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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46화 (47/224)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46화

[공주님들, 다음번엔 서울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닷새간의 강행군이 우휘겸의 멘트와 함께 막을 내렸다.

날을 거듭할수록 점점 더 능숙하게 MC 역할을 소화해 낸 예찬은 오늘도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제작진들에게 둘러싸여 한참 동안 칭찬 감옥에 갇혀 있었다.

간신히 풀려나온 예찬이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조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가자 때마침 남지유가 주먹을 불끈 쥐고 외치고 있었다.

“크으! 콘서트 딱 하루만 더 했으면 좋았을 텐데!”

“지유 형 진심이에여? 전 지금 죽을 거 같은데여…….”

셋째 날 콘서트가 끝난 직후부터 체력이 다 떨어졌다며 죽는 소리를 하던 기태랑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남지유를 바라보았다.

남지유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루만 더 하면 나도 엔딩 멘트 할 수 있을 거 아니야~ 하, 힘들어도 멘트만 할 수 있다면 며칠 더 가능한데! 휘겸이 부럽다!”

“아니, 이왕 늘릴 거면 화끈하게 34일까지 늘려야죠! 저도 엔딩 멘트 해 보게요! 한 달 넘게 콘서트 가 보자!”

“34일이 뭐가 화끈해여! 진짜 화끈하려면 꼴찌인 나까지 오게 더 늘려야져!”

의자에 반쯤 늘어져 있던 기태랑도 순식간에 쌩쌩해졌다.

“다들 멘트 생각해 둔 거 있어? 다섯 명 다 공주님을 넣은 거 보니 그거는 필수로 들어가야 하는 건가?”

“아니, 난 그냥 앞에 셋이 다 쓰길래 따라 쓴 건데.”

어느새 연습생들 무리에 합류한 선우이경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전날 요망한 반존대의 옳은 예로 SNS를 끓어오르게 만든 남자의 등장에 연습생들이 흥분했다.

“엔딩 멘트 해 보니 어때여? 완전 기분 좋져?”

선우이경은 대답 대신 엄지를 들어 올렸다.

“부러워!”

“여러분! 이제 차로 이동하겠습니다! 놓고 가는 물건 없는지 확인해 주세요!”

그사이 관객들이 전부 퇴장을 마쳤는지 제작진이 연습생들을 모았다.

예찬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 사람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게끔 주위가 휑했다.

묘한 기분을 느끼며 예찬은 지난 며칠간 신세를 진 버스에 몸을 실었다.

“와,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가는 것도 일이겠다.”

“전 글피에 2차 순위 발표식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요.”

“시간 진짜 빠르다.”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버스 안에서도 잠시 수다가 이어졌지만 점차 체력의 한계가 찾아왔는지 자연스레 조용해졌다.

잠이 든 연습생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예찬도 눈을 감았다.

*   *   *

이번주 츄마프 본방송은 드물게도 예찬 혼자 집에서 보게 되었다.

닷새간 이어진 게릴라 콘서트 홍보와 무대 때문에 예찬을 포함해 항상 모이던 연습생들 모두 체력이 고갈된 것이 그 이유였다.

정말 오랜만에 쉬는 날 연습을 하지 않고 제대로 쉰 예찬은 맑은 정신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슬슬 이 TV도 없는 부실한 집과 안녕을 고하고 싶었으나, 데뷔를 하게 되면 어차피 숙소에 살 거라 새로운 집을 구하기도 애매했다.

‘돈도 없고, 가족도 없고, 지인도 없는 거 같고…… 진짜 뭐 하는 몸이지?’

이 이상한 리셋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행정 복지 센터에 방문해 ‘지금 몸’에 대해 여러모로 알아보았다.

주민 등록 등본과 가족 관계 증명서를 확인해 본 결과, ‘지금 몸’의 부모님 이름은 원래 예찬의 부모님과 같았고 사망한 시기는 달라져 있었다.

‘원래 중학생 때 돌아가셨는데, 이쪽에선 유치원 때로 되어 있단 말이지. 덕분이라고 말하긴 뭐하지만…… 전시 근로역으로 빠질 수 있게 된 건 솔직히 고맙군.’

부모님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은 크게 없었기에 별생각은 들지 않았다.

리셋을 반복한 예찬은 이미 두 분이 돌아가시고 수십 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실종 상태로 나오는 ‘형’의 존재였다.

