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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65화 (132/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65화

전국대회 예선 리그가 열리는 종합운동장.

이곳에 많이 익숙해진 우리는 진현 중학교의 경기가 한창 열리고 있는 경기장에 금세 도착했다.

“형!”

김정빈 코치를 발견한 박지훈이 그에게 다가갔다. 김정빈 코치가 박지훈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뒤에 있는 우리에게도 인사했다.

김정빈은 매번 우리 팀의 경기를 보지 못했다. 다른 팀들의 경기 영상을 직접 찍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김정빈이 물었다.

“이겼냐?”

박지훈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10대 0이요.”

“따봉이네.”

김정빈이 기뻐했다. 박지훈을 비롯한 후보 선수들은 직접 출전하지 않았기에 아쉬움 반, 기쁨 반의 얼굴들을 했다.

김정빈에게 물었다.

“시작한 지 얼마나 됐어요?”

“20분? 별로 안 됐어.”

급조된 대회인 만큼 축구부들의 사정에 따라 경기 시작하는 시간이 제멋대로였다. 시간이 정해져 있긴 해도 다 지켜지진 않았다. 우리는 오전에 빨리 경기를 치르고, 점심부터 쭉 쉬는 걸 선호하는 편이었다.

“영상은 언제 볼 수 있어요?”

“내일, 시청각실 빌렸어.”

김정빈이 가슴을 펴며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정빈이 형 멋있어요.”

“더 칭찬해 줘.”

“최고, 짱.”

“으흠흠.”

너스레를 떠는 김정빈의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잘 적응한 것 같았다. 비선출이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지금처럼 여러 업무를 성실하게 하고, 친근하게 대해주니 축구부원들이 좋아했다. 또, 명문대 출신이다 보니 축구부원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

운동하는 사람들과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영역이 너무 달라서 서로를 싫어하기보다는 신기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김정빈은 공부 잘하는 무리의 끝판왕이었으니까.

눈 밑이 퀭한 건 모른 척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데이터를 정리하거나 문서, 영상 작업이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잠이 부족했다.

김정빈과 후보 선수들은 어느새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고, 나는 엉뚱한 곳을 보고 있는 정두식을 재촉했다.

“선배님, 뭐 하는 거예요. 우리 얘기 들을 사이에 경기를 봐야죠.”

“아놔, 진짜 잔소리는. 보고 있었어.”

사실 정두식은 경기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다른 거였다.

“선배님, 홍준서가 가장 싫죠.”

“지상철이랑 비슷한데…… 걔가 최고로 싫지.”

“그래도 홍준서만 노려보는 건 안 돼요.”

정두식이 움찔했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다.

“선배님이 신경 써야 할 사람은 홍준서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좀 다른 사람을 쳐다봐요. 전체적인 그림을 봐야 한다고요.”

“……미안. 나도 모르게.”

“괜찮아요. 이제부터 보면서 느낀 점을 저한테 얘기해 주세요.”

정두식이 눈에 힘을 주는 모습을 보고, 이번에는 고개를 떨구고 있는 박범철에게 말했다.

“범철 선배는 그만 슬퍼하고 홍준서 보시고요.”

“응…….”

자신에게 관심 있다는 사람의 이름이라도 알고 싶다고 불쌍하게 외치던 박범철은 그래도 경기에 집중하려고 했다.

“경기 끝나고 따라가면 되죠. 나중에 합류하면 되잖아요.”

나는 박범철의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경기장이 시끄러워서 정두식이나 후보 선수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박범철이 반색했다.

“오? 정말? 더 안 잡아둘 거야?”

“두식 선배님만 잡아둘 거예요.”

“……고맙다. 그 자식은 오래 잡아둬라.”

박범철이 이를 갈며 말했다. 작게 웃었다.

정두식의 옆으로 돌아갔다. 정두식은 여전히 경기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자 보면서 들으세요. 진현 중학교는 전체적으로 잘하지만, 특히 1학년인 조호선과 최진균이 뛰어나요.”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어제 네가 둘 다 드리블러라고도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네.”

“맞죠. 조호선은 원래 윙이었다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옮긴 거라 발재간이 유난히 좋고요. 최진균도 발기술이 좋지만, 헤딩도 잘해요. 키도 딱 평균이니까 신경은 써야 해요.”

