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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73화 (168/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73화

티알이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

“어.”

“어…… 음…… 그렇지만.”

“그냥 따라와.”

아무리 냉전이었다지만, 티알은 당황한 게 얼굴에 드러나고 있었다.

“안 와?”

그리고, 자신이 멍청한 표정을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아서 황급히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티알은 뚱한 얼굴로 날 따라왔다. 지기 싫은 건지 평소보다 씩씩하게 걷는 것 같았다.

티알이 따라오는 걸 확인한 나도 교실을 성큼성큼 걸어서 나갔다. 그렇게 걷고 있던 와중에 이상하게 뒤에 인기척이 많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티알이 먼저 보였다. 그 뒤로 박종혁과 친구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박종혁에게 물었다.

“박종혁, 발목 운동 안 하냐?”

특별한 일이 없다면 점심시간마다 빼먹지 않고 하던 거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금세 끝낸다.

“……너희들 때문이잖아. 불안해서 운동 못 하겠어. 너희들이 책임져.”

우리 둘이 나가는 게 특별한 일인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맘대로 해.”

다른 친구들에게까지 물어보다간 끝도 안 날 거 같아서 다시 전진했다.

내가 먼저 가고 티알 바로 따라오고 나머지 친구들이 따라오는 구도다.

모양새가 이상한지 주변에서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시선이 점점 많아져서 부끄러웠고, 뒤에서 들려오는 말도 점점 수위가 세졌다.

지상준을 비롯한 친구들이 나와 티알을 주제로 얘기하고 있었다.

“송현준 오늘 진짜 이상해.”

“둘이 싸우려고 그러나?”

“티알, 저 자식 턱이 약점이야. 어퍼컷을 올려 버려.”

“송현준 진짜 그렇게 안 봤는데.”

“덩치 크다고 막, 티알을 억압하고.”

“개 나쁘네.”

“티알 불쌍해.”

“티알, 쫄지 마. 독기를 보여줘. 여차하면 우리가…….”

음해가 점점 심해져서 참지 못하고 그들에게 한마디 했다.

“헛소리 그만해. 따라오지도 말고.”

“아까는 마음대로 하라면서.”

그건 박종혁한테 한 말인데.

점심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어서 일일이 따지기 애매한 상황이었다. 또한, 친구들이 장난스럽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표정을 보니 티알과 나를 걱정스러워하는 게 보여서 더 따지기 애매했다.

심지어 티알은 정말 긴장한 얼굴이었다.

괜히 미안해졌다.

지상준이 말했다.

“너희들이 진짜 싸우면 말려야 할 거 아니야. 네 덩치 말리려면 박종혁이랑 우리가 필요해.”

“안 싸운다니까. 음료수 마시면서 얘기 좀 하고 싶어서 그래.”

박종혁을 비롯한 친구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대답을 대신했다.

결국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개자식들아! 안 싸운다고! 누가 음료수 사주고 싸워!”

“왜, 음료수 캔을 머리에 던질 수도 있지.”

“맞지. 캔을 머리에 맞으면 펑 하고 터진다고. 그거 멋지긴 해.”

송시환과 송재영이 헛소리로 이어나가려는 걸 막았다.

“프로레슬링 작작 봐.”

“요즘 얼마나 재미있는데.”

“맞는 말이야.”

“닥치고.”

험하게 말하고 한숨을 쉬었다.

아니라고 몇 번을 부정한 뒤에야 나와 티알은 그들에게서 떨어질 수 있었다.

나는 매점이 아니라 건물 바깥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두 개 뽑아서 하나를 티알에게 던져줬다.

티알은 엉거주춤 받았다.

우리를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얘기 좀 할 거니까 떨어져 있어 봐.”

“보이는 거리에 있을 거야.”

하루 만에 신뢰도가 박살 나다니. 잘못 살았나 싶기도 했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친구들은 대화가 들리지 않을 거리까지는 물러났고, 나는 티알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됐다.