‘지금 몸’에 들어오기 전 예찬은 외동이었다.

그래서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모르겠는 형의 존재가 영 낯설었다.

예찬은 ‘하하경’이라 적혀 있던 얼굴도 모르는 호적상 형을 잠시 상상해 보았다.

‘다시 생각해도 학교에서 놀림 좀 받았을 것 같은 이름이군. 아니, 이름만 보면 괜찮긴 한데 성이랑 붙으니까 미묘하달까.’

예찬은 영양가 없는 생각을 접고 N-net 스트리밍 채널에 접속했다.

지금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형 따위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형이란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와 인생에 딴지를 걸어온다면 그때 상대해 줘도 충분했다.

츄마프 7화는 지난주에 이어 연습생들의 연습 과정을 보여 주는 걸로 시작했다.

예찬은 시작부터 폭풍처럼 몰아치는 전개에 조금 놀랐다.

‘아니, 카메라가 도는 데 왜 싸우지? 또라인가?’

파트 분배부터 연습생들이 살벌하게 싸우는 것도 어이없었지만 그렇게 한 조 한 조 폭탄이 터지는 걸 멋들어지게 편집해 보여 주는 방식이 실로 기가 막혔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또다시 같은 조가 된 김수영과 김주영의 ‘소녀의 기도’ 1조였다.

중간 점검까지 하하 호호 즐기던 분위기는 원곡 가수인 스트로베리럽의 메인 보컬에게 혹평을 들은 이후 반전되었다.

연습실로 돌아온 소녀의 기도 1조는 서로 남 탓을 하느라 바빠졌다.

[그러니까 내가 원키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도전은 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야, 김수영. 네가 못 부르니까 바꾼 거거든? 삑사리 나는 것보다는 낫겠지 했는데 그것도 아니네.]

[다들 그만 해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지적받은 부분들 하나씩 고치면 되잖아요. 수영이도 화 풀고, 응?]

‘얘네 화끈하네.’

앞선 조들도 말다툼이나 기 싸움을 하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막말을 주고받는 건 또 처음이었다.

김주영의 중재로 팀원들이 흩어지는 장면을 보여 준 직후, 화면이 복도 끝에 있는 연습생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멀리서 찍은 영상을 확대했는지 누가 누군지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흐릿한 화면이었다.

‘정면은 김수영이고 뒷모습은 누구지? 같은 1조인 것 같은데.’

[아 진짜 짜증 나.]

[네가 풀어. 저 형 저러는 거 하루 이틀이냐.]

‘목소리를 들으니 맞군.’

무슨 소리를 하려나 흥미진진하게 시청하는 예찬의 귀로 짜증스러운 김수영의 목소리가 박혔다.

[아니, 그거 말고. 김주영.]

와.

화끈한 반말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주영이 형? 주영이 형이 왜?]

[아니, 저번이랑 이번에 같은 조 했다고 자꾸 친한 척하잖아.]

[와, 김수영 인성 실화야? 주영이 형은 너 되게 좋아하던데? 너네 김+영 브라더스잖아.]

[그게 제일 짜증 나. 왜 나랑 이름은 비슷해서 엮이고 지X이야.]

비속어는 ‘삐’하고 전자음 처리되었으나 전후를 들어 보면 김수영이 뭐라고 했을지 뻔했다.

[노래도 개 못하고 춤도 못 추는데 세트로 묶이는 거 존X 끔찍해.]

[아, 웃느라 배 아파 죽겠네. 야, 그래도 주영이 형 사람은 착하잖아.]

[착하긴 개뿔. 야, 아이돌은 잘하는 게 착한 거야.]

영상은 이 직후 다른 조로 바뀌었다.

갈등이 어떻게 해소되는지 따위는 다루지 않았다는 말이다.

뭘 어떻게 한다고 해서 이게 해결될 수 있을 거 같진 않지만.

예찬은 제작진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이걸 이렇게 내보내다니 진짜 미쳤군.’

여러모로 논란이 될 내용이었는데 이미 방송이 상승세를 탔으니 위에서 깨지는 건 무시하고 좀 더 크게 이슈를 만들기로 노선을 정한 모양이었다.

영상의 화질이나 각도로 봐서 김수영은 저 장면이 찍혔을 거라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지금 본 방송을 본 김수영이 기절했대도 하등 이상할 게 없었다.

