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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5화 (15/237)

15화

<리브라 (3)>

‘이곳이 리브라인가?’

팔라레스트 산맥 중앙에 세워진 거대한 건축물.

교육기관이라기보단 적을 격퇴하기 위한 요새로서의 성격이 더 짙어 보이는 장소였다.

“초대 번호 001번, 네르하 라데우스 님. 통과 확인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활짝 열려 있는 리브라의 입구에 도달하자마자 그 안에서 털옷을 껴입은 중년의 마법사 하나가 나타났다.

“환영합니다. 저는 리브라의 입소 담당관을 맡고 있는 가젤이라 합니다.”

“반갑군.”

척 봐도 범상치 않은 마력을 풍기고 있는 실력자였다.

가젤은 품에 들고 있는 문서를 들어 네르하가 적힌 부분을 체크한 뒤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실례지만, 네르하 님은 수행원이 따로 없으셨는지요?”

“그렇다만. 뭔가 문제라도?”

“아뇨. 그건 아닙니다만. 신기해서요.”

가젤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가산점, 20점입니다.”

“……?”

“아티팩트를 사용하든, 어떤 장비를 사용하든, 타인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이곳 리브라에 찾아오는 것. 그건 이 리브라가 세워진 의의를 정확히 파악한 자들만이 가능한 일이죠.”

“훗, 역시 그렇군…….”

네르하는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지자 나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 네르하가 리브라에 도착한 시기는 전체 도전자 중에서도 하위권에 속할 테지만 혼자 힘으로 당당히 올라온 이들 중에는 자신이 첫 번째임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뭐 사실, 그건 입발린 칭찬이고 대부분 이런 식으로 가산점을 얻는 이는 정말로 아무런 배경 없이 악과 깡만으로 리브라에 도전하는 빈털터리들뿐이지만요.”

“당신은 즐거운 분위기에 얼음물을 쏟는 재능이 있군.”

그렇다면 가산점은 그다지 이득이 없는 건가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가젤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당신 같은 배경을 둔 이가 이런 식으로 홀로 찾아온 건 거의 10년 만입니다. 정말 신기하군요.”

“10년 전에는 그래도 나 같은 놈이 있었다는 거군.”

“네. 맞습니다. 네르하 님의 형제분들 중 한 명이죠.”

그건 꽤 흥미로운 말이었다. 리브라의 입소 연령 제한은 20세 이하인 만큼 나름 특정할 수 있긴 하다.

정말 자신처럼 리브라가 세워진 의미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철저히 규범대로 행동했다면 아마 그는 네르하의 앞길을 막는 최강의 적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가산점의 존재는 철저히 함구해 주시길. 시간이 지날수록 이 20점이라는 가산점은 점점 더 크게 다가올 겁니다. 괜히 동기들에게 알려져 견제를 당하는 일은 피하고 싶으시죠?”

“흥, 딱히 상관은 없다만.”

말은 그렇게 해도 네르하는 이 가산점에 대한 보안이 꽤나 철저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가산점’이라는 것이 만약 어디선가 퍼졌다면 오늘처럼 수행원을 덕지덕지 붙은 놈들이 못해도 절반 이하로 줄었을 테니까.

“이쪽으로. 숙소로 안내해 드리죠. 방 배정은 아직이지만 휴게실은 오픈되어 있으니 그곳에서 쉬고 계시면 됩니다.”

나름 시간을 넉넉히 두고 찾아온 덕에 네다섯 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네르하는 가젤의 인도에 따라 리브라의 내부에 들어섰다.

“……놀랍군.”

낡고 황량한 겉보기와는 달리 리브라의 내부는 대도시를 연상케 할 정도로 상당히 화려했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교육기관이니까요. 교육에 필요한 시설은 대부분 갖추고 있죠.”

물론 도시만큼의 규모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런 고산지대에 이 정도 급의 건축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라데우스 가문의 역량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래. 이래야지.’

주변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투기에 네르하의 입에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라데우스 본가인 만화성(萬和城)만큼은 아니더라도 이곳은 그 다음가는 중요도를 가진 곳인 만큼 본가에서 파견 나온 강자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곳입니다.”

안내가 끝난 가젤은 돌아가기 전에 묘한 웃음을 지으며 이 말을 남겼다.

