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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타트 라이프-133화 (133/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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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의자와 똑똑한 호구.

시현을 지나친 헌터들은 시현을 알아보지 못했다. 시현과 면식이 있는데 시현을 몰라봤다는 뜻이 아니었다. 시현이 S등급 헌터 박수혁인 걸 몰라봤다는 뜻이었다.

사실상 S등급 헌터 박수혁에 대해 알려진 건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코트였다. 시현이 나서서 정보 통제를 한 건 아니지만 얼굴에 대해서는 유독 알려지지 않았다. 얼굴이 알려지면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힘들어진다는 김대형 협회장의 배려 덕분이었다.

어차피 가벼운 하급 던전인 거 코트 걸치기도 번거로운 시현이었고 그런 이유로 블랙 드래곤의 코트를 걸치지 않았다. 시현을 지나친 헌터들이 시현을 못 알아보는 건 당연했다. 만약 알아봤다면 그냥 지나치는 걸로 끝났을 리가 없다.

‘흐음. 또 들러붙는 건가.’

시현은 자신을 지나친 헌터들 중 준에게 들러붙어 먹던 3명을 봤다. 3명은 한 헌터에게 온갖 아양을 떨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비벼댔다. 정황 상 온갖 아양을 독점하고 떠받들어지는 헌터가 B등급 헌터일 것이다.

B등급 헌터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니 그 근처에 준이 서 있었다. B등급 헌터에게 아양 떠는 3명은 헌터에게 간과 쓸개 내주느라 준을 못 봤지만 준은 그 3명을 발견했다.

아마 저 3명도 준이 하급 던전으로 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걸 알았다면 제아무리 머저리라도 엊그제 등쳐먹은 인간이 있는 곳으로 올 리가 없다.

자신을 등쳐먹은 사람들이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걸 본 이상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만약 시현이 당사자였다면 그 인간들의 뼈부터 추려냈을 거다.

그러나 준은 당사자들을 보고 다가가지 않았다. 오히려 쓴웃음을 지으며 거리까지 벌렸다. 저건 영락없이 마주치지 않게 당사자들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엥? 왜? 쟤 진짜 이해 안 가네?’

당장 등골을 뽑아 빼앗긴 걸 회수해도 모자랄 판국에 당사자들을 피하기까지 한다. 시현은 그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당사자가 움직이지 않는데 외부인이 설치기도 그렇다. 찝찝한 마음을 구석으로 몰아둔 시현은 몸을 돌려 환전소로 향했다.

“아! 어, 어서 오세요! 헌터님!”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요. 여기 오늘 잡아온 마정석.”

시현은 황송해서 어쩔 줄 모르는 환전소 직원에게 마정석이 담긴 주머니를 내밀었다. 마정석을 받은 환전소 직원은 주머니에 가득 찬 하급 마정석을 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직원이 들고 있던 마정석은 직원의 손을 거쳐 기계 속으로 쏟아졌다. 은행에서 보기 쉬운 동전 환전 기계 비슷하게 생긴 기계는 마정석의 순도를 체크해 구분해주는 기계였다. 이것을 통해 그 마정석의 진위 여부, 등급을 알 수 있었다. 참고로 제작사는 루드비아 인더스트리였다.

“저, 정산이 끝났습니다. 옐로우 마정석 개수는 총 224개이고 옐로우 마정석 가격은 개당 1,000만 원입니다. 따라서 총합 2, 22억 4천만 원이며 박수혁 헌터님의 헌터 등급 혜택에 따라 파티 내 정산 세금 등은 면제가 됩니다.”

정산을 끝낸 환전소 직원은 눈앞에 나타난 결과에 어안이 벙벙했다. 가끔가다 고위 등급 헌터 몇이 모여 옐로우 던전 공략을 하지만 가져오는 옐로우 마정석의 수는 3~40개 남짓이었다. 그 정도로 목숨 걸고 해도 힘든 게 옐로우 던전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젊은 남자는 장비도 없이 사람 1명 끌고 휙 들어가더니 옐로우 마정석을 쓸어 담아 왔다. 단 한 번 던전 공략한 것으로 억 소리 나는 돈을 벌어들였다. 어안이 벙벙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22억? 이거 괜찮네. 옛날에는 돈을 그렇게 안 쳐줬었는데. 앞으로 던전 공략 자주 하고 다닐까.”

시현은 턱을 쓰다듬으며 가볍게 중얼거렸다. 망자의 무덤 던전 관리장이 들었다면 쌍수 들고 환영하다 못 해 감격에 겨워 눈물 펑펑 흘릴 소리였다. 자기 관리 지역에서 옐로우 마정석 수급율이 높아지면 자연히 실적으로 이어지니까.

“어쨌든 그거 분배해 줘요. 5:5 비율로 분배해 주고 제 몫은 제 헌터 전용 계좌로.”

“알겠습니다. 분배 비율은 5:5, 박수혁 헌터님의 수당은 박수혁 헌터님 계좌로 넣어드리겠습니다. 김준 헌터님의 수당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 잠깐만요. 야! 너 이거 어떡할 거냐?”