“으음…… 오.”

마침 경기장의 조호선이 중앙에서 미드필더 두 명을 드리블로 뚫어내고, 전방의 최진균이 수비수 사이를 침투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패스했다.

최진균은 한 번의 터치로 슈팅하기 좋은 위치로 공을 보내고, 단숨에 슈팅으로 연결했다. 준비시간이 짧았기에 상대 수비수들은 대처하지 못했고, 최진균의 슈팅은 골로 이어졌다.

삐익!

심판의 휘슬이 울리고, 최진균과 조호선이 하이파이브를 했다. 관객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지상철은 만족스러운지 벤치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서 일어나지 않았다.

“딱 나왔네요. 최진균은 달리기 속도도 평균, 키도 보통이지만 공을 다루는 기술이랑 슈팅 감각이 뛰어나요. 최고 장점은 성격이 대범한 거죠. 쟤는 겁이 없어요.”

이어서 조호선에 관해 설명해 주려는데 정두식이 끼어들었다.

“잘 아네, 너랑 동기라서 그런 거야?”

“동기요?”

“손백호상 말이야. 너 대상 받았을 때 쟤는 장려상이었잖아. 대상인 너는 잘 모르겠지만, 장려상도 대단하니까…….”

“……모르긴 뭘 몰라요. 알죠.”

은근히 놀리려고 해서 눈을 부라리면서 항의했다. 정두식이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현준이 손백호 선수상 대상 받았어?”

그때 우리 대화를 흘려듣던 김정빈이 깜짝 놀라며 끼어들었다.

“오래전이지만요.”

솔직히 말하면 기억도 잘 안 난다. 상을 받았던 초등학교 5학년 때와 지금의 나는 두 살 차이일 뿐이지만, 그사이에 열 번의 전생이 끼어들어 있었기에 수백 년은 지났다고 느낀다.

“모르셨어요? 송현준 얘 축구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거 같아도 초등학교 때는 우리 지역에서 최고였어요.”

“와…… 역시. 재능은 재능이구나.”

박범철과 김정빈의 대화를 흘려들으며 정두식에게 다시 말했다.

“아무튼, 예전 상은 안 중요해요. 지금이 중요하지.”

“부럽다. 나도 그런 말 해보고 싶다. ‘예전 상은 안 중요해요. 지금이 중요하지.’”

“오오, 역시 두식 선배님 성대모사 잘하네요.”

“그렇지?”

정두식과 김성호의 죽이 잘 맞았다. 눈을 가늘게 뜨면서 불만을 드러냈다.

“……선배님. 김성호.”

“미안. 제대로 들을게.”

“미안.”

정두식이 자세를 고쳤다. 그의 두 눈이 다시 경기장을 향했다.

“사실 최진균보다 더 위험한 건 조호선이에요.”

“쟤는 손백호상 받은 적도 없잖아. 그리고 경기도…….”

정두식이 고개를 기울였다. 조호선은 어시스트 장면을 빼면 최진균보다 모자라 보인다. 하필 윤태상과 같은 포지션에서 뛰고 있어서 더 모자라 보이기도 하고.

적성의 차이였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쟤는 원래 윙이에요. 심지어 성격도 정말 소심하죠. 바뀐 포지션에서는 확신이 안 들어서 적극적으로 못 하는 거예요.”

“……그래?”

조호선은 윤태상처럼 국가대표까지 수시로 오는 뛰어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특유의 소심한 성격 때문에 어떤 감독을 만나냐에 따라 인생이 많이 바뀐다.

같은 대전 출신이었기 때문에 같은 고등학교 축구부에서 뛴 적도 있었다. 워낙 착한 애라 매번 적당히 친했다.

근데, 지상철 때문에 엉뚱한 자리에서 뛰고 있다.

벤치에 앉아 있는 지상철이 웃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기분이 나빠졌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월드컵에 출전할 잠재력이 있는 선수를 지상철이 망치고 있다. 경기에서는 이기고 있었지만, 조호선의 표정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조호선의 얼굴에 전생의 내가 겹쳐 보였다.

진현 중학교를 확실하게, 압도적으로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이면 진현 중학교의 수뇌부가 충격을 받을 정도로 말이다.

“두식 선배, 아직도 느낀 점 없어요?”

“……갑자기? 아직 없는데, 그러니까…….”

