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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7화 (7/237)

7화

<네이하 라데우스>

“오랜만이군, 네르하.”

훈련장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는 세 명의 인영.

이 시설은 마법사들은 어지간해선 이용할 일이 없는 만큼 저들의 목적은 다른 누구도 아닌 네르하 자신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중 선두에 선 이가 네르하를 향해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훗, 운 좋게 빠져나온 걸 축하한다. 뭔가 얻은 거라도 있나?”

“…….”

네르하는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상대를 바라보았다.

라데우스 특유의 갈색이 섞인 은발을 보아하니 가문의 사람은 맞다. 하지만 은색보다 갈색이 좀 더 짙은 것을 보니 계승권을 가진 직계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상대는 이쪽을 아는데 이쪽은 상대를 모른다.

네르하는 뚱한 표정으로 녀석에게 입을 열었다.

“누구냐, 넌?”

“누, 누구냐니!”

대번에 성을 내는 것으로 보아 이미 안면을 튼 사이인 것 같은데.

“배커 라데우스다! 마지막으로 만난 지 고작 얼마나 지났다고 날 잊었다는 거냐?!”

“으음!”

배커 라데우스라…….

이름을 듣고 나서야 녀석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만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분명 옆에 있는 놈의 이름은 제크론이었지. 배커라는 놈과 형제처럼 붙어 다니는 놈.’

그리고 그들의 뒤에 있는 거대한 덩치는 기억에 없다. 머리카락이 은발이 아닌 평범한 흑갈색인 걸로 보아 라데우스의 혈족은 아니고 둘 중 한 놈의 부하인 것으로 보이는데 말이야.

길게 생각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제크론 라데우스가 코웃음을 치며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하! 지하 동굴에 자살하러 간 줄 알았는데 용케도 빠져나왔군. 정말 운이 좋구나.”

“시비 걸러 왔나?”

“당연하지. 우리가 네놈을 찾아올 이유가 그 외에 따로 있나?”

네르하는 살짝 벙찐 얼굴로 두 녀석을 바라보았다.

‘너무 당당해서 오히려 당황스럽군.’

이제야 확실히 기억이 난다.

배커 라데우스, 제크론 라데우스.

분명 네르하와 동갑으로, 방계이지만 가문에서 나름 실력과 재능을 인정받은 유망주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릴 적부터 ‘네르하’를 집요하게 괴롭혔던 악연이기도 했다.

‘아무리 방계라도 저놈들은 재능을 인정받았으니 가문 내에서 받는 대우가 달랐겠지.’

재능과 성취가 대우를 결정하는 이 가문에서 네르하는 철저한 약자이자 패배자였다.

지금까지는.

“그래서. 다 큰 놈들이 이곳까지 굳이 행차해서 시비를 걸러 왔다?”

어릴 적부터 배커 일당이 네르하를 괴롭히는 방식은 다양했다.

암암리에 물리적인 구타를 가하거나, 일부러 마도전을 신청해 짓밟기도 했고, 혹은 동물의 사체 등으로 유사 저주까지 퍼부으며 도 넘은 장난질을 펼치기까지 했다.

어린아이의 괴롭힘이라기엔 꽤 악독하고 잔인한 면이 있었다.

“하아…….”

네르하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의 괴롭힘은 단순히 악의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저들의 뒤에 직계 형제 중 누군가가 뒷배로 존재하기에 저들이 지금까지 네르하를 괴롭히고도 무사할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바멜 형님이 또 날 괴롭히라고 너희를 보냈나?”

그 말에 배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뭐야. 알고 있었나?”

“당연히 알고 있었지. 지금까진 알아도 뭘 어쩔 수 없었으니 가만히 있었을 뿐.”

“허? 그럼 지금은 어쩔 수 있으니까 가만히 있지 않는 거냐?”

“잘 알고 있군.”

