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클로이아 (1)>
그렇다면 마법은 어떻게 익혀야 할까?
당연히 누군가에게 사사하거나 독학을 하는 수밖에 없다.
과거 기억에 의하면 어릴 적엔 직계에 대한 대우로 가문의 웃어른이 스승으로 붙었었다.
하지만.
“너는 정말 재능이 없구나.”
그 스승은 몇 년 후에 네르하에게 낙제 판정을 내리며 사라졌고, 그 이후로는 가문의 다른 마법사나 외부에서 초빙된 마법사가 네르하를 가르쳤다.
하지만 그들 역시 네르하의 가공할(?) 재능을 알아보고는 대충대충 가르치거나 포기하고 손을 털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강사들의 질은 떨어져만 갔고, 아예 최근에는 발길이 뚝 끊기고 말았다.
‘그냥 혼자서 수련하고 있었다는 걸 보면 촉이 오지.’
다시 강사를 불러 처음부터 마법의 기초를 쌓는 것도 방법의 하나다. 애초에 평가가 바닥이니 그런 짓을 해도 주변에선 그러려니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평가가 바닥이라도 바닥 밑엔 지하실이 있는 법. 괜히 다시 강사를 불러들여 주변의 견제를 불러올 필요는 없다.’
아직도 강사가 붙어 있다면 그냥 능청스럽게 얼굴을 깔고 기초부터 물어봤겠지만 아쉽게도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네르하’는 그냥 혼자 수련하는 걸 택했다.
이 부분이 좀 아쉽긴 했다.
‘무엇보다 날 굶겨 죽이려고 했던 놈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섣불리 움직이는 건 독이야.’
낙오자인 네르하에까지 견제를 날리는 지독한 놈들.
정체가 누군지까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그런 놈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 아무 기반도 없는 네르하에겐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네르하는 바쁘게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추고 눈앞에 있는 목적지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웃었다.
‘서고. 그것도 이런 위치에 있는 마법 서고라면 어지간해선 관심도 가지지 않을 터.’
이미 조사는 끝냈다.
네르하에게 붙은 수습 집사인 사미르는 의외로 제법 유능했다. 고작 2년 차 수습이지만 네르하가 요구한 조건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찾아낼 정도로 제법 머리가 굴러가는 녀석이었다.
‘가문이 관리 중인 서고는 수십 곳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고 설사 들어갈 수 있다 해도 출입 기록이 너무 분명하게 남는다.’
하지만 지금, 네르하가 도착한 곳은 그중 몇 안 되는 예외에 속한 곳이었다.
이곳은 네르하가 원하는 ‘기초적인 마법 수련’이 가능하고, ‘높은 등급의 마법서’가 없어 가문 마법사들의 발걸음이 뜸한 장소.
즉, 워낙 수준이 낮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서고였다.
“무슨 일로 오셨죠?”
“…….”
하지만 그런 서고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네르하는 뭔가 일이 잘못된 것을 느꼈다.
예상대로 한 명의 손님도 없이 파리만 날리고 있는 건 좋지만, 지금 문제는 손님 따위가 아니었다.
“벙어리인 손님은 처음이군요. 방문 목적을 말해 주시죠.”
“…….”
네르하는 천천히 여인을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이는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 이 세계에서도 흔치 않은 녹색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딱히 주안술로 노화를 가린 것 같지는 않은데.’
즉, 겉보기와 실제 나이가 비슷하다는 뜻.
네르하는 살짝 침을 삼키며 감탄했다.
‘이 라데우스라는 가문은 내 생각보다도 더 대단한 곳인 것 같군.’
“……?”
네르하의 기묘한 눈빛을 마주한 여인이 표정을 살짝 일그러뜨렸다.
“책을 읽으러 온 것이 아니면 나가 주시죠. 이곳은 올바른 목적 외의 방문객은 받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까칠한데?’
뭔가 숨겨진 보물이 있다든가, 가문의 기밀이 숨겨져 있다거나 하는 장소는 절대 아니었다.
그건 이곳에 오기 전에 몇 번이나 확인했다.
