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166화
정두식네와 함께 훈련하고 몇 주가 흘렀다.
“대체 말이야, 교직원 단합대회가 왜 연말에 있는 거야? 단합대회면 친해져 보려는 자리 아니야?”
정미영 선생님이 교단에 선 채로 투덜거리고 있었고, 우리 반 친구들 30여 명은 선생님의 불평을 경청하고 있었다.
“다 친해지고 단합대회를 하면 무슨 소용이야? 학기 초에 했어야지. 학기 말에 하면 무슨 소용이야. 안 그래?”
“쌤, 우리한테 말해봤자 선생님은 가야 해요.”
박종혁의 조심스러운 일침에 선생님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아아…….”
선생님의 과장된 행동에 나와 반 친구들은 소리 내서 웃었다.
“그래, 맞아, 단합대회 가기 싫어. 가면 막내란 말이야. 여기에서는 귀찮은 일 있으면 너희 시키면 되는데.”
“우우우.”
“아이고, 말실수했네?”
선생님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장난을 쳤다는 걸 알렸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올해가 끝나가고 있었다. 기말고사만 남았다. 함께한 시간이 많아진 만큼 선생님과 반 친구들은 몹시 친해졌다.
지금처럼 별 얘기를 다 할 정도로 신뢰하는 것이다.
“쌤! 이러다 열두 시 되겠어요!”
이런 식으로 항의할 정도도 되고.
오늘은 기다리던 단축수업 날이었다. 오늘은 대영 중학교 교직원 단합대회를 하고, 내일은 개교기념일이다. 학기 시작할 때부터 정해져 있던 휴일이었기에 반 친구들은 오늘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이 눈을 부라렸다.
“그래서? 열두 시가 뭐? 나는 못 쉬는데 너희들은 쉬겠다고?”
“선생님은 어른이잖아요.”
“어른이 뭐! 나도 너희들이랑 생각하는 건 똑같아!”
“에이…….”
“진짜라고…… 너희들도 나이 먹어봐라.”
반 친구들의 야유를 들은 선생님이 반박했다.
그리고 그때, 김성환이 손을 번쩍 들었다. 박종혁과 함께 우리 반에서 목소리가 큰 친구다. 1학기에는 체육대회 축구 멤버였다.
“아, 쌤, 어차피 가야 하는 거 받아들이시고 빨리 끝내주세요~ 우리라도 살아야죠.”
김성환이 냉정하게 말했다.
선생님이 정색했고, 반 친구들이 우렁차게 웃었다.
반 친구들이 웃는 동안 선생님의 표정이 점점 능글맞게 바뀌었다. 선생님은 김성환을 은근한 눈빛으로 보기 시작했다.
김성환이 불길함을 느끼며 자신의 말을 주워담으려고 했다.
“아, 아니에요. 선생님의 고통은 저희의 고통…….”
“됐어, 괜찮아.”
선생님이 싱글거리면서 말을 끊었다.
반 친구들이 조용해졌다.
이어서 선생님이 준비해 둔 한 방을 먹였다.
“아 참, 단축수업 때문에 서류 옮기는 거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성환이가 도와주면 되겠네. 좋아, 성환이면 교무실로 따라오고 나머지는 이제 집에 가자. 다들 좋지?”
“네!!!”
한순간에 반 친구들에게 버림받은 김성환이 아차 하는 얼굴을 하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
“다들 가방 싸.”
“네!!!”
반 친구들은 가방을 싸면서 김성환에게 한마디씩 했다.
“고맙다.”
“너의 숭고한 희생 잊지 않을게.”
“멍청한 새끼.”
“성환아 사랑한다. 수고하고.”
덕담이 오고 가는 정겨운 풍경이다.
우리 반은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분위기 좋기로 소문났다. 반 친구들끼리 다 친하고, 폭력적인 학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교단에 양손을 올리며 하교 공지를 마무리 지었다.
“청소는 다 했으니까 애들 다 나가면 반장이 문 잠그고 열쇠 가져오고. 다들 밤늦게까진 놀지 말고, 내일은 위험한 곳 가지 말고, 모레 보자!”
“네! 선생님!”
우리는 힘차게 대답했다. 한 명 빼고.
“성환이 안 오고 뭐 하니?”
그렇게 김성환은 끌려갔다.
선생님이 사라지자 우리는 대놓고 낄낄거리면서 김성환을 놀렸다. 이어서 교실은 금세 도떼기시장처럼 시끌벅적해졌다.
조퇴든 외부행사든, 어떤 이유든 남들 수업하는 시간에 밖을 돌아다니면 그렇게 설렐 수가 없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안다.
오늘은 합법적으로 그 설렘을 단체로 즐길 수 있는 날이다.
나도 두근두근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렇다.