황당한 표정을 짓는 배커를 바라보며 네르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순히 육체 능력으로만 따지면 저들 중 한 명도 상대하기 힘들 거다.

하지만 싸움이란 육체 능력만으로 성립하는 게 아니었다.

‘적당히 손 좀 봐줘야겠군.’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주먹이 떨리고 이가 갈린다.

자신이 당한 것이 아님에도 ‘네르하’의 기억과 감정은 배커와 제크론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넘어 살의를 품고 있었다.

그런 네르하의 모습에 배커와 제크론은 헛웃음을 지었다.

“하, 지금 한번 해보자는 거냐?”

“미쳤군. 남자로서도 마법사로서도 넌 우리에게 한 번도 제대로 이긴 적이 없는데.”

둘 중 배커가 앞으로 나오며 네르하의 앞에 섰다.

“바스톤 녀석에게 맡길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주제를 모르고 기어오르니 적당히 밟아 줘야지.”

“…….”

바스톤이란 건 배커와 제크론의 뒤에 있는 덩치를 말하는 것일 터다. 아마 만일의 때를 대비한 희생양인 것 같은데.

네르하는 무심한 표정으로 배커의 자세를 살폈다.

‘엉망이군.’

‘마법사’로서의 역량은 어떨지는 몰라도 딱 봐도 무예와는 담을 쌓은 게 보인다. 나름 잘 먹고 자라 건장한 신체이긴 하지만 거기가 끝.

굳이 마나를 쓰지 않더라도 지금 몸 상태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녀석들이었다.

‘길게 끌 것 없다. 너희 말대로 적당히 밟아 주지.’

막 결심을 한 네르하가 손을 뻗으려고 할 때.

“지금 이게 무슨 짓거리야!”

버럭!

앙칼지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세 녀석이 들어왔던 입구 쪽에서 들려왔다.

그 목소리로 인해 장내에 있던 모두의 신형이 굳어 버렸다.

목소리에 담긴 기세를 느낀 네르하의 눈이 살짝 동그랗게 변했다.

‘……제법?’

고개를 돌려 보니 이쪽보다 몇 살은 어려 보이는 한 은갈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눈을 부라리며 서 있었다.

“이, 이런!”

“네이하?!”

배커와 제크론의 기세가 대번에 위축되었다.

네이하라 불린 소녀는 서늘한 표정으로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너희 둘. 두 번 다시 오라버니를 괴롭히면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그새 까먹었나 봐?”

“아, 아니, 그게…….”

그 소녀가 손을 살짝 앞으로 내밀자 그 위로 상당한 양의 마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굉장하군. 마력의 양과 제어 능력. 모두 나이에 걸맞지 않은 출중한 실력이다.’

물론 클로이아와 비교하는 건 그녀에게 실례지만 몇 년 정도 지나면 충분히 그녀의 경지에 이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그 소녀는 그 상태로 배커와 제크론을 노려보았다.

“죽기 싫으면 꺼져.”

“아, 알았다!”

끄덕끄덕!

아무래도 실력 차가 확실한 건지 네르하에게 보였던 의기양양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그들은 꼬리 내린 개가 되어 허겁지겁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배커와 제크론, 그리고 바스톤이라는 녀석까지 자리를 이탈하고…….

“…….”

“…….”

단 두 사람만이 남은 자리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깨지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정리한 은갈색 머리의 소녀가 고개를 돌려 네르하를 노려보았다.

“집사 녀석이 다급하게 뛰어가고 있기에 뭔가 했더니 아직까지 저런 병신같은 놈들에게 당하고나 있어?”

집사란 말에 네르하의 시선이 소녀의 뒤편으로 향했다. 입구 쪽에는 네르하가 갈아입을 옷을 양손에 든 사미르가 고개를 숙인 채 대기하고 있었다.

‘보이질 않길래 숨어 있을 줄 알았는데 보기보단 제법 강단이 있군.’

