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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72화 (167/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72화

공현성과 티알의 재능 차이.

티알의 질문에는 송현준이 늘 생각하던 게 담겨 있었다. 돌직구를 맞은 송현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송현준의 반응을 본 티알이 고개를 떨궜다.

“맞는 거였다…… 너는 나를 그 정도로만 생각하는 거였다…….”

“그 정도라는 말은 이상해. 난 네가 훌륭한 프로 축구 선수가 될 재능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어. 프로 축구 선수가 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송현준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티알의 시선을 마주 보고, 한숨을 내쉬며 인정했다.

“하아, 뭐, 그래. 맞아.”

“공현성한테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라고 했다는 얘길 들었다.”

송현준은 순순히 대답했다.

“그랬었지.”

“물론,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건 자유다. 하지만…… 나는 차별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네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나한테도 좋게 말해줄 수 있는 게 아닌가? 아니면…… 아예 모르게 하던가…….”

송현준은 멍해지려는 정신을 붙잡고, 자신의 행동을 빠르게 돌아봤다.

티알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는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 월드컵 출전 멤버를 A급이라고 친다면, 공현성은 S급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판단을 내렸다. 티알은 평균적으로 B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자신은 생각한 등급만큼 그들에게 요구했다. 티알은 숙소 생활을 하기에 항상 옆에 있었다. 그렇다 보니 행동이나 말 한마디에서 자신의 의도를 쉽게 읽은 것이다.

사과하면 되는 문제다.

“…….”

하지만, 사과한다면 티알은 헛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전생을 떠올렸다. 전생의 티알과 나눴던 대화는 현생의 티알을 대할 때 항상 참고하고 있었다.

-안 된다는 걸 일찍 깨닫는 건 축복이다. 더 일찍 깨달았으면 즐거운 기억이 더 많았을 거 같다.

송현준은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다.

“아쉽지만 그럴 수는 없어.”

“……왜?”

“안 되는 건 미리 아는 게 좋거든.”

티알은 송현준의 냉정한 말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버틸 수 있었다. 왜냐면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티알은 쥐어짜듯이 말했다.

“……나, 나도 열심히 하면 국가대표에서 뛸 수 있다.”

송현준은 공현성과 티알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짐작했다. 월드컵 얘기는 안 한 것 같았다.

송현준은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그래, 너랑도 같이 뛰면 좋지. 하지만, 너는 어디를 선택할지 모르니까…… 그리고 너는 여기가 아니라 살던 곳을 선택하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고.”

티알의 눈에는 친하고 존경스럽게만 느껴졌던 송현준이 이질적으로 보이고 있었다.

“송현준은 제멋대로다. 내 한계도 멋대로 정하고, 국가대표팀을 정하는 것도 멋대로 얘기하고. 그걸 왜 네가 생각하고, 정하는 건가? 내가 장난감인가? 게임 캐릭터인가? 날 조종하고 싶어서 여기에 데리고 온 건가?”

“장난감?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송현준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높아졌다. 송현준은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말문이 막혔다.

“네, 네가 뭔데 내 한계를 정하나? 축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뭘 하려고 하면 자꾸 막고…….”

티알이 울먹이고 있었다.

송현준은 뜨거워진 머리와 가슴을 식히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가까이서 본 사람들의 한계에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 사람에게는 할 수 있는 범위가 있어. 범위를 넘어가려고 하면 불행해져. 비효율적이야.”

티알이 소매로 슥슥 눈물을 닦고, 또렷한 눈동자로 송현준을 바라보았다.

“불행해지더라도 내가 하고 싶다면?”

“…….”

송현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티알은 처음으로 봤다. 송현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송현준의 감정이 이렇게 드러나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송현준은 대단한 사람이 맞다. 하지만 제멋대로다. 어머니가 그랬다. 한계를 결정하는 건 어른이 되어서 해도 늦지 않는다고.”

송현준은 여전히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리고, 티알의 말을 부정했다.

“아니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 * *

새벽부터 점심시간까지.

티알과 송현준의 냉전을 지켜보던 박종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티알과 송현준의 앞에 섰다.

