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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2화 (12/237)

12화

<마나 연공법>

네르하가 전투 마법사 육성 기관, ‘리브라’에 들어가까지 남은 시간은 약 세 달.

몸을 만들고, 마법을 배우고, 가문 내의 혹시 모를 움직임에 대응하고, 그 모든 일과를 하루에 소화하기에 24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별일은 없었어요. 내부를 점검할 때가 되어서 한번 열어 본 것뿐.”

클로이아는 비밀 보관소를 네르하에게 오픈한 일로 라데우스 본가에서 찾아온 조사관들과 대면 중이었다.

그 조사관들의 우두머리이자 ‘라데우스의 내부 지원국’의 국장, 펠릭스 라데우스는 인상을 쓰며 클로이아를 추궁했다.

“그렇다고 보기엔 시간을 세 번이나 갱신했군. 게다가 마력을 쓴 흔적까지 남아 있었고.”

“몇몇 물건에 걸린 봉인이 헐거워진 것 같아 손을 썼을 뿐이에요. 세 번이나 확인했는데 아직도 의심이 드나요?”

“…….”

철저히 준비한 클로이아의 핑계에 펠릭스는 침묵했다.

이곳, 비밀 보관에서 일어나는 모든 책임은 클로이아에게 있다.

반대로 말하면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이 안에서 뭔 짓을 해도 조사관이 뭐라 할 입장이 아니다.

결국 별다른 증좌를 찾지 못한 펠릭스는 인상을 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클로이아 블루벨벳.”

“말씀하시죠, 펠릭스 국장.”

라데우스 가문 내에서 펠릭스의 지위는 결코 낮은 게 아니다.

“난 자네가 지난 세월, 스스로의 주제와 처지를 인지하고 잘 처신해 왔다고 생각하네.”

“……!”

클로이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도 펠릭스는 냉정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 앞으로도 별다른 문제 없이 맡겨진 일을 충실히 수행해 줬으면 좋겠군.”

으득!

“명심…… 하죠.”

“그래.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 말을 남긴 채 펠릭스와 조사관들은 돌아갔다.

서고 구석에서 은신술로 몸을 숨기고 있던 네르하는 펠릭스가 사라지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괜찮아?”

클로이아는 웃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입꼬리만 올라와 있었고. 이마엔 치솟은 혈압으로 인해 혈관이 불쑥 튀어나와 있었지만 말이다.

“괜찮아요. 저런 같잖은 협박을 날린 건 별다른 꼬투리를 잡지 못해서니까요.”

그녀에게 이런 대접은 익숙했다. 애초에 라데우스 가문에 자발적으로 들어온 것도 아닌 만큼 그 이상의 대접을 바란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열이 뻗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빨리 성장해 주세요. 저 빌어먹을 놈을 내 밑에다 두고 평생 부려 먹고 싶으니까.”

“그, 그래.”

과연 클로이아의 소원이 이루어질 날은 올 것인가?

“사본을 만들어 두기 잘했군요. 설마 날이 밝자마자 바로 쳐들어오다니…….”

펠릭스가 오기 전만 해도 네르하는 카르안의 논문을 본격적으로 해부하고 있었다. 혹시 몰라 논문의 원본은 그대로 두고 사본을 만들어서 나왔는데 결과적으론 다행이었다.

클로이아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 꼰대는 도련님의 존재를 눈치채긴 한 것 같아요.”

“그래?”

“이곳이 라데우스 가문 내부인 이상 도련님이 이곳에 들락거린다는 걸 내부 지원국의 국장인 그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죠. 아마 보관소의 문을 연 것을 도련님과 연관 지었기에 순순히 물러났을 거예요.”

그게 아니었다면 아무리 클로이아가 증거를 잘 은폐했어도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그녀에게 페널티를 부여했을 거다.

“제게 주제 파악을 하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였겠죠. 개자식…….”

계승전에 끼어들지 마라.

펠릭스 라데우스는 은연중에 그녀에게 그런 경고를 하고 돌아간 것이었다.

“그래서, 포기하게?”

네르하의 물음에 클로이아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이런 일이 일어나리란 것쯤은 당연히 예상했어요. 그리고 지가 뭘 어쩔 건데요? 가주도 아닌데 율법을 어기려고?”

라데우스라는 이름하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은 자신의 주군을 고를 권리가 있다는 게 가문의 율법에 떡하니 적혀 있다.

