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4화 (4/237)

4화

<네르하 라데우스가 되다. (3)>

라데우스 가문의 본거지, 마도 도시 베리타스의 구석진 곳에 위치한 어느 저택.

여느 귀족의 별장과도 같은 조용하고 아담한 3층 저택이 오늘따라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며 소란스러운 광경을 보였다.

“네르하 라데우스가 돌아왔다!”

저택의 모든 시종과 노예들의 손발을 다섯 배는 빨라지게 만든 한마디!

“젠장, 죽은 거 아니었나?”

“내 말이! 그냥 조용히 자살하려고 들어간 줄 알았더니 다시 빠져나왔을 줄은!”

시종들의 대화라고 보기엔 상당히 무례한 내용이었지만 적어도 이 저택에선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네르하 도련님이 곧 도착하신다! 호위들에게 걸리지 않게 다들, 입단속 철저히 하고. 트집 잡히지 않도록 행동거지 똑바로 해! 괜히 마님이나 아가씨께 걸려서 줄초상 나지 말고!”

“네. 집사장님!”

집사장 게드의 지휘하에 십여 명에 달하는 저택의 시종들은 이 저택의 주인인 네르하를 맞이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 후, 통보받은 대로 네르하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응? 호위들은 어디 가고 저 녀석 혼자만?’

어째서인지 네르하를 철통같이 경호해야 할 라데우스의 마법사단은 어디로 가고 웬 수습 집사 하나만이 네르하를 모시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다가오는 네르하를 눈앞에 두고 딴생각을 계속할 순 없었다.

게드는 정문을 통과하는 네르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무사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네르하 도련님.”

“……그래.”

힘없고 늘어진 목소리. 평소의 네르하와 다를 바 없다.

그런 네르하의 모습에 게드는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빠져나왔지?’

네르하가 어떤 도전을 했는지는 게드 역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무려 5레벨에 해당하는 봉인 술식을 푸는 도전. 아마 본인은 3레벨 정도로 알고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술식을 파훼하기 위한 마나의 양이 3레벨일 뿐이다.

‘누군가’의 개입으로 인해 실제 난이도는 5레벨에 달했을 텐데?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허억!’

뒤통수 위로 들리는 서늘한 목소리에 게드는 순간,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고개를 쳐들었다.

워낙 기습적으로 찔린 일격이었기에 미처 냉정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벌인 실수였다.

그렇게 네르하와 눈을 마주친 게드는…….

“……!!”

사미르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달라진 네르하의 눈빛을 보고는 완전히 굳어 버렸다.

‘무, 무슨 눈빛이!’

사람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죽을 위기를 극복하거나, 그에 준하는 극적인 경험을 맞이하지 않는 이상.

게드는 그 말을 진실로 여기며 살아왔고, 또 지금도 그 의견엔 변함이 없었다.

‘대, 대체 그 안에서 무슨 일을 겪었길래?’

속이 완전히 뒤바뀐 것처럼 저 시릴 정도로 냉랭하고 오만한 눈빛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소심하고 나약했던 이전의 네르하 라데우스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

혼란스러워하는 게드를 향해 네르하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좀 쉬고 싶은데 말이야. 나를 언제까지 이곳에 세워 둘 생각이지?”

“아! 죄, 죄송합니다, 도련님. 제가 이런 실수를!”

정신을 차린 게드는 다급하게 네르하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개판이군.’

네르하는 게드의 안내를 받으면서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주변의 분위기를 살폈다.

‘저택의 주인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군.’

시종들의 표정과 태도는 공손했지만 충성심은커녕 미적지근한 눈길이 은근하게 표출되고 있다.

주인을 불편해한다기보단 차라리 무관심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아니, 오히려 잘되었나? 지금 내겐 되레 무관심이 나을지도 모르지.’