티알과 송현준은 짝꿍이었다. 하지만, 둘은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박종혁을 뚱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박종혁은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시작했다.

“얼마 뒤에 천국의 계단이라는 드라마가 나온다는데, 누가 나오는지 알아? 김태희가 나온데.”

“…….”

“티알은 모를 수도 있겠네.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배우야.”

“…….”

“우리 축구부에 컴퓨터 놔달라고 하자. 다른 축구부 애들은 게임도 한다던데. 설치하면 올해 나온 게임들도 할 수 있어. 메이플스토리도 재밌어, 아스가르드도 있고…….”

“…….”

“다음 경기 끝나고 노래방 갈래? 나 보고싶다 고음 연습했는데, 이제 잘 올라가거든?”

“…….”

송현준과 티알은 둘 다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오! 왜 그러는데.”

“뭐가.”

“아무 일도 없다.”

“으아아악!”

박종혁이 처음 말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켜보던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다.

“쟤네 싸웠나 봐.”

“그냥 한 판 붙지.”

“종혁아, 포기해. 나도 아까 해봤어.”

송재영, 송시환, 지상준이 한마디씩 했다. 엄태영은 둘이 싸우든 말든 밥을 먹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이럴 땐 맛있는 게 최고지.”

의자에 앉아 있던 송재영이 일어나서 박종혁 옆으로 와서 티알과 송현준에게 제안했다.

“매점이나 가자.”

송현준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안 갈래.”

“그럼 난 간다.”

티알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현준은 자기도 모르게 티알을 바라보았다. 둘의 시선 가운데에서 불똥이 튀는 것 같다고 박종혁은 생각했다.

둘은 잠시 후 고개를 돌렸다.

“적당히 좀 하고 현준아, 너도 가자.”

박종혁은 안절부절못했다. 오죽했으면 송현준을 성을 빼고 부를 정도였다.

“정말 괜찮으니까 다녀와.”

박종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티알과 박종혁은 친구들과 함께 매점으로 떠났다.

그제야 송현준은 의자에 편하게 기댔다.

“후우…….”

송현준은 한숨을 쉬었다. 어제 티알에게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하자마자 티알은 마음에 안 든다면서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그리고 숙소에서 한마디도 안 했고, 오늘 새벽도 마찬가지였다. 송현준은 자신의 나이가 훨씬 많으니 먼저 말을 걸어보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티알이 눈도 안 마주치려는 걸 보자마자 화가 나서 생각을 때려치웠다.

“둘이 싸웠어? 어제저녁부터 이상하던데.”

그때, 옆에서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와 송현준은 고개를 돌렸다.

자는 줄 알았던 엄태영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송현준을 보고 있었다.

“뭐, 그렇지.”

“으흐흐, 현준이 너도 싸우는구나.”

엄태영이 웃으면서 말했다. 송현준은 자기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대답을 했다.

“나도 사람이니까.”

“그렇지. 가끔 어른 같아서 잊어버려.”

엄태영은 개의치 않고, 기지개를 쭉 켰다. 엄태영의 느긋한 태도와 부드러운 말솜씨에 송현준은 화가 가라앉는 걸 느꼈다.

“안 자?”

“걱정돼서.”

엄태영에게 낮잠은 중대 사항이라는 걸 송현준은 잘 알았다.

“미안하네.”

“아니야.”

고개를 저은 엄태영이 이어서 말했다.

“티알이 요새 나한테 와서 몇 가지 상담한 적이 있었어.”

송현준은 몸뿐만 아니라 의자도 엄태영 쪽으로 틀었다.

엄태영이 계속 말했다.

“더 욕심부리고 싶은데 현준이 말대로 하는 게 맞나 고민이라고.”

“……그래?”

“사실 나는…… 매번 하고 싶으면 하라고 말했거든. 아하하, 괜히 미안하네.”

엄태영은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송현준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괜찮아. 그래서?”

“티알은 현준이가 한 말이니까 자기가 힘들어도 믿어야 한다고 했어. 현준이가 틀린 말을 했을 리가 없다고. 근데, 그러면 대체 왜 나한테 고민 상담을 한 거야? 매번 결론이 똑같아.”

