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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6화 (16/237)

16화

<리브라 (4)>

리브라에서의 첫날이 밝았다.

‘나름 본격적이군.’

네르하는 자신에게 지급된 하얀색 제복을 주섬주섬 입으며 생각했다.

‘처음 생각한 건 무정하게 훈련생들을 굴리는 비밀결사 같은 느낌이었는데 말이야.’

지팡이 하나 쥐여 주고 생존경쟁을 시키거나, 비동 같은 곳에 가두고 마나 연공법을 훈련시키든가…….

네르하의 그런 생각과는 달리 고등 교육기관인 리브라는 첫날부터 훈련생들을 굴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마법사’를 육성하는 곳. 당연히 시작은 기본적인 이론 수업에서부터 스타트를 끊기 마련이었다.

다만 확실히 일반적인 아카데미나 마탑과는 다르게 입학 다음 날부터 리브라는 곧바로 본격적인 신입생들의 교육에 들어갔다.

신입생 간에 서로 안면을 익히는 자리를 마련한다느니 하는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일절 없었다.

“기본적으로 너희가 4레벨에 이르기까지 이곳, 리브라에서 배워야 하는 주문의 숫자는 무려 630개에 달한다.”

어지간한 마탑의 시설을 넘어서는 리브라의 거대한 교육 강당.

신입 훈련생들의 기본 마법 교육을 위해 천공의 마탑에서 초빙된 바하레스 교수는 그런 리브라의 분위기를 대변하듯 시작부터 마법 이론을 주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통계상으로 정규급 이상의 마법사들은 자신들이 즐겨 쓰는 20여 개의 주문 외에는 다른 주문은 달에 하나도 제대로 쓰지 않는다고 하지.”

바하레스 교수의 첫 번째 강의는 어쩌면 많은 이들이 입학 전에도 알고 있을 내용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마법사가 경지를 올려 5레벨에 이르면 특성을 개화하여 하나의 ‘계통’을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스아아아!

바하레스 교수가 양손을 앞으로 뻗자 그야말로 수천 획이 넘어가는 엄청난 규모의 마법진이 학생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건 바로 바하레스 교수의 ‘계통’을 상징하는 마법진이었다.

“5레벨에 도달하면 마법사는 일종의 오리지널리티. ‘고유 계통’을 얻게 되며 진정한 의미로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 이곳, 리브라는 일단 너희에게 수많은 주문을 주입하고 스스로 자신만의 고유 계통을 개발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마법사들이 피워내는 계통은 운빨에 의한 랜덤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노력과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일 뿐이었다.

“고유 계통을 각성하면 그 계통에 한해 기본적으로 각성 전보다 최소 1.5배 이상의 속도와 출력이 상승한다.”

이것 때문에 5레벨이 마법사들에게 있어 하나의 분기점으로 여겨지는 이유였다.

물론 고유 계통을 각성한다고 해도 주문을 습득하는 것 자체를 좋아해 여러 굴을 파는 이들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이들은 대다수가 6레벨의 벽에서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았다.

“끊임없이 주문을 습득하고 자신의 취향과 특성을 개화하며 위쪽을 향하다 보면 언젠간 너희만의 고유 계통을 습득하게 될 거다. 그러니 끊임없이 정진해라.”

네르하는 바하레스 교수의 수업 내용을 리브라에서 나누어 준 필기용 마도구에 열심히 적어나갔다.

추가로 마법의 경지가 8레벨에 이르면 거기서 또 한차례 진화를 이룬다고 하지만 그건 아직 네르하에겐 머나먼 일이었다.

“여러 개의 속성을 결합할 때는 아무리 정교하고 안전한 장치를 걸어놨다 하더라도 그 속성 간의 상관관계를 잘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바하레스 교수는 수업을 진행하던 거대한 판에 마력을 이용해 수백 획에 달하는 무언가를 새겼다.

“이곳에 앉아 있을 정도면 기본적인 마법의 입문은 했다고 봐도 좋겠지. 누가 좋을까?”

누가 좋을까라고 말하고 있어도 바하레스 교수의 눈은 오직 한 방향만을 향하고 있었다.

“네르하 라데우스.”

“네.”

“자넨 이번 기수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니 자네에게 한번 물어보지.”

대번에 모든 이목이 네르하에게 집중되었다.

이곳에 모인 자들 중에서 네르하의 이름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네르하의 이름은 여러모로 유명했다.