매일 수업을 듣는 나날 사이에서 이런 비일상은 모험하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반 친구들은 친한 무리끼리 뭉쳐서 놀러 갈 계획을 세우느라 한창이었다.
“얘들아, 파티 구한다. 놀러 가쉴? 놀러 가쉴?”
우리 무리의 중심인 박종혁도 습관처럼 사람 모으기를 시작했다.
“재영?”
“나랑 시환이는 대여점 갈라고 그랬는데. 합류할래?”
“좋지. 만화나 볼까? 오늘은 뭘 해도 좋다고.”
단축수업과 개교기념일은 학기 시작 전부터 정해져 있었던 행사다. 교직원 단합회는 당연히 직원들인 로베르토와 코치형들도 포함이었고, 로베르토는 단합회에 맞춰 축구부 훈련을 조절했다.
따라서, 축구부도 오늘은 쉰다.
사실 저번 주에 로베르토는 전국대회 예선을 빌미로 단합회를 빠지겠다고 내게 말했다. 하지만 같은 날에 이사장이 해맑은 얼굴로 로베르토를 찾아와서
-로 감독한테 주려고 이탈리아에서 와인을 몇 병 공수해 왔어. 기대되지?
라고 말했다고 한다. 로베르토는 이사장이 떠난 후 내게
-영대 아저씨의 기대를 배신할 순 없지…….
라면서 참가하겠다고 했다. 난 로베르토의 혓바닥이 입술을 핥는 걸 놓치지 않았다. 와인이라는 말에 눈이 돌아간 것 같았다.
뭐, 결론은 축구부도 쉬는 날이라는 거다. 내일 오후 3시에 훈련이 잡혀 있긴 하지만 그때까진 자유다.
박종혁이 나한테도 질문했다.
“송현준~ 오늘도 훈련할 거냐? 훈련하겠지? 훈련할 거야…….”
반쯤 포기한 어투다. 놀자고 할 때마다 안 간 게 95%라 이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놀 건데?”
물론 오늘은 다르다. 박종혁이 크게 당황했다.
“미친 모범생이 웬일이야?”
“미친 모범생은 뭐야? 나도 항상 놀고 싶거든.”
“얘들아! 현준이 놀러 간데!”
“야, 시끄러.”
박종혁을 제지해 봤지만 늦었다.
다른 무리에서 친한 친구들 몇의 시선이 모였다.
“정말?”
“미친.”
“오늘 무슨 일 났냐?”
들리는 한 마디마다 어이가 없었다.
“……다들 왜 놀라는 건데. 나…… 놀 땐 제대로 놀았는데…….”
훈련할 때랑 놀 때를 확실하게 구분해서 쉴 땐 쉬었다.
하지만 이들이 보기엔 아니었나 보다.
“웃기시네.”
“2학기 들어서 축구만 했잖아.”
“시간 나면 채아였나? 걔랑 밥 먹는다고 하고.”
“와, 그렇네. 이 나쁜 놈.”
“박종혁이 노는 거 생각하면 현준이는 기계처럼 축구만 하는 거잖아.”
“야! 은근슬쩍 나 까지 말고.”
음해가 쏟아져서 억울했다.
내년도 학교에 다니긴 하겠지만, 프로축구선수와 병행하면 제대로 된 학교생활은 어려울 거라는 걸 안다.
그래서 오늘은 작정하고 놀기 위해 훈련 일정까지 조절하면서 시간을 만들었는데 이런 음해를 받다니…….
옆자리의 티알도 그들의 말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티알에게 물었다.
“내가 그 정도였다고?”
“그렇다. 근데 진짜 놀러 갈 거냐?”
“응, 너도 가자. 요새 피곤해 보이는데 가끔 풀어줘야지.”
“나는 오늘도 훈련을…….”
티알의 말을 끊었다.
“괜찮아, 너 엄청 열심히 하잖아. 휴식은 반드시 필요해.”
“……그렇다면 알겠다.”
티알을 꼬드기는 데도 성공했다.
티알이 프로축구선수가 되었을 때 기복이 큰 이유는 근본이 감정적인 녀석이기 때문이었다. 감정적인 만큼 인생도 즐기면서 살 때 가장 행복해하는 놈이…… 나비효과 때문에 요즘 너무 고생하고 있었다.
스트레스를 풀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우리의 대화를 듣던 친구들이 말했다.
“티알도 간다고?”
“현준이도 가고?”
“뭐?!”
“나도 간다!”
“너희들 원래 갈 거였잖아…….”
송시환, 송재영, 지상준이 괜히 오버하면서 장난을 쳤다.
“……으아, 오늘 가족여행 가기로 했는데. 왜 하필 오늘이야…….”
“전국대회 끝나고 축구부끼리도 한번 놀러 가자.”
“응…….”
엄태영은 아쉽게 빠지게 됐지만, 새로운 멤버가 있었다.
