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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0화 (20/237)

20화

<조별 과제 (2)>

“헉, 헉…….”

“히, 힘들어…….”

“후욱! 후욱!”

“…….”

네르하는 어느새 녹초가 되어 있는 조원들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대체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한 시간 정도 등반한 것 같긴 한데 조원들은 이미 체력이 방전되어 지렁이처럼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이것들, 대체 리브라까진 어떻게 찾아온 거야?’

네르하는 한 가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리브라의 입소 시험은 가문의 철저한 케어와 돈지랄로 인해 ‘등산’보다는 ‘운반’에 가까웠다는 것을…….

리브라 내부와 인근에는 산소 농도를 맞춰 주는 서바이벌 마법이 전체적으로 깔려 있으니 안에서 지내는 것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대번에 한계가 드러나 버린 것이었다.

‘학사도 그걸 알고 있으니 이렇게 이른 때에 바깥으로 내보내 본인의 부족함을 깨닫도록 유도하는 것 같군.’

고개를 돌려 보니 시야에 보이는 두세 조 역시 비슷한 광경을 보이고 있었다. 아마 다른 조들도 대부분 상황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네, 네르하 조장님…… 조금만 휴식을…….”

“주, 죽을 거 같아요…….”

“…….”

확실히 기본적인 채집 장비와 등반 장비까지 갖추고 나왔으니 체력이 금방 빠질 수밖에 없다.

네르하는 한숨을 내쉬고는 조원들에게 대처법을 말해 주었다.

“이동할 때마다 마나 연공법을 계속해서 운용해. 그러면 적어도 나가떨어질 일은 없을 거야.”

일반인도 아니고, 마나를 다룰 수 있는 마법사들이 이런 고산지대에서 호흡곤란에 걸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네르하의 말에 조원들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만들었다.

“그, 그게 가능합니까?”

“……?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마나 연공법이란 보통은 자리에 앉아서…….”

“그게 정석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불가능한 건 아니지.”

마법사는 보통, 정신을 집중하고 연공하는 경우가 잦다 보니 행공(行功)이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다.

육체 단련과 내공 수련을 병행할 수 있는 무인과는 달리 마법사는 마나를 쌓는 것과 주문을 습득하는 것을 동시에 할 수 없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애초에 행공은 육체 단련을 겸하는 것이라 좌공에 비해 연공 효율이 달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일어나. 몇 가지 요령을 가르쳐 줄 테니 그대로 따라 해봐라.”

조원들은 네르하의 말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르하는 제레온의 몸을 교본으로 조원들에게 그 자리에서 대략적인 행공의 기초를 알려 주었다.

어떤 심법을 익혔든 바로 통용될 수 있는 기술이기에 요령만 익히면 바로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아, 확실히 편해졌어요!”

소니아 이즈넨은 떨리던 허벅지가 급격히 안정되어 가자 눈을 크게 뜨며 반색했다.

네르하의 방법대로 마나를 운용하자 적어도 눈앞의 불편함은 확실히 경감되고 있다.

“몸은 편해지겠지만 처음엔 집중력이 분산돼서 정신이 없을 거야. 하지만 그것도 익숙해지면 움직이는 와중에도 마나를 쌓을 수 있는 스킬이 완성되는 거지.”

물론 이들이 종일 이런 식으로 마나 연공에만 신경 쓸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이들의 본질은 마법사이므로 주문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과 두뇌를 사용하니 말이다.

그래도 계산상 보통 1.2배 정도의 효율을 보일 수는 있었다.

“이, 이건 설마 라데우스 가문의 비전 연공법인가요?”

“아니, 어, 음…… 맞아!”

딱히 비전이랄 것도 없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네르하는 급히 말을 바꾸었다.

반응을 보니 이런 식의 행공은 생전 처음 접해 본 모양이고, 나름의 희소성이 있는 것 같았으니까.

“너희는 내 조원이니 특별히 가르쳐 주는 거다.”

“오오!”

“당연한 말이지만 외부 유출은 금지다. 알았나?”

“네!”

녀석들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걸 보니 확실히 말을 바꾸길 잘했다.

생색은 딱 이 정도만 내는 게 좋다. 그 이상은 역효과일 테니까.

‘그나저나, 상황이 이러면 생각보다 재료를 찾는 일이 수월할지도 모르겠는데?’

물론 신입생 대다수가 나름 머리 하난 잘 굴러가는 인재들이니만큼 3일 내내 빌빌거리진 않을 것이다.

분명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적응해 갈 것이긴 하나 지금 상황에서 시간은 네르하의 편이나 다름없었다.