“굳이 가산점이 아니더라도 혼자서 이 거친 산맥을 등반한 경험은 곧 큰 이점으로 다가올 겁니다.”

“……? 그건 무슨 뜻이지?”

“지금 알려 주면 재미가 없죠.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

네르하는 굳이 그 말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저 말이 맞는다면 어차피 때가 되면 자연히 깨달을 것이기에…….

네르하가 도착한 기숙사의 입구에는 이미 수십 명에 달하는 합격자들이 짐을 풀고 있었다.

다만 내부에는 수행원을 들이지 못해 전부 혼자인 몸이었는데, 개중에는 내가 왜 이런 일을 직접 해야 하냐며 불평을 터트리는 놈들도 있었다.

“네르하다.”

“네르하 라데우스…….”

“라데우스 가문의 낙오자라던?”

역시 라데우스 가문의 이름이 유명하긴 유명한지 네르하가 숙소에 입장하자마자 대번에 이쪽을 향해 시선이 모여들었다.

“쫄 필요 없어. 정보엔 아직도 2레벨에 들지 못한 등신인 모양이니까.”

“…저 나이에 아직도 1레벨이라고?”

“지금이야 가문의 위광으로 기세가 등등하겠지만 본격적으로 옥석(玉石)이 가려지기 시작하면 금방 나가떨어질걸?”

이곳저곳에서 네르하를 평가하는 말들이 수군수군 들려오기 시작한다.

물론 절대다수가 부정적인 평가뿐이었고, 긍정적인 말은 쥐뿔도 없었지만 말이다.

‘옥석이라. 내가 가장 바라는 바이긴 하다만…….’

네르하는 귓속으로 들려오는 비난을 묵묵히 들으면서 임시로 배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짐을 내려놓자마자 스산하게 웃었다.

“내 흉을 보던 놈들. 과연 입을 털 만큼 대단한 놈들인지 이 몸이 특별히 관찰해 주지.”

만약 기준점을 통과한다면 관대하게 용서해 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꽤나 혹독한 지옥을 겪게 될 것이다.

새삼스럽게 말하는 거지만 새로 개발한 마나 연공법을 본격적으로 익히면서 네르하는 기억력이 상당히 좋아졌다.

‘자, 과연 그 녀석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네르하는 자신을 이용해 먹었던 금발의 소녀 루시아를 상기하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지금까지는 그 녀석을 넘어서는 인재를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 * *

그렇게 약 반나절 뒤.

―입소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합격자들은 지금, 중앙 광장으로 모이시길 바랍니다.

한숨 눈을 붙이고 나자 시험이 종료되었다는 말과 함께 합격자를 호출하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네르하는 몽롱한 정신을 깨우며 아까 지나왔던 광장으로 향했다.

‘오, 있군.’

못해도 수백이나 되는 관계자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그 사이에서 최종적으로 리브라에 입소하는 데 성공한 약 120명의 합격자들이 긴장감에 젖은 채로 서로 멀찍이 서 있었다.

그들 중에 루시아의 모습을 찾아내는 덴 그다지 어려울 게 없었다.

루시아 역시 네르하를 알아보았는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반가움을 표했다.

그리고 의외로 루시아 외에도 익숙한 이들이 몇몇 존재했다.

‘배커, 그리고 제크론도 있군.’

그리고 네르하가 영입 권유를 했던 바스톤 페레이라 역시 그들을 따라 네르하와 같은 기수로 입소하게 되었다.

“모두, 주목.”

광장의 북쪽, 연설대로 보이는 곳에서 누군가가 나타나자 웅성거리던 분위기가 대번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네르하의 눈이 대번에 연설대에 나타난 자에게로 돌아갔다.

‘강하다. 최소 화경급!’

연설대에 서 있는 자는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장년인이었다.

은갈색의 머리카락을 보니 분명 라데우스의 직계. 그것도 가주와 아주 가까운 혈족이 분명했다.

그야말로 이 세계에 와서 처음 접한 ‘진짜배기’ 고수!

“루트비히 라데우스다!”

“대륙에 단 다섯뿐이라는 8레벨의 대마법사……!”

아니나 다를까. 네르하의 예상대로 상대는 어마어마한 거물이었다.

“리브라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 137기 입소생들이여.”

루트비히 라데우스의 묵직한 중저음이 광장 내부에 울려 퍼졌다.

