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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던전 나와라.
방을 나선 시현이 향한 곳은 어머니 경화가 있는 거실이었다. 시현이 거실로 나가자 드라마를 보며 호들갑 떠는 경화와 하연이 보였다.
“어머, 세상에! 쟤 좀 봐! 어쩜 좋니!”
“와, 와! 엄마 쟤 봐 봐!”
드라마를 좋아하는 건 애나 어른이나 다를 바 없었다. 시현은 모녀가 합심해서 어머어머거리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리고 조그마한 TV를 보며 호들갑 떠는 경화를 보자 괜히 마음이 시큰거렸다.
시현의 집안은 어머니인 경화와 동생 하연, 그리고 시현 총 셋으로 이루어진 집안이었다. 시현의 아버지는 시현이 아주 어릴 적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고 그 때부터 집을 지탱해 온 건 경화였다.
시현과 하연이 먹고 자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던 건 경화 덕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등 돌린 친가에 기대지 않고 키워준 경화 덕분이었다. 밤잠 줄여가며 식당에서 뼈 빠지게 일하는 경화 덕분에 시현이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죽기 전에는 몰랐지만 한 번 죽었다 살아난 지금은 그걸 뼈저릴 정도로 알고 있었다. 비록 거실 하나에 방 둘인 집이라도, 그 집도 월세로 들어 사는 반지하에 여자인 경화와 하연이 방 하나를 같이 쓰더라도 가족이 편안하게 잘 수 있는 건 경화 덕분이었다. 대가 없는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었다.
죽기 전에는 왜 이런 단순한 사실을 몰랐을까.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기에 감사함을 몰랐던 시현은 지금 와서 감사함과 죄송함이 느껴졌고 절로 가슴이 시큰했다. 괜히 눈가가 찌르르한 기분이 들었다.
시현은 그 기분을 애써 숨기며 경화 옆에 나란히 앉았다.
“뭔데 그렇게 재미있게 봐요?”
“얘, 얘, 지금 말 걸지 말아 봐. 지금 중요한 장면이란 말이야.”
“와~ 세상에! 남자가 어쩜 저럴 수가 있어?!”
모녀가 합심해서 남자 1명을 험담하는 건 한 순간이나마 모녀가 아닌 친구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확실히 아들인 시현보다 딸인 하연이 어머니와 마음이 잘 맞는 듯했다.
시현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모녀를 감상하며 기다렸다. 드라마보다 호들갑 떠는 모녀를 보는 게 더욱 마음이 푸근해지고 기분 좋았다.
“엄마. 이거.”
드라마가 끝나자 시현은 준비했던 돈봉투를 경화에게 내밀었다. 어머니라 부르면 묘하게 벌써부터 엄마를 어려워한다고 싫어하는 경화였기에 존댓말 하면서도 일부러 호칭은 엄마라고 부르는 시현이었다.
“응? 이게 뭐니?”
“별 거 아니에요. 한 번 봐요.”
시현이 가볍게 재촉하자 경화는 돈봉투를 열어봤다. 경화 옆에서 같이 드라마를 보던 하연도 돈봉투를 같이 보고 두 모녀는 같이 놀랐다.
“세상에? 너 이게 뭐니?”
“도, 돈이네? 오빠, 이게 뭐야?”
모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보자 시현은 절로 새어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누가 모녀 아니랄까봐 눈을 동그랗게 뜬 모습이 그야말로 붕어빵이었다.
시현은 두 모녀의 반응을 보고 준비했던 변명을 자연스레 늘어놨다.
“사실 나 1달 전부터 새벽에 꼬박꼬박 나갔잖아요. 그때 운동하는 겸 해서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친구가 신문 배달도 해 봐서 친구 소개 덕분에 같이 했고요. 그렇게 해서 탄 월급이에요.”
진짜 신문 배달부가 들으면 허술한 변명이지만 경화와 하연은 어리둥절하면서도 그 말에 수긍하는 모양새였다. 뜬금없이 나온 거금에 놀란 상황에서 그럴싸한 변명이 들리니 자연스레 믿게 되었다.
