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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eed!
보스 크리스탈을 제물 삼아 연 문, 그 너머에는 어두운 공간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시현은 침을 꼴딱 삼키고 중얼거렸다.
“나는 던전 문을 내리고 보스 방을 엿보았지만, 거기엔 오직 어둠뿐이었어….”
“넌 이 상황에서도 장난이 나와?”
“시, 시현이잖아. 민영아. 진정해.”
발끈한 민영을 경진이 말려줬다. 시현은 민영의 눈을 스리슬쩍 외면했다. 이번엔 시현이 혼날 타이밍인 걸 시현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장난치는 게 말이 될 리 없다.
하지만 이번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너스레를 떨지 않으면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버티기 힘들었다.
각오는 했지만 이번 건 생각보다 버거웠다. 보스 방문 앞에서 안을 엿보던 시현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이건 아무래도 안 되겠다. 생각보다 힘들 거 같아.”
민영과 경진은 놀라서 시현을 쳐다봤다. 양쪽에서 시선이 느껴졌지만 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실력 되는 사람을 좀 많이 모아오거나, 또는 장비를 철저하게 갖추고 오거나. 그래야겠어. 일단 이 자리에서는 후퇴를….”
후퇴를 하자고 말하려 했던 시현은 자신도 모르게 양손을 힘차게 옆으로 뻗었다. 시현의 양옆에 서 있던 두 사람은 갑작스럽게 시현에게 밀쳐져 뒤로 세게 튕겨졌다.
“꺄악!”
“어, 어?!”
갑작스런 행동에 민영과 경진이 양옆으로 밀렸다. 두 사람의 입에서 잔뜩 놀란 소리가 터져 나오고 쿠당탕 땅에 넘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시현은 거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을 쓰고 싶어도 그 신경 쓸 틈이 없었다.
“크윽!”
던전 방 안쪽에서 갑자기 뻗어 나온 뭔가가 시현의 목을 덮쳐들었다. 시현은 재빨리 왼손을 들어 그 이상한 걸 쳐내려 했지만, 그 뭔가는 그대로 시현의 왼손을 감아 버렸다.
시현이 뭔가 할 틈도 없이 그것이 시현을 잡아 당겼다. 시현은 억지로 보스 방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어억!”
“시현아!!”
애타게 시현을 부르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 왔다. 하지만 보스 방문이 솟구쳐 닫히자 외부의 소리는 완전히 차단되고 말았다.
강제로 던전 보스 방에 들어선 시현은 다리에 힘을 주며 끌어당기는 힘에 저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끌려가는 몸에 시현은 이를 악물었다.
“이, 빌어먹을! 이번 던전 테마는 남 질질 끌고 가기냐…!”
시현의 팔을 감은 건 날카로운 칼 조각들 여럿과 그 칼 조각들 사이를 잇는 기다란 채찍이었다. 사복검, 소드 휩이라 부르는 물건이 시현의 팔을 감고 있었다. 시현이 블랙 드래곤의 롱 코트를 입고 있지 않았다면 감기는 것만으로도 팔이 걸레짝이 됐을 것이다.
촤라락!!
“크윽!!”
소드 휩이 휘감은 시현의 왼팔을 훑으며 빠져 나갔다. 블랙 드래곤의 롱 코트가 그 한 번에 걸레짝이 되어 너덜너덜해졌다. 시현은 그걸 보자마자 침을 꿀꺽 삼켰다. 자칫 잘못 했으면 걸레짝은커녕 팔이 산산조각 날 뻔했다.
시현은 왼팔을 감싸듯 오른손으로 잡고 전방을 살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던전 보스 방이 다른 던전 방보다 큰 건 알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건 드넓은 황야였다. 과장 조금 보태서 학교 부지로 써도 될 법한 황야는 절대 방이라고 볼 수 없는 넓이를 과시하고 있었다. 시현은 한 순간 자신이 밖으로 나온 건가 착각까지 했다.
그러나 그게 착각이라고 알려주는 점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황야의 색이 생기를 잃어버린 보라색이라는 점, 다른 하나는 황야의 중심에 존재하는 기사였다.
시현의 팔을 걸레짝 내려 했던 소드 휩은 그 자의 옆에 둥실 떠 온전한 칼을 이루었다. 칼날들이 전부 모여 단단해진 소드 휩의 칼날이 소리 없이 기사의 발 근처 땅에 박혔다.
기사의 근처에 박힌 무기는 소드 휩만이 아니었다. 한손으로 쓸 수 있는 롱 소드와 한손과 양손 번갈아 쓸 바스타드 소드, 양손으로 휘두르면 무서울 투 핸디드 소드, 거기에 방금 박힌 소드 휩까지. 검만 해도 당장 4개가 땅에 꽂혀 있었다.