그 후로 나온 강해솔 조의 완성도와 안정성을 둔 갈등이나 같은 팀 조원들의 범세혁 견제 같은 사소한 이야기들은 예찬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김수영 게 진짜 셌다.’

마음 같아선 당장 인터넷에 들어가 반응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아직 방송이 한창이었기에 예찬은 근질거리는 손을 달랬다.

잠시 광고 방송이 나온 후 경연 무대가 시작됐다.

‘참을 만한 가치가 있었네.’

경연과 콘서트를 하면서 이미 봤었던 무대지만, 방송으로 보는 것은 또 달랐다.

어느새 김수영에 관한 생각을 저 멀리 날려 버린 예찬은 무대를 꼼꼼하게 살피며 연습생들을 분석했다.

‘확실히 상위권 놈들은 연습생 수준이 아니군.’

범세혁 조의 무대를 마지막으로 경연이 끝나고 이어서 득표수 발표까지 일사천리로 방영한 뒤 츄마프 7화가 끝났다.

예찬은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우선 츄위터에 접속했다.

막 결과 발표가 난 뒤여서 득표수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좀 뒤로 가 볼까.’

스크롤을 내리자 무대들을 앓는 글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예찬은 마음이 급한 와중에도 자신의 조에 대한 피드백은 빼놓지 않고 꼼꼼히 훑으며 좀 더 스크롤을 내렸다.

‘이제 시작이군.’

드디어 예의 ‘김+영 브라더스’에 대한 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이 여러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으나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은 전부 같았다.

- 김수영 미쳤냐? 하차해.

마침 정확히 핵심을 짚은 짧고 굵은 글이 눈에 띄었다.

인기 해시태그에도 ‘#김수영하차해’, ‘#김수영은나가는게착한거야’라는 글자들이 강렬하게 박혀 있었다.

누구 팬이라 지칭할 것 없이 모두 입을 모아 김수영 아웃을 외치는 분위기였다.

어느 정도 SNS를 확인한 예찬은 이번엔 익명 커뮤니티 창을 열었다.

게시판에 들어가자마자 SNS와는 비교할 수 없는 날것의 반응들이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SNS는 점잖다 못해 상냥한 수준이네.’

언제 봐도 참신하고 다채로운 욕이 게시판에 한가득이었다.

김수영의 이전 조였던 보컬 5조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 김수영 인성 나왔죠ㅋㅋ X바 우리 갓주영 불쌍해서 어떡하냐 저 뚝딱이랑 울 주긩 같은 조돼서 고생만 하누ㅠㅠ 애미가슴 찢어진다

└ 아니 님 김쉉 인성 터진 거랑 별개로 솔직히 뚝딱거리는 건 김줭이 원탑 아닌가?ㅋㅋ

└ 님 눈치 없다는 말 많이 듣죠?

- 지우개조 내 최애 무대였는데 누구 덕분에 재탕 못 하게 됨ㅆㅂ

- 수영이가 주영이 대신 군머가자^^

- 김수영 인성ㅋㅋㅋㅋㅋ 저거 주긩이한테 접근금지명령 내려야됨 수영앰 또 어디서 몰려왔네

‘김수영은 하차하겠군.’

이 분위기에서 버틸 수 있을 만큼 배짱 있어 보이지도 않았지만, 만약 버틴다고 하더라도 비전이 없었다.

데뷔하려고 참가한 프로그램인데 여기서 데뷔하긴 이미 틀렸고 남아서 비비적대 봐야 욕만 더 얻어먹을 뿐이었다.

활동이 활발한 사이트 위주로 반응을 살피다 보니 평소에 자는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내일…… 이 아니라 자정이 지났으니 오늘이지. 아무튼 점심 먹고 심상록네 회사로 가야 하니 슬슬 자야겠군.’

어쩌다 보니 연습 중독자들만 모인 건지, 아니면 서로를 보고 자극이라도 받은 건지, 게릴라 콘서트가 끝났지만 연습생들은 GE 건물에 모여 함께 연습하기로 자연스럽게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2차 순위 발표식에 4차 합숙 시작인가…… 응?’

기지개를 켠 예찬이 막 스마트폰 화면을 끄려는 순간, 터무니없는 제목의 글이 눈에 띄었다.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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