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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화 (1/237)

1화

<천마와 권신>

시산혈해(尸山血海).

산과 계곡에 나무와 물이 아니라 시체와 피가 장식된 풍경.

이곳 낙곡산을 가득 메운 검붉은 풍경은 그야말로 현계에 강림한 지옥도라 불릴 만했다.

그 지옥도와 같은 풍경 속에서 살아 있는.

두 존재.

백색 무복이 피로 젖은 사내와, 승천하는 암룡(暗龍)의 문양이 새겨진 복장을 입은 사내.

“크흐흐…….”

둘 중 암룡 문양의 옷을 입은 사내가 나지막이 웃음을 흘렸다.

갈비뼈가 박살 나고 심장이 꿰뚫렸음에도 사내의 표정엔 전혀 고통스럽다는 기색이 없었다.

“안타깝군, 이번에야말로 가능할 줄 알았는데.”

사내는 진심으로 유감을 표했다.

그리고 그런 유감을 표하는 사내에게 백색 무복을 피로 물들인 또 다른 사내가 입을 열었다.

“미친 새끼.”

무림에 조금이라도 발을 들인 사람이라면 이들의 별호를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무림인과 민간인을 포함해 물경 100만에 달하는 인간을 학살한 악마.

중원 천지를 피로 물들인 최강 최악의 마.

천마(天魔).

“크흐흐, 그래. 너라면 내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지.”

그리고 그 천마의 심장에 주먹을 박아 넣어 기나긴 정마대전의 끝을 장식한 사내.

무적권신(無敵拳神), 신무조.

백색 무복의 사내, 신무조가 분노를 터트렸다.

“수십만에 달하는 무림인과 백성들을 학살해 놓고 지금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신무조의 일갈에 천마의 얼굴에 살짝 언짢음이 생겨났다.

“실패한 건 사실이잖는가? 다음 기회엔 조금 다른 방법을 써 봐야 하나 고민되는군.”

“웃기지 마!”

신무조는 천마의 가슴팍에 박아 넣은 주먹에 더더욱 힘을 주며 외쳤다.

“네놈에게 다음 기회 따윈 없다!”

그래. 심장이 뚫리고 죽어가는 자에게 다음 기회는 없다.

* * *

영락 3년.

고금제일인 천마를 필두로 역대 최강의 힘을 축적했던 천마신교는 철저하게 힘을 앞세워 무림을 박살 냈다.

전쟁 시작 한 달 만에 사천과 감숙이 뚫렸고, 1년이 지나자 구파일방 중 절반 이상이 궤멸했다.

하지만 중원 무림의 저항은 거셌다. 은거했던 전대의 고수들과 새로운 후기지수들의 대두하기 시작하고, 수의 우위라는 장점을 철저하게 활용해 소수 정예인 천마신교 세력을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그렇게 한때 광동성 끝자락까지 밀렸던 중원 무림은 황궁과 연합해 간신히 섬서까지 영역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어진 7년간의 정마대전에서.

당대 중원 십대고수들이 모두 죽고,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 그 자리를 채워.

전쟁의 화마에서 살아남아 거대한 꽃을 만개한 무인 중 가장 돋보이는 자.

신(新)십대고수의 필두이자 무림의 희망.

무적권신, 신무조.

“그래. 신무조, 네놈이라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지.”

천마의 칭찬에도 신무조는 심장을 꿰뚫은 주먹에 더욱 힘을 쥐며 악을 썼다.

“네놈을 죽이기 위해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다.”

신십대고수 중 여덟과 무림맹의 전력을 바닥까지 모조리 끌어모으고, 그것도 모자라 황실과 연합하여 어림군까지 동원했다.

그리고 천마 하나를 죽이기 위해 그 모든 전력이 목숨을 내던졌다.

그렇게까지 해서 이렇게 천마의 심장에 주먹을 욱여넣을 수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아직 끝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인제 그만 지옥 밑바닥으로 꺼져!”

“후후, 나도 그러고 싶다만.”

천마는 작게 조소하며 이렇게 말했다.

“승천(昇天)을 이루기 전까진 나는 영원불멸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내 숙명이지.”

“……뭐?”

“하지만 이 시대에선 너희들의 승리다. 이 몸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너희는 승리의 미주를 따르며 짧은 평화를 맛보도록 해라.”

콰과과과광!

천마의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곳, 낙곡산의 이곳저곳에서 엄청난 불덩어리가 터지며 연쇄 대폭발이 일어났다.

“그래도, 가더라도 내 후손들에게 작은 숨통 정도는 트여주는 게 도리겠지.”

“이, 이 미친 새끼!”

콰릉! 콰르르릉!

산봉우리가 터지고, 계곡이 무너지고, 푸른 초목이 화마에 휩싸인다.

누가 봐도 계획적이고 인위적인 화탄의 힘.

“폭약인가?!”

신무조는 천마의 가슴에 구멍을 낸 자신의 팔을 빼내려고 했지만 천마가 자신의 팔을 잡아채자 그 시도는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크흐흐흐, 놔줄 수는 없지.”

‘젠장, 다 뒈져가는 놈이 무슨 힘이 이렇게……!’

천마는 신무조와 면상을 마주하며 이렇게 이죽거렸다.

“적어도 이 근방에 들어온 너희 정파 놈들은 모두 죽는다.”

꾸욱!

“그리고 후환은 결코 살려 보낼 수 없지.”

콰콰콰콰!

인위적인 화마가 주변을 잠식하고 이쪽을 삼키려고 한다.

그때, 신무조는 자신의 육체를 파고들기 시작한 어마어마한 마기에 눈을 부릅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

“동귀어진?!”

