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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68화 (163/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68화

축구가 재미있냐고?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려고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이번 전생은 다섯 번째였다. 전생하자마자부터 그랬던 건가? 저번 전생부터 이어진 건가?

날 어지럽게 만든 티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다. 재미없어 보였다.

티알이 우쭐하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서 꼬투리라도 잡아봤다.

-누구처럼 경기마다 울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아니! 누가 울었다고 그러나!

-너라고 안 했는데…….

-누가 봐도 날 저격하는 거다.

티알의 항의에 스마트폰을 꺼내서 티알이 경기에서 우는 모습을 캡쳐해둔 걸 보여 줬다.

-사실 너무 감동적이라서 가지고 다니기로 했어.

티알이 발광했다.

-아니, 그걸 왜 가지고 다니나?! 지워라! 지워!

-액자로 걸어두려고 주문도 했어.

-아악!

-거짓말이야.

소리를 지르고 장난을 치니 분위기가 약간이지만 풀렸다.

티알은 한숨을 내쉬었다.

-송현준은 진지해지려고 하면 자꾸 장난을 친다.

-내가 원해서 분위기를 만든 게 아니면 부끄럽더라고.

-치사하다.

할 말이 없어서 인정한다는 뜻으로 양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티알은 한 번 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너무 즐겁고 설레서 울었던 거다. 평생 못 밟을 대회라고 생각했으니까, 조별예선에서 전패했지만 한 경기 한 경기 너무 즐거웠다.

-어떻게 보면 네가 나보다 훨씬 대단하긴 해.

동남아지역의 나라들은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조차 엄청난 성과다. 그런데 티알은 필리핀의 에이스로서 최종예선 진출을 넘어 플레이오프까지 가는 혈전 끝에 팀을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었다.

티알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전생에는 존재도 모르던 녀석이다. 세 번째 전생에서 우연히 프로가 된 녀석을 봤고, 우연히 만나서 얘기해 본 결과 어린 시절에 같이 뛸 수 있다는 걸 알아서 네 번째 전생 때 처음으로 대영 중학교 축구부에 데려왔다.

옆에서 지켜보니 재능은 대단하나 플레이가 지나칠 정도로 감정적이었다.

프로선수가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10분마다 주사위를 굴려서 나오는 눈금대로 하는 선수라는 악평까지 들을 정도였다.

그래서 한국 국가대표로 끌어올 생각은 반쯤 포기했었다.

하지만, 다섯 번째 전생의 티알은 뭔가가 달랐다. 실력은 솔직히 말해서 비슷했는데, 행운이 계속 따랐다.

티알에게 비법을 물었는데 매번 ‘즐겁게 하니까 행운이 따른다.’라고 말했다.

나는 티알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티알은 그 말을 실천해서 별장까지 가지게 된 것이다.

티알은 국민영웅이었으니까.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짓고 필리핀의 대부호에게 받은 별장이라고 했다.

[쉬고 싶으면 연락 안 하고 와도 된다! 언제든지 환영이다!]

티알은 별장에서 머무르게 된 첫날 나한테 이렇게 말해줬고, 이번 월드컵을 망치고 갈 곳이 없었던 나는 티알에게 연락해서 별장에 찾아온 것이다.

-맞다. 나는 대단하다. 더 찬양해라.

샘솟던 고마움이 짜게 식었다.

-미친놈. 이런 놈이 경기에서는 왜 질질 짜서…….

-아! 진짜! 내 방식의 울음이었다! 난 설레면 운다! 음? 말이 이상한가?

티알이 발끈하다가 자기가 한국어를 제대로 말한 건지 헷갈려 했다.

장난은 그만 치기로 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그리고 처음 한 질문에 대답해 보자면…… 즐겁게 뛴 게 언제인지 모르겠어.

티알은 내 말을 바로 받아줬다.

-너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항상 급해 보였다. 그래도, 우리랑 뛸 때는 가끔씩이지만 즐거워 보였다. 틀림없다. 네가 너무…… 말도 안 되게 잘하니까 지루해 보일 때가 있긴 했지만, 지금보다는 확실히 많이 웃었다.

