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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67화 (162/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67화

게임이 시작하고 고작 몇 분 만에 두통이 찾아왔다.

네 명의 월드클래스 수비수들에게 압박을 당하는 느낌과 흡사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키보드를 부술 것처럼 두들겼다.

송현준 : 야이 XX놈들아! 네 명이 다굴하는 게 맞아?

상대 팀이 전부 프로토스를 골랐을 때 불안하긴 했다. 게임 시작하자마자 내 진영이 상대 진영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떨어진 걸 보고 이런 상황이 될 줄 짐작하긴 했다.

대비도 했다. 초반 공격을 막기 위해 입구도 막고 벙커도 짓고 마린들로 채워놓았는데 적 팀 네 명 전부 이 정도로 무식하게 공격해 올 줄은 몰랐다.

네 명 전부 프로토스의 기본 유닛 질럿만 주야장천 뽑아서 뽑는 족족 내 진영으로 보내고 있었다.

일꾼들이 입구를 막고 있는 건물을 열심히 수리해 봤지만 물량에는 장사 없었다.

“아! 뚫렸어!”

날 지켜주던 건물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축구부에만 있을 때는 가끔 까먹는데 나는 지금 중학생이다.

몇백 년을 해와서 그런지 축구를 할 때는 침착해지는데 그 외의 분야에서는 당황하거나 신나면 목소리가 급격히 커진다.

“송현준, 조용히 해.”

적팀 송시환이 내 건물을 부수면서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아, 근데. 진짜.”

“저 형 화나면 무섭다고.”

“……오케.”

고개를 돌리니 동네 형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죄송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푹 숙였다. 동네 형이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들어줬다.

다시 모니터를 보니 내 일꾼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건물이 터지면 게임에서 쫓겨나기 때문에 건물을 띄우면서 키보드를 두들겼다.

송현준 : 왜 나야.

송시환 : 가장 가까우니까 ㅇㅅㅇ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팀원들에게 따지기로 했다.

팀 채팅으로 변경했다.

송현준 : 나 당할 때 한 놈 공격해야지. 뭐 하는 거야.

김현호 : 괜찮아, 내가 캐리어 뽑으면 이겨.

송현준 : ?

캐리어는 프로토스 종족의 최종병기다. 그만큼 뽑는 데 시간도 걸리고 자원도 많이 든다. 한 명이, 내가 죽어가는데 그걸 뽑겠다고?

벌떡 일어나서 김현호에게 육성으로 따졌다.

“김현호, 캐리어를 뽑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사실상 죽었는데.”

“김현호 캐리어 뽑는데.”

“개웃기네.”

적팀들이 내 외침에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자기들의 승리를 확신하는 웃음이다. 녀석들은 캐리어가 나오기 전에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때, 김현호가 자신의 모니터를 가리켰다. 나는 화면을 움직여 김현호의 진영을 확인했고,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동시에 김현호의 채팅이 올라왔다.

김현호 : ㅎㅎ 거짓말이었음. 내 진영 보고 있지? 어떠냐?

적팀 몰래 우리는 시선을 교환하고, 소리 없이 웃었다. 김현호는 역시 반장이다. 똑똑하다. 체육대회에서처럼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아, 진짜로 테크트리만 올리고 있네…… 미쳤나. 이거 졌어. 캐리어 뽑기 전에 다 부서질 텐데.”

내 말에 적 팀원들이 더 크게 웃다가 동네 형한테 혼나는 해프닝이 있었다. 동네 형 몰래 피시방 시간이라도 연장해 드려야겠다.

그동안 나는 팀채팅을 했다.

송현준 : 쟤네 완전히 속였음. 시간 더 끌어볼 테니까 부탁한다.

김현호 : 나만 믿어.

송현준 : ㅇㅋ

박종혁 : ㅋㅋㅋㅋㅋ 나는 티알만 다 가르치고 본격적으로 함~

“자, 이제 이것만 여기에 지으면서 이것만 뽑으면 돼.”

“오오오…… 박종혁 천재다. 알겠다. 시키는 대로 하겠다.”

일꾼이 전부 죽고 자원도 없고, 건물 하나만 하늘에 띄운 나는 전체 채팅을 쳤다.

송현준 : 띄운 건물은 살려주라.

송시환 : 오케이.

김성환 : 난 반대. 쟤 엘리시키자.

엘리를 시키겠다는 말은 건물을 전부 파괴해서 날 게임에서 쫓아내겠다는 뜻이다.

송현준 : 아 제발 살려줘. 엘리당하면 심심하다고

송재영 : 그게 재미있는 거야. 기다려라. 드라군 곧 간다.

송현준 : 살려줘 제발.

나는 김현호의 준비가 착실하게 진행되는 걸 보면서 내 건물을 상대가 부수기 어렵게 협곡으로 옮겼다.

송재영 : ㅋㅋㅋㅋ 현준이 도망치려는 거 봐

지상준 : 천천히 죽이자.