무기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긴 거리를 노릴 수 있는 롱 스피어에 가까이 오는 적을 분쇄하겠다는 기세가 잔뜩 담긴 커다란 배틀 액스, 마지막으로 들 수 있을지 의심되기까지 하는 할버드가 기사의 옆에 대기 하고 있었다. 무기의 수는 총 7개, 전부 새까만 색이라 실루엣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무기들을 거느리고 있는 기사는 3m 정도 되는 크기에 전신을 검은색 갑주로 감싸고 있었다. 풀 플레이트 아머라 부르는 것으로 무장하고 헬멧까지 철저하게 쓴 모습이 훌륭한 기사의 모습 그 자체였다. 생긴 것만 보면 말이다.
크기나 생긴 건 하급 던전 보스들보다 왜소했지만 뿜어내는 위압감은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격이 다르다는 말은 이런 때를 위해 존재하는 게 분명했다.
시현은 자신을 압박하는 위압감에 버티며 침을 삼켰다. 이 위압감은 상대가 절대 쉽지 않다고 노골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 적을 동료 없이 홀로, 심지어 퇴로까지 막힌 상태에서 싸워야 했다.
“와. 이거 오늘 무사히 돌아가진 못 하겠는데….”
무사히 못 돌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오늘 집에 못 갈 수도 있었다. 시현은 그 사실을 직감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전투를 직감한 것인지 기사의 주변에 꽂혀 있던 무기들이 둥실 허공으로 떠올랐다. 허공으로 떠오른 무기들은 그 자리에서 그림자 녹듯이 녹아내려 기사의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표현이 이상했지만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차앙!
모든 무기들을 빨아들인 그림자는 그 중에서 하나, 바스타드 소드를 뽑아 기사에게 건넸다. 그림자로 이루어진 바스타드 소드를 든 기사는 칼끝을 밑으로 내린 채 시현을 직시했다.
헬멧 안에서 기사의 안광(眼光)이 번뜩였다. 그것이 전투의 시작이었다.
퍼엉! 콰아앙!!!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시현도 인지하지 못 했다. 정신을 차리니 일어난 일은 자신이 땅바닥을 구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서 있던 자리가 협곡처럼 두쪽이 나 있다는 것이었다.
땅바닥을 구른 시현의 몸이 시현도 모르게 일어섰다. 그제야 시현의 머리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했다.
시현이 인지하지도 못 하는 사이 기사가 다가와 시현에게 검을 내리쳤고, 시현의 머리 대신 몸이 멋대로 움직여 몸을 옆으로 날렸다. 그 덕분에 기사의 일격을 피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미친!”
만일 멋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시현은 일격에 죽었을 터. 그걸 깨달은 시현은 재빨리 자세를 잡으며 기사와 마주했다.
그 직후 기사의 검이 시현의 머리를 노렸다. 수평으로 날아오는 검이 시현을 노렸다.
부웅! 콰앙!!
“으허억!!”
재빠르게 철판교의 수법으로 몸을 눕힌 시현이지만 몸이 뒤로 날아갔다. 수평으로 휘두른 검의 풍압이 시현을 날려버린 것이다.
하늘 높이 부웅 떴던 시현이 재빠르게 착지했다. 그 틈을 파고들고 암흑기사가 시현에게 쇄도했다.
콰앙! 쾅! 콰쾅!!
시현이 몸을 비틀고 날릴 때마다 암흑기사의 바스타드 소드가 시현을 노렸다.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황야 땅이 갈라지고 폭탄 터지듯 주변을 헤집었다.
“크으! 빌어먹을!!”
도망치던 시현은 선천지기를 이끌어 내며 신체를 가득 채웠다. 한가득 채워진 선천지기가 시현의 유도를 따라 움직였다.
도망치기만 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각오한 시현은 도망치기만 하던 몸을 돌려 암흑기사를 마주봤다. 그와 동시에 암흑기사가 시현의 앞에 나타났다. 순간이동을 방불케 하는 초고속 이동이었다.
시현은 이를 까득 깨물고 주먹을 앞으로 내질렀다. 시현이 가진 무공 중 제일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일선권이 암흑기사를 노렸다.
쾅! 콰콰쾅!!
일선권과 바스타드 소드가 자웅을 겨루기 시작했다. 두 존재는 한 발자국도 물러날 수 없다는 기세로 공격을 겨뤘다.
주먹과 바스타드 소드가 빠른 속도로 부딪치고 튕겨졌다. 얼핏 보기엔 주먹인 시현이 유리하다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당사자인 시현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시현이 내지르고 있는 일선권은 양손 전부, 그것도 내공을 가득 채워서 있는 힘껏 휘두르고 있었다. 반면 암흑기사는 바스타드 소드 하나로 시현의 공격을 전부 쳐내고 있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단 하나. 시현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는 사실이었다.