* * *

내 앞에 선 티알은 음료수를 홀짝이면서 날 쳐다보지 못했다.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운 듯했다.

어차피 내가 먼저 얘기하려고 했다.

“라에 리베라 류.”

모처럼 불러보는 티알의 풀네임에 티알이 움찔하더니 날 바라보았다.

본명에 R이 세 개라서 어머니가 부르기 쉽게 티알이라는 별명을 지어줬지. 솔직히 본명보다 별명으로 불리는 게 더 많은 티알이었다. 티알의 고향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라던데 신기할 뿐이다.

“왜.”

아무튼, 티알은 퉁명스러웠지만 대답했다.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소통을 했다.

아까였다면 티알의 태도에 발끈했겠지만, 이제는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네가 한 말이 맞더라. 사과하고 싶어서 불렀어.”

“…….”

티알은 놀라서 말도 못 했다. 사과를 계속했다.

“네 말대로 넌 내 장난감이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것 같아서 미안해. 난 그냥…… 걱정돼서……, 아니, 이것도 핑계다. 미안하다!”

“어, 어어…… 괜찮다!”

티알도 목소리를 높였다. 대답을 마친 티알은 안절부절못했다.

사과한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을 내뱉고 나니 부끄러워져서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그러다가 문득, 티알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를 보다가, 크게 웃었다.

분위기가 풀리는 건 한순간이었다.

멀리서 친구들이 큰 목소리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괜찮은가 본데?”

“송현준 저거 저러다 주먹 날릴 수도 있어. 방심 시키는 거야. 싸움의 기술 책에서 봤어.”

이 자식들이.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지랄 좀 적당히 해!”

“저거 봐 성질 나온다.”

쫓아갈까 하다가 내 앞에서 키득거리고 있는 티알을 보면서 기분이 풀렸다.

저 자식들은 이따가 진짜 죽었다. 허벅지를 타격하는 마비킥을 몇 대 때려줘야 할 거 같았다.

아무튼, 나와 친구들이 말싸움하는 모습을 보며 웃는 티알 덕에 우리가 중학생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싸움도 자주 하지만, 사과만 제대로 하면 금방 풀리는…… 좋은 때다.

하지만, 아직 내가 할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티알, 아직 할 말 남았거든? 진지하게 들어 줘.”

“알겠다.”

“사과한 건 내가 너한테 잘못했다고 생각해서야. 앞으로 너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할 때, 태도나 행동과 말을 조심할 거야. 하지만,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았어.”

살아온 시간이 있었다.

내 가치관은 전생의 티알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긴 했지만, 지금의 내가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한계가 다르고, 한계 이상에 도전하는 건 미련한 짓이라는 거 말하는 건가?”

“응.”

“왜?”

“나는 내 경험을 믿으니까. 옳다고 생각하니까. 평생 이렇게 살았으니까.”

티알은 나에게 고작 중학생이 아니냐고 반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티알은 내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자신의 생각을 말해줬다.

“알겠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티알의 성실한 태도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래서 더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네가 지금 소화하는 훈련량은 네 한계라고 판단했어. 네가 더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감정적인 거라고 판단했고. 난 그래서 네가 지금의 생활을 더 즐겼으면 했어.”

“나는 더 잘할 수 있다.”

티알이 미간을 약간 찌푸리면서 대답했다.

싸우자는 게 아니었다.

“그래, 그렇게 믿는다면 해봐. 응원해 줄게. 자신이 원하는 걸 선택해서 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는 거 알아. 나랑 다르게 생각하더라도 친구의 선택은 진심으로 응원해 줄 수 있어.”

내 대답을 들은 티알이 놀랐다.

“솔직히 네가 즐겁게 살았으면 했는데…… 원하는 거 하는 게 최고인 거지.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봐.”

“……좋다.”

티알이 결의에 차서 대답했다.