“이 천마의 마지막을 함께할 영광을 주지. 자, 함께 가자꾸나.”

육체의 붕괴를 아랑곳하지 않고 전신의 마기를 폭발시켜 상대의 육체를 구속하는 수법.

신무조는 육체를 잠식하는 마기를 몰아내기 위해 다급하게 모든 진기에 더해 선천지기까지 폭발시켰지만…….

“크으으윽!”

“흐흐흐, 늦었다.”

주변을 삼킨 화마는 천마와 신무조의 육체를 덮쳤고, 신무조는 피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그 불길에 휘말려 버리고 말았다.

‘이, 이렇게 죽을 순 없어!’

호신강기로 육체를 보호하려고 해도 몸을 침범한 이 빌어먹을 마기가 기막(氣幕)의 형성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

콰릉! 콰르릉!

대체 몇천 관의 화탄을 준비한 건지 이젠 발이 닿고 있는 지면마저 균열과 함께 흔들리고 있다.

“아아, 다음에는 반드시…….”

목숨이 경각에 달한 와중, 신무조의 육체를 구속했던 천마는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이 빌어먹을 새끼!”

철퍼덕!

신무조는 시체가 된 천마의 몸을 내동댕이치고 그대로 가부좌를 틀었다.

‘빠져나가기엔 늦었다.’

마기의 영향으로 경신법조차 어려운 지금, 유일한 희망은 모든 선천지기를 폭발시켜 재앙이 끝날 때까지 버티는 것뿐!

하지만 천마와의 싸움에서 대부분의 내기를 소진한 신무조에게 선택할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마기도 기의 일종. 이것을 힘으로 삼아야 한다.’

천마가 마지막까지 쥐어짜서 주입한 힘인 만큼 육체 내부엔 단전의 허용량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마기가 경락을 흔들며 질주하고 있다.

그 결과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어떻게 변할지는 미지수였지만 그래도 죽는 것보단 낫다!

신무조는 노력했다.

그야말로 반백 년 무인 인생에서 이보다 더 힘과 정신을 쥐어짠 적은 없었다.

고오오오오!

본래 융합될 리 없는 마기와 정기가 죽어가는 육체를 살리기 위해 융합하며 신체의 모든 혈도를 꿰뚫었다.

그 결과, 상단전이 열렸다.

천지신통의 경지가 열리며 신안(神眼)을 개안했다.

그야말로 신무조는 전무후무한 입신의 경지에 발을 들이밀었지만.

안타깝게도 육체를 벗어던지고 등선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문을 돌파하지는 못했다.

‘……젠장.’

그 결과, 팔다리가 불타고 육체가 넝마가 된 신무조는 막대한 내공만을 남기고 숨이 끊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신무조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탄했다.

두 눈은 화마에 짓눌려 시력을 상실했지만 신안이 열린 덕에 본다는 개념 자체를 잃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앞으로 1각 안에 사신은 육체에서 영혼을 분리시킬 것이다.

‘그래도, 동료들의 복수를 했으니 만족한다.’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한 신무조가 담담하게 죽음을 기다릴 때.

사아아아!

‘뭐지?’

신무조는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에 넋을 놓았다.

널브러져 시체가 된 천마의 정수리에서 갑자기 오색 찬란한 무언가가 빠져나와 하늘로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뭐, 뭐야?!’

신안을 각성한 신무조는 이 현상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 무언가는 바로 천마의 영혼이며, 지금 천마의 영혼은 하늘로 승천해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 어째서?!’

우화등선(羽化登仙)!

무인이 무공을 익히는 이유이자 도가 문파들의 최종 목표라 일컬어지는 현상!

어째서 지금 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천마는 우화등선하여 승천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째서 저 마귀가 등선을 할 수 있는 것이냐!’

신무조는 격노했다.

그리고 억울했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무림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무인이 자신이 쓰던 칼 한 자루를 수습하지 못하고 죽어갔는데 수십만의 인명을 학살한 악의 정점이 어떻게 등선 같은 것을 할 수 있는가!

‘인정 못 해! 절대로!’

신무조는 손을 뻗었다.

이미 팔꿈치 부분까지 녹아 없어졌지만 그래도 필사적으로 천마의 등선을 막기 위해 팔을 뻗었다.

‘어딜 가, 이 새끼야!’

비록 허무한 발악에 그친다고 하더라도 신무조는 팔을 뻗었다.

꽈악!

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신무조는 자신이 천마의 영혼 끝자락을 부여잡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

등선을 방해받은 천마의 영혼이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비록 인간의 형태가 아닌 뭉실거리는 기체의 형태였지만 신무조는 천마의 영혼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천마에게서 분노의 감정이 전해져 왔다.

[이놈!]

‘흐, 흐흐…… 절대, 절대 이대로 보내진 않겠다.’

이대로 놈이 하늘로 올라갔다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거란 직감이 든다.

‘절대로 놔줄 순 없지.’

설사 추하게 매달린다는 말을 들어도 절대로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때.

‘저, 저건 뭐냐?!’

고오오오!

미처 자각하기도 전에 어느새 천마와 신무조의 눈앞에 마치 자전하는 듯한 거대한 흑암의 구체가 나타났다.

[이, 이런! 재천(再天)이 아닌 혼천(混天)의 문이라니!]

천마는 드물게도 당황한 듯했다.

이윽고 그 흑암의 구체가 천마와 신무조의 영혼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크으으윽!’

신무조는 그 구체에 빨려들지 않기 위해 발악했다.

하지만 그 발악은 문자 그대로 발악에 지나지 않았다.

‘아, 안 돼! 저항할 수가!’

[오오오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영혼은 구체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신무조의 의식은 거기서 끊겼다.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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