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스타트 라이프-34화 (34/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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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시험, 그리고 S등급.

집으로 돌아간 시현이 자신이 저지른 일을 잊을 쯤, 한국 헌터 협회 본부는 시현이 가볍게 잊어버린 일 때문에 발칵 뒤집혀져 있었다.

“이건 사상 초유의 사태입니다! 그를 당장 S등급 헌터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제 막 헌터를 시작한 사람을 S등급으로 올린다는 건 좀 그렇군요.”

“S등급이라는 건 그 나라 헌터 전체의 위신이 걸린 문제일세. 그저 세다고 떡하니 앉힐 수 있는 자리가 아니란 말일세.”

“하, 참. 핑계는 잘도 둘러대시는군. 그저 자기들이 미는 헌터가 아닌 사람이 S등급 헌터가 되는 걸 막는 거 아닙니까?”

“뭣이? 자네 지금 말 다 했나!”

서울 강남에 있는 D.H 서비스 센터 본사에서는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논리 정연한 설전보다는 그냥 목소리 큰 사람들이 서로 협잡질 하는 시정잡배 말싸움처럼 보이는 게 문제였지만 어쨌든 말로 싸우니 설전은 설전이었다.

한국에 있는 거의 모든 전자 회사와 체결을 맺어 거의 모든 전자제품의 A/S를 맡아주는 D.H 서비스 센터의 본질은 한국에 위치한 던전과 헌터를 관리하는 한국 헌터 협회였다. 각지에 있는 서비스 센터 지부가 헌터 협회 지부인 걸 봤을 때 강남에 있는 본사가 한국 헌터 협회 본부인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D.H 서비스 센터의 본사이자 한국 헌터 협회의 본부인 이곳에는 하나 둘 같이 내로라하는 서비스 센터 임원들, 한국 헌터 협회의 간부들이 모여 목청 높여 소리 지르고 있었다. 이들은 마음먹으면 그 자리에서 수십 억 원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부자이거나 한국에서 목 뻣뻣하기로 유명한 국회의원도 목을 굽히게 만드는 권력자들이었다.

모종의 사정으로 한국 헌터 협회의 협회장 자리가 비어있는 지금, 그들이 이렇게 목청 높여 소리 지르며 싸우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오늘 헌터 협회 지부를 휩쓸어버린 박수혁이라는 청년 때문이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 알 수 없는 청년 하나가 오늘 저지른 일은 한국 헌터 역사에 길이 남을 굉장한 일이었다. 굉장한 업적을 이루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일이었다. 한국에 있는 A등급 헌터를 단 일격에 쓰러뜨린, 그것도 철저하게 박살낸 일이었다. 이는 헌터 1명을 쓰러뜨렸구나 하고 가벼이 넘길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었다.

언제부터 등장했는지 모를 던전과 마정석을 국민들 몰래 이용해 먹기로 한 역사는 나라마다 달랐다. 그 중 제일 긴 역사는 미국과 영국이었고 던전과 마정석을 이용하는 국가들은 그제야 왜 미국이 강국이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우스갯소리로 하던 외계인을 갈아 넣었다는 말이 정말이었으니 당연했다.

그에 비해 한국이 던전과 마정석을 취급하고 헌터를 양성한 건 그리 긴 역사가 아니었다. 넉넉하게 잡아봤자 한 10년 정도 됐을 터다. 지금 들어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에 비하자면 그 역사는 까마득하게 짧았다.

한국은 헌터 역사가 짧고 던전이 적은 던전 약소국이었다. 던전의 수는 땅이 얼마나 넓냐에 따라 차이가 나기 마련인데 광활한 대지를 가진 나라들과 다르게 한국은 작은 한반도뿐이었다. 그마저도 남과 북이 반으로 나눠 가지고 있으니 던전이 적을 수밖에 없다.

던전이 적으니 헌터 사회도 그렇게 크게 발전할 수 없었다. 이번에 주먹 한 방에 압살 당할 뻔한 디펜더는 작디작은 한국 헌터 사회에서 그나마 이름을 올릴 수 있는 헌터였다. 비록 성정이 개판인 건 그들도 알고 있었으나 그 실력 때문에 차마 뭐라 할 수도 없어 만행을 묵인해주던 헌터였다.

그런 헌터가 주먹 한 방에 쓰러졌다. 그것도 철저하게 박살이 났다. 여태까지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갑자기 튀어 나온 남자에게 말이다. 이런 소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고 일어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단 1명만이 느긋하고 차분하게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국 헌터 협회 간부 중에서도 실권자인 김대형 전무였다. 그가 남들에 비해 느긋하고 차분할 수 있던 건 이유가 있었다. 그는 박수혁이라는 남자의 정체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알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박수혁이라는 신분을 만들어 박수혁이라고 불리는 소년, 강시현에게 넘기며 던전을 받아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예상대로 돌아가는군.’

김대형 전무는 의자에 앉은 채 목청 높이느라 얼굴이 새빨개진 임원들을 티 나지 않게 둘러봤다. 이미 평생을 배부르게 먹고 살 수 있는 권력을 가졌음에도 뭔가 더 해 보려는 모습이 참으로 안쓰럽고 탐욕스러웠다.

