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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98화 (99/224)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9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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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멤버에게서 전 멤버의 파편을 발견한 예찬이 흐린 눈을 하고 있거나 말거나, 채은성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황도 12궁의 제 5궁인 사자자리는 보통 7월 23일에서 8월 22일까지가 해당합니다. 뱀주인자리를 넣어 황도 13궁으로 계산하면 날짜가 조금 달라지지만, 저는 12궁 설을 지지하기 때문에 여기선 생략하도록 하죠.”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을 한 채은성은 양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므로 사자자리의 날짜와 맞춰 7월 23일에서 8월 22일 안에 데뷔를 하기를 강력하게 소망합니다!”

“으응, 그렇구나…….”

심상록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7월은 무슨!’

예찬은 곧장 반박했다.

“채은성.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알겠는데, 딱 하루로 특정되는 것도 아니고 데뷔 날짜를 3개월 이상 뒤로 끌고 갈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 같진 않아.”

“예찬이 말대로 우린 츄마프가 막 끝난 지금 제일 핫하잖아. 이제부터 실시간으로 화제성이 야금야금 떨어질 거잖아.”

선우이경도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예찬의 의견에 힘을 보탰다.

“그런 순간적인 화제성은 장기적으론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가수라면 곡과 무대로 인정받아야죠.”

‘나 이것도 어디서 많이 봤는데.’

예찬이 잠시 기억을 더듬는 사이 선우이경이 반박했다.

“그래, 좋은 곡, 좋은 무대 내면 당연히 성공할 수 있지! 그런데 연예계가 딱 실력 하나로 줄이 세워지는 곳이 아니잖아? 기껏 우리가 가진 무기가 있는데 그게 삭을 때까지 시간을 내버릴 필요가 없단 거지.”

지극히 이성적인 말이었으나 이미 운명이라는 단어에 홀린 채은성은 전혀 설득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형은 한 달 만에 앨범을 만들고 데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들인 시간이 결과물의 퀄리티와 정비례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비슷하게 가는 건 사실 아닌가요? 데뷔 앨범이니만큼 시간과 노력을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찬은 고민했다. 채은성이 자신의 아집에 취해 말하는 거라면 그냥 무시했겠지만, 합리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의견을 주장하고 있었다.

‘츄마프 때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준비해서 공연하는 게 익숙해져서 그렇지, 사실 말도 안 되는 짓이거든.’

만약 예찬도 퀘스트가 없었다면 좀 더 진득하게 기간을 두고 데뷔하는 데 지금보다 무게를 뒀을지 모를 일이었다.

물론 감상은 거기까지였다.

‘연계 퀘스트를 실패하면 스탯이 떨어지는데, 내가 지금 다른 의견에 귀 기울이게 생겼냐고.’

예찬은 먼저 회의실 분위기를 살폈다.

다들 비슷한 마음인지 선우이경과 채은성의 의견에 강력하게 동조하기보단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예찬은 분위기를 끌어오기 위해 주제를 살짝 틀기로 했다.

“두 사람의 말에 다 장단점이 있긴 한데, 난 솔직히 이경이 형의 말처럼 빨리 데뷔했으면 좋겠어.”

자신에게 멤버들의 시선이 모인 것을 확인한 예찬은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 선량한 표정을 지었다.

“왜냐면 팬분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잖아. 하루라도 빨리 그 마음에 답하고 싶은걸.”

효과는 굉장했다.

‘팬’들이 언급되자마자 눈빛이 변한 멤버들을 보자 양심에 가책이 느껴졌다.

‘없는 소리 한 것도 아니잖아. 당당해도 된다, 나 자신.’

지금까지 한 점 물러섬 없던 채은성의 얼굴에도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렇지만 팬분들도 완성도 있는 앨범을 원하시지 않을까?”

미약한 반항이었다. 승리를 예감한 예찬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당연히 완성도는 챙겨야지. 우리가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완성도를 추구하되, 최대한 빠르게. 어때?”