정두식은 억지로 대답을 찾아내려고 했다.

순간 마음이 급해져서 재촉해 버렸다.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심호흡했다.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천천히 보세요.”

“……장난해?”

정두식의 핀잔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지상철 면상 보니까 갑자기 화가 나서요.”

“그건 이해할 수 있지.”

정두식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잠시 후 갸웃하며 물었다.

“네가 왜? 너 지상철 밑에서 뛴 적 없잖아.”

“……선배님들 고생한 게 상상돼서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정두식이 피식 웃고 다시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자식, 아부가 자꾸 느네.”

* * *

시간을 되돌려서 경기가 끝난 직후, 티알은 벤치에 축 늘어져 있었다.

경기장에서 막 돌아온 축구부원들이 땀을 닦고, 물을 마시고, 유니폼을 벗어 던지느라 벤치는 정신없이 북적거렸다. 그중 박종혁은 기운 없어 보이는 티알을 발견했다.

박종혁이 티알에게 다가갔다.

“티알, 시내 갈래?”

박종혁의 여자 사람 친구들은 티알이 있으면 재미있다고, 티알을 꼭 데려와 달라고 했었다.

“오늘은 안 간다…….”

하지만, 티알이 원하지 않는다면 데려가지 않는다. 본인이 가고 싶어 할 때만 함께 논다. 더 즐겁게 놀기 위한 박종혁의 원칙이었다.

“그러냐?”

“응…… 놀 기분이 아니다…….”

박종혁은 티알의 기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티알은 요즘 경기 출전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고, 훈련에서도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 와중에 오늘은 조기 교체를 당했다.

슬럼프다.

박종혁은 티알을 위로하기 위해 등을 손바닥으로 짝 소리 나게 쳤다.

“악! 무슨 짓이냐…….”

“힘내라고. 짜식아.”

갑자기 얻어맞아 발끈했던 티알은 이어지는 박종혁의 말에 찡한 감정을 느꼈다.

“박종혁은 은근히 착하다…….”

“은근히? 은근히?”

박종혁은 그렇게 되물으며 티알에게 헤드록을 걸었다.

“으아악! 박종혁이 나 죽인다!”

티알의 옆에 앉아 축구화를 갈아신던 송현준도 웃었다.

“야, 종혁아.”

“네.”

박종혁은 노태신이 불러서 떠났다. 박종혁이 떠나자 티알은 들떠있던 마음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

“태영아. 오늘 움직임 왜 이렇게 좋냐?”

“그랬어……?”

송현준과 엄태영이 경기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들으며 티알은 우울함을 느꼈다.

지난 경기에서 공격포인트를 올리긴 했지만, 티알은 스스로의 위치를 잘 알았다. 지난 경기에서도 티알은 경기 흐름을 못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선수들이 100의 속도로 뛴다면, 자신은 50의 속도로 뛰고 있었다.

자신에게 공이 오면 답답했다.

티알은 답답함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했고, 경기 시작 30분 만에 조기 교체 당했다.

“수고 많았다. 내가 지목한 몇 명은 남고. 티알, 윤태상…….”

친선경기를 할 때도 로베르토는 경기 중에 부족한 선수가 있으면 경기 후에 따로 불러 영상을 함께 보며 움직임을 가르쳐주곤 했다.

처음에 티알은 즐겁게 배웠지만, 몇 개월째 불려 가다 보니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특히, 같은 부분을 지적당할 때 더 그랬다.

티알은 자신의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송현준이 밝은 얼굴로 짐을 챙겨서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티알은 송현준에게 투정을 부렸다.

“현준…… 살려줘라.”

송현준이 웃으면서 티알을 위로했다.

“힘내라.”

“으으…….”

송현준도 방법이 없다는 걸 티알도 잘 알고 있었다.

노태신과 이야기를 마친 박종혁이 돌아와서 송현준에게 말을 건넸고, 이어서 정두식과 박범철을 비롯한 후보 선수들이 송현준과 박종혁을 중심으로 떠들썩하게 웃었다.

티알도 송현준이나 박종혁처럼 실력으로 팀에 녹아들고 싶었다.

하지만, 축구는 정말 어려웠다.

티알은 옷을 갈아입는 것도 잊고, 송현준과 우르르 몰려 나가는 후보 선수들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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