힘이 없다고 당하고 있는 게 아니라 타개책을 찾는 태도.

나름 마음속으로 사미르에 대한 평가를 올리고 있을 때, 네르하의 귀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어디에다 두고 있어? 날 무시할 셈이야?”

“너는…….”

“너라니. 뭐야? 지하에 처박히더니 여동생 얼굴도 까먹은 거야?”

그럴 리가.

아무리 그래도 저 얼굴을 잊어버릴 수는 없다.

눈앞의 소녀는 네르하의 기억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존재였으니까.

“오랜만이구나, 네이하.”

네이하 라데우스.

라데우스의 계승권을 가진 직계 8인 중 가장 막내이자 ‘네르하 라데우스’의 친동생.

로젤리아 라데우스를 같은 어머니로 둔 유일한 혈육이었다.

네이하는 위협용으로 발현했던 마력 폭풍을 풀며 네르하를 쏘아보았다.

“그 봉인을 풀고 나왔다고 해서 조금 기대하고 왔는데……. 그 얼빠진 상판대기는 변한 것 같지가 않네.”

“그러냐?”

“그러냐가 아니잖아! 이 등신! 머저리!”

난데없는 여동생의 매도에 네르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한 태도를 보였다.

“언제까지 저런 놈들에게 당하고 살 거야!”

“…….”

“설마 약속을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아니, 포기한 건 아니겠지?”

“…….”

‘약속’.

네르하가 재능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음에도, 가문에서의 입자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음에도 결코 단련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

하지만 어째서인지 네르하의 기억을 이어받았음에도 그 ‘약속’이 무엇인지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다고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약속은 지켜야지. 그게 무엇이든 간에.”

이제 네르하 라데우스로 살아가기로 한 이상 녀석의 업을 짊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좋아, 아직 포기하진 않은 것 같네.”

강한 의지를 담은 네르하의 말에 네이하는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만약 포기했다고 말했으면 내 손으로 죽여 버리려고 했었는데.”

“…….”

아무리 이쁘장해도 이 녀석도 이 라데우스라는 가문의 일원인가 보다.

그 약속이 뭔지 물어보고 싶지만 그랬다간 아까 풀었던 마력 폭풍이 다시금 나타나 이쪽을 향해 쏘아질 것만 같았다.

“날 보러 온 거냐?”

“원래 내일 찾아가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다시 볼 줄은 몰랐네. 로지아 장로님이 기다리고 있으니 바로 가야 해.”

네이하 역시 육성 기관에 들어가기 전에 개인 교습을 받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아직까지 가문의 장로에게 직접 교습을 받는 것을 보니 그 기대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네이하는 연무장 내 단련 시설을 살짝 훑어보더니 나름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도 여전히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는 좋네.”

“그러냐?”

“나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테니까 오라버니도 절대 포기하지 마.”

“……그래.”

네르하의 그런 속마음을 모른 채 네이하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돌아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하아.”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약속.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약속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네르하’의 감정이 가슴속을 쓰라리게 하고 있다.

그렇게 네이하가 떠나고, 네르하 역시 단련을 마치고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갔냐?”

“……배커?”

그런데 사라진 줄 알았던 배커와 제크론, 그리고 바스톤이 갑자기 네르하의 눈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 아닌가?

배커가 헛기침을 하며 네르하를 노려보았다.

“크흠, 아무래도 이번엔 바멜 도련님의 특별 명령이라서 말이야. 평소와는 입장이 좀 다르다 이거지.”

“그래서?”

“원래라면 고분고분 물러났겠지만 이번만큼은 널 확실히 밟아야겠어.”

“하.”

네르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나름 집요하다면 집요한 녀석들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네르하는 제어에 따르지 않는 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하던 시점이었다.

네르하는 배커의 앞으로 다가가며 스산하게 웃었다.

“그래. 나도 네놈들을 밟으면서 이 거지 같은 기분을 좀 풀어야겠군.”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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