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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의 흔한 초등학생 보호자.
“그러면 좋은 얘기 해 주신 김문혁 헌터님을 위해 박수.”
아이들의 작은 박수 소리가 반을 채웠다.
교탁에 섰던 김문혁은 교실 뒤편에 마련된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김문혁이 물러나자 교사가 교탁 앞에 섰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중요하고 아니고 차이는 있는 거야. 헌터님 같은 분이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는 없었을 걸. 그렇지?”
이곳저곳에서 네~ 하는 앳된 소리들이 들렸다. 김문혁은 교사의 말을 들으며 내심 흡족해했다. 역시 배운 사람은 말도 고급스럽게 잘 한다.
입 발린 소리라는 걸 모를 김문혁이 아니었지만 입 발린 소리라고 해서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었다. 애초에 자신은 이런 대접을 받아 마땅한 B등급 헌터였다.
지난 연말에 B등급 헌터가 된 그는 몇 달 전에 겨우겨우 서던 크로스 길드 말석에 이름을 올렸다. 비록 제일 끝자락이라곤 하나 한국에서 몇 없는 옐로우 던전 공략 길드에 소속됐다는 건 그의 출세가 보장 되었다는 증거와 다를 바 없었다.
출세가도를 달리는 엘리트로서 어린애 뒷바라지 하러 온 건 짜증났지만 이 뒤에 받을 보수를 생각하면 참을 만했다.
“하지만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법이야. 그러니까 이번에 들어오는 사람 직업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직업이어도 너무 실망하거나 그러지 말고. 알았지?”
교사의 물음에 다시금 대답하는 앳된 소리들이 들렸다. 김문혁은 정말 애들답게 대답 하나는 참 잘한다고 생각했다.
‘하. 지루한데 얼른 끝냈으면 싶군.’
그런 생각을 하던 중 교사의 말을 들은 청년이 안으로 들어왔다.
상념에 빠져있던 김문혁은 청년이 묘하게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김문혁도 교사처럼 청년을 어디선가 본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청년이 안경을 벗고 들어오자 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그건 교사도 마찬가지인지 교실 한쪽에 비켜 서 있다가 청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안개 낀 것 같은 느낌에 눈살을 찌푸렸다.
“어, 어어! 헌터 형이다!!”
그 안개가 한 남자아이가 외치는 것과 동시에 확 사라졌다. 김문혁과 교사는 눈을 부릅떴다.
“오. 애들도 날 알아보네. 내가 그렇게 유명했던가.”
청년은 가볍게 감탄한 듯, 반은 신기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얼거렸다. 김문혁과 교사는 그제야 청년을 어디서 봤는지 겨우 떠올려내고 경악했다.
‘어, 어어…! 어, 어떻게…!!’
김문혁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충격에 땀을 흘렸고 교사는 건강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두 사람은 교탁 앞에 선 청년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청년은 새하얀 분필을 쥐고는 칠판에 크게 이름을 적었다.
강 시 현
이름 석 자를 적은 청년이 교탁을 양손으로 짚으며 웃었다.
“3학년 2반 어린이 여러분, 만나서 반가워요. 별로 안 중요한 직업 하고 있는 못 배운 사람 강시현이에요.”
시현의 소개가 끝난 순간 반에 함성이 터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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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우와아! 우와아아아아!! 싸울아비 형이다!!”
“나 인터넷에서 봤어! 진짜 싸울아비 형이야!”
“와!! 완전 대박!!!”
반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게 어린애들이 낸 목소리라는 걸 감안하면 얼마나 열광하는지를 싫어도 알 수 있었다.
그 함성에 이끌려 다른 반 교사들이 다가왔다 놀랐다. 좀 조용히 해 달라고 말하려고 왔더니 세계 최고의 헌터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장이 떨어져 나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교사가 통제하지 못 하니 다른 반에 있던 아이들도 3학년 2반으로 쏠렸고 반 밖 복도는 어린애들로 잔뜩 차 바글바글해졌다.
“뭐, 뭐야. 이거 왜 이래?”
그걸 본 시현은 당황하며 눈을 깜빡거렸다.
“오빠! 오빠! 민영이 언니는요? 검희 언니는 안 왔어요?”
“어, 어? 아, 민영이? 오늘은 같이 안 왔는데….”
“나 아영이 언니! 언니처럼 예쁘게 힐 하고 싶어~!”
“준 형!! 로봇!! 로봇이 짱이야!!”
“경진이 형 완전 멋져요! 진심 짱이야!”
“조, 조용! 조용히! 얘들아, 조용!!”
구석에 있던 교사가 당황해서 수습하려 했지만 수습이 되질 않았다. 오히려 교실 밖 복도에 아이들이 더더욱 몰려오고 있었다. 이러다가 학교 전체가 들썩이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시현은 뒤집어진 교실을 보며 당황했다. 차라리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이 이러면 이렇게까지 당황스럽지는 않았을 텐데 애들이 이러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시현이 자신의 위치, 그리고 아이들의 습성을 몰라서 벌어진 일이었다.