저들이 저렇게 목청 높여 소리 지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 헌터 협회 내에서도 파벌이 나뉘어 있고 누가 S등급 헌터가 되냐에 따라 파벌의 균형에 영향이 오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김대형 전무 자신이 가질 생각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꼴이 우습기는 참 우스웠다.

시현과 거래를 한 어제, 김대형 전무는 시현에게 사소한 거짓말을 하나 했다. 시현에게는 국가와 거래한다고 했지만 실상 거래는 시현과 김대형 전무 개인적으로 이루어졌다. 김대형 전무는 한국 헌터 협회에 보고 없이 개인적으로 던전을 사들였으며 시현에게 준 550억 원과 박수혁 신분 또한 자신의 힘을 이용해 만든 것이었다. 시현에게 지급한 던전 대금 550억 원은 자신의 사비였고 박수혁이라는 신분은 국가 이곳저곳에 들어가 있는 자신의 사람을 이용해서 만든 것이었다.

물론 대금이나 신분은 제대로 된 깨끗한 신분이었다. 김대형 전무가 시현에게 한 거짓말은 국가와 거래한다는 사소한 거짓말이었지, 그 외는 전부 사실이었다. 시현은 거래를 승낙하며 김대형 전무에게 던전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게 시현이 김대형 전무에게 속았다는 말을 나타내는 건 아니었다.

‘강시현이라.’

김대형 전무는 저도 모르게 어제 있던 일을 떠올렸다. 던전을 걸고 한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은 김대형 전무에게 있어 잊지 못 할 정도로 인상 깊은 시간이었다.

강시현. 이제 18세 밖에 되지 않은 소년이 한국 헌터 협회의 간부인 자신을 상대로 당당하게 거래를 걸어왔다. 그것도 김대형 전무 자신이 가진 모든 패를 다 읽힐 뻔했을 정도로 당당하고 뻔뻔하게, 그리고 치밀하게 거래를 걸었다.

김대형 전무가 던전 거래를 들었을 때 그는 그때 비로소 시현을 인지하고 무슨 꿍꿍이인지를 생각하며 거래에 응하러 갔다. 하지만 시현은 김대형 전무의 존재를 알기 전부터 수많은 덫을 깔아 놓고 김대형 전무를 뜯어버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때 시현이 일행과 있었기에 망정이지, 일행이 없었다면 시현에게 비장의 카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모든 걸 읽혀질 뻔했다.

김대형 전무 본인도 강시현이라는 소년은 김대형 전무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준 걸 알고 있었다. 그때 거짓말에 대해 추궁하려면 시현은 어떻게든 김대형 전무의 거짓말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빌미로 꼬투리 잡아 더욱 많은 걸 뜯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현은 그러지 않았다. 거기서 더욱 논쟁이 심해지고 사회전이 이어졌다면 실수를 저지른 일행이 자신의 실수가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더욱 뼈저리게 느낄 테니까. 시현은 그걸 염려하여 파고들지 않았던 것이다.

김대형 전무가 떠봤다는 사실을 그 즉시 깨달은 걸 알아챈 일행 또한 명석한 인재였다. 그런 인재가 논쟁이 이어지는 내내 자신의 실수가 얼마나 큰 건지 깨닫지 못할 리 없었다. 시현은 자신의 일행이 그 실수를 깨달아 자기혐오에 빠지려는 걸 막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했다. 김대형 전무의 말에 거짓말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넘어가준 것이다.

아수라장을 겪어온 자신이 이제 20살도 되지 않은 소년에게 확실하게 밀렸다 패배할 뻔하고 놓아준 뒤에야 겨우 도망쳤다니. 누가 들으면 믿기지 않을 이야기고 김대형 전무 본인도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인정할 사실을 냉철하게 인정하는 건 김대형 전무의 특출한 장점 중 하나였다. 인정할 사실을 냉철하게 인정하는 장점이 있었기에 김대형 전무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고 한국 헌터 협회 간부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김대형 전무는 쓸데없이 목청 높이는 사람들 모르게 자신의 손을 살폈다. 여유로운 척 깍지 끼고 있던 손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어제 일을 떠올리자 몸이 손바닥마저 흥건하게 만들 정도로 긴장한 탓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했다. 김대형 전무는 강시현이라는 소년이 무서웠다고 봐야했다. 아니, 봐야한 게 아니라 무서웠다.

하지만 그렇기에 어떻게든 이걸 기회 삼아야했다. 김대형 전무는 손에 흐른 땀을 조용히 훔치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전 세계 헌터를 묶는 국제기구는 없습니다.”

김대형 전무가 입을 열자 목청을 높여 소리 지르던 간부들이 말을 아꼈다. 자신의 이익을 탐하기 위해 소리 지르던 사람들이 입을 다무는 것만 봐도 김대형 전무가 얼마나 강한 실권자인지를 알 수 있었다.