“리브라는 최고의 마법 명가 라데우스 가문의 ‘창’과 ‘방패’를 육성하는 기관. 당연히 일반적인 마탑이나 아카데미 생활을 기대하고 찾아온 거라면 당장 돌아가라. 지금이라면 말리지 않겠다.”

루트비히는 그리 긴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1분 안쪽으로 짧게 연설을 끝냈다.

“너희는 이곳에서 5년간 생활하며 전투 마법사로서의 역량을 갈고닦을 것이다.”

리브라에 입소한 백여 명의 청소년들을 둘러보며 루트비히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이거 하나만큼은 장담하지. 너희가 리브라의 모든 육성 계획을 수료할 수 있다면 이곳에서 나가는 순간, 무조건 5레벨 이상의 경지를 개척한 상황일 것이다.”

5레벨.

일반적으로 정위(正位) 마법사라고 불리며, 어디 가서 한 명의 당당한 마법사라고 부를 수 있는 레벨.

수재나 천재만이 입문할 수 있는 마법사라는 직종 안에서도 보통은 5레벨에 들기까지는 최소 25년 이상을 정진해야 한다는 것이 세간의 상식이었다.

세간의 기준에 의하면 보통은 4레벨에만 이르러도 어지간한 지방 영주의 조언자가 될 수 있는 수준이었으며, 일반적인 마탑이나 아카데미를 나왔다면 40대에 5레벨을 달성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심한 경우, 불혹을 넘어 지천명에 이르러서도 4레벨을 넘지 못하고 쓸쓸하게 은퇴하는 이의 소식이 적지 않게 들려올 정도이니 5레벨이란 경지는 일종의 상징으로서, 재능의 척도로서 작용하고 있었다.

긴장과 흥분이 가득한 장내를 바라보며 루트비히가 씨익 웃으며 연설을 마쳤다.

“그럼 건투를 빈다.”

* * *

루트비히의 짧은 연설이 끝나고 네르하는 정식으로 배정된 방에 짐을 풀었다.

그러고는 이곳 리브라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 담긴 안내문을 보았다.

[리브라에서의 일상은 이론 수업, 훈련, 실전, 외부 미션으로 나뉩니다.]

[일반적인 이론과 훈련은 정해진 일과 시간 안에 끝나며, 일과 시간 이후엔 자유이지만 9시 이후는 통금이 제한되니 각별히 유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 위반 시 벌점이 부과됩니다.♡]

[세 달 주기로 이론 및 실전 테스트가 있으며, 테스트의 결과에 따라 점수가 매겨집니다. 일정 점수를 달성할 때마다 좋은 혜택이 주어지며 영약, 고위 마법 술식 등 좋은 보상이 따릅니다! → 그렇다고 선을 넘으면 안 돼요!]

[폭행 및 분란 조장 시 벌점이며 살인의 경우 즉시 퇴소 조치됩니다! 절대 절대 금지.☆]

[마법 서고 및 체력 단련 시설은 일과 후라면 언제든지 이용 가능! 경지를 마구마구 올려 보자구요!]

‘…….’

이전 입소 안내문도 그렇고, 누가 작성하는지 저 깜찍한 문양은 영 적응이 안 되었다.

그 외에 스무 가지에 달하는 여러 조항이 있지만 역시 주목해야 할 건 점수 달성으로 인한 보상.

그리고 실전과 외부 미션.

‘재밌겠군.’

리브라에서 미션이라 하면 단순히 훈련생끼리의 가상 전투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라데우스 가문의 외부 행사에 끼어들어 목숨을 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매해 사망자나 불구가 되는 이들이 심상치 않게 나오고, 그런 이들에 대해 리브라는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리브라에 이렇게 인재들이 몰려드는 건 그만큼 이곳에서 끝까지 버티는 데 성공하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기 때문이겠지만…….

‘다듬고 두들기고 식히고를 반복해야 잘 정련된 검이 만들어지지.’

그건 네르하 본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아무리 전생의 경험이 있다 해도 방심 한 번에 훅 가는 것이 실전.’

무림맹 소속으로 마교도들과 수없이 싸우면서 느끼지 않았는가?

“자, 잘해 보자고.”

네르하는 기지개를 켜면서 리브라에서의 첫날을 지새웠다.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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