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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전, 중급 던전.
“시현아? 왜 그래?”
“아무래도 미니맵이 안 먹히는 거 같아. 난이도 높아졌다고 이러기냐.”
시현은 혀를 차며 민영에게 대답했다. 미니맵의 중요성을 아는 민영과 경진은 시현의 대답에 표정을 굳혔다.
던전 공략에서 미니맵이 하는 일은 간단했다. 던전의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주는 것과 시현과 일행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던전 공략에 있어 그 둘의 중요성은 매우 높았다.
던전의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안다는 건 던전을 보며 페이스 조절을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어디를 어떻게 가고 어디서 쉬는지, 끝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는 건 페이스 배분에 큰 도움이 됐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기에 길을 헤맬 일이 없었다. 길을 헤매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미니맵은 단순하지만 확실한 효과로 시현에게 큰 도움이 되어줬다. 그렇지만 이번 중급 던전에서는 큰 기대를 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러면 아예 미니맵을 못 쓰는 거야?”
“그건 아냐. 지나간 길에 대해서는 흔적이 기록 되니까 맵핑을 따로 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
불행 중 다행으로 시현이 움직인 길에 대해서는 미니맵에 기록이 남아 구조를 알 수 있었다. 거기에 현재 위치까지 표기 되고 있으니 던전 미아가 될 일은 없었다.
미니맵이 안 되는 건 뼈아팠지만 안 되는 거 가지고 끙끙댄다고 안 되던 게 되진 않는다. 시현은 미니맵을 닫고 제일 앞서 걸었다. 민영과 경진이 그 뒤를 따라왔다.
앞으로 쭉 뻗은 이 통로가 하급 던전이었다면 거칠 거 없이 마구 내달렸을 터였다. 그러나 중급 던전은 첫 등장부터 시현의 예측을 비웃듯 무시한 존재다. 일반 던전과 하급 던전이 그러지 않았다 해서 중급 던전 또한 통로에서 안전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시현은 통로를 걷는 내내 신경을 예민하게 다듬었다. 명경지수 어빌리티 덕분에 공포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공포가 없다고 해서 긴장이 피곤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후우. 다른 사람들은 이런 기분으로 던전 공략을 했던 건가?”
“던전 조사가 진행 된 지금은 아니지만 초창기에는 이런 분위기였어. 여태까지 시현이 네가 너무 던전 공략을 쉽게 해 온 거야.”
평소 페이스를 찾은 민영은 검집에 들어있는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려둔 채 걸었다. 대화는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대처 할 수 있게 긴장은 늦추지 않고 있었다.
“피곤하면 내가 탐지 마법을 써 볼까?”
시현의 뒤에서 걷던 경진이 시현에게 물었다. 시현은 고개를 절레 저었다.
“아니. 마력은 무조건 아껴. 얼마나 넓을지 잘 모르니까 마력은 아낄 수 있을 때 최대한 아껴야 해.”
일반 던전의 층수가 1층, 하급 던전의 층수가 2층이었다. 난이도가 다르다고 하는 중급 던전이 하급 던전보다 좁을 리는 없다고 시현은 생각했다.
“인벤토리에도 포션을 잔뜩 챙겨 왔지만 얼마나 넓을지 알 수 없어. 원래대로라면 그걸 먼저 알아봤어야 했는데 미니맵이 막혀서 그걸 못 알아보니 감으로 조절하는 수밖에 없고. 그러니까 마력, 내공은 아낄 수 있을 때 최대한 아껴 둬.”
던전 내부에서는 스토어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이렇게까지 고민하지는 않았을 텐데 자잘한 부분에서 막힌 것들이 이렇게 불편하다니. 시현은 가볍게 혀를 찼다.
던전 입구부터 통로를 걸은 게 약 5분 정도. 직선으로 뻗은 통로에서 좌우로 꺾어지는 통로들을 돌고 계속 돌자 통로 끝 너머로 넓은 방이 보였다. 최초로 접하는 중급 던전 방이었다.
“경진이는 버프 부탁하고 문을 홀딩 해. 다수와 싸우는 건 내가 익숙하니까 괴수들의 시선은 내가 끌게. 민영이는 상대 할 수 있는 녀석들만 상대하고 경진이는 계속 후방 지원 해 줘.”
“응. 그럴게, 시현아.”
“알았어.”
시현의 지시를 받은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경진은 시현의 말을 깊이 새겨 들으며 대답했고, 민영은 짧지만 확실하게 대답하며 검을 뽑았다.
“그리고 만에 하나, 적이 예상보다 너무 강하다면 바로 후퇴할 거야. 틈은 내가 벌 테니까 두 사람은 재빨리 뒤로 빠져. 그리고 그 뒤 나도 뒤로 빠질 거니까.”
마지막으로 지시를 내린 시현은 허리춤을 더듬어 포션을 점검했다. 전투 중에 포션 꺼내기가 힘들면 곤란해지니 전투 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것이었다.
“후. 그러면 경진아, 부탁해.”
시현이 경진에게 부탁하자 경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지팡이를 이용해 마법을 사용하자 효과가 증폭된 마법이 발동했다.