-그랬냐?

-그렇다. 하지만, 넌 프로가 되고 나서 지나치게 쫓기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그랬나 싶어서 갸웃했다.

생각해 보면 경기를 뛸 때는 한없이, 지나칠 정도로 진지했던 것 같았다. 매번 칼날 위에서 걷는 기분이었다.

대답 없이 생각하고 있으니 티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한테 한참 못 미치는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이상하다. 하지만 너는 내 친구다. 맞나?

-응.

-그러면 할 말은 해야겠다. 현준, 나는 월드컵의 경기조차 즐겁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해봐.

티알이 술 한 잔으로 목을 적시고, 큼큼 소리를 내며 목을 푼 후에 말했다.

-사실 나는 월드컵 1, 2차 예선 때 너처럼 긴장했었다.

한국은 월드컵 최종예선부터 시작하지만 필리핀처럼 피파랭킹이 낮은 나라는 더 낮은 단계의 예선전부터 차례로 올라와야 했다.

-세 번째 경기였나. 나는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상대는 우리보다 강한 팀이었다. 내가 잘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었다. 그렇게 착각했었다.

-무슨 경긴 줄 알아. 너 끔찍하긴 했어.

-그렇다. 하지만, 그 경기 하프타임 때 동료들이 자기들이 해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훨씬 잘했고, 기적적으로 한 경기를 비겨냈다. 그 경기를 통해 깨달았다.

티알이 날 빤히 바라보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세상에는 안 되는 게 있다.

나는 티알에게 집중했다.

-재능과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환경이 안 받쳐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재능과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환경이 받쳐준다면 목표를 이룰 수도 있다. 세상은 제멋대로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세상은 제멋대로다는 말이 특별하게 와닿았다. 다섯 번째 삶을 살면서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여러 삶을 사는 걸 봐 왔기 때문이었다.

티알은 한 번만 살고도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티알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그날부터 내 한계를 받아들였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말이 꼬이는데 이렇게 말하는 거 맞나?

-응, 계속 말해봐.

-알겠다. 아무튼, 내가 할 걸 다 했다면 그다음부터는 즐기기 위해서 경기장에서 억지로 웃기도 하고, 동료들에게 농담도 던졌다. 동료들도 내 어색한 행동을 받아줬다. 그러니까, 우주가 우리를 도와줬다.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았다. 이유를 말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어. 날 응원하는 사람이 대충 세봐도 몇천만 명은 된다고…… 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안다. 나도 너 정도는 아니지만, 비슷한 처지에 있으니 기분은 짐작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네가 고통받는 걸 기대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널 응원하는 사람들 다수는 네가 자신들을 대표해서 이겨주길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즐겁기를 원할 것이다. 틀림없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입이 열리지 않았다. 티알은 확신에 찬 어조로 계속 말했다.

-너는 널 응원하는 사람들을 조종할 수 없다. 아까 말한 어쩔 수 없는 게 이거다. 응원하는 사람들, 동료의 컨디션, 상대의 컨디션 등등, 네가 할 수 있는 건 한정돼 있다.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한계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이번에 한 번 쓰러진 거다.

-그런가…….

-그렇다. 확신한다. 너는 메시, 호날두, 챠루아와 함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자리를 노릴 수 있는 천재다. 그리고 내가 가장 신뢰하는 친구이면서 내가 가장 응원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뭔데?

티알이 씩 웃으면서 자신 있게 말했다.

-네 한계를 알고, 한계까지 했다고 판단하면 남은 건 운에 맡기고, 웃어라. 즐겨라.

좋은 말이지만 여전히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대답을 미루고 있으니, 티알이 말을 덧붙였다.

-실패하면 다음 판으로 넘어가면 된다.

-뭐?

-너한테는 기회가 더 있지 않나?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살아온 전생들이 떠올랐다. 티알은 내 전생을 눈치챈 것인가.