콰앙!!
굉음이 터지며 시현의 양손이 뒤로 튕겨졌다. 수평으로 휘두른 암흑기사의 바스타드 소드가 시현의 주먹을 튕겨내 버렸다.
수평으로 휘두른 일격에 시현의 가드가 비어 버렸고 암흑기사는 검을 높이 치켜 들었다. 그걸 본 시현의 얼굴색이 새파래졌다.
“망할…!”
콰아아앙!!!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참격에 황야가 절단 났다. 단순한 일격, 그것도 검 한 자루로 지형이 바뀐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나 버렸다. 가까스로 참격을 피한 시현은 이를 악물며 몸을 떨었다.
“빌어… 먹을…!”
검이 머리 위에서 떨어지기 전 시현은 재빨리 몸을 날려 참격을 피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면 시체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도 본능이 시현을 살렸다.
그러나 이번엔 본능이 늦고 말았다. 시현은 자신의 왼팔 팔뚝을 잡으며 이를 악물었다. 그 밑으로 있어야 할 팔꿈치부터 손가락까지, 있어야 할 팔이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왼팔이 잘린 고통이 시현의 몸을 쑤셨다. 시현은 이를 깨물고 그 고통을 버텨냈다. 회귀한 이후 제대로 크게 다친 고통이 시현의 몸을 들쑤셨다.
그 고통에 당장이라도 기절할 거 같았지만 기절했다간 인생이 사라진다. 시현은 숨을 고르며 고통을 진정 시켰다. 그리고 재빠르게 왼팔의 혈도를 짚어 응급처치를 했다.
왼팔에서 쏟아지던 피가 멎자 시현은 고개를 들었다. 시현이 고개를 든 곳에는 바스타드 소드를 든 채 시현을 주시하는 암흑기사가 있었다. 암흑기사에게서는 여전히 압도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존재감이 뿜어지고 있었다.
그 존재감을 느낀 시현은 침을 꼴딱 삼켜 아찔한 정신을 추슬렀다.
“빌어 처먹을…. 이러다 진짜 오늘 죽는 거 아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암흑기사가 시현에게 덤벼 들었다. 죽음이 시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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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의 시야 구석에서 메신저 마크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바깥과 대화가 차단 됐으니 어떻게든 말을 걸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시현으로서도 제법 놀라운 발상이었다.
그러나 그런 발상에 놀랄 틈따위 전혀 없었다. 시현은 이를 악물고 몸을 날려 뒤로 백텀블링을 했다.
부웅, 촤라락!
백텀블링 하기 무섭게 시현의 발이 있던 곳을 소드 휩이 스쳐 지나갔다. 1초라도 늦었다면 시현의 발목 밑은 두 번 다시 못 볼 뻔했다.
백텀블링을 한 시현은 고양이처럼 사뿐히 착지하며 뒤로 뛰었다. 있는 힘껏 뛴 시현을 따라 할버드의 도끼 날이 시현을 노리고 들어왔다.
콰쾅! 쾅!
암흑기사는 왼손에 소드 휩, 오른손에 할버드를 들고 시현을 공격했다. 어떤 때는 다른 무기를 들고 시현을 공격했고 시현이 겨우겨우 품으로 파고 들면 롱 소드를 뽑아 단거리에서 공격했다. 그렇다고 거리를 벌리면 이렇게 소드 휩과 할버드로 무섭게 압박을 가해왔다.
암흑기사는 단거리부터 중장거리까지 전부 커버하며 시현을 공격했다. 스펙이 딸리는 것도 억울한데 이렇게까지 압박을 가해대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현이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오감의 극대화로 빚어낸 어빌리티, 심안 덕분이었다.
암흑기사의 몸이 반투명하게 흔들렸다. 그 반투명한 몸은 느릿하게 움직이는 시현보다 월등히 빨랐다. 시현은 어떻게든 몸을 비틀었다.
콰앙!!
============================ 작품 후기 ============================
테크노//오늘도 재미있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MokuMoku//시현! 보스한테 잡힌다!(...)
@Mable Fantasm//예상대로이십니다. 클리어 한 뒤 상황은 그 뒤에 봐야지요.
드디어 보스전입니다. 그런데 저는 슬럼프에 걸렸습니다. 이러다 이도저도 안 될까 걱정입니다. 미치겠습니다.-_-;
앞으로는 @마크 없이 선착순 10분까지는 전부 댓글을 달아보려 합니다. 그만큼 댓글이 많이 달리냐가 문제지만...
2015년 12월 16일. 오타 수정. 칼파님이 지적해 주신 이름 오타 부분을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