엄밀히 말하면 펠릭스는 그 율법을 무시하고 클로이아에게 경고를 날린 셈이었다.

“진짜 언젠간 복수할 거야. 내가 그놈 때문에 빠진 머리카락만 한 움큼이라고…….”

‘생각보다 수다스러운 녀석이군.’

네르하는 히스테리를 부리는 클로이아를 지켜보며 피식 웃었다.

* * *

그렇게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 네르하는 키르안 라데우스의 논문을 계속해서 분석해 나가기 시작했다.

‘기본 골자는 무당파의 것과 비슷하군.’

상, 중, 하단전을 모두 사용해 거대한 순환 체계를 만들어내는 개념.

이 방식의 장점이라면 당연히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로 마나를 쌓을 수 있다는 점에다, 무엇보다 일격으로 낼 수 있는 출력이 압도적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단점이 너무 심해.’

세 개의 연결된 마나 저장소를 만드는 만큼 급소를 당하거나 기혈이 뒤틀려 셋 중 하나만이라도 손상되면 다른 위아래의 저장소 역시 연쇄적으로 파괴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상, 중, 하단전이 모두 손상되어 두 번 다시 마나를 쌓을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린다.

‘뇌나 심장에 당하면 보통은 죽으니까. 원래는 큰 문제는 아닌데.’

하지만 네르하의 이 생각은 무인의 입장일 뿐이었다.

내공으로 기혈을 방어하는 무인에겐 큰 문제가 없지만 마법사의 육체는 타격 및 충격에 극단적으로 취약했다.

게다가 안정성 역시 기존처럼 심장만 지켜야 하는 것보다 훨씬 불안정해서 쉽게 약점이 노출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카르안 라데우스는 이 시점에서 연구를 포기했군.’

평생 전투에 나서지 않고 연구자로만 있다면 가능한 방법이지만 아무래도 그 역시 라데우스 가문의 일원인 만큼 전투의 숙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네르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당연하지만 자신은 한두 대 맞았다고 골골거리는 일반적인 마법사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중원에서 네르하, 아니, 신무조에게 붙여준 별호가 바로 무적권신(無敵拳神).

마법은 보조일 뿐 주먹질이야말로 진정한 사나이의 길이자 자신의 목표였다.

‘굳이 단전을 세 개나 운용할 생각은 없어. 중요한 건 개선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는지, 그리고 이 안에 라데우스의 비전 연공법에 대한 단서가 있냐는 거다.’

대충 감은 오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조금 깊이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상단전은 빼자. 임독맥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 다른 혈로 우회하는 건 너무 효율이 좋지 않아. 차라리 심법을 운용하면서 자연스레 임독맥을 타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건 단순히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한번 도해(圖解)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응? 뭐 하는 거예요?”

클로이아는 네르하가 갑자기 벽보를 뜯어 이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당히 끝내고 내가 가져온 마법서를 볼 줄 알았는데? 지금 뭐 하는 짓이지?’

아무리 마나 제어 능력이 뛰어나도 네르하의 지식은 2레벨 수준.

현재 수준에선 아무리 노력해도 과거 마탑의 탑주급이 집필한 논문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인체?’

‘그거, 뜯으면 벌금이에요’라고 농을 건네려고 했지만 갑자기 시작한 네르하의 기행이 궁금해진 클로이아는 쪼르르 다가와 맞은편에 앉아 구경하기 시작했다.

슥, 슥, 스윽!

네르하는 거침없이 펜을 놀렸다.

머리와 상반신을 그리고, 대략적인 내장 기관을 그려 내었다.

‘솜씨 좋네.’

적어도 하루 이틀 끄적여서는 나오지 않는 솜씨였다.

“역시 중극(中極)에서 시작해서 대거(大巨), 천추(天樞), 중완(中脘), 거궐(巨闕)……. 아, 이렇게 가면 대추(大推)에서 순환이 조금 막히겠군.”

중얼중얼중얼중얼…….

‘뭐라는 거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를 중얼거리는 네르하의 모습에 그녀의 표정이 살짝 뚱하게 바뀌었다.

‘대체 뭔 짓을 하려고 벽보까지 떼서……. 으응?’

인체를 그린 것까진 이해하겠는데 그 후에 의미 모를 단어를 언급하며 무언가 선을 계속해서 주욱주욱 긋고 있다.

‘이, 이거!’