“각국의 헌터를 통제하는 단체는 없습니다. 그저 국가 간의 혼란을 없애기 위해 헌터에게 등급 제도를 부여하는 것과 포지션 등을 통일했을 뿐이지, 헌터 자체에 대한 관리는 각국에서 개별적으로 관리합니다. 우리나라의 헌터가 외국에서는 헌터가 아닌 것처럼 말이죠.”

김대형 전무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새삼스레 짚어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이야기를 이었다.

“그런 제도 탓에 국가에서 헌터에 등급을 부여하는 건 국가 자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렇게 염려하시는 것도 압니다.”

헌터에게 등급을 부여하는 것은 그 국가의 고유권한이다. 한국에서 어떤 헌터를 S등급 헌터라고 지정하면 타국은 그에 대한 이견을 제시할 수 없다. 이는 한국 헌터 협회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S등급 헌터라는 상징성은 굉장히 중요해진다. 그 나라에 있는 헌터의 정점에 있는 자를 나타내는 등급이 바로 S등급 헌터이다.

그런데 그 헌터가 타국의 S등급 헌터, 혹은 A등급 헌터보다 약하다면? 그 경우 그 헌터 개인이 약했다는 말로 끝날 게 아니다. 그 나라 헌터 사회 자체가 얕잡아 보이게 된다. 아무리 강대국인 미국이라 할지라도 그런 일만큼은 일어나지 않게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한국에 S등급 헌터가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괜히 어쭙잖은 실력을 가진 헌터를 S등급 헌터로 올려 사회적으로 얕잡아 보일 바에는 S등급 헌터 자리를 공석으로 두는 것. 그 외에도 권력 투쟁에 따른 이유도 있지만 커다란 이유는 이것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한국 헌터의 정점을 비워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박수혁 헌터의 등장은 위기가 아닌 기회입니다. 한국 헌터 사회가 외국에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면 박수혁 헌터를 S등급 헌터로 만들어야 합니다.”

김대형 전무는 가볍게 숨을 골랐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갑부와 손가락 하나로 법을 흔들 수 있는 권력자들이 자신의 말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이들을 휘두르는 건 이리도 쉬운데 왜 그 소년 하나 다루기는 그리도 어려운지. 김대형 전무는 남모르게 속으로만 쓴웃음을 짓고 이야기를 진행했다.

“분명 S등급 헌터가 나타내는 상징성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태커 중에서도 맨손으로 그만한 파괴력을 내는 어태커는 없었습니다. 미국의 S등급 헌터인 월드 디스트로이어(World Destroyer)와 일본 S등급 헌터인 오니키리(鬼切)가 세계에서 유명한 어태커 헌터이지만, 그들도 맨손으로 그 정도 파괴력은 낼 수 없습니다.”

S등급 디펜더는 전력을 다하면 수 톤 트럭이 들이 받아도 막아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번에 쓰러진 A등급 헌터인 남자는 거기까지는 안 되어도 모든 장비를 갖추면 자동차 정도는 막을 수 있다. 어쩌다가 자동차에 정도라는 말이 붙나 싶지만 어쨌든 그 정도로 튼튼한 방어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 방어력을 앞세운 탓에 이번에 쓰러진 디펜더는 세계에서도 그럭저럭 유명한 디펜더였다. 세계에서 먹히는 디펜더였다. 그런 디펜더가 단 일격에 찍어 눌러졌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파괴력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보장 되어 있었다.

“저는 박수혁 헌터를 S등급 헌터로 추천합니다. 그에 따른 여파, 피해는 전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실권자인 김대형 전무가 당당하게 밀고 나가자 사람들은 수긍했다. 김대형 전무에게 당당하게 대들 수 없을 뿐더러 만일 S등급이 된 헌터가 사고라도 치면 김대형 전무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김대형 전무는 확신하고 있었다. 강시현이 보인 카드는 이 압도적인 파괴력도 있지만 그것만이 아니리라. 아직도 자신이 모르는, 뭔가 엄청난 카드를 숨기고 있으리라. 김대형 전무는 그리 확신했다.

만일 누군가가 강시현에 대해 묻는다면 김대형 전무는 이리 확답할 수 있었다.

‘조만간 세상은 그 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김대형 전무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고 그를 아군 삼기로 다시금 다짐했다.

이것이 시현이 S등급 헌터가 된 배경이었다. 한국 헌터 사회를 뒤흔드는 회의가 오고 갈 당시 시현은 라면에 스팸을 넣어 끓여 먹는다는 사치를 부리며 기뻐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언젠가 친구인 친한 동생이 제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지인 : "형을 갈아 넣을 때 들어야 할 건 채찍이 아냐."

금은방 : "그럼?"

지인 : "통장이지."

금은방 : "찌, 찌발...!"

그래서 이리 갈렸습니다. 만일 제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친구에게 돗자리 하나 선물하고 올 겁니다. 그거 깔고 장사 하라고. 젠장!(...)

일단 시간에 맞춰 급히 올리느라 조금 누락된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조만간 추가 될 예정입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은 초보 작가에게 크나큰 힘이 됩니다. 더욱 열심히 하는 작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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