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81화 (82/224)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8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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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1조와 2조의 공통 곡, ‘I‘m your prince’를 만나 보았는데요! 공주님들의 왕자가 되고 싶은 후보생들의 마음만큼은 양쪽 다 우열을 가릴 수 없게 치열한 것 같습니다!]

MC가 시간을 끄는 사이 내려갔던 1조 연습생들도 다시 무대로 올라왔다.

연습생들은 이어질 번호 안내를 위해 지난 3차 순발식 순위 순서에 맞춰 왼쪽부터 차례대로 줄을 섰다.

뜨거운 무대 조명 때문인지 이마에 배어 나온 땀을 향해 손부채질 하고 있자 불쑥 티슈가 내밀어졌다.

익숙한 손으로부터 티슈를 건네받은 예찬이 가볍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고마워.”

“뭘. 무대 잘 봤어.”

티슈를 건네준 범세혁이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예찬은 받은 티슈의 반을 옆에 선 강해솔의 손에 대충 쥐여 주고 나머지 반으로 조심스럽게 자기 이마를 두들겼다.

투표 방법까지 설명을 마친 MC가 연습생들을 향해 다가왔다.

[자, 그럼 이 마지막 경연까지 남은 자랑스러운 왕자 후보생들입니다. 범세혁 후보생을 지지하는 공주님들은 #0099로 1번 또는 범세혁을!]

MC의 말에 맞춰 범세혁은 검지로 1을 만들어 볼을 콕 찔렀다.

이번에도 객석에서 큰 함성이 쏟아졌다.

[하예찬 후보생을 지지하는 공주님들은 2번 또는 하예찬을!]

카메라가 자신에게 넘어온 것을 확인한 예찬은 트렌드에 맞춰 브이 자를 만든 손가락 중 하나를 머리 위에 붙여 체리 꼭지처럼 만들었다.

예찬의 잔망을 본 팬들은 기대에 부응하듯 이번에도 큰 호응을 보냈다.

“하예찬 결혼하자!”

“예찬아아아악!”

이어 나머지 열여섯 명의 연습생도 각자의 번호를 손동작에 맞춰 소개했다.

그때마다 객석은 지치지도 않고 연습생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장내의 뜨거운 반응이 만족스러운 듯 흐뭇하게 웃던 MC 앤드류가 다시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그럼 이제 왕자 후보생들이 준비한 다음 무대를 만나 봐야 할 차례인데요. 이번 곡은 앞서 보여 드린 곡과 달리 두 조가 아예 다른 콘셉트로 준비했다고 합니다. 또한 가사와 안무뿐만 아니라 의상과 헤어스타일까지 전부 후보생들이 준비했다고 하니 벌써 기대가 되네요. 공주님들, 후보생들의 다음 무대를 만나 볼 준비가 되셨습니까?]

“네!”

[이런. 별로 보고 싶지 않으신가 본데요.]

“아니에요!!”

“보여 줘!!!”

[후보생 여러분은 무대 아래로 내려오세요!]

MC가 객석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사이 인 이어를 통해 스태프의 지시가 들렸다.

맨 오른쪽 끝에 서 있던 기태랑부터 순서대로 무대 아래로 내려오기 무섭게 대기하고 있던 스태프들이 달라붙었다.

“1조 먼저 해요, 1조!”

“의탁이까진 메이크업 먼저 손보고 휘겸이부터는 옷 입고 있자!”

스타일리스트들의 진두지휘 아래 연습생들은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예찬은 아직도 열기로 가득한 무대를 잠시 돌아보았다.

[여러분이 기대하고 기대하는 다음 무대는! 60초 후에 공개됩니다.]

“어어어!”

잔뜩 기대감을 부풀려 놓고 광고 타임으로 돌리자 객석에서 거센 야유가 쏟아졌다.

MC 앤드류는 그런 관객들을 향해 윙크를 날렸다.

“예찬아, 우리도 가자.”

1조보다 좀 여유 있을 뿐이지 예찬이 속한 2조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 넉넉하지 않았다.

예찬은 팔을 잡아끄는 선우이경을 따라 반쯤 달리다시피 대기실에 도착했다.

“오, 탈의실 의외로 한산한데?”

연습생들로 꽉꽉 차 있을 거라 예상했던 간이 탈의실 너머가 의외로 한적한 것을 확인한 선우이경이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선우이경의 시선을 따라간 예찬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았다.