No라고 말할 리 없었다. 예찬의 예상대로 채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고비를 넘긴 예찬이 강해솔을 바라보았다.

“해솔이 형, 데뷔 앨범에 넣고 싶은 곡 있어?”

“뭐?”

“작곡해 둔 것 중 이 멤버들로 하고 싶은 거 있지 않아? 회사에서 준비해 뒀다는 곡 먼저 듣고 앨범 콘셉트을 정해야 하나?”

멤버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강해솔의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면 당황하는 타입이었다.

‘무대에선 멀쩡하던데. 천상 아이돌이라니까.’

태평하게 속으로 강해솔을 칭찬하고 있던 예찬에게 강해솔이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나 작곡한다는 말,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아무래도 데뷔가 정해지고 새로 뜬 퀘스트들도 풀릴 기미가 보이니 마음이 느슨해진 모양이었다.

예찬은 눈을 느리게 깜빡거리며 태연한 표정을 연기했다.

그러나 머릿속은 전에 없이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뭐라고 변명하지? 해솔이 형 표정 보니 지난 합숙 때 얼버무린 것도 같이 의심하고 있는 것 같은데. 솔직하게 아이튜브를 찾았다고 해야 하나? 이제 와서 그 얘길 하면 역효과 나지 않나? 차라리 편곡하는 걸 보고 지레짐작했다고 해? 그렇다기엔 너무 확신이 있는 말투였는데…….’

“너 대체……!”

시간을 끄는 예찬을 강해솔이 재촉하려던 순간이었다.

“얘들아, 오늘도 츄마프 기사가 아주 뜨거운데?”

선우이경이 머쓱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멤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의 폰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예찬은 포털 사이트 메인에 뜬 기사를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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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오디션 프로그램, 이래도 되는가? 츄마프에 대한 여러 가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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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중의 뜨거운 열기에 힘입어 오디션 프로그램의 역사를 새로 쓴 츄즈 마이 프린스 99(이하 츄마프)가 끝이 났다.

이 프로그램으로 데뷔를 약속받은 아홉 명의 연습생들 또한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다고 예상했으나, 돌연 조작 논란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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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이어진 기사에는 지난번에 언급된 특정 연습생 특혜 및 조작 논란을 시작으로, 3차 순위 발표식에서 조작 표가 있었던 정황을 포착한 것을 언급했다.

두루뭉술했던 지난 기사와 달리 특혜를 받은 소속사의 이니셜과 미리 건네받은 영상 증거까지 첨부되어 있어 신빙성이 높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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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합숙 기간 내내 가혹한 스케줄로 연습생들은 새벽까지 연습하는 것이 당연했으며, 미성년자 연습생들 또한 예외는 없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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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아래엔 깁스한 팔로 무대에서 무리한 동작을 수행하는 배새벽의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만 나이 16세도 빼먹지 않고 적혀 있었고.

꽤 오래 준비했는지 참여한 연습생들이나 관계자들이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넘어간 문제점들을 오목조목 잘도 정리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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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츄마프는 개인 아이튜브 영상 조회 수도 150만을 돌파하는 등, 프로그램이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굉장한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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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사 밑에 이렇게 마지막 문단을 써 두니 저 직캠 조회 수도 조작으로 얻은 것 같군.’

개인 직캠 조회 수 150만을 돌파한 예찬은 관자놀이를 눌렀다.

누구 솜씨인지 뻔했다.

‘어쩐지 조용하더라니.’

예찬은 떠오른 정찬양의 얼굴에 주먹을 몇 번 날려 준 후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처음에 몇 번 깔짝거린 이후로 조용하기에 찜찜하긴 했는데, 이렇게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정찬양은 홀로그램 창을 볼 수 없어. 그러니 내가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겠지.’

정찬양이 가지고 있는 정보들로 츄마프의 발목은 잡을 수 있겠지만, 그걸로 예찬을 망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츄마프에 말 그대로 목숨이 저당 잡힌 걸 모르는 정찬양으로선 츄마프가 망하면 예찬이 다른 방향으로 연예계로 기어 들어올 거라 생각했을 터였다.