아직 성숙하지 않은 어린아이들은 순수하게 강함을 동경한다. 그래서 변신하는 히어로나 마법소녀를 좋아하고 자기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시현은 그걸 직접 체현해 낸 사람이었다. 시현이 괴수와 싸우는 모습은 절대 만화나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어린아이들이 동경하는 영웅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그런 시현이 어린아이에게 인기가 없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어린아이들, 주로 남자아이들은 모두가 시현을 동경하고 있었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선 강시현 놀이가 유행이었고 시현 역할은 최고의 인기를 누릴 정도였으니 두 말 할 필요도 없었다.
“허억! 헌터님! 어찌 이런 곳에 헌터님께서 오셨습니까!!”
그걸 모르는 시현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하고 놀라다가 반으로 들어온 남자를 봤다.
“아, 음. 누구시죠?”
“으흠, 흠! 저는 이 학교의 교장을 맡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의 인파를 헤치고 반으로 들어온 건 이 학교 교장이었다. 교장은 잔뜩 놀란 마음을 겨우겨우 달랬다.
교사 중 한 명이 시현이 학교에 찾아왔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게, 세계 최고의 헌터가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기어 오겠는가. 이건 교사들이 자기를 놀리기 위해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했던 교장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교장은 떨어지려는 심장을 겨우겨우 추슬렀다.
“아아. 안녕하세요. 예. 강시현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곳에…?”
“아. 그게 말입니다. 민건아, 이리 와!”
시현이 말이 끝나자 자리에 앉아있던 민건이 쪼르르 시현에게 뛰어왔다. 그걸 본 아이들은 부러움이 잔뜩 담긴 시선을 민건에게 던졌다.
“다른 게 아니라 얘가 사촌 동생인데 엊그제 나쁜 일을 겪었다고 하더라고요. 분명 싸운 건 같이 싸웠는데 얘만 잔뜩 혼났다고 하던데요.”
시현은 자기 옆에 찰싹 붙은 민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교장의 시선이 담임교사에게 돌아갔다. 교사는 눈을 부릅뜬 교장과 시선이 마주치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우리 애는 분명 옳은 말 했는데 선생이라는 사람이 칭찬은 못 해 줄 망정 애가 집에 가서 울 정도로 혼을 냈다지 뭡니까. 선생이라는 사람이 그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시정은 알아서들 하시고. 애들 보기 안 좋으니까 다른 곳 가서 얘기 하시는 건 어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물론 그래야지요! 이 교사, 잠깐 나 좀 봅시다!”
교장이 고개를 숙일 때마다 교사의 위가 꽈악 조여졌다. 그 정점은 자기를 부르는 교장의 성난 목소리였다.
교장과 교사 두 사람이 그대로 밖으로 나섰다. 시현은 민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저 정도 했으면 잘 하겠지. 앞으로 너한테 해코지 안 할 거야.”
“저, 정말? 근데 형 간 뒤에 그러면 어떡해?”
“걱정 마라. 형이 누구냐. 다 잘 말해줄 테니 걱정하지 마.”
물론 잘 말할 것이다. 그것도 교육청에 직접 말이다.
애 앞에서 할 말이 아니라 말하진 않았지만 시현은 저런 인간을 교사로 둘 생각은 없었다. 백 보 양보해서 건드리지 않는다고 해도 저 인간이 자기 동생을 가르치게 둘 수는 없었다. 두기도 싫었다.
“자. 어린이 여러분, 선생님은 나갔지만 수업은 계속 해야지? 대신 선생님이 없으니까 형아가 재미있는 수업 하나 해 줄게.”
“와아아아아!”
시현이 한 마디 꺼내면 아이들은 좋다고 환호했다. 아이들은 교실 밖으로 나간 교사보다 눈앞에 있는 영웅에게 푹 빠져 교사를 싹 잊어버렸다.
교실과 복도는 시현으로 인한 열기로 가득 찼다. 하지만 단 한 명만큼은 그 열기를 받지 못 했다.
‘씨발! 씨발!! 왜 싸울아비가 여기 있는 거야!’
김문혁은 속으로 욕을 지껄이며 교실 뒤편에 서 있었다. 서 있었다기보다는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다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이었다. 몸은 이미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었고 발은 땅에 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사람이 압도적인 공포를 맛보면 도망칠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김문혁이 딱 그 꼴이었다.
“이야. 아까 얘기 잘 들었습니다. 훌륭한 강의하시던데요. 아니, 애들이니까 훌륭한 수업.”
“아, 아닙니다! 전혀 그런 게 아니라, 그게!”
“에이. 빼실 필요 없어요. 이제 결혼도 하시는 분이. 저는 준비도 못 했고 못 배운 놈이라 아직 결혼은 못 하겠네요.”