세상이 멈춰 버리고 다음 전생으로 넘어갈까 두려웠다.

-2018년, 2022년, 너는 나이를 먹겠지만, 그때도 세계 최고일 거다. 난 믿는다.

-아…….

티알의 이어지는 말에 긴장이 풀려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한숨인가?

-말을 좀 한 번에 하라고…….

-무슨 말인가?

-됐다. 됐어. 아무튼 고맙다. 네 말 명심하고 다음 기회 때 적용해 볼게.

2018, 2022월드컵을 넘어 다음 생에서도.

-오…… 송현준이 내 조언을 들어줬다. 오늘 한 얘기는 자서전에 써야겠다.

-너 자서전도 쓰냐?

-제안이 잔뜩 들어왔다. 근데, 은퇴하고 쓰고 싶다.

-네 말대로 마음대로 해라. 한계까지 했으면 그다음은 즐기는 거라면서?

-맞다.

티알과 나는 서로를 보고 큭큭 웃었다. 웃음소리는 점점 커졌고, 나는 눈물이 날 정도로 크게 웃었다.

웃음이 차차 잦아들었고, 티알이 내게 말했다.

-아, 깜빡 잊은 말이 있다.

-뭔데?

-가장 중요한 거다. 운이 따르지 않아도 절대로 무너지지 마라.

-너무 어려운 주문인데.

-나는 축구선수이면서 한 명의 축구 팬이다. 난 네가 정상에 서는 걸 보고 싶다. 그러니까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

박종혁이 가장 밑바닥의 날 봐줬다면, 티알은 날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밀어줬다. 둘 다 좋은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티알에게 물었다. 티알이 아니라 날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궁금했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하면, 너는 기분이 좋을까?

-당연하다. 나 같은 소시민은 이룰 수 없는 꿈을 네가 대신 이뤄주는 거다.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전생의 기억에서 빠져나오니, 살짝 눈물이 났다.

모든 전생의 중간쯤에 받은 확실한 위로였고, 인생의 방향성도 잡을 수 있었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한계까지 했다고 판단하면 남은 건 운에 맡기고, 웃어라. 즐겨라.

나는 티알의 가치관에 동의한다. 그래서 여러 전생을 보면서 한계를 확신한 친한 사람들이 진흙탕에서 발버둥 치는 걸 보는 게 싫었다.

여전히 노래하고 있는 티알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도 선배들처럼 특별한 거 하고 싶다.’

현재의 티알은 얼마 전에 내게 이런 부탁을 했다.

송일 중학교를 10대 0으로 이겼을 때부터 본격적인 슬럼프에 빠진 티알은 훈련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확신이 있었다.

여섯 번째부터 열 번째까지. 티알의 유년 시절과 잠재력이 어디까지인지 알고 있는 나는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확신에 찬 미소까지 지어가면서 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더 즐겨도 괜찮다고 얘기할 수 있었다.

티알은 아쉬워했지만, 고개를 끄덕여줬다.

‘알겠다. 난 너를 믿는다.’

그때, 티알이 노래를 끝마쳤다. 반 친구들이 장난스럽게 휘파람과 박수를 쳤고, 티알이 머리를 긁으면서 마이크를 내려놓고, 내 옆에 앉았다.

티알이 날 보면서 갸웃했다.

“왜?”

“현준, 눈이 반짝거린다.”

“눈에 먼지 들어갔어.”

“아하.”

뻔뻔하게 대답했고, 티알은 납득했다.

지금은 어수룩한 녀석이다. 나이 먹어도 똑같긴 하지만.

“티알, 저녁 먹고 같이 훈련할래?”

오늘 저녁에는 집이 아니라 숙소에 갈 예정이었다. 해야 할 훈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보 선수들처럼 특별 훈련은 아닐지라도 매일 하는 훈련을 함께하면 더 즐거울 것이다.

“정말인가? 요즘 송현준 나한테 소홀했다.”

“뭐라는 거야.”

티알은 기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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