된다는 얼굴을 했다.

“선배가 오늘 해온 것처럼요. 자, 이거부터 얘길 나눠볼까요?”

정두식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정두식이 숙제해 온 공책을 내밀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주는 작년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자 유럽의 강호인 AC밀란의 경기를 두 개 보여주고, 그들이 수비하는 방식을 보면서 느낀 점을 적어오라고 했다.

공책에는 정두식의 삐뚤빼뚤한 글씨로 경기에 관한 솔직한 의견들이 적혀 있었다. 정답일 필요는 없다. 직접 보고, 생각해서 정리하는 과정이 정두식에게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틀린 이론만 잡아주면 된다.

내 의도를 모르는 정두식은 한숨을 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땠냐?”

“괜찮았어요.”

“정말?”

“예, 그리고 AC밀란 진짜 잘하지 않아요?”

뭣보다. 공부는 기왕이면 재미있어야 한다. 현재 유럽 최강팀 중 하나인 AC밀란의 영상을 보여준 이유였다. 축구부원들은 소수를 제외하곤 기본적으로 축구를 좋아하고, 정두식도 마찬가지였다. 정두식의 표정이 밝아지면서 목소리가 빨라졌다.

“멋지긴 하더라. 카카 걔 왜 이렇게 잘생겼냐?”

올해는 나중에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카카의 세리에 첫 시즌이었다.

“그건 그래요. 심지어 착하다던데.”

“정말? 다 가졌네.”

“발도 엄청 빠르잖아요. 기술도 대단하고.”

“맞아, 맞아.”

“선배님이라면 얠 어떻게 막을 거예요?”

“……얠 막아? 상상도 안 되는데?”

“선배님이 네스타라고 상상해 봐요.”

“……카카랑 네스타랑 같은 팀이잖아. 나 시험하냐?”

“상대팀 선수 이름은 모를 테니까 예시를 그렇게 든 거예요. 그리고 상상이잖아요.”

“으음……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정두식과 문답을 나누기 시작했다. 공책에 적힌 내용들을 토대로, 정두식이 계속 생각하게 만들 만한 질문을 던졌다.

그리운 선수들의 이름을 들으니 반갑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재미있기도 했다. 머지않아 직접 상대할 날이 기대됐다.

그렇게 얼마나 얘길 나누고 있었을까, 세트피스 훈련 후에 자신들의 훈련을 하던 후보 선수들이 돌아왔다.

“두식 선배님, 현준아. 정빈이 형이 숙소로 돌아가래.”

시계를 보니 벌써 8시 반이었다. 정두식이 살짝 놀란 눈을 했다. 그만큼 집중했다는 뜻이라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숙소에 돌아가기 위해서 준비했다.

그동안 박지훈이 내게 물었다.

“아까 너랑 선배님이 하는 얘기 들었는데.”

“무슨 얘기?”

“진현중학교 경기 보면서 공부한다고.”

“아…… 맞아.”

“우리도 보러 가도 되냐?”

“그러면 좋지. 같이 가자.”

시원하게 대답했다. 오히려 좋았다. 정두식처럼 상대해 줄 수는 없겠지만, 상대할 팀의 경기는 많이 볼수록 무조건 이득이다.

“으어어…… 나도 간다…….”

좀비 같은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체력 훈련을 마친 박범철이 비틀거리면서 다가왔다.

“……그러세요. 괜찮으세요?”

“몰라…… 너 때문이야. 이게 사람이 할 훈련이냐…….”

“체력 훈련은 지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확실한 효과가 있죠. 잘하고 계시네요.”

“하아…….”

뻔뻔하게 나가자 박범철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두식은 그 모습을 불쌍하다는 듯 보다가 비틀대는 박범철을 부축해 줬다. 우리는 함께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박범철을 걱정하는 후배들도 있었고, 오늘 한 훈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부원들도 있었다. 보람된다는 말을 하는 부원도 있었고 힘들다는 말을 중얼거리는 박범철도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축구를 통해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좋아했다.

기분 좋은 밤이었다. 다음 주는 더 열심히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로베르토가 월요일에 말한 대로, 이번 경기는 쉽게 이겼다.

“수고 많았다. 내가 지목한 몇 명은 남고.”

쉬운 경기인 만큼 여러 선수의 집중력이 흔들렸다. 내가 감독이었다면 이겨도 화나는 경기력이었다는 말이다.

“티알, 윤태상, 엄태영…….”

출전한 선수 중 절반이 호명됐다. 그들은 경기에서 팀 적인 움직임을 실수한 선수들이었다.

로베르토는 실전 경기에서는 말도 안 되는 기본기 실수를 제외하면 팀 적인 움직임 위주로 얘기하곤 했다.

“현준…… 살려줘라.”

내 옆에 앉은 티알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이들은 로베르토와 함께 점심을 먹고, 경기 영상을 돌려보면서 몇 시간 동안 붙잡혀 있을 예정이었다.

티알은 경기에서 과감한 플레이를 몇 번 시도했고, 몇 번 실패했다. 거기까진 괜찮았는데 그 이후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과감한 플레이를 넘은 이기적인 플레이를 하다가 조기 교체를 당했다.

이것도 티알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힘내라.”

격려 말고는 해줄 게 없다.

“으으…….”

티알이 불안해하든 말든 시간이 없었다. 후보 선수 중에 오늘 경기에 출전한 건 두 명, 둘 다 로베르토에게 호명됐고, 둘을 제외한 나머지와 정두식, 박범철이 내 주위로 모이고 있었다.

“야! 송현준! 오늘도 안 놀아?”

근처에 있던 박종혁이 가방을 메고 와서 물었다.

“우리 진현중학교 경기 보러 갈 거야.”

“……오.”

박종혁은 내 주위에 모인 이들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정두식과 박범철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선배님들 파이팅입니다! 오늘은 범철 선배한테 관심이 있다는 친구가 있어서 약속을 잡았는데…… 다음으로 미뤄야겠네요.”

박종혁의 말을 박범철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뭐? 정말이야?”

뒤늦게 작은 목소리로 되물었지만 늦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박종혁은 크게 인사하고,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자, 잠깐!”

뒤늦게 박종혁에게 손을 뻗으며 박범철이 목소리를 높여봤지만, 박종혁은 우리 축구부원 중에 가장 빠르다. 박종혁은 어느새 노태신과 함께 한참 멀어져 있었다.

그리고 박범철은 그 둘을 쫓아가려다가 정두식에게 목 뒤를 붙잡혔다.

“어딜 가려고.”

“아니. 잠깐만. 종혁이가 말한 거 들었잖아.”

“안 돼.”

“아니, 생각해 보면 나는 원래 안 가도 되는 거잖아. 보내줘.”

“혼자서 솔로 부대 탈출하겠다고? 절대 안 되지. 그리고 선약이 먼저인 거 몰라?”

“아, 망할, 이 나쁜 놈아. 아, 어제 왜 따라간다고 그랬지…….”

박범철은 자조하면서 정두식에게 질질 끌려갔다. 나와 김성호, 박지훈과 후보 선수들은 눈빛을 교환하다가 웃었다. 우리는 두 사람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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