시현이 말을 꺼낼 때마다 김문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새하얗게 질릴 수가 없자 얼굴이 푸르죽죽 죽어갈 지경이었다.
만일 김문혁이 시현을 얕잡아 본 걸로 끝냈다면 짧게 끝내줄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김문혁은 소중한 가족을 건드렸다.
시현은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어도 가족을 건드리는 것만은 절대 참지 않았다.
“아아. 참. 아까 수업하실 때 말씀하신 거 들어보니 이름 있는 길드에 들어 계시더라고요. 서던 크로스, 유명한 길드였지.”
그래서 시현은 김문혁의 어깨에 손을 얹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지금 당장 너네 길드 네 위부터 내 아래까지 다 모이라고 해. 한 놈이라도 빠졌다간 헌터 생활 하기 힘들 거라고 꼭 전해라.”
남들에게 들리지 않게 속삭인 시현은 김문혁의 어깨를 살짝 힘 주어 꽉 쥐었다. 김문혁의 표정이 새파랗게 죽어나갔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를 압박 가하는 데 이보다 더한 방법은 없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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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소식입니다. 서울 성북구 한 초등학교에 세계 최고의 헌터 강시현 헌터가 나타났습니다. 강시현 헌터는 적극적인 협조를 해 준 서던 크로스 길드원들과 헌터 체험 교실을 열어 화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 헌터 협회는 이건 강시현 헌터의 돌발적인 행동이며 헌터 협회와는 관계가 없다며….”
“끅…! 끄흑흑!!”
방송을 듣는 준은 땅바닥을 구르며 울고 있었다. 너무 웃다 보니 배가 아파 숨을 못 쉬어 죽으려는 고통에 발버둥치는 것이었다. 간간이 아영이 힐을 걸어주지 않았다면 정말로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 어어…. 화려하게 했네. 아하하.”
경진은 애써 웃으며 시현을 외면했다. 시현은 새빨개진 얼굴을 양손으로 감췄다.
“괘, 괜찮아! 시현아! 사람이 그럴 수도 있는 거잖니, 응?”
“…그래.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마.”
아영과 민영은 진땀을 흘리며 시현을 달랬지만 두 사람도 알게 모르게 시현을 외면하고 있었다.
“푸흐, 흐하학! 가서 슥 하고 온대! 가볍대! 가볍네, 그래! 푸하하학!!!”
“크아악! 안 닥치냐!”
“아이고 나 죽네에! 아니, 진짜 죽, 푸하하, 끅흑흑!!!”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세상 떠나게 해 주고 싶지만 저지른 일이 있는지라 그럴 수도 없었다. 시현은 얼굴이 잔뜩 빨개져 수치심을 감내했다.
“어쨌든! 그러면 이제 그 뒤는 어떻게 된 건데?”
“아, 어. 그 교사는 교육부에 찔러서 털게 했지. 알고 보니 촌지만이 아니라 굉장한 짓도 수두룩하게 한 모양이더라고. 앞으로 교사 생활은 못 할 거라고 봐도 될 걸.”
“그건 다행이네. 그런 사람이 공직자라니. 그런 건 말도 안 되니까. 그러면 그 헌터는?”
“…엉? 그 헌터가 왜?”
시현은 고개를 돌려 민영과 아영을 쳐다봤다. 질문이 질문으로 되돌아오자 오히려 두 사람이 당황했다.
“왜, 왜라니? 그 헌터한테는 아무 것도 안 한 거니?”
“어. 안 했는데? 이제 자기 길드에서 알아서 친히 조져줄 텐데 내가 신경 쓸 게 뭐 있다고.”
그 뒤로 김문혁이 헌터를 그만 두든, 아니면 눈칫밥 먹으며 살든 시현이 알 바 아니었다. 헌터를 그만 두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클 테고 헌터를 계속 하더라도 소문이 쫙 퍼진 이상 살기 힘들 거고 어느 쪽이든 고통스러울 터였다.
솔직히 그보다는 이제 알 바 아니라는 게 더 정확한 말이리라. 시현에게 있어 김문혁은 그 정도인 사람이었다.
동생을 괴롭히던 교사는 잘렸고 헌터는 앞으로 평생 고생할 거다. 그리고 동생은 시현 덕분에 인기인이 되었으니 이 정도면 잘 해결된 것 아닌가.
“제 버릇 개 주냐! 푸흐하하학!!”
단지 저기서 웃느라 죽어가는 준만 빼면 말이다.
후일 준은 이 일을 가지고 며칠이나 우려먹다가 정말로 세상을 하직할 뻔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는 아직 그걸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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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털 빠지게 고민했는데 역시 남자 갈구는 것 중에 이거만큼 굉장한 게 없더라고요. 남자라면 모두가 이 공포를 알아주겠지...
그리고 5월 20일 끝자락을 남겨두고 리스타트 라이프가 정말로 조회수 500만을 달성했습니다. 많은 관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