네르하는 살짝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서고에 오는 이유가 책을 보러 오는 것 외에 목적이 있던가?”
“…….”
그 말에 여인의 표정에 뭔가 당혹감이 떠올랐다.
‘뭐지? 생각보다 당황한 것 같은데?’
하지만 얼굴 위로 드러난 표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렇죠. 서고에 찾아오는 것에 ‘다른 목적’ 따위가 있을 리는 없겠죠.”
“그렇지.”
“찾고자 하는 책이라도 있으신가요?”
“마법에 대한 기본서가 필요해. 가능하면 입문자용으로.”
“기본서라고요?”
첫째로 보였던 감정은 당황. 그리고 이번에 보이는 감정은 황당.
기왕 이렇게 된 거, 네르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내가 직접 찾는 것보단 사서의 안목에 기대보고 싶은데?”
“어째서 굳이 이런 곳에 와서 기본서를 찾죠?”
“이런 곳이니까?”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어조로 바라보자 그제야 여인도 네르하의 말뜻을 알아차렸는지 살짝 부끄러운 신음을 흘렸다.
“아, 음……!”
살짝 빨개진 표정을 가리며 여인이 신형을 홱 돌렸다.
“기다리세요.”
여인이 책을 고르기 위해 사라지고, 짬이 난 네르하는 의자에 앉아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낡아 보이는 바깥과는 다르게 안쪽은 상당히 정리가 잘되어 있었다.
딱히 다른 직원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혼자 이 건물을 관리하는 것 같은데 청소 또한 깔끔했고 내부 장식도 세심하게 신경을 쓴 흔적이 보였다.
그녀는 이곳의 일에 꽤나 정성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아무리 봐도 이런 곳에 있을 실력은 아닌데?’
네르하는 지난 며칠 동안 자신이 봐왔던 마법사란 인종들을 떠올렸다.
그리 많은 이들을 접한 건 아니었지만 자신을 호위한답시고 저택에 들이닥친 가문 직속의 마법사들과 비교하면 저 여인의 기량은 단연 발군이었다.
‘아직 이 가문의 최고위 실력자들을 만나지 못했으니 성급하게 판단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 기준에서는 상당한 수준이야.’
쿵!
네르하가 고민에 잠겨 있을 때, 어느새 여인이 다섯 권의 책을 들고 와 네르하의 앞에 내려놓았다.
“여기 있어요.”
룬어의 정석.
기초적인 마나의 이해와 운용법.
술식의 구성법과 파지법.
속성 마법과 계열 마법의 이해.
초급 마나 연공법.
‘오오?’
제목만 봐도 지금 네르하에게 필요한 것만을 간추린 것들뿐이다.
눈을 빛내는 네르하를 향해 여인이 의기양양하게 콧대를 높였다.
“기본서의 내용이야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모두 대륙에서 손에 꼽혔던 이들이죠. 기초를 되짚는 데 충분한 도움이 될 겁니다.”
네르하는 주저하지 않고 책들을 집어 들었다.
“고맙군. 도움에 감사하지.”
“열흘 안엔 가져와 주세요. 원래 원칙상 대여는 안 되지만 어차피 오는 사람도 없고…….”
마치 귀찮은 파리를 쫓아내려는 듯한 말투.
그때, 네르하가 여인의 말을 잘랐다.
“아, 대여는 안 해.”
“……네?”
“한동안 여기에 있을 거야. 일종의 출퇴근이지.”
“…….”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파리를 빨리 쫓아내려고 나름 열심히 손발을 움직였는데 그 파리가 모기로 둔갑하여 달라붙으려고 하고 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볼 사람도 필요하잖아? 그러니 잘 부탁한다고.”
“…….”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드는 네르하를 본 여인의 표정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 * *
서고 구석에 자리를 잡은 네르하는 곧바로 입문서들을 탐독해 나갔다.
‘다행히 읽는 데는 문제가 없군.’
중원과는 다른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마치 공용어를 접하듯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레 언어가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렇게 거의 세 시간 동안 무아지경으로 책을 탐독하던 네르하는 어느새 피로해진 눈가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이란 복잡하구나.’