엄태영이 투덜거리는 모습에는 딱히 악의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아무튼, 티알은 네 말만 충실하게 따르는 신도 같아 보였어.”

“…….”

송현준은 티알이 자신에게 의지하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3자에게서 직접 듣는 건 더 와닿았다.

“현준아, 티알이 나한테 상담했던 내용 때문에 싸운 거지?”

“……뭐, 비슷하지.”

“어떻게 된 건지는 알 것 같아.”

엄태영이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네가 티알을 도와주는 거 알아. 친한 것도 알아. 나도 너한테 몇 가지 도움을 받은 적이 있으니까. 그게 티알한테 얼마나 고마운 건지 잘 알아. 다른 축구부원들도 마찬가지야. 근데 티알은 좀 달라. 현준아, 너는 축구부원들한테 조언할 때 조언만 해주고 알아서 하라고 방치하잖아? 아? 방치라고 하니까 좀 이상한데.”

“느낌은 아니까 괜찮아. 오해 안 해.”

“그래? 고마워. 아무튼, 티알은 특수한 상황이잖아. 우리는 해오던 게 있지만, 티알은 없어. 완전 초보라고. 혼자 할 줄 모른다고. 그러니까 네 말이 우리보다 몇 배로 부담스럽게 느껴질 거야.”

“……맞네.”

사실 엄태영은 상황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엄태영은 공현성의 문제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엄태영의 말만큼은 현재 상황을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송현준은 엄태영의 말에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알 듯 말 듯 한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엄태영이 결론을 말했다.

“그러니까, 티알이 혼자 할 수 있게 믿어줘. 그냥 둬. 걔는 혼자 할 때도 네 눈치 보더라.”

송현준은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멈췄다.

가슴속에서 생겨난 의문을 곧장 엄태영에게 물었다.

“그러다 실패하면?”

엄태영이 순진한 얼굴을 기울이면서 되물었다.

“현준아, 우리한테 자주 그랬던 거 잊었어? 우리 나이 때는 실패해도 된다고…….”

“…….”

송현준은 머리에 번개가 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눈이 자기도 모르게 커졌고,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다.

송현준은 일단 엄태영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태영이 어른스럽네. 참고가 됐다. 고마워.”

“뭘…… 이제 졸리다. 수업 때까지 잘래…….”

엄태영은 은은하게 웃고, 부끄러운지 아니면 진짜 졸리는지 바로 책상에 엎어졌다.

덕분에 송현준은 바로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한계까지 해냈다면, 즐겨라.]

전생의 경험에 매몰됐었다. 그것도 말 한마디에.

그 당시 티알은 어린 시절에 정말 열심히 했다. 경기장에서 인종차별도 받고, 밤을 새워 훈련하다가 로베르토한테 혼나고…… 열심히 한 것도 맞지만 고생했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송현준에게 깨달음을 줬던 티알도 발악하다가 한계에 부딪히고, 고뇌하고, 고통받았기에 자신이 한 말을 진심으로 실천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결과만 보고 과정을 잊고 있었다.

남이 해주면 안 된다.

스스로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굴곡 없는 인생은 내가 보기 좋을지 몰라도 강요받았을 때는 압박이 된다.

티알이 왜 자기가 장난감이냐고 물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아이 씨, 나 뭐한 거지. 한심하게.”

송현준은 자괴감에 빠졌다.

수백 년을 살아놓고서,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고등학교 이후로 속은 크게 안 변한다지만…… 쌓인 경험이 있는데 이건 너무 부끄러웠다.

머릿속은 어지러웠지만, 해야 할 일 만큼은 명확했다.

그때, 교실 뒷문이 열리고 티알과 친구들이 돌아왔다. 송현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맨 앞에 서 있던 박종혁이 물었다.

“뭐야? 어디 가게?”

“매점.”

“……우리랑 같이 갔으면 됐잖아. 나 운동해야 해서 같이 못 가는데…….”

“괜찮아. 티알, 따라와 봐. 음료수 사줄게.”

티알이 음료수를 든 채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들은 우리를 번갈아 보면서 눈치를 살폈다. 그들이 그러건 말건, 티알에게 말했다.

“한 캔 더 마셔.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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