“소니아.”

“네. 조장님.”

“가장 먼저 찾아야 할 약초는 뭐지?”

“잠깐만요. 어디 보자…….”

소니아는 품속에서 수첩을 꺼내 능숙하게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이즈넨 가문은 세간에선 제법 알아주는 연금술사 가문. 당연히 약학, 의학, 식품학 등의 분야에 상당한 조예가 있었다.

“그나마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사라티스 열매네요. 이건 월귤의 일종인데 아마 저 밑으로 가면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좋아. 모두 움직이지.”

네르하는 조원을 굳이 나누지 않고 모두 함께 다니는 것을 선택했다.

애초에 ‘강탈’이 암묵적으로 허용된 룰이니만큼 언제 어디에서 습격이 일어날지 몰랐다.

“앗! 저기, 셀레시안 발견!”

조원들의 역할은 간단했다.

소니아가 목록에 있는 약초의 자생지나 자라날 법한 장소를 특정하면 남은 세 명이 일정 거리 안에서 수색에 나서는 것이었다.

“후우, 하나 더 찾았군.”

네르하는 교묘하게 숨어 있는 자그마한 꽃 한 송이를 발견하고는 자그맣게 미소 지었다.

이번 과제에서 수색에 난항을 빚는 재료들이라면 그건 바로 재료 자체가 마나를 품은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은 보통, 눈으로만 발견할 수 없는 곳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렇다고 네르하의 마나 감응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소니아, 확인.”

20여 개의 재료 중 소니아가 입수 난이도를 최상으로 설정한 재료는 다섯 개.

하지만 네르하는 손에 든 꽃을 포함해 벌써 그중 세 개를 찾아내었다.

소니아는 네르하에게 재료를 받아 들며 눈을 깜빡거렸다.

“……무슨 코로 마나 냄새를 맡을 수 있으세요?”

“코가 아니라 눈이다.”

“눈? 서, 설마 마안(魔眼)을 이식하신 건가요?”

“그런 의미가 아니야.”

당연히 네르하가 찾아온 재료는 진품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소니아의 눈에 감탄이 일었다.

“대, 대단하시네요. 일류 약초꾼도 이렇게 빨리는 못 찾는데…….”

당연히 급수로 치면 네르하는 일류가 아니라 특급이다.

소니아의 칭찬에 네르하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화자찬했다.

‘훗, 내가 왕년엔 만년설삼도 캐봤던 몸인데 이 정도는 쉽지.’

물론 상대에게 이해받지 못할 말을 입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그렇게 약 반나절이 지나고, 네르하는 슬슬 리브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으음, 슬슬 주변에 사람이 보이지 않네요.”

“그러게. 첫날부터 이런 먼 곳까지 찾아온 녀석들은 아직 없나 보군.”

“후후후, 뭔가 뿌듯해지는데요?”

조원들은 의기양양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렇게 첫날이 끝나고 네르하 조가 얻어 낸 재료의 개수는 무려 열네 개. 장담컨대, 그 어떤 조도 자신들보다 많은 양을 채집하지 못했을 거라 장담했다.

“모두, 주목.”

리브라의 입구에 다다라 네르하는 조원들을 불러 주의를 줬다.

“당연한 말이지만 주위에 조의 상황을 괜히 떠벌리지 마라. 내일까진 문제가 없어도 아마 마지막 3일째부터 시비를 걸어오는 녀석들이 생길 거야.”

“네!”

“충분히 쉬고 두 시간 후에 도서관에 모인다. 남은 재료들에 대한 정보를 같이 찾아보자고. 특히 소니아는 예상 위치를 파악하는 데 주력해.”

단순히 수색만이 아니라 사전 조사 역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미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했지만 네르하의 사전에 방심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 * *

이틀째가 되자 예상대로 본격적인 채집 및 조별 간 충돌이 시작되었다.

“어이! 그건 우리 조가 먼저 찾아낸 거라고! 멋대로 손대지 마!”

“먼저 손을 댄 자가 주인이지 뭔 헛소리를 하는 거냐?”

이 조별 과제에선 몇 가지 금칙 사항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마법의 사용이 제한되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렇게 되면 이런 충돌에선 남자다운 방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저놈, 잡아!”

“혼자 돌아다니는 놈이다! 포위해서 두들겨!”

……남자답지 못하게 다 대 일로 해결하는 놈들도 많았다.

“우린 그나마 다행이네요.”

“첫날에 바짝 찾아내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조장님이 알려 준 요령 덕분이에요.”

네르하의 조는 다툼을 피해 멀찍이 돌아갔다. 어차피 이 근방에서 얻을 건 전부 얻은 덕에 꾸물거릴 이유도 없었다.