김성환 : ㅇㅋ

이들은 질럿들만 계속 뽑아서 맵의 중앙에 모으기 시작했다. 우리 팀을 바로 공격하지는 않았다.

송시환 : 현준이 엘리시키고 나머지 처리하자

송현준 : 드라군 진짜 뽑았네? 살려줘 제발.

송재영 : ㅋㅋㅋㅋ

지상준 : ㅋㅋㅋㅋㅋㅋㅋ

적팀은 날 가지고 놀면서 방심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

송시환이 당황해서 육성으로 말했다.

“뭐야?”

“닼템 뭐야.”

“옵저버랑 캐논 빨리 뽑아.”

“아니, 건물지어야 하는데.”

송현준 : ㅋㅋㅋㅋㅋㅋ

김현호 : ㅋㅋㅋㅋㅋㅋㅋ

나와 김현호가 전체 채팅으로 비웃기 시작했다.

속임수가 성공했다. 김현호는 사실 캐리어가 아니라 특별한 방법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유닛인 다크템플러를 하나씩 뽑아서 모았고, 적팀 진영에 전부 파견했다.

“송현준, 쟤 캐리어 뽑는다면서.”

“거짓말이지. 믿었냐?”

“아놔.”

적팀의 말수가 줄어들었다. 키보드 소리가 계속 들리는 걸 보면 자기들끼리 채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적팀의 질럿들이 박종혁과 김현호의 진영에 들이닥쳤다.

하지만, 오히려 적 팀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러커 뭐야!”

“티알은 언제 여기에 캐논 깔았냐!”

박종혁은 티알에게 수비형 건물인 캐논만 짓게 했고, 김현호의 본진 수비를 맡겼다.

박종혁은 소수의 저글링들과 러커로 자신의 본진을 지키고, 상대 본진에 난입해서 다크템플러들과 함께 정신없게 만들었다.

여기서 스타를 잘하는 놈은 없었다. 간단한 교란책에 적팀들은 죄다 정신이 나가 버렸다.

다크템플러는 성실하게 상대 팀의 일꾼과 파일런을 쓸어버렸고, 결국 적팀은 이런 채팅을 칠 수밖에 없었다.

김성환 : gg

송재영 : GGGGGG

송시환 : 지지

지상준 : 쥐쥐

적 팀원들이 나가고 화면에 승리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겼다!”

우리 팀은 환호했고, 나는 박종혁, 티알, 김현호와 차례로 하이파이브하며 기쁨을 나눴다.

그리고.

“너희들! 조용히 하라고 몇 번을 말해!”

“죄송합니다아…….”

혼났다.

* * *

PC방에서 나온 우리는 대여점으로 향했다. 판타지, 무협소설과 만화책을 구경하고 빌릴 사람은 빌렸다.

친구들이 들고 있는 책들을 보니 스포일러 하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전생의 나는 여가 시간이 꽤 있었다. 팀 훈련을 하고, 개인 훈련을 하고, 영상 자료를 공부해도 시간이 남았다. 빡빡한 리그 경기를 소화해야 했기에 몸을 쓰는 훈련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여가 시간을 활용해 술 먹고 파티하고 놀러 다니기도 했지만, 건전하게 놀아도 툭하면 문젯거리가 생기곤 했다.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 위주로 즐기기 시작했고, 드라마와 영화부터 시작해서 소설, 만화책,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을 섭렵했다.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부터 취미를 바꿨으니 웬만한 책이나 드라마의 내용은 다 꿰고 있었다.

“내가 이거 보려고 3개월 참았다.”

송재영이 만화책을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스포일러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스타크래프트도 이겼으니 봐줘야겠다.

우리는 각자 떠들며 노래방으로 향했다.

노래방에서는 노래 부르는 몇몇을 빼고는 잡담을 하거나 만화책을 보며 제멋대로의 시간을 느긋하게 보냈다.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마지막 인생이었다. 다시는 이 순간이 오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나는 노래보다는 대화를 나누는 데 집중했다.

요즘 뭐가 유행하는지, 우리가 축구부에서 훈련하고 있을 때 이들은 뭘 하는지 등 얘기하는데 김현호가 갑자기 말했다.

“맞다. 현준아. 체육대회 때 축구 했던 애들이랑 모여서 전국대회 구경 가기로 했어.”

“오? 진짜?”

“당연하지. 한 번 동료는 영원한 동료 아니냐.”

김성환이 우쭐했다.

“원피스 작작 봐라.”

“헉.”

김성환이 당황하면서 송재영에게 방금까지 읽던 원피스 만화책을 돌려줬다.

김현호에게 물었다.

“방학인데? 너희들끼리 올 수 있겠어?”

“방학이니까 시간 내서 갈게. 우리끼리 얘기하고 있었는데 팬더쌤이 같이 가자고 하셔서 괜찮을 거야.”

“야, 그건 비밀이잖아.”

김성환의 지적에 김현호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모른 척해줄게.”

“고맙다.”