라데우스의 일원으로서 태어났는데도 그 절망적인 재능은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네르하 라데우스, 너는 이 마법진의 술식이 실제로 펼쳐지면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를 추론할 수 있겠는가?”

“…….”

“이건 4레벨에 해당하는 술식이긴 하지만 자네가 라데우스의 후손이라면 충분히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네만.”

네르하는 지금 이 질문이 앞으로 리브라에서의 생활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바하레스 교수가 네르하에게 건넨 기회이자 시험이기도 했다.

‘흐음.’

네르하는 필기를 멈춘 채 바하레스 교수가 만들어 낸 마법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난 시간, 클로이아와 함께하며 마법에 대한 기초를 충분히 쌓았다고 자부했다.

물론 고작 석 달 정도로 경지를 이루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런 자리에서 쪽팔림을 당하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마법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고 폭발할 것 같습니다만.”

“……!”

그 대답을 들은 순간, 바하레스 교수의 눈이 살짝 크게 변했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했지?”

“서로 상극인 속성으로 마법진을 구성했으니 당연히 조화를 이루지 못할 수밖에요.”

마법진의 바깥쪽을 구성하는 획들은 마법이 흐르지 않도록 꽉 동여매 주는 안전장치와도 같은 보조 마법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오히려 그 안전장치가 독으로 적용되었다.

“토극수(土剋水). 서로가 상성인 두 속성을 억지로 뭉쳐서 실행하려 했으니 그 의도가 어떻든 좋은 결과가 나올 리 없습니다.”

마법진을 정확히 분석한 게 아니라 중원 무림에서 배웠던 오행을 기반으로 한 단순한 해석이었다.

“정답이다.”

“……!!”

다행히 네르하의 해석은 옳았던 모양이었다.

“이 마법은 어스 엘리멘탈과 크리에이트 워터를 조합한 조경 마법의 일종이다. 하지만 네르하 라데우스의 말대로 서로 상극인 속성인 탓에 오히려 파괴 마법으로 변질된 예시에 속해 버렸지.”

바하레스 교수는 씨익 웃으면서 네르하를 칭찬했다.

“제법이군. 이 마법진에 각인된 속성을 짧은 시간에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안목이라니.”

“감사합니다.”

“소문은 소문에 불과한 건지, 아니면 우연이었을지 앞으로도 지켜보겠네.”

웅성웅성!

네르하가 대번에 정답을 말하고 교수의 칭찬을 받자 사전에 네르하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던 이들이 수군거리는 것이 들려왔다.

네르하가 천천히 자리에 앉자 강의가 계속되었다.

“내가 첫날부터 이런 것을 물어본 이유는, 마법이란 속성과 그에 따른 상관관계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부터가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뭐라 하는지 네르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필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 * *

그렇게 신입생들이 한창 강의를 받고 있을 무렵.

“의외로군요.”

거대한 강당의 2층 구석에서는 리브라의 관계자들이 한데 모여 수업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마법진의 특성을 저렇게 짧은 시간에 파악할 수 있는 건 상급생도 힘든 일일 텐데 의외로 저 도련님의 눈썰미가 제법 괜찮은가 보네요?”

그들은 거의 5년 만에 들어온 라데우스의 직계를 확인하기 위해 모인 자들이었다.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파괴학 담당 교수 레이첼 루비아이가 턱을 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 썩어도 범의 핏줄이란 건가요?”

“글쎄? 누군가가 미리 알려 줬을 수도 있지.”

수염이 그득한 중년의 교수 구스탁 볼튼은 옆자리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서릿빛 머리카락의 여인을 흘겨보며 중얼거렸다.

그 시선의 의미를 이곳에 있는 이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아아, 그러고 보니 클로이아 교수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저 도련님과 인연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

모두의 시선이 모인 가운데 이번에 리브라에 신입 교수로 들어온 클로이아는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짧은 인연이었을 뿐입니다. 제가 관리하는 서고에 들락날락한 탓에 면식을 익혔을 뿐이지요.”

“흐흥, 짧은 인연치고는 시기가 너무 공교로운데. 기분 탓이려나요?”

“딱히 문제가 있나요? 게다가 신임 교수인 저는 딱히 신입생에게 혜택을 줄 권한이 없는 거로 아는데요?”

“뭐, 그건 그렇지만…….”

레이첼은 말끝을 흐렸고, 구스탁은 여전히 불만이라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그들에게 클로이아는 의심을 거두는 쐐기를 박았다.

