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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한 적은 없는데?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시현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시현의 몸이 쏘아진 화살처럼 움직였다. 흙이 퍼질 정도로 강하게 내딛은 다리에 실었던 힘을 가속력으로 전환 시킨 결과였다.
시현이 달려들자 낡은 가죽으로 된 옷을 입은 남자들이 박도를 휘둘렀다. 제 딴에는 위협을 하듯 뭐라 크게 외쳤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위협인지 기합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쏘아진 화살처럼 달려 나가던 시현은 흐르는 물처럼 박도를 피하며 도적들에게 파고들어 주먹을 내질렀다. 1초도 안 되는 사이 5~6번 내지른 주먹이 도적들을 강타했다.
순식간에 도적들을 격퇴한 시현은 매섭게 발차기와 팔꿈치 찍기로 도적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렸다. 비명과 신음을 흘리며 쓰러진 도적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래성 무너지듯 사라졌다. 고블린 때와 다를 바 없었다.
“후. 예상대로라서 다행이야.”
시현은 땅에 떨어진 최하급 마정석들을 주워 모았다. 던전에 들어온 지 1시간 정도 지났지만 지친 기색은 전혀 없었고 다친 곳도 하나도 없었다. 시현의 예상대로 적정 CP가 300CP여도 그렇게 힘든 곳은 아니었다.
녹림채 던전은 이름처럼 숲이 우거진 던전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복도가 있고 사각 방이 있어 들어가면 괴수가 나오는 건 변함이 없었다. 던전을 돌아본 게 뒷산 던전과 이 던전뿐이지만 아무래도 이 구조는 모든 던전의 기본형 같았다.
이 던전에서 처음 괴수를 만났을 때는 사람이 칼을 휘둘러 많이 놀랐었다. 괴수라고 해서 괴물이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완전 사람과 똑같이 생겼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외형과 마찬가지로 실존도 사람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시현은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제아무리 사람일지라도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고 죽이려고 하는데 당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그렇기에 시현은 도적들의 칼부림에 응전했고 도적들을 쓰러뜨렸다.
이번에도 죽이는데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상대가 먼저 죽이려고 덤벼든 탓도 있지만 대부분은 명경지수 어빌리티의 효과였다. 생명을 죽임으로써 오는 부정적 감정들을 공포라 판단한 탓이었다. 이러니 자신이 꼭 살인기계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도움이 되니 감사해야 할 판국이었다.
수확물을 회수한 시현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다 좋지만 주변이 우거진 숲이라 그런지 유독 벌레가 많았다. 지금만 해도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나방 때문에 깨알 같은 귀찮음이 느껴졌다.
“옘병. 다음에는 벌레 회피 스프레이 같은 거라도 사 와야지.”
그런 거 몸에 뿌리면 야생 벌레와 싸우지 않을 수도 있다. 혹시라도 스토어에 있다면 사서 뿌려야겠다고 생각하는 시현이었다. 물론 크레딧이 매우 풍족해져서 여유가 넘칠 먼 훗날에 말이다.
지금은 크레딧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경화에게 아르바이트 월급이라 뻥친 135만원 만들고 남은 게 2,293C. 거기에 지금 깨알 같이 모은 걸로 따져도 그렇게 많이 모으진 못했다. 아직까지는 살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해도 무기나 방어구도 사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벌레 쫓는 스프레이 때문에 피 같은 크레딧을 날릴 순 없었다.
“후. 그러면 다시 가 볼까.”
가볍게 한숨 돌린 시현은 팔을 돌려 어깨를 풀고 이동했다. 아니, 이동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막 발을 떼자마자 시현의 이동을 막는 변수가 생긴 탓이었다.
“어? 사형, 이미 들어온 사람이 있는뎁쇼?”
“뭐야? 그럼 우리가 첫 발견자가 아니지 않느냐?”
“에이. 기분 좋다 말았네.”
“어쩔 수 없죠.”
시현은 자신의 고막을 두드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쪽에는 놀랍게도 사람들이 서 있었다. 남자 넷, 여자 둘 적정하게 모인 사람들은 서로 면식이 있는 일행 같았다. 다들 이 방으로 들어올 때 대화하며 들어온 게 그 증거였다.
‘사람이 들어왔어?’
본의는 아니지만 던전이란 건 시현 자신만 들어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세운 가설이 박살났다. 이로써 남들도 던전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게 증명 되었다. 시현은 사람을 만난 것보다도 던전을 독점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부터 느꼈다.
시현은 아쉬움을 달랠 겸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상념을 정리하느라 말이 없는 시현을 보고 기분이라도 상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일행 속에서 대표로 1명 나와 시현에게 말하는 게 그 근거였다.
남자는 시현을 보고 웃으며 양손을 들어 그대로 오른 주먹을 왼손으로 감쌌다.
“본의는 아니지만 매너를 어기게 되어 죄송합니다. 먼저 발견하신 분이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비연문에 몸을 담고 있는 김상준이라고 합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느 문파에 속해 계신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이건 또 뭔 소리여?’
시현은 자신을 김상준이라 소개한 남자를 봤다. 남자는 기묘한 손놀림을 한 채 빙긋 웃고 있었다. 소위 포권이라고 하는 그 자세였다.
180cm 살짝 넘는 키에 허리에는 검을 찬 모습은 포권과 어우러져 무림인이라 불리는 사람을 연상케 했다. 이곳이 녹림채니 무림인 괴수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괴수가 청바지 입고 하얀 셔츠 입는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거기에 괴수였으면 대화를 하거나 그럴 필요 없이 먼저 덤벼들었을 터다.