‘이 자식들, 옷 입기 민망해서 현실 도피하고 있군.’

아니나 다를까 행거 앞에 망연자실해 있는 조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이게 무슨 옷이냐고…… 어딜 가리고 싶은 거냐고오…….”

“흑흑, 엄마 미안해요…….”

‘오버하긴.’

애초에 옷을 잘못 사 와 이 사달을 낸 것은 본인들 아니던가.

‘울려면 내가 울어야 하는 거 아니야?’

예찬은 등을 꼿꼿이 펴고 조원들 사이에 끼어들어 자기 의상을 꺼내 들었다.

뒤이어 다가온 선우이경이 박수를 보냈다.

“어우, 역시 예찬이 다르다. 상남자다.”

역시 눈치 빠른 놈답게 예찬의 의도를 읽은 모양이었다.

대답도 없이 당당하게 탈의실로 걸음을 옮기는 예찬의 뒤에서 선우이경이 너스레를 떠는 소리가 들렸다.

“크, 나도 예찬이 본받아야겠어. 하기로 했으면 저렇게 쿨하게 해야지. 안 그래?”

파티션 뒤로 들어가자 먼저 옷을 갈아입고 있던 강해솔과 배새벽이 있었다.

“……이거 어떻게 입어야 해?”

옷이 어떻게 되먹은 건지 알아보기 힘들었는지 두 사람은 재킷 하나를 같이 들고 이쪽저쪽 둘러보고 있었다.

예찬은 시선을 내려 짧은 바지 아래 훤히 드러난 배새벽의 맨다리를 확인했다.

예찬이 기억하기론 분명 스무 살이 되지 않은 배새벽과 기태랑, 김세경의 의상이 제일 노출이 덜했다.

예찬은 잠시 고개를 들어 대기실 천장 무늬의 개수를 헤아렸다.

‘……견디자.’

스스로 선택한 노출이라 해도 마음의 안정은 필요했다.

무대 의상이 아니라 벌칙 의상을 구해 온 것 같은 조원들 때문에 2조가 가진 의상 중 멀쩡한 옷은 극도로 적었다.

결국 예찬과 조원들은 그 멀쩡한 의상을 쪼개 입기로 했다.

덕분에 한 사람은 등판이, 또 다른 사람은 허리가, 또 다른 사람은 다리 한쪽이 시원하게 드러나는 등 노출광들처럼 되어 버렸다.

예찬의 경우는 그래도 쓸 만한 옷만 사 왔다는 점에 가산점을 받아 옷의 등짝만 반투명 천으로 바뀌었다.

똑같이 등짝 노출이어도 등판을 끈으로 얼기설기 이은 강해솔보다는 훨씬 인도적인 처사였다.

탈의실 밖으로 나와 거울 앞에서 한 번 빙그르르 돌아본 예찬은 다시 한번 생각했다.

‘견디자!’

어느새 곡 연습을 하던 장면이 끝나고, VCR은 다시 연습생들의 개별 인터뷰 장면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번 인터뷰의 주제는 ‘나에게 츄즈 마이 프린스 99란’이란 주제였다.

[마지막 도전의 기회?]

[좋은 인연을 만들어 준 감사한 곳이죠.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같은 연습생 친구들도.]

[제 인생의 하이라이트 같아요, 하하.]

[괴로움 같아요. 근데 절대 내가 먼저 놓지 못할 괴로움.]

차례차례 연습생들의 얼굴과 짧은 인터뷰가 지나가는 사이 예찬은 넘겼던 앞머리를 다시 내리고 화장을 손봤다.

준비가 끝난 조원들과 무대 뒤로 이동하자 마침 예찬의 인터뷰가 나오기 시작했다.

[저에게 츄마프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번엔 예찬이 마지막 차례였는지 화면이 하얗게 변했다.

곧이어 화면이 점차 검게 물들었다. 이윽고 1조의 개별 곡 제목이 번지듯 떠오르고 절로 어깨가 들썩이는 간주가 시작되었다.

동시에 1조 연습생들은 리프트를 이용해 무대 위로 튀어 올랐다.

‘리프트 처음 써 봤을 텐데 쫄지도 않고 잘하네.’

유독 높게 뛰어오른 범세혁을 보며 예찬은 태연하게 생각했다.

“으윽.”