거기에 더해 시현은 선천지기를 끌어올려 내공심법을 사용했다. 2급 무(無) 속성 내공심법이자 안정성에 특화를 둔 정명기공(淨明氣功)이었다.
정명기공을 통해 신체를 활성화 하자 깨끗하고 안정성 있는 힘이 몸을 가득 채웠다. 시현은 그 힘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손을 쥐었다 폈다. 몸에서 흘러넘치는 힘에 빠르게 적응했다.
몸에서 흘러넘치는 힘에 적응한 시현은 민영과 경진을 번갈아 봤다. 시현과 마찬가지로 경진의 버프를 받은 민영은 검을 몇 번 휘두르고 고개를 끄덕였고, 경진도 지팡이에 마력을 불어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준비가 됐다는 신호가 떨어지자 시현은 몸을 돌려 던전 방 안으로 뛰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민영과 경진도 사전에 지시 받은 대로 움직였다. 몇 년 동안 팀워크를 맞춰온 동료들에게 가자거나 따라오라는 소리는 필요 없었다.
시현과 민영은 재빠르게 던전 방 안으로 들어섰고 경진은 던전 방 입구에 서 자동으로 던전 문이 닫히는 걸 방지했다. 던전 공략에 사용되는 홀딩이란 테크닉이었다.
시현과 민영이 안으로 들어서자 던전 방 안 곳곳에서 공간이 일그러졌다. 일그러진 공간 너머에서는 검은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나타났다. 한 마리 한 마리가 귀기 잔뜩 머금은 흉흉함을 보였고 그 수는 정확히 20마리였다.
“먼저 간다! 안 걸린 놈들만 처치해!”
시현은 민영에게 소리친 뒤 달려 던전 방 내부 중심에 자리 잡았다. 재빠르게 자리 잡은 시현은 마나를 끌어올려 마나를 발동했다.
“타운트!”
적을 화나게 해 자신만을 공격 대상으로 삼게 만드는 마법이 던전 방을 휩쓸었다. 20마리 중 정확히 14마리가 시현에게 적의가 쏠렸다.
“카운트 14! 나머지 6마리는 둘이 좀 맡아!”
시현이 크게 외치자마자 경진이 마킹 마법을 이용했다. 1서클짜리 간단한 표시 마법이 타운트에 걸리지 않은 병사 여섯에게 걸렸다. 시현이 공격해야 할 것과 헷갈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배리어!”
후방 지원인 경진은 배리어를 여러 번 중첩 시켜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지원 마법을 캐스팅 했다.
“차핫!”
민영은 경진의 원호를 받으며 병사 여섯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걸 본 시현은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덤벼드는 적을 주시했다.
제일 먼저 덤벼든 건 전방에서 달려오는 병사였다. 병사는 손에 든 창으로 힘차게 시현을 찔렀다. 매서운 찌르기가 시현의 머리를 노리고 들어왔다.
“크윽!”
시현은 옆으로 몸을 비틀며 기울여 창을 피했다. 날카롭고 매서운 찌르기가 시현의 머리가 있던 곳을 쑤셨다. 그 창을 본 시현은 혀를 찼다.
흔히들 고수일수록 일합(一合)으로 상대의 실력을 파악 할 수 있다고 한다. 리스타트 플레이어의 보정이 있다지만 시현 또한 세계에서 손꼽히는 절대 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시현이었기에 이 일격이 얼마나 매서운 건지 알아냈다.
‘병사 한 마리가 하급 던전 보스보다 강하다는 게 말이 되냐!’
중급 던전이라서 쉽지 않을 건 예상했지만 하급 던전 보스보다 몇 배나 강하다는 건 문제가 심했다. 하지만 그 문제에 심도 깊은 고찰을 하자니 다른 병사들이 시현을 가만 두지 않았다.
왼쪽으로 몸을 기울였던 시현은 반대쪽으로 몸을 튕기듯 기울이고 이리저리 틀어 공격을 피했다. 거기에 보법까지 실어 좁은 공간을 유용하게 활용한 뒤 힘차게 뛰어 올랐다.
카가각!
시현이 있던 자리로 창이 여러 개 꽂혔다. 그 일격 일격이 하급 던전 보스의 공격보다 몇 배는 강했다. 의외의 전투력에 시현은 표정이 굳었다.
시현은 내공을 끌어올리며 공중에서 몸을 틀어 다리를 높이 들었다. 하늘 높이 든 다리에 내공이 쏠려 강력한 뇌전을 일으켰다. 시현의 18번 무공인 뇌화멸각이 발동했다.
콰아아아아앙!!!
뇌전을 머금은 일격을 힘차게 내리 꽂자 병사들이 충격에 휩쓸렸다. 하급 던전 보스도 일격에 소멸 시키던 강력한 번개가 병사들을 덮쳤다.
그러나 그 공격을 맞고도 죽은 병사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뇌화멸각에 휩쓸려 큰 데미지를 입었음에도 전투불능조차 된 병사도 한 마리도 없었다.
“이건 뭐, 해도 해도 너무하네!”
