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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70화 (165/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70화

훈련 도중, 송현준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송현준의 안색을 확인한 공현성과 티알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급똥이야.”

송현준의 대답에 공현성이 바로 웃었고, 뒤늦게 깨달은 티알도 차례로 웃었다.

송현준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웃지 말고, 갔다 온다.”

“그래.”

“천천히 갔다 와라.”

송현준은 대답도 안 하고 급히 떠났다.

남겨진 공현성과 티알은 멀어지는 송현준의 뒷모습을 낄낄 웃으면서 지켜보다가, 송현준이 시야에서 완벽히 사라지자 점차 웃음을 멈췄다.

공현성과 티알은 서로를 바라보지 못했다. 어색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대영 중학교의 운동장, 티알은 자신이 먼저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우리 이제 뭐 하나?”

“기다려야 할 거 같은데.”

“그런가…….”

송현준이 훈련을 주도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다른 훈련을 시작하더라도 송현준이 돌아오면 하던 훈련으로 돌아가야 할 테니.

그렇다.

둘만 남으면 할 게 없었다.

대화라도 해야 할 텐데, 둘은 편하게 잡담할 정도로 친하지 않았다.

“으음…….”

그래도 티알은 공현성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긴 했다.

티알은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질문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흘끔거리던 공현성은 답답한 나머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야, 하고 싶은 말 있어?”

“어, 어어, 아니.”

“그러냐?”

깜짝 놀란 티알이 얼버무렸다.

둘 사이에 더 깊은 침묵이 깔렸다.

공현성은 한층 더 답답하다고 느끼며, 여전히 자신에게 무언가 질문하려고 하는 티알을 흘긋댔다.

둘 다 어색하다면 더 답답하다고 느끼는 쪽이 입을 여는 게 맞다.

결론을 내린 공현성은 송현준이 티알에 관해 얘기했던 걸 토대로 아무 말이나 꺼내기로 했다.

“쟤가 네 얘기 한 적 있었는데.”

“정말인가? 어떻게?”

우물쭈물하던 티알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했다.

예상 밖의 반응이라 약간 놀라서 멈칫했던 공현성이 차분하게 이어 말했다.

“너희 축구부에서 너, 박종혁, 윤태상, 노태신은 훈련도 열심히 하고 재능도 있으니까 나중에 고등학교 선택할 때 기왕이면 같이하라고.”

“오…….”

티알은 기쁜 건지 표정이 밝아졌다.

분위기가 한층 편해진 게 느껴졌다. 공현성은 아까의 질문을 반복했다.

“그래서, 아까부터 왜 우물쭈물거리냐? 할 말 있는 거지?”

공현성이 차분하게 기다리자 결국 티알이 입을 열었다.

“아…… 그냥, 송현준이 말한 대로 훈련할 건지 궁금했다.”

공현성은 별걸 다 궁금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대답은 했다.

“해야지.”

“힘들지 않겠나. 재미없지 않겠나. 다칠 수도 있지 않겠나.”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해야 해.”

“왜?”

“그건…….”

공현성은 송현준과 함께한 첫 번째와 두 번째 훈련에서 인상 깊게 남았던 대화를 떠올렸다.

첫 번째 훈련에서 송현준은 자신의 꿈이 월드컵 우승이라고 했고, 공현성에게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어서 자기 꿈에 어울려달라고 했었다.

두 번째 훈련에서는 방금 티알에게 해줬던 말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말을 해줬다.

“……잠깐만 생각해 볼게.”

“응, 기다리겠다.”

공현성은 티알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회상의 시간을 가졌다.

* * *

두 번째 훈련 중간에 쉬는 시간이었다.

“너라면 고등학교를 골라서 갈 수 있을 거야. 내가 괜찮은 선수들을 추천해 줄 테니까 기왕이면 이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

송현준은 훈련에 지쳐 대자로 누워 있는 공현성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 동시에 송현준은 들고 있는 공책에 무언가 적고 있었다.

“프로 선수가 되면 좋겠지만…… 골키퍼는 특수포지션이라 주전 자리가 잘 안 나거든.”

“…….”

공현성이 대답하든 말든 송현준은 자기 할 말을 계속했다.

“원래 얘기로 돌아와서…… 우리 중학교에서는 네 명 추천할게. 노태신 선배, 윤태상 선배, 박종혁, 티알. 이 사람들은 재능도 뛰어나고 성격도 좋고 성실하니까 기왕이면 같이해. 동료 수준이 높아야 네 수준도 더 빨리 높아질 수 있어.”

안 궁금한데도 계속 얘기한다. 공현성은 가쁜 호흡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쉬고, 궁금했던 걸 물었다.

“……안 힘드냐?”

“어, 안 힘들어. 너도 체력 더 길러. 골키퍼라고 체력 훈련 등한시하면 나중에 피 본다.”

“예, 예.”

괜히 물어봤던 것 같다. 잔소리만 들었다.

공현성은 대충 대답하면서 엎어졌다.

송현준은 추가로 휘경 중학교의 선수들부터 시작해서 유망한 선수들 몇의 이름도 말해줬다. 공현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가 좋은 말해주는 건 알겠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냐?”

송현준이 자신이 들고 있던 공책을 깔끔하게 찢어서 공현성에게 내밀었다. 공현성은 송현준이 내민 종이를 받아들었다.

송현준이 방금까지 말했던 선수들의 이름과 포지션이 적혀 있었다.

“이거 보면 되지.”

“할 말이 없네…….”

공현성은 고맙다기보다는 얼떨떨했다. 그리고 선수들의 이름이 한두 개가 아닌 걸 보고 궁금해졌다.

“어떻게 이런 것까지 아냐?”

“축구부 활동을 안 하는 동안 직접 조사하고, 연구하면서 파악했어.”