“미리 알려 준다는 말에도 어폐가 있지요. 제가 여기서 저 도련님에게 통신을 시도하면 여기 계신 분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잖아요?”

“크흠!”

클로이아는 그런 그들을 마주 보며 여전히 꽃처럼 미소를 지었다.

자신들의 실력을 치켜세우는 발언에 다른 교수들은 더 이상 의심을 내비치지 못하고 조용히 침묵했다.

‘잘했어, 꼬맹이.’

클로이아의 눈이 필기에 집중하고 있는 네르하에게로 향했다.

네르하와 헤어진 뒤, 클로이아는 네르하의 뒷바라지를 위해 리브라에 지원했다.

이왕 주군으로 삼은 거, 확실하게 같이 부대끼면서 지원사격을 해 줄 셈이었다.

물론 클로이아의 입장상 보직 변경을 신청한다 해도 받아들여질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라데우스의 상층부는 클로이아의 리브라행을 쉽게 받아주었다.

“그래도 의심스러운 건 여전하지. 저 녀석의 재능은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그때, 저 뒤편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슬렉 부학장님!”

목소리의 주인공은 배꼽까지 흰 수염이 늘어진 한 노인.

이전, 라데우스 본가의 장로이자 이젠 은퇴하여 리브라의 부학장으로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네슬렉 라데우스’라는 거물이었다.

“네르하 5공자의 재능을 잘 알고 계시다니요?”

“말 그대로다.”

레이첼의 물음에 네슬렉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과거를 회상했다.

“3부인 로젤리아의 간곡한 청으로 1년 정도 저 녀석을 가르쳤지만 녀석의 이해력과 기억력은 절망적일 정도였지. 그나마 볼만한 건 마나 감응력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 후계 경쟁에서 살아남을 정도는 아니었어.”

네슬렉은 네르하의 과거 스승 중 하나였다. 그런 만큼 네르하의 재능이 어떤 수준인지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녀석이 바하레스의 시험을 저리 여유롭게 통과했다는 건 의심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지.”

“허허허, 부학장님도 저와 같은 생각이군요.”

구스탁은 기분 좋게 웃으며 네슬렉의 말에 맞장구쳤다. 다른 교수들은 그런 구스탁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다른 직계’의 파벌에 속해 있다는 걸 모르는 이는 신입인 클로이아를 제외하면 모르는 이가 없었으니까.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때, 클로이아의 명랑한 한마디가 교수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마법사란 자기가 보고 들은 것만을 진리로 여기는 존재. 충분히 다른 시각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호오? 그 말인즉슨, 내 안목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인가? 클로이아 교수.”

네슬렉의 입가에 재밌다는 듯 호선이 그려졌다.

그런 네슬렉의 시선을 마주하고서도 클로이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요.”

“……!”

그 순간, 다른 교수들의 눈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같은 여성으로서 클로이아와 나름 안면을 튼 레이첼은 ‘야, 너 미쳤어?’라는 표정으로 그녀의 옆구리를 찔러 대었다.

“이, 이런 시건방진…….”

구스탁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아무리 클로이아가 ‘서리 마법의 천재’라는 칭송을 받으며 리브라를 수석 졸업한 실력자라 하나 지금은 어디까지나 신임 교수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그녀의 발언은 신입으로서 연공서열을 개무시하고 상사에게 대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크헐헐헐헐!”

하지만 어째서인지 네슬렉은 유쾌하다는 듯 배꼽을 잡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소리로 인해 잠깐이나마 1층에서 벌어지던 강의가 중단되었을 정도였다.

“그래. 자네는 내가 보지 못한 네르하의 다른 면모를 보았다고 말하고 있군.”

“…….”

“뭐, 그래. 그때로부터 10년이나 지났으니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

네슬렉은 입을 다문 클로이아를 향해 알 수 없는 의미를 담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 아이가 달라졌다면 그 면모를 하루빨리 내보이는 게 좋을 걸세.”

“그건, 무슨 뜻이죠?”

“그 아이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뜻이지.”

“……?!”

“그러니 내 안목이 틀렸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겠네. 나도 로젤리아의 아이가 허무하게 탈락하는 모습을 보긴 괴로우니까.”

괴롭다고 말하는 것치고는 네슬렉의 표정은 더없이 평온했다.

그런 자신의 상관을 향해 클로이아는 확신을 담아 마주 웃어주었다.

“곧, 그렇게 될 겁니다.”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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