사실 정미영 선생님이 올 건 알고 있었다. 약속도 하셨고, 그냥 그런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가기로 했어.”

지상준도 말했다.

“누구? 신문부?”

“응.”

신문부 하니 지상준과 친한 기자윤이 떠올랐다. 알던 대로 나중에 훌륭한 기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

“와, 자기 데이트하려고 날 핑계로…….”

지상준이랑 사이좋게 잘 맺어졌으면 좋겠다.

지상준이 정색하면서 따졌다.

“안 사귄다고…… 네가 자꾸 음해하니까 다 사귀는 줄 알잖아.”

“아니었어?”

“아니거든!”

김현호의 끼어들면서 묻자 지상준이 발끈했다.

하지만 난 당당했다.

“그 정도 도와줬으면 그냥 사귀어라. 너희는 사귀면 오래 간다니까.”

“미치겠네 진짜.”

지상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송시환과 송재영이 말했다.

“기말고사 2주밖에 안 남았네.”

“현준이랑 티알이랑 종혁이 개부러워. 기말고사 공부 안 해도 되잖아.”

축구부가 아닌 친구들이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김현호가 의문을 던졌다.

“근데 현준이는 그냥 공부해도 1등이잖아.”

“그렇네.”

“다 가진 새끼.”

“나쁜 놈.”

“근데 1학기 중간고사 끝나고 번개라도 맞았냐? 생각해 보면 그때까지 우리 쪽이었는데…….”

송재영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자주 들었던 질문이라 가볍게 대답했다.

“힘을 숨기고 있었어.”

“지랄하네.”

예상하던 대답이라 피식 웃고, 화제를 돌리기 위해 김현호에게 전국대회 얘기를 다시 꺼냈다.

“그런데 전국대회 경기가 한두개가 아닌데 다 볼 거야?”

전국대회는 일정 기간에 몰아서 하긴 하지만, 하루이틀에 끝나는 게 아니었다.

김현호가 고개를 저었다.

“오래 있는 건 어려워서 1박 2일로 일정이랑 숙소 잡았어.”

“벌써? 숙소도 잡았다고?”

“응, 결승전 날에 잡았어. 정미영 선생님이 이날이 좋다고 했고, 우리도 맞다고 했어.”

“오…….”

순간 말이 나오지 않았다. 김현호는 내 반응이 재미있는지 키득거리면서 웃고는 내게 물었다.

“할 수 있지?”

김현호의 눈빛에서 날 신뢰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당연하지.”

내 대답에 우리는 서로를 잠시 보다가, 픽 하고 웃었다.

더 말할 필요는 없었다.

이들이 날 믿는다는 걸 느껴졌고, 체육대회 결승처럼 좋은 기억을 주고 싶다는 욕구가 끌어올랐다.

“근데 티알 노래 잘한다.”

그 와중에 티알은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양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한국어보다 익숙한 영어로 팝송을 부르는 중이다.

“쟤가 은근히 만능이긴 해.”

전생의 티알을 떠올리며 말하니, 친구들도 동의했다.

“맞지. 쟤 생각해 보면 운동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잖아. 원어민처럼.”

“원어민…… 맞지 않나?”

“그러네?”

티알은 요즘 슬럼프에 빠져 있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천재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녀석이다.

어수룩한 한국어도 불과 1년 만에 이 정도나 하는 것이고, 축구부에 바로 들어올 정도로 운동 재능도 있고, 성격도 좋고 지금 보듯이 노래도 잘한다.

전생의 기억으로는 춤도 잘 춘다.

잘 놀고 활기차다 보니 프로 선수가 되면 매번 팀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한다.

티알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노래를 부르는 티알은 즐거워 보였다.

전생의 티알 중,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티알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어릴 때 더 놀았어야 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었는데. 안 된다는 걸 일찍 깨닫는 건 축복이다. 더 일찍 깨달았으면 즐거운 기억이 더 많았을 거 같다. 세상에는 축구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프로 선수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맞지. 웬일로 맞는 말 하네.

-나는 원래 맞는 말 한다.

전생의 티알과 전생의 나는 서로를 보며 낄낄거렸었다. 티알의 별장에서 술을 마시면서 나눴던 대화였다.

2014년이었다.

이 시절 나는 월드컵 8강에서 독일을 상대로 만났고, 전성기를 맞이한 독일의 수문장 노이어에게 슈팅 열 번을 때리고 한 골도 넣지 못해서 패배의 주역으로 몰렸다. 언론이 가족들에게 몰려들었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쉬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때, 티알이 내게 연락했다.

티알은 자신의 별장으로 놀러 오라고 말했다.

-우리가 축구부에서 뛸 때 생각나나? 그땐 경기하는 게 힘들긴 했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나도 그래.

티알은 만찬을 대접하고, 술자리에서는 추억을 얘기하면서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그 당시 내게 가장 필요했던 질문을 해줬다.

-요즘은 어떤가? 그 시절처럼 재미있게 축구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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