“얘가. 그런 걸 엄마에게 상의도 없이…. 그런데 이 돈은 왜?”
“왜긴요. 첫 월급은 부모님 주는 거라는 말도 있잖아요. 어차피 1달만 하는 거였고 집안에 보탬 되면 좋은 거죠.”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얘가. 힘들게 번 건데 네가 써야지, 왜 엄마를 주려고 해? 엄마는 못 받아.”
“에이. 그러지 말고 받아요, 엄마. 아들이 주는 건데 이럴 때 안 받으면 언제 받아요?”
경화는 한사코 돈을 거절하려 했지만 이건 감안했던 바다. 시현은 계속해서 경화에게 받아 달라 아들이 효도하려 한다 같은 말로 설득했고 그 말에 경화는 결국 시현의 돈을 받았다.
시현이 주는 돈을 받은 경화는 크게 기뻐하면서도 살짝 감동한 듯 눈이 조금 젖어 있었다.
“세상에. 내가 살다 살다 아들에게 용돈도 받아 보네? 돌아가신 네 아빠가 보면 정말 기뻐할 텐데.”
“와아. 우리 오빠 철 다 들었네? 근데 나는 뭐 없어?”
“어. 넌 없어.”
“와! 나빴다, 오빠! 하나뿐인 여동생에게 그러면 돼?”
“얘는. 너한테 잘 안 해 주면 나쁜 오빠니? 하여간 시현이 배고프면 라면이라도 끓여줄까?”
아들이 철들었다고 감동하는 어머니와 틱틱대면서도 기뻐하는 동생을 보며 시현은 남몰래 뿌듯해했다. 그리고 속으로만 다짐했다.
‘지금은 이거 밖에 못 해 드리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어머니하고 하연이 행복하게 해 드릴게요.’
죽기 전에는 그런 힘이 없었다. 남들은 네가 이를 악물고 노력하면 된다 뭐다 했지만 아무 근거 없는 근성론은 개소리다. 죽기 직전에 뭐라도 열심히 할 걸 하고 후회했던 시현도 지금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힘을 얻으려면 기회가 생겼을 때 정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다른 국가는 모르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그랬다.
그리고 그 기회가 지금이었다. 자신이 노력하면 바로 보상 받을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시현이 모든 걸 걸고 노력해야 할 때였다. 시현은 그걸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해드릴 수 있는 건 100여 만 원 정도 드리는 것이지만 나중에는 커다란 집도 사고 여러 가지를 해드릴 것이다. 어머니가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되고 나중에 대학 갈 하연의 등록금도 자신이 마련하고, 하나 뿐인 장남으로서 가장의 노릇을 반드시 해내리라.
자기도 라면 끓여달라고 투덜대는 하연과 살찐다고 쓴웃음 짓는 경화를 보며 시현은 속으로만 다짐했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리고 그 날 먹는 라면은 왠지 모르게 여태까지 먹었던 라면 중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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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시현은 자신이 쥔 기회에 모든 것을 걸었다.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았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큰 성과는 없었다.
‘역시 이대로는 안 될 거 같아.’
시현은 혀를 차며 스테이터스 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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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
■성명 : 강시현 / 성별 : 남성 / 연령 : 18세 / 종족 : 인간
■신장/체중 : 176cm/70kg
■총 CP : 620CP(7.5%) / 사용 CP : 470CP / 잔여 CP : 150CP
《스테이터스 (총 360CP)》
■근력 : 25(150CP) / 민첩 : 18(80CP) / 지능 : 15(50CP) / 건강 : 18(80CP)
■HP : 250 / MP : 150 / SP : 180
《어빌리티 (총 60CP)》
■던전 감지 (EX랭크 / 0CP : 숨겨진 던전을 찾아 들어갈 수 있다. 비활성화 된 던전 활성화 및 출입 가능, 던전 정보 표기)
■명경지수 (C랭크 / 15CP : 그 어떤 때라도 차분한 상태를 유지 할 수 있다. 총 CP 차이가 1,000CP 이하인 자 혹은 상황에 공포 내성)
■수면 단축 2단계 (D랭크 / 20CP : 수면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단계 당 수면 시간 1시간 단축, 최대 5단계)
■전투 본능 (C랭크 / 15CP : 유전자에 각인된 전투 본능이다. 전투 시 근력, 민첩 20% 증가, 전투 스킬 30% 증가)
■철권 (D랭크 / 10CP : 주먹을 단련해 강철 같은 파괴력을 얻었다. 맨몸 전투 시 데미지에 +{근력}만큼 보정)
《스킬 (총 50CP)》
■권법 (민첩) - Lv.6 (30CP) / 은신 (민첩) - Lv.3 (15CP)
■노래 (건강) - Lv.1 (5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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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며칠 동안 운동을 하고 노력을 했지만 스테이터스는 건강 2 오르는 것으로 변동이 없었다. 이젠 산을 오르락내리락 뛰는 건 운동도 되지 않는 게 문제였다.