시현은 상준 일행을 보고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를 알고 있었다거나 검을 보고 겁먹었다거나 하는 그런 건 아니었다. 하물며 상준이 자신을 무림인처럼 지칭한 것 때문도 아니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괴수가 나타난다. 그리고 괴수를 사냥하기 위한 헌터들이 생겨나고, 무림인과 마법사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무림인과 마법사가 괴수 등장 이전부터 있었다는 얘기는 미래에서 다 알려진 얘기였으며, 그걸 아는 시현이 무림인을 봤다 해서 놀랄 리 없었다. 그저 생각보다 좀 빨리 만났구나 싶은 정도였다.
단순히 예의 수준에서 끝낼 정도로 고개만 살짝 숙여 인사한 시현은 일행을 살폈다. 일행은 가벼운 복장에 대부분 검을 들고 있었다. 더 정확히 파고들자면 기다란 창을 든 남자가 1명, 검을 든 사람이 4명, 빈손으로 서 있는 남자가 1명이었다.
일행을 둘러보던 시현은 저도 모르게 한 여성에게 멈췄다. 여성은 검을 든 4명 중 1명이었고 등 중간까지 흑발을 길게 길러 살짝 반묶음으로 예쁘게 꾸민 미녀였다. 여성이라기엔 조금 어려 소녀라고 보면 딱 맞을 10대 후반인 소녀는 중국식 검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시현은 그 소녀를 보고 살짝 놀랐다. 감정이 별로 드러나지 않아 살짝 차분해 보이기도 하고 차가워 보이기도 하는 미모에 한눈에 반했다는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이 자리에서 만날 일 없을 줄 알았던 사람을 만나 살짝 놀란 것이었다.
“야. 너 이민영이지?”
“…아.”
주변을 둘러보던 소녀는 시현이 아는 체를 하자 시현을 보고 살짝 탄성을 흘렸다. 그 탄성에도 약간의 텀이 있고 목소리도 맑고 시원한 느낌이 들어 침착해 보이는 이미지를 단단하게 만드는데 한몫 했다.
“넌… 강시현?”
“허. 진짜 이민영이네.”
시현이 살짝 놀란 이유는 이 소녀, 같은 반인 이민영 때문이었다.
민영은 고등학교를 2번 다니게 된 시현과 같은 반인 2-3반 학생이었다. 양판소처럼 말해보자면 얼음 공주 비슷한 별명이 붙었을 민영은 어떤 상황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쿨한 모습을 보이는 여학생이었다. 쿨한 성격과 단아한 미모가 어우러져 시현의 학교에서 제일 예쁜 여학생을 논할 때면 언제나 이름을 거는 소녀이기도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을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탓에 살짝 놀랐던 시현은 민영을 보고 가볍게 손 흔들어 인사했다. 인사를 받은 민영은 살짝 눈썹을 찌푸리는 걸로 자신의 감정을 짧고 간결하게 표현했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그건 내가 할 말인데요. 거기에 허리에 찬 검은 뭐고?”
“이건….”
“흠흠.”
자신이 차고 있던 검에 대해 설명하려던 민영은 옆에서 치고 나온 헛기침에 말을 끊었다. 시현도 자연스레 헛기침이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헛기침을 흘린 건 앞서 자신을 소개했던 상준이었다. 상준이 헛기침을 하자 시현은 상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던 사실을 떠올렸다.
“아. 죄송합니다. 아는 사람이 보이니까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신경이 쏠리네요.”
“하하. 그럴 수도 있지. 너무 신경 안 쓰니까 걱정하지 마.”
상준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시현에게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상준의 일행이 가볍게 쑥덕거렸다. 역시 사형은 자비가 넘친다든가 하는 금칠이었다.
그렇지만 정말로 신경 안 쓰는 사람은 신경 안 쓴다는 말도 안 하는 법이다. 정말로 신경 안 썼으면 짧게 넘어갔을 걸 굳이 걱정하지 말라고 말꼬리 잡는 걸 보니 자신의 말이 무시당한 걸 신경 쓰고 있는 게 뻔히 보였다.
‘그 전에 누가 너한테 반말 써도 된다고 했냐?’
시현은 은근슬쩍 말 놓은 상준을 속으로 씹었다. 아무래도 민영과 시현이 서로 반말하는 걸 보고 나이가 낮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시현은 그 점을 물고 늘어질까 생각했지만 어쩌면 민영과 관계있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별로 친하지는 않다 쳐도 일단은 반 친구인 민영이 자신 때문에 피곤해지는 건 조금 꺼렸기에 시현은 그 부분에 대해서 조용히 넘겼다.
“어쨌든 내 질문에 대한 답은 못 들은 거 같은데. 괜찮다면 얘기 좀 해 봐라.”
상준의 말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달리 살짝 강압적이었다. 시현은 슬쩍 찌푸려지려 하는 눈썹을 간신히 말리며 생각했다.
‘어떻게 할까….’
============================ 작품 후기 ============================
벌써 비축분이 다 떨어졌습니다! 끄아악! 나름대로 일일 2회 연재를 노렸는데, 일일 1~2회 연재를 목표로 삼아야겠습니다.-_-;;
선작, 추천, 코멘트는 초보 작가에게 크나큰 힘이 됩니다. 더욱 열심히 하는 작가가 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5월 1일. 문맥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