그런 시종들의 모습을 확인하며 네르하는 천천히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새로운 세계에서 네르하의 본격적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 * *

네르하가 폐관 수련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환했다는 소문은 대번에 라데우스 가문 전체에 퍼져나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안에서 객사할 확률을 훨씬 높게 점쳤던 이들은 네르하의 귀환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크게 놀라워했다.

“죄송하지만 네르하 도련님께선 현재, 심신이 많이 좋지 않으시어 방문객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그렇소? 그거 안타까운 일이군.”

대번에 사실 확인을 위해 축하를 빙자한 다른 형제나 혈족들의 사신이 네르하의 저택에 도착했다.

하지만 네르하는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그들 모두를 돌려보냈다.

애초에 실제로 좋지도 않았으니 이건 핑계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뭐, 당연하지만 직접 찾아오는 놈은 없군.’

창문 너머로 집사 게드와 마주하고 있는 중년의 사내는 바로 네르하의 손위 형제이자 라데우스 가문의 4남, 바멜 라데우스가 보낸 자였다.

지나치게 굽실거리는 게드와 심드렁한 표정의 사내.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네르하는 생각했다.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고 빠져나왔다, 정도가 외부에 비치는 내 모습이려나?’

이 저택에 방문한 이들의 반응이 전부 비슷한 걸 보면 그나마 이 관심도 빠르게 사그라들 것이다.

지난 며칠간 ‘네르하’의 친모 로젤리아 라데우스가 잠깐 찾아온 것을 제외하면 네르하를 향한 시선은 ‘잠깐 놀랐을 뿐 어차피 낙오자’라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후우, 관심에서 벗어나는 건 좋긴 한데 이런 생활은 영 익숙지가 않군.’

네르하는 라데우스 직계들이 입는 제복 비슷한 것을 살짝 풀어 헤치며 불평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한평생을 무림에서 야인으로 살아온 탓에 귀공자의 대우엔 영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래도 불편한 시선은 거의 없으니 움직이기엔 편하다.’

이 세계에 첫발을 내디딘 네르하가 회복 외에 처음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이 세계의 대략적인 정보, 그리고 이 가문에 대한 정보.’

거울로 본 것과 ‘네르하’의 기억을 이어받은 것을 종합하면 이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대략적인 기반은 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억은 어디까지나 파편적이었고, 드문드문 비어 있는 정보는 시간이 지나 잊었다는 말로 치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기억상실이란 편리한 변명이 있지만 권력 다툼이 한창 진행 중인 가문에서 그런 핑계를 댔다간 제 입지를 스스로 말아먹는 꼴.’

그런 상황에서 네르하가 얻을 수 있는 정보 수집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역사책을 통해 이 세계의 확실한 지식을 얻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저택의 시종들을 통해 가문 내의 단편적인 정보와 흐름을 읽어내는 것이다.

“자네, 내가 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네? 아, 네…….”

시종들은 갑자기 말을 걸기 시작하는 네르하의 모습에 어색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뭐 어찌할 건가? 윗사람이 말하니 아랫사람은 까라면 깔 수밖에.

“아무래도 바스텔 도련님께서 조용하신 지금, 가장 유력한 후보는 마하 아가씨가 아닐는지…….”

“오오! 그렇군. 자네의 혜안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네!”

“…….”

“다음에 또 자네의 고견을 듣고 싶군. 잘 부탁하네!”

대화가 끝난 시종들은 하나같이 핼쑥해진 표정으로 어딘가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분명 지금까지 줄곧 조용했던 네르하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움직이니 적응하지 못하는 것일 터다.

뭐, 어찌 됐든 그렇게 며칠 동안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한 네르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개판이군!’

얼마 전에도 이 말을 내뱉은 적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도출된 결론을 생각하면 계속해서 이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조직 구조는 중원의 세가와 큰 차이가 없지만 그보다 훨씬 거대하고 촘촘해. 문제는…….’

이놈의 라데우스라는 가문은 ‘마법사 가문’이라는 최고의 두뇌 집단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거칠고 야성적인 놈들이라는 것이었다.