예찬의 옆에서 입을 벌리고 무대를 구경하던 윤여울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옆을 바라보자 강해솔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자식, 아까 해솔이 형이랑 싸우고 아직도 꽁해 있군.’

무대에서 헛짓거리하지만 않으면 아무래도 좋았기에 예찬은 다시 1조의 퍼포먼스로 시선을 돌렸다.

윤여울은 강해솔이 어지간히도 껄끄러웠는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사라졌다.

윤여울 쪽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곧장 무대와 가장 가까운 곳까지 걸어온 강해솔이 물었다.

“어때?”

“아주 잘하고 있어.”

예찬의 말에 강해솔이 미간 사이를 좁히며 무대 상황을 살폈다.

마침 범세혁이 물 만난 고기처럼 뛰어다니고 있었다.

[brilliant, 눈부시게 빛나는 지금!

감히 이 순간이 영원하리라 맹세하게 돼.]

‘범세혁의 무대가 엔딩이 아니라니, 역시 신기하네.’

모든 회차, 모든 경연에서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던 범세혁이었으나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다시 한번 츄마프의 많은 것이 변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예찬은 잠시 구석으로 몸을 피한 윤여울을 한 번 봤다가 강해솔을 쳐다봤다.

강해솔이 무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무대 앞두고 왜 분위기 망쳤냐는 소리 꺼낼 거면 말을 하지 마.”

“궁금한데 진짜 물어보면 안 되나?”

좀 더 미간을 찌푸린 강해솔이 여전히 무대에 시선을 고정하고 대꾸했다.

“배새벽이랑 윤여울 형 중 한 명이 꼭 기분 더러운 상태로 무대에 올라가야 한다면 윤여울 형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음, 그건 부정할 수 없군.”

한 마디로 배새벽 편을 들어 주기 위해 들이받았다는 의미였다.

강해솔이 나서지 않았다면 예찬이 나섰을 일이기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물론 예찬이라면 강해솔처럼 아예 밥상을 엎진 않았겠지만.

예찬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형의 그런 점 좋다고 생각해.”

예찬의 솔직한 감상에 뚱한 표정을 유지하던 강해솔의 평정심이 깨졌다.

이마를 짚은 강해솔이 드디어 예찬을 돌아봤다.

“……전부터 느낀 건데, 너 왜 이렇게 나한테 달라붙어? 너랑 나 되게 안 맞지 않아?”

평범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상처받을 만한 소리였으나 예찬은 굴하지 않았다.

‘이정도야 상냥하지.’

리셋을 거듭하다 거리감을 제대로 재지 못해서 강해솔한테 수신 차단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형도 금방 알게 될 거야. 우리 되게 잘 맞는다는걸.”

희망 사항이 아니라 단순한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태연자약한 예찬의 태도에 강해솔은 오묘한 얼굴을 했다.

“……이상한 놈.”

강해솔의 중얼거림이 홀로그램의 알림음과 섞였다.

?? 파티 (7/9)

― 하예찬 (파티장)

― 강해솔

― 배새벽

― 선우이경

― 심상록

― 우휘겸

― 정의탁

“오.”

“뭐가 ‘오’야?”

예찬의 감탄사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쑥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강해솔이 성질을 부렸다.

그러나 예찬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강해솔의 파티 가입에 감격을 누리느라 제대로 대꾸해 줄 여력이 없었다.

“뭐야. 이런 취향이었어?”

“뭐가 이런 취향이라는 건데?”

[2조, 리프트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이제 진짜네요. 빨리 가죠.”

“야!”

강해솔의 외침을 뒤로 하고 예찬이 리프트로 몸을 숙여 넣었다.

‘이것도 오랜만이군.’

잠시 돌이켜 보니 리셋을 시작하고 이제 99일이었다.

‘지금까지 돌고 돈 세월이 며칠인데 고작 99일…….’

그러나 그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이 변해 가겠지.’

[2조, 올라가겠습니다!]

인이어를 통해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찬은 침착하게 곡과 어울리는 표정으로 얼굴을 가다듬었다.

“꺄아악!”

“애들아!”

천천히 리프트가 위로 올라가며 연습생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관객들이 크게 환호했다.

간주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리프트가 멈췄다.

연습생들은 동시에 한 발을 내디뎠다.

곡의 제목처럼 ‘무대 위로’ 올라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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