“경기 몇 번 보고?”

“응, 난 천재니까.”

막힘없는 대답에 공현성은 인상을 구기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재수 없는 새끼.”

송현준이 쿡쿡대면서 웃었다.

“그런데, 만약에 기회가 생긴다면 최대한 빨리 프로로 가. 동료 수준이 높아야 네 수준도 높아진다고 했지? 당연히 프로 선수들의 수준이 더 높아.”

“내가 그걸 모르겠냐? 근데 우리 나이에 프로를 어떻게 하냐?”

“선구자가 있으면 괜찮아.”

“선구자?”

송현준이 공현성을 빤히 바라보다가, 아이한테 설명하듯이 차근차근 설명해 줬다.

“선구자는 말을 탄 행렬에서 맨 앞에 선 사람이라는 뜻이야. 일반적으로 어떤 일을 할 때 다른 사람들보다 앞선 사람을 말하지. 축구에서 선구자는…….”

자존심이 상한 공현성은 송현준의 말을 끊었다.

“알아, 안다고. 선구자를 모르겠냐.”

송현준이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공현성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래, 그런 거로 하자고.”

“축구부 생활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수업 못 들어.”

공현성이 몸을 벌떡 일으켜서 투덜댔다. 힘든 것도 잊을 정도로 송현준의 눈빛이 기분 나빴다. 왠지 변명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송현준은 냉혹했다.

“핑계는.”

“축구 공부는 제대로 한다고.”

“영상만 보는 거 같던데. 글로 된 것도 좋은 자료가 많은데 말이지.”

“…….”

담백한 사실에 공현성은 말문이 막혔다.

송현준이 픽 웃더니 말했다.

“장난이야. 그래도 나중에 영어나 스페인어도 배워야 한다?”

“뭐? 뭔 소리야?”

“국내 프로 다음에는 해외 프로를 목표로 삼아야지.”

“……어우, 뭐 이렇게 해야 하는 게 많아?”

“원래 그래. 아무튼, 내가 선구자가 되어줄 테니까 너는 따라오라는 말이야.”

공현성은 뒤늦게 왜 송현준이 선구자라는 말을 꺼냈는지 깨달았다.

“아…… 이번 대회 끝나면 프로로 간다고 했지? 진짜 건방진 놈이네.”

말은 그렇게 해도 공현성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송현준의 모든 말에는 공현성이 당연히 큰 선수가 될 거라는 확신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송현준은 재수 없는 녀석이 맞다. 하지만, 진심으로 공현성 자신을 미래의 동료로 여기고 있었다.

월드컵에 같이 가자는 말도, 세계 최고의 골키퍼가 되라는 말도, 하는 말마다 공현성의 재능을 믿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것도 공현성의 의지를 들끓어 오르게 했다.

그래서 공현성은 송현준이 요구하는 훈련을 열심히 하고 싶은 이유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었다.

송현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부끄럽지만 이게 전부였다.

공현성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티알을 바라봤다.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어려웠다.

프로로 간다는 거나 월드컵 우승이 목표라는 거나 비밀일지도 모른다.

공현성은 해야 할 말과 안 할 말을 구분할 머리는 가지고 있었다.

공현성은 고민 끝에 말을 정리할 수 있었다.

“야. 생각 끝났다.”

“…….”

티알이 공현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한테 세계 최고의 선수가 돼서 국가대표팀에서 같이 뛰자고 했어.”

완벽한 정리라고 생각한 뿌듯함을 느꼈다. 그런데, 티알의 표정이 이상하게 구겨졌다.

“야?”

“…….”

티알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공현성이 말을 몇 번 더 걸었지만, 안 들릴 정도로 멍했다.

티알은 속으로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한테는 왜 그런 말을 안 해준 거지?’

그리고, 티알은 송현준이 그랬던 이유를 알 것 같아서 속상했다.

송현준이 자신과 공현성의 재능을 다르게 평가하고 있는 거였다.

마치 티알과 대영 중학교의 후보선수들을 다르게 대하는 것처럼.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티알은 슬펐다.

* * *

공현성, 티알과 협동훈련을 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정두식은 점점 유식해지고 있었고, 박범철은 경기 출전 시간을 줄인 만큼 경기 당일에도 훈련을 하는 강행군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박범철은 몸 상태가 점점 올라오는 게 보일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었다.

후보 선수들도 착실히 잘 따라오고 있었다.

주전선수들은 로베르토와 코치진을 적극적으로 따르면서 알아서 잘하고 있었다.

주말에 공현성이 경기하는 걸 봤는데, 기합이 들어간 게 느껴졌다.

나도 계획대로 점차 전국대회와 프로 데뷔를 위한 몸을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준비는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문제는 하나뿐이었다.

“티알은 저녁 안 먹어?”

내 질문에 밥 한 수저를 막 입에 넣으려던 박종혁이 멈췄다. 박종혁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렸다.

“뭔데?”

“오늘은 시내에서 저녁 먹고 온 데.”

“……그래?”

“응, 요즘 집중이 안 돼서 머리 한번 비우고 오겠데.”

“그렇구나. 요즘 피곤해 보이긴 했어.”

“힘든가 봐.”

협동 훈련 이후, 티알이 변했다.

생각에 자주 잠겼고, 훈련에 집중하지 못했다. 또한, 의욕적이지도 않았다.

말을 걸어보면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믿고 기다려 주고 있었다. 로베르토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찝찝했다.

티알이 모든 전생에서 큰 기복을 보였던 이유는 그만큼 감정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타고난 것이기에 바꿀 수도 없었다.

이번 인생의 흐름이 바뀐 나비효과로 티알이 인생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건 아닌지, 잘못된 길에 빠지진 않을지.

여러 가지 걱정이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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