물론 소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말 미묘했다. 던전 감지 어빌리티에 효과가 추가 된 것은 좋은 상황이었으나 정작 그게 어떤 효과인지도 몰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뒤로 던전을 가 봤어야 말이지.’
뒷산 던전을 클리어 한 시현은 다음 던전을 찾기 위해 집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던전이 감지되기는커녕 그 비슷한 뭔가도 잡히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이곳저곳 샅샅이 둘러 봐도 소득은 전혀 없었다. 이 경우는 언제 날 잡아서 확실하게 조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장 그걸 조사할 틈은 없었다. 그 틈이 없다는 걸 방에 걸린 달력이 증명하고 있었다. 시현은 달력을 봐 오늘 날짜를 확인하고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2007년 3월 2일 금요일. 모든 학생들이 개학이라는 이름하에 학교에 복귀하는 날이었다. 바로 시현이 고등학생 2학년이 되는 날이었다.
“하. 내 이 나이에 또 고등학생이라니. 아니, 이 나이에 고등학생이 맞기는 한데….”
한숨은 절로 늘어만 간다. 또 수능을 볼 생각 하니 벌써부터 수능 스트레스가 몰려오는 거 같았다. 시현은 손으로 입을 막아 넘어오려는 헛구역질을 삼켰다.
못질한 벽에 대충 걸려있는 교복을 입은 시현은 옷매무시를 살폈다. 리스타트 플레이어가 되면서 신체능력에 제일 많은 변화가 생겼고 지금은 어떤 옷을 걸쳐도 옷태가 잘 살아났다. 이게 다 몸이 조각 같은 근육으로 다져진 덕분이었다.
이제 목욕탕 가서 괜한 자격지심 들 필요 없어진 몸을 떠올리자 입가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시현은 거울 앞에 서 남자라면 다 해 보는 씨익 웃기를 시전했다. 그 뿐이랴, 남자라면 으레 해 보는 멋진 자세까지 잡아봤다. 교복 속에 꽉 조이듯 단련된 근육이 절로 떠오르는 멋진 모습이었다.
“오빠 옷 다 입……. 아. 응, 다 입고 나와….”
“야, 야! 그런 거 아냐!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거 아냐!”
단지 그 대가가 짜게 식은 하연의 눈초리일 뿐이었다. 시현은 재빨리 변명하려 했지만 뭔가 늦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자기가 다시 고등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암담함은 하연에게 해명해야 한다는 정신적 공황에 밀려 사라졌다. 뭘 해명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가방을 챙긴 시현은 그대로 방을 나섰다.
이리하여 대학생이었던 강시현은 다시 고등학생이 되었다.
============================ 작품 후기 ============================
평타도 못 치는 외모를 평타 이상으로 보이게 하는 집안 거울의 매직. 화장실 거울이면 왜곡 50% 증가.(...)
선작, 추천, 코멘트는 초보 작가에게 크나큰 힘이 됩니다. 더욱 열심히 하는 작가가 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4월 20일. 총 CP, 잔여 CP 오류 수정.
2015년 5월 1일. 문맥 수정.
2015년 6월 16일. 문맥 수정. 아버지가 죽자->돌아가시자로 바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