“나도 낄래.”
“오오, 반장이다.”
박종혁이 과장된 반응으로 장난치자 김현호도 장난스럽게 박종혁을 툭 쳤다. 체육대회에서 축구를 할 때 큰 역할을 해준 김현호다.
“나도 갈래.”
“성환이 벌써 왔냐? 도망침?”
김성환도 왔다.
“쌤이 장난친 거라고 보내줬어.”
“역시.”
“근데 송현준도 가냐? 오늘 무슨 날인가 보네?”
다들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놈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체육대회 때 함께 축구 했던 친구들도 합류하고 싶어 했지만, 선약이 있다고 아쉬워했다. 다음에 놀기로 약속했다.
박종혁이 최종적으로 결정된 파티원들의 숫자를 하나하나 셌다.
“여섯, 일곱…… 여덟 명이다!”
“여덟?”
송재영이 박종혁의 말을 확인했다.
“완벽한 숫자인데?”
송시환이 감탄했다.
“오늘 ‘그거’ 할 수 있겠다.”
지상준이 운을 띄웠고,
“‘그거’말이지?”
박종혁이 마무리하면서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와 티알을 제외한 여섯 명이 큭큭 거리기 시작했다. 나와 티알은 서로를 보며 갸웃했다.
* * *
우리는 학교에서 나와 PC방에 왔다. 우리만 단축 수업 한 날이라 한산했다.
내 자리에 있는 모니터에 펼쳐진 익숙한 화면을 보고, ‘그거’의 정체를 알게 된 나는 어이가 없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가 뭔가 했더니.”
“야, 지금 국민 게임 무시하냐?”
옆자리에 앉아서 햄버거를 먹던 박종혁이 따졌다.
박종혁 옆자리에 앉아 있던 지상준도 합류했다.
“여덟 명 모으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모니터에는 스타크래프트가 켜져 있었다. 맵은 8인용인 헌터, 방 제목은 헌터 4:4 초보만.
친구들이 하나하나 방에 들어오는 동안 우리는 컵라면, 햄버거, 계란 등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는 삶은 계란을 먹고 있었다.
“여덟 명은 헌터 4대 4를 할 수 있는 완벽한 숫자라고.”
“인정하긴 해.”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 다 같이 피시방에서 하기에는 이만한 게임이 없었다.
오랜만에 하는 건데 잘 될지 모르겠다. 전생하고 나서 형이랑 축구게임 한 거 말곤 게임을 별로 안 해서.
“팀은 어떻게 짤 거야?”
“들어온 순서대로.”
“옆에 앉은 사람이 맵 보면 어떡해.”
“양심에 맡기자구~.”
박종혁의 능글맞은 대답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 지상준! 언제 들어와!”
“이 망할 놈들이, 니들 햄버거는 전자레인지 다 돌렸다 이거지.”
“벌써 5분 까였어.”
“아 진짜!”
친구들의 장난스러운 재촉에도 지상준은 햄버거를 꿋꿋이 데우고, 자기 자리로 가져와서 접속했다.
“반장과 축구부 vs 일반인들이네.”
“우리가 축구는 못 해도 게임은 더 잘하지.”
“작살을 내주마.”
나와 티알, 박종혁과 김현호가 한 팀이고 나머지가 한 팀이었다.
티알은 스타크래프트가 처음이라 박종혁이 가르쳐 주기로 했다. 박종혁이 상대 팀에게 말했다.
“티알은 배워야 하니까 첫판은 봐줘.”
“오케이, 접수.”
“그리고…… 아! 김성환! 말 안 끝났는데 치사하게 시작 누르냐!”
“아 몰라! 맞으면서 배워! 쓰리!”
게임 시작이 다가옴을 알리는 전자음에 맞춰 김성환이 외쳤다.
또 한 번 띠- 하는 소리가 났고 우리는 목소리를 높였다.
“투!”
“원!”
“가자!”
나도 크게 외쳤다. 모처럼의 팀 게임을 하니 가슴이 두근댔다. 엔도르핀이 도는 것 같다.
“얘들아~ 조용히 하자.”
근데, 근처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동네 아저씨가 낮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경고했다.
성인이 돼서 피시방에 갈 때 제일 화나는 게 초등학교, 중학생들이지. 시끄럽긴 하다. 당사자가 되니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에너지가 넘쳐서 그런 거겠지.
아무튼 잘못했으면 사과하면 된다.
“네! 죄송합니다.”
“조용히 할게요!”
“그래~.”
동네 아저씨는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자신의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우리도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입을 꾹 다물고 마우스와 키보드를 열심히 눌렀다.
“자, 티알, 속성으로 가르쳐 줄게. 일단 일꾼한테 미네랄을 캐게 하면서 일꾼을 계속 뽑아야 해.”
박종혁이 티알을 가르치는 소리만 들렸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