‘채집 자체가 체력 소모가 극심하니 오히려 그쪽이 현명할 수도 있겠군.’

주변을 둘러보니 아예 채집 자체를 포기하고 습격에만 집중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저런 놈들하고 충돌하는 건 무섭지 않지만 괜히 시간이 지체되는 건 사양이었다.

‘응? 저놈들은 뭐지?’

그렇게 발걸음을 재촉하려던 순간, 네르하의 시야에 설렁설렁 걸어 다니는 녀석들이 포착되었다.

‘저건 제크론이 속한 조로군.’

어째서인지 저 녀석들은 채집에 별다른 의욕을 보이지 않고 잡담이나 하면서 산에서 내려가고 있었다.

누가 보면 가볍게 산책이나 나온 모습이었다.

‘저놈들만이 아니야.’

주변을 잘 살펴보니 제크론의 조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조가 보였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구성원 중에 가문의 격이 제법 높은 녀석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네르하가 멀거니 서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자 앞서 나가던 소니아가 고개를 돌렸다.

“조장님?”

“아, 금방 가지.”

무슨 속셈인지는 몰라도 첫째 날도 아닌데 저런 식으로 꾸물거리면 재료를 전부 찾지 못할 수도 있었다.

어차피 그 결과는 자신들이 책임질 일이니 별 상관없는 네르하는 신경을 끄고 조에 합류했다.

그렇게 조원들은 점차 아비규환이 되어가는 리브라 근방에서 벗어나 다른 봉우리로 향했다.

네르하가 알려 준 행공을 기반으로 철저하게 체력을 관리하며 남은 재료들을 찾아 나갔다.

“이걸로 열아홉 개째예요.”

“마지막 하나 남았나?”

“네. 그런데 좀 문제가 있는데요.”

소니아는 X 체크가 되지 않은 마지막 재료를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마지막 재료는…… 취사 선택이 가능한 재료예요.”

“……취사 선택이라. 올 것이 왔군.”

네르하는 살짝 침음을 흘리며 마지막 재료의 이름을 확인했다.

“스노우 폴로피아의 뿌리, 혹은 베이직 엘리멘탈의 가루.”

“스노우 폴로피아가 뭐야?”

루델의 물음에 소니아가 표정을 굳히며 대답했다.

“영약에 들어가는 영초의 일종이야. 솔직히 이 재료는 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해서 가장 후순위로 미룬 거거든.”

영초는 단순히 마나를 품은 약초와는 다르다.

그 마나가 세월이 지나며 압축되고 압축되어 영기(靈氣)를 띠어야만 비로소 영초라 부를 수 있다.

네르하가 소니아에게 물었다.

“그럼 베이직 엘리멘탈의 가루는?”

“연금술에 들어가는 가장 기초적인 재료예요. 근데 이건 구할 필요가 없어요. 제가 여분으로 항상 가지고 있거든요. 설사 없더라도 학사 안에 상점 같은 데서 쉽게 구매할 수도 있고요.”

“…….”

네르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겼다.

‘영초라…….’

그렇다는 건 이번 실습에서 가장 핵심적인 재료라는 뜻이다.

“그걸 구하냐 마냐에 따라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지겠군.”

“솔직히 그렇죠. 등급으로 따지면 최소 3단계 이상의 차이가 날 거예요.”

“그렇다면 구해야지.”

결과물의 질이 평가 점수에 반영될지도 모르는 데다 실제로 지급 가능성도 있는 만큼 가능하면 찾아야 한다.

하지만 소니아의 표정은 부정적이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초고산지대의 정상이나 마나의 밀도가 풍부한 영지(靈地) 한가운데에 핀다고 들었어요.”

왜 확신이 아닌 카더라라는 어조인 건 소니아 역시 직접 캐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팸플릿에 적어 둔 것 아닌가?”

“이런 험한 산지라면 당연히 자라고는 있겠죠. 하지만 리브라 근처는 확실히 아니에요. 적어도 몇 개의 봉우리는 넘고 몬스터 자생 지역에까지 들어가야 가능성이 있어요.”

당연한 말이지만 거기까지 갈 시간도 없고 가서도 안 되었다.

네르하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누구냐?”

“……?”

감각 권역에 누군가가 접근한 것을 알아챈 네르하가 뒤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조원들은 ‘저놈이 왜 저러지?’라는 눈으로 네르하를 바라보다가 저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라워했다.

“네르하 도련님?”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네르하의 표정이 살짝 묘하게 변했다.

“루시아?”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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