시현은 땅에 착지하며 주변을 경계했다. 중급 던전이 하급 던전보다 어려울 건 감안했다. 차원이 다른 난이도라 해서 주의도 기울였다. 하지만 일반 병이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시현도 예측하지 못 했다.
까강! 까앙!
“으윽!”
시현의 귀에 민영의 괴로워하는 민영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몸을 움직여 적의 공격을 피한 시현은 재빨리 민영을 살폈다.
민영에게 달려든 병사의 수는 총 넷. 민영은 보법 섞은 발놀림으로 유려하게 움직이며 검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날카롭게 벼린 검과 딱딱한 창이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를 울렸다.
지난 2년 간 수련을 통해 민영도 하급 던전 보스를 혼자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거기에 경진의 버프를 받은 지금 전력으로 내공을 운용하는 민영의 신체능력은 초인이라 해도 될 수준이었다.
그런 민영이 병사 4마리를 상대하면서 고전을 면치 못 하고 있었다. 그나마 나머지 둘도 경진이 마법을 통해 견제하고 있기에 붙지 못 한 것이지, 여섯을 동시에 상대했다면 큰일 날 게 자명했다.
그 모습을 본 시현은 이를 악물고 잔뜩 내공을 끌어올려 양손에 불어 넣었다. 그리고 양 주먹을 있는 힘껏 사방으로 휘둘렀다.
퍼버버버버벙!!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주먹이 병사들을 후려쳐 튕겨냈다. 일직선으로 나가기에 그 어떤 무공보다도 빠른 일선권이 괴수들을 덮쳤다.
“크에엑!”
“케엑!”
뇌화멸각에 휩쓸렸던 병사들은 공격을 버티지 못 하고 소멸했다. 그렇지만 뇌화멸각을 맞지 않은 괴수들은 공격에 튕겨져 나가 큰 데미지를 입었을 뿐, 전투에는 지장이 없었다.
“쯧!”
시현은 유감을 담아 힘차게 혀를 찼다. 혀를 차면서도 몸은 절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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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펑!
시현의 일격을 받은 병사가 먼지처럼 흩어졌다. 그 병사를 마지막으로 첫 전투가 끝이 났다.
“허억. 허억. 다, 다들 괜찮아?”
식은땀을 흘린 시현이 숨을 헐떡이며 동료들에게 물었다. 동료들은 대답조차 못 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벽에 기대 스르르 무너져 앉았다. 체력 넘치는 시현이 숨이 거칠어질 정도니 다른 이들이 대답도 못 하는 건 당연했다.
중급 던전 첫 번째 방, 그 전투는 격렬했다. 첫 웨이브를 쓰러뜨렸더니 다시 20마리가 튀어 나와 쉴 틈 없이 덤벼들고, 그걸 또 어떻게 쓰러뜨리니 또 튀어 나와 공격을 쇄도했다. 그 공격들은 말 그대로 숨 쉴 틈조차 없었다.
그렇게 해서 괴수 출현 웨이브가 일어난 건 총 3번. 즉, 한 방에서 괴수가 60마리나 등장했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한 마리 한 마리가 하급 던전 괴수의 2배 이상 강한 것들로.
제아무리 시현이라 해도 한 마리 한 마리가 그렇게 강한 것들이 쏟아져 나오면 버거웠다. 숨 쉴 틈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런 틈도 주지 않고 쏟아지니 시현의 선천지기가 먼저 소비 되었다. 오죽하면 시현의 어빌리티인 SP 회복이 따라오지 못 해 SP가 바닥이 날 뻔했다.
주변에는 소멸한 병사들이 떨어뜨린 물품들이 넘쳐 났다. 그렇지만 도저히 그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고, 조금만 쉬었다 가자. 죽겠다….”
시현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털푸덕 앉았다. 그나마 시현이었기에 끙끙거리는 소리라도 나왔지, 민영은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경진은 너무 많은 마력 사용에 극심한 현기증을 느끼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자신을 달래던 시현은 손을 뻗어 옆을 굴러다니는 보석을 하나 주웠다.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은 깨끗한 빨간색을 띄고 있었다.
“…일반 던전은 파란색, 하급 던전은 노란색, 중급 던전은 빨간색이냐.”
파란색 다음으로 노란색이 나왔을 때 짐작했어야 했다. 마정석의 색은 헌터에게 경고를 알리는 신호등이었다.
============================ 작품 후기 ============================
@어스트레이//우리는 경진이가 다이아몬드 수저임을 떠올려야 합니다. 그의 뒤에 누가 있는지를 떠올리면 성목이 얼마나 가치 없어지는 알 수 있습니다...!
성목은 벼락 맞은 대나무라거나, 세계수의 가지 같은 그런 종류입니다. 경진이의 지팡이는 그 중에서도 최상품 소재로 만들어진 것이지요. 이제 이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소피아는 수많은 비의를 알고 있는 고대의 마법사입니다. 그런 그녀라면 이런 아이템 하나 둘 있는 것도 어색하진 않죠.
2015년 12월 13일. 오타 수정. 아돌프 라헬 프리어스님께서 지적해 주신 타운트 14, 16 부분을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