구석에 놓여있는 벤치에서 하품하던 준이 시현의 부름에 소환됐다. 입 찢어져라 하품하고 배를 벅벅 긁는 모습이 꼭 옛날 대학 다니던 시절 동아리에서 짱박혀 있던 인간 같은 모습이었다.

“뭔데, 뭔데. 어디 보자. 어차피 환금 받을 금액 얼마 푸헉!! 1, 1, 11억?! 이거 뭐야!!”

“뭐긴 뭐야. 네놈 새끼 애인들 조지고 얻은 돈이지.”

“아, 야!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남이 들으면 오해, 어, 어허! 아가씨! 그런 거 아니에요! 이건 그냥 장난이야!”

“장난은 무슨 장난. 왜. 애타게 찾던 제시카, 쥴리, 루나루아, 미스티 시체 팔아서 나온 돈 맞잖아.”

“형씨! 우리 이러지 말지라! 팀킬은 좋지 아니하다!”

시현의 장난은 환전소 직원이 덜덜 떨면서 수화기를 들 때까지 계속 됐다.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잔뜩 있었지만 이러다 진짜 준이 쇠고랑 찰 거 같아서 그만뒀다.

“아, 어, 어쨌든. 씁. 잠시만 기다려 주쇼.”

준은 다시 되물어오는 환전소 직원을 말리고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게 접힌 쪽지를 꺼내 펼쳤다. 작은 쪽지는 몇 번이고 접고 펴고 한 탓인지 많이 헤져 있었다.

“내 계좌에 1억을 넣어주고 나머지는 전부 여기에 넣어줘요. 크. 내가 억을 넣어달라는 말을 하는 날이 오다니. 김준 출세했다…!”

시현은 기뻐하는 준에게서 슬쩍 시선을 떼 손때 묻은 종이를 봤다. 준 몰래 본 종이에는 계좌번호와 성아연 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높으신 분 앞에 선 사원처럼 딱딱하게 말한 환전소 직원은 손을 움직여 전산업무 처리에 들어갔다. 준은 그 소리를 듣고 한숨을 쉬고 쪽지를 접었다.

“…받지도 않겠지만.”

쪽지를 집어넣기 전 준은 푸념하듯 혼자 중얼거렸다. 딱히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어 한 말은 아니었기에 목소리는 작았다. 그저 시현의 귀가 예민해서 그 소리를 잡아냈을 뿐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활발하던 놈이 쪽지를 보고 힘 빠진 쓴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여태까지 다른 이들에게 호구 잡힐 때 짓던 웃음보다 더욱 힘 빠지고 씁쓸한 웃음이었다.

“거금 벌고 표정은 왜 그 모양이야? 그리고 남은 돈은 어디에 넣는 건데?”

“아…. 뭐. 그런 게 있어. 아, 참. 그렇지. 너 때문에 거금 번 거였지. 그런데 5:5 비율로 괜찮겠냐? 벌써 분배 끝난 시점에서 말하기도 뭐하지만 나는 내가 더 적게 받아도 되는데. 이미 부친 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내 2억에서 더 가져가.”

“…아니. 뭐. 까놓고 한 바퀴 돌면 벌 수 있는 돈이니까. 상관은 없어.”

“와. 무서운 놈이네.”

준은 쓴웃음 지은 채 고개를 몇 번 저었다. 그 모습이 시현에겐 영 익숙하지 않았다. 이런 때라면 더러운 부르주아네 수저 색이 다르네 뭔가 농담이나 장난을 칠 법한데 나오는 반응은 힘 쭉 빠진 반응이니 그럴 수밖에.

그런 시현의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준은 여전히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하여간. 오늘도 같이 돌아줘서 고맙다. 나중에 봐.”

준은 엊그제와 어제처럼 가볍게 인사하고 헤어지려 몸을 돌렸다. 그러나 시현은 힘 빠진 준의 뒷모습이 이유 모르게 작아 보였다.

그래서 시현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준의 어깨를 잡았다.

“와. 이 놈 봐라. 많이 벌어먹었으니 먹고 튀겠다고? 음료수라도 하나 사야하는 거 아냐?”

어깨 잡힌 준은 조금 놀란 눈으로 시현을 봤다. 시현은 그 눈빛에 씨익 웃는 걸로 화답했다.

분명 별 생각 없이 만난 사람이고 며칠 보고 안 만날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시현은 준이 신경 쓰였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저쪽에서 음료수 하나 사고 가. 그냥 가면 다음부터 분배 9:1로 해버린다.”

시현은 던전 입구 근처에 배치된 벤치를 가리켰다. 말도 안 되는 말에 어이가 없어진 건지, 준은 쓴웃음을 지우고 피식 웃었다.

============================ 작품 후기 ============================

요즘 개인적으로 좀 문제 있는 일이 있어서 연재 페이스를 제대로 지키지 못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주 1회 최소 10kb 마지노선으로 잡고 노력은 하는데, 그거도 버거워 죽겠네요.-_-;;

그래도 장기 연재 휴재는 없도록 노력 중입니다. 최대한 빠른 페이스로 복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5년 11월 25일. 설정 수정. 하급 마정석의 시세를 개당 1,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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