‘가문 내부에 공공연하게 약육강식이란 법칙이 나돌고, 무력이나 성과가 곧 지위로 연결되는 곳이라?’

물론 혈통에 대한 차별이 아주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절대적인 실력이 있다면 그것조차 극복이 가능할 정도였다.

‘실제로 천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문 이름이 두 번이나 바뀌었으니. 이건 뭐.’

과거, 마교에게 멸망당한 패천성이라는 사파 세력이 존재했는데, 그놈들이 혈족 중심으로 운영했다면 딱 이런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네르하는 자신이 정리한 가문 내 세력 구도를 보며 혀를 찼다.

‘계승권을 가진 여덟 명의 직계가 있고, 너무 나이가 어린 한 명과 낙오자 한 명을 제외하고 남은 여섯이서 알뜰살뜰하게 치고받고 있다라…….’

그 낙오자 한 명은 당연히 네르하 본인이다.

가문의 첫째가 확실하게 후계자 자리를 굳혔다면 문제가 안 되지만 특이하게도 이 가문은 장남이 권력에 별 관심이 없어서 개판이 난 특이한 유형이었다.

‘오히려 좋아. 후계자가 확립이 되지 않았다는 건 기회가 있다는 소리니까.’

오히려 장남이 후계자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면 네르하가 훗날, 장남의 역량을 추월하더라도 가주의 자리를 얻어 낼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내가 너에게 한 약속. ‘네르하’란 이름을 이 가문에서 가장 존귀하게 빛나게 해 준다는 것. 그 방법의 지름길은 당연히 일족의 정점인 가주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겠지.’

비선 실세가 되어서 가주의 자리에 오르지 않고도 권력의 최정점을 차지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특이한 경우고 정석은 역시 가문의 주인인 가주의 자리다.

네르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 무공이라면 가능성은 있다.’

무적권신(無敵拳神).

중원에서 ‘신무조’에게 붙은 명칭이자 고금제일인 천마를 죽인 자의 이명.

체감상으로는 고작 며칠 전이지만 그 전성기 시절의 힘을 되찾는다면 아무리 이 거대한 가문의 우두머리 자리라 할지라도 얻어 내는 건 불가능한 게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힘으로 대부분 것이 결정되는 장소.

무인으로선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딱 하나, 문제가 있다.’

그것도, 엄청나게 치명적인 문제가 말이다.

힘이 곧 진리인 곳이라 해도 네르하가 전성기의 힘을 되찾아도.

이곳은 바로 ‘마법’이라는 힘의 체계를 사용하는 전혀 새로운 세상이라는 점이다.

네르하의 등골에 식은땀이 살짝 흘러내렸다.

‘마법이란 게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라데우스는 이 세계에서 마법의 명가라 불리는 가문. 당연히 모든 것의 기준은 마법이며, 마법의 성취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당연히 네르하가 가주의 지위에 오르려면 그 누구보다도 마법으로 다른 이들을 압도해야만 했다.

‘검이나 주먹을 쓰는 자는 기사라는 직업으로 따로 존재하긴 하던데 말이야.’

차라리 그런 가문 출신이라면 아주 쉬웠을 것을!

물론 ‘네르하’의 기억을 이어받으면서 마법에 대한 어느 정도 기초적인 지식은 존재했다.

하지만 그 지식도 기억과 다를 바 없는 파편적인 지식이며, 이것으로는 기초적인 마법 하나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장벽에 네르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마법이란 걸 익혀야겠군.”

처음 봉인된 쇠 문짝을 열어젖힌 거야 마법적 지식보단 한평생 다루었던 경험과 감각에 의존한 것이 절대적이었다.

즉, 지금부터 앞으로 나아가려면 무조건 마법이라는 학문을 익혀야만 했다.

“공부에는 자신 없는데…….”

중원에도 마법사와 대응하는 술법사라는 녀석들이 존재했는데, 그놈들이 파고드는 학문의 양은 어지간한 학자들과 겨루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네르하는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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