‘실제로 범세혁이 그런 식으로 내 뒤통수를 쳤지.’

예상치 못한 반격을 당하는 것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츄마프로 데뷔시킨 후, 지저분한 스캔들로 꽁꽁 묶어 버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정말 조작이 있었으면 이거 말고 더 있는 거 아니야?”

회의실 안의 침묵을 강해솔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갈랐다.

멤버들의 시선이 전부 강해솔을 향했으나 이번엔 귀가 빨개지는 일은 없었다.

강해솔의 의문은 당연했다.

동시에 기사를 읽은 대중들도 똑같이 생각할 법했다.

실제로 기사가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댓글 창은 이미 난리가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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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중립 기어 박을 건데 사실이면 진짜 너무 실망인데. 최종 9인도 조작 아니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

- 위에 댓글 단 놈 병X인가? 조작 소속사 이니셜 C랑 K, M이라고 기사에 뻔히 쓰여 있구먼. 누가 봐도 기울어져 있는 놈이 중립 기어 운운하는 거 진짜 역겹다.

- 네 다음 주작 방송

- 어차피 제작진 아니라 애들 믿고 가는 거라 난 애들이 하는 말만 믿겠음ㅠㅠㅠ

- 이거 왜 안 터지나 했다ㅋㅋㅋ 3차 투표 합계 누가 봐도 수상했는데 어흥이네 팬들이 이 악물고 절대 아니라고 ㅈㄹ해서 입 막은 거 알 사람은 다 알지 않냐고ㅋㅋㅋ 아 진짜 속 시원하네 오늘은 발 뻗고 자겠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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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도 비슷한 반응들이겠군.’

“레굴루스 멤버분들, 아직 계시나요?”

멤버들이 제각각 심각한 표정으로 스마트폰만 보고 있던 그때, 회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아직 있습니다.”

예찬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새 10년은 나이가 들어 보이는 도 팀장이 딱딱한 얼굴로 서 있었다.

예찬과 안쪽의 분위기를 살핀 도지윤 팀장이 한숨을 삼켰다.

“일단 들어오시겠어요?”

예찬의 권유에 도 팀장은 다시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조금 전에 기사가 새로 떴습니다만, 다들 보신 것 같군요.”

막막한 표정으로 말을 고르던 도 팀장이 입을 열었다.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건지 다음 주에 낼 예정이던 저희 측과 레굴루스 여러분의 전속 계약 기사도 같이 났더군요. 일단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리고요. 또 조율 중이던 광고들은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될 때까지 진행이 스톱될 것 같습니다.”

‘도장은 정말 방금 찍은 건데 벌써 기사가 나오다니. 정찬양 놈, 제법 정보통이 괜찮은가 본데?’

일단 NJ 안에 정찬양의 사람이 있다는 건 확실하니 긴장을 늦출 수 없겠다.

“팀장님, 저희 데뷔 준비는 그대로 진행해도 될까요? 아무리 늦는다 해도 7월에는 앨범을 내는 걸로 의견이 모였거든요.”

선우이경이 재빠르게 물었다.

“아, 데뷔. 데뷔는 해야죠. 다음 주부터 연습실과 작업실도 정리가 끝날 거 같으니 그곳에서 천천히 준비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일정은 우선 앨범 윤곽이 나오고 그때 다시 의논해 보죠.”

‘천천히?’

사측에서 어지간하면 언급할 리 없는 단어가 도 팀장의 입에서 나왔다.

예찬은 생각보다 NJ 윗선이 지금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앨범을 다 만들고 일정을 생각하자니, 그게 무슨 헛소리야.’

그런 식으로 세월아 네월아 굴다가 올해 내로 연계 퀘스트는커녕 메인 퀘스트인 신인상도 못 받게 생겼다.

‘NJ에 맡겨 두면 안 돼. 이 상황을 타파할 확실한 방법이 필요해.’

대기업도 별거 없다는 생각과 동시에 역시 믿을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찬의 두 눈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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