사서, 클로이아가 추천했던 책 중에서 ‘기초적인 마나의 이해와 운용법’은 완독하는 데 고작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전생의 네르하는 내가기공에 있어선 달인과 명인을 넘어 진인(眞人)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경지를 쌓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단전이 아니라 심장에 마나를 쌓는 것이 좀 특이하다만 말이 되지 않는 건 아니군.’
경신법 등을 운용하며 하체를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무인의 특성상 다리까지 빠르게 내공을 순환하려면 단전 부분에 내공을 쌓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이 ‘기초적인 마나의 이해와 운용법’에 따르면, 마법사란 인종은 애초에 엉덩이가 무거운 직종일 수밖에 없었다.
‘양손과 상단전만을 주로 사용하니 하반신의 중요도는 떨어지는군. 이건 좀 좋지 않은데?’
네르하는 어디까지나 전문적인 마법사가 아닌, 무공과 마법을 병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마법사의 방식으로 내공을 쌓으면 경신법과 각법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었다.
‘내공심법을 조금 손보면 어떻게 될 것 같긴 한데, 일단은 나머지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해 봐야겠군.’
그렇게 첫 번째 책을 가볍게 넘기고, 네르하는 마법사의 언어라 할 수 있는 ‘룬어의 정석’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크으으으윽!”
첫 번째 책과는 달리 네르하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룬어의 정석이란 책과 여섯 시간에 가까운 사투를 벌였다.
그럼에도 10%도 채 이해하지 못했다.
‘왜 페르하라는 단어와 코트라는 단어가 붙으면 페르하코트가 아니라 페르니가트라는 단어가 되는데?!’
마법사라면 필수적으로 외워야 할 144자의 룬어.
이 144자의 룬어를 외우는 데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룬어가 조합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로 변한다는 점이었다.
뜻은 물론 발음 자체가 달라지니 어지간해선 그냥 통째로 외울 수밖에 없는데…….
‘이 몸의 기억력이 그리 좋지가 않아.’
정말 큰 문제는 네르하의 기억력과 오성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건 확실히 개선하고 갈 필요가 있겠어.’
네르하의 육체는 라데우스의 직계라고 불러도 괜찮을 만큼 마나를 쌓는 체질 면에서는 제법 괜찮은 편이었다.
이 부분에서는 다른 직계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네르하의 가장 큰 문제는 다름 아닌 두뇌. 즉, 상단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 마법을 배우는 데 크나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
그렇게 네르하가 책과 씨름하고 있는 사이.
‘대체 무슨 생각이지?’
이곳, 0레벨 서고의 사서 클로이아 블루벨벳은 마법서에 얼굴을 처박은 네르하의 모습을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클로이아는 네르하가 저런 행동을 보이는 것에 대한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죽기 살기로 도전한 지하 동굴 수련에서 뭔가를 얻고 나온 것 같은데 기초부터 돌아보며 그것을 정리할 생각인가?’
네르하 라데우스가 스스로를 가둔 사건은 이곳, 라데우스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자라면 모르는 일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클로이아는 네르하의 존재가 그다지 탐탁지 않았다.
그래서 네르하를 빨리 내보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저에게 물어보시죠.”
“……네게?”
“저도 나름 마법사라고 부를 수 있으니까요. 부담 없이 물어보셔도 됩니다.”
한창 머리를 굴리고 있던 네르하에게 구원의 동아줄이나 다름없는 손길이었다.
“전부.”
“네?”
사실, 클로이아는 네르하가 어느 정도 마법적 소양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하에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장대한 착각에 불과했다.
씨익!
“너 정도의 인물이 설마 두말하진 않겠지?”
와락!
클로리아의 표정이 급격히 구겨졌다.
‘저, 전부라고? 너, 직계인데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설사 직계가 아니라 하더라도 어릴 적부터 마법을 익혀온 자라면 절대 저런 반응이 나와선 안 되었다.
‘설마, 내 사정을 알고 심심해서 괴롭히려고 온 거야?’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