“하지만, 축구에 인생을 바친 입장에서 진지하게 얘기할게. 내가 틀리다는 걸 증명하려면 너는 더 지독해져야 해.”

티알은 내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그거 알아? 세상은 되게 불공평하다?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극소수의 미친놈들을 제외하고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해. 게으른 천재 소리를 듣는 선수들도 어릴 때를 살펴보면 말도 안 되게 지독하게 했다는 걸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천재들은 게으르다? 개소리야.”

티알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보통 천재들을 보고 ‘쟤는 천재라서 그래~.’라고 그들이 투자한 시간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넌 그래서는 안 돼. 그 천재들을 이겨야 하니까. 티알 너, 동네 친구들이랑 비슷하게 공을 차기 시작했는데 더 빠르고 쉽게 공을 잘 차게 됐지?”

“응…….”

“천재들도 똑같아. 같은 시간을 훈련해도 효율이 달라. 공현성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공현성에게 더 높은 걸 요구한 거야. 보통 사람이라면 몸은 말짱해도 정신적으로 지쳐서 효율이 떨어지는 타이밍이라도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연료가 남아 있거든. 연비가 좋으니까. 그래도 할 거야?”

“어렵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도전한다.”

“왜?”

“그냥 포기하기에는 분하다.”

티알의 대답은 만족스러웠다.

“좋아. 그러면 두 번째.”

“응? 또 있나?”

“응, 너는 더 독해져야 해. 내년에 내가 없고, 신입 부원이랑 전학생이 새로 들어오면 분위기가 어떻게 바뀔지 몰라. 지금은 나도 있고 우리 축구부원들이 착하기도 하고 전국대회를 목표로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괜찮지만…… 막, 인종차별 같은 걸 당할 수도 있거든. 마음 굳게 먹어야 해.”

조언을 열심히 했는데 티알은 놀란 얼굴로 내 조언과 다른 엉뚱한 질문을 했다.

“네가 없다고? 무슨 소리인가?”

실수라기보다는 슬슬 몇몇에게 말할 생각이었기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티알에게 솔직하게 말해주기로 했다.

“나, 이번 대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무슨 소리인가?”

티알이 되물었다.

“감독님만 알고 있으니까 비밀이야. 이번 대회가 끝나면 축구부를 나가서 팀을 찾을 거야.”

“알겠다. 그런데…… 팀을 찾는다고? 휘경 중학교 같은 곳으로 가는 건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프로선수가 될 거야.”

티알은 경악해서 말을 못 하고 있었다.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널 데려온 거니까 최대한 기틀을 잡아주고 싶었어. 지금 고생하는 건 나 때문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고 급했던 것 같다. 아까도 말했지만, 다시 한번 미안하다.”

전생들과 다르게 행동했던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내심 티알에게 부채감이 있었다.

티알은 허공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티알이 말했다.

“……알겠다. 자세한 건 나중에 들을 수 있는 건가?”

“지금 말한 게 단데?”

“어디로 갈 건지, 어떻게 할 건지 송현준은 다 정해놨을 거 같다.”

“……눈치가 빠르네.”

“그렇다.”

티알이 우쭐했다. 웃음이 나왔다.

“좋아, 나중에 얘기해 줄게.”

“그거면 된다. 슬슬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쟤네도 심심해하는 거 같은데…….”

“잠깐만, 부탁할 게 있어.”

“부탁?”

티알에게 하고 싶은 말이 또 있었다. 원래는 축구부를 떠날 때 하려고 했던 말이다.

“나는 우리 중학교가 좋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있거든. 그러니까 태상 선배랑 종혁이랑 두식 선배, 그리고 네가 내년에도 잘 이끌어줬으면 좋겠어. 할 수 있지?”

티알이 굳은 결의를 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한 번, 힘차게 끄덕였다.

“좋다. 날 데려온 걸 후회 안 하게 할 거다.”

마음에서 솟아나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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