그녀 역시 경지에 달한 수준급의 마법사.

조금만 주의 깊게 봐도 지금, 네르하가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다.

“진창, 사백, 인당, 광초를 넘어 백회(百會)까지. 이렇게 순환시켜 나가다 보면 최종적으로 임독맥을 모두 자극하겠군…….”

‘마나의 회로도를 그리고 있어?!’

네르하가 무슨 단어를 지껄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단어를 언급하면서 신체 일부분을 짚는 걸 자세히 보니 얼추 의미를 알 것만 같았다.

‘논문에서 본 적이 있어. 저것들은 전부 마나의 순환을 담당하는 통로들!’

저렇게 세세할 정도로 많을 줄은 몰랐지만 저 선들을 모두 이으면 하나의 거대한 순환 체계가 완성된다는 걸 모를 정도는 아니다.

“마나 연공법!”

클로이아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무는 것도 잊은 채 비명 어린 탄성을 내질렀다.

“시끄러워.”

“아, 죄, 죄송해요. 너무 놀라서.”

집중이 깨진 네르하는 조금 신경질적으로 클로이아를 쏘아보았다.

어깨를 움츠린 그녀를 잠깐 노려보던 네르하는 한숨을 내쉬며 펜을 내려놓았다.

“뭐, 용서해 주지. 어차피 완성품은 아니니까.”

“사, 상당히 그럴듯해 보이는데요? 이건 라데우스 가문의 비전인가요?”

그 말이 맞는다면 지금, 클로이아는 천금을 주고도 구경하지 못하는 보물을 눈앞에 둔 셈이었다.

“라데우스? 훗, 설마.”

생각보다 시크한 반응에 클로이아의 눈이 살짝 샐쭉해졌다.

“설마 즉흥적으로 창안해 냈다. 뭐 이런 건 아니겠죠?”

추정 2레벨의 견습 마법사가 마나 연공법을 창안해?

이건 네르하가 라데우스의 가주에 오를 확률만큼이나 희박하고 허황된 이야기였다.

“멋대로 생각해. 난 여기서 개선점을 생각하는 데만도 머리 아프니까.”

“…….”

클로이아는 네르하가 그린 마나 회로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마법사와 연구자로서의 본능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뭘 건드리면 어떻게 될 것 같은데’라며 연구자의 본능이 저 회로도를 살살 긁고 있었다.

“저, 저기.”

“……?”

“저도……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네가?”

피식.

울컥!

가소롭다는 네르하의 반응에 클로이아는 쌍심지를 켰다.

‘아니, 이 새끼가?!’

내가 너보다 마법을 익혀도 20년은 더 익혔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네르하의 신경을 건드려서 좋을 건 없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분노를 억누르고 억지웃음을 지었다.

“하, 하하! 저라면 도움이 많이 될 텐데요?”

“흠, 하긴…….”

교육자로의 자질을 보면 연구자로의 능력도 얼추 쓸 만할 거다.

무엇보다 두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네 두뇌 150, 내 두뇌 150. 합계 300. 뭐 이런 것까진 아니더라도…….’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네르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보안을 지키겠다고 마법적 맹세를 하면 참여시켜 주지.”

“좋아요!”

클로이아는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네르하는 그런 클로이아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피식 웃었다.

어차피 그녀는 이미 수십 년 동안 다른 연공법을 익혔을 테니 딱히 다른 욕심이 있어서 제안을 건넨 건 아닐 것이다.

* * *

3개월.

네르하가 어째서인지 주변의 별다른 방해 없이 성장해 나간 시간.

키르안 라데우스의 논문을 바탕으로 새로운 마나 연공법을 창안하고, 클로이아의 지도하에 본격적으로 마법에 입문했으며, 툭 건들면 쓰러질 것 같던 빈약한 몸에 근육을 붙이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곧인가…….”

여전히 눈이 내리는 2월의 날씨. 차가운 바람이 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네르하는 자신에게 곧 다가올 거대한 분기점을 상기하며 감상에 잠겼다.

“어떤 녀석들이 있을지 기대되는군.”

네르하는 책상 위에 놓인 자신에게 온 ‘공문’을 들여다보았다.

[☆리브라 입소에 대한 안내문. 필독!☆]

“……이 문양은 뭐야?”

깜찍한 문양과는 별개로 그 안의 내용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었다.

즉, 네르하가 ‘리브라’에 입소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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