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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2화 (22/237)

22화

<영약 (1)>

“이대로 질까 보냐!”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루시아의 기합을 들으며 네르하는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재밌는 녀석이야.’

이런 식으로 경신법을 펼치면 분명 자극을 받아서 반응할 거라 생각했다.

녀석의 정체가 무가(武家)의 딸로 예상되는 만큼 그런 인종들의 호승심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 법이었다.

‘그래도 질 순 없지.’

나이에 비해 뛰어난 성취를 이뤘다곤 해도 녀석은 어디까지나 후기지수다. 그런 존재에게 패배하는 건 무적권신으로서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흐아아아압!”

뒤를 맹렬하게 추격해 오는 루시아의 속도에 네르하는 약간의 경각심을 가지며 속도를 올렸다.

그렇게 두 무인(?)의 자존심을 건 승부는 먼저 출발한 네르하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헉, 헉, 마, 망할…… 이길 수 있었는데…….”

“후우, 후우…… 세간에선 그걸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한단다.”

네르하는 호흡을 고르며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아니꼬웠던 루시아는 고개를 돌리며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도련님,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전 제 전력의 30%도 쓰지 않았습니다.”

“난 내 전성기 힘의 1푼도 되지 않는다.”

“지, 지랄하지…… 마십쇼.”

사실을 알려 줘도 부정하는 꼴이라니.

“어차피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너의 패배다.”

“크윽!”

루시아는 비통한 탄식과 함께 고개를 떨구었고, 네르하는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자신의 승리를 선언했다.

사실, 두 사람은 애초에 승부를 겨루기로 결정하지도 않았었다. 만약 사정을 아는 제삼자가 이 꼴을 봤다면 ‘염병들 하고 있네’라고 허허 웃었을 것이다.

“허허허허, 재밌는 아이들이 찾아왔구나.”

그리고 그 사정을 아는 제삼자가 껄껄 웃으면서 두 사람을 환영했다.

“……!”

“……!!”

뜬금없이 들려온 노년의 목소리에 네르하와 루시아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것도 아주 귀한 신분이 둘이나……. 이것 참, 정말 오늘은 특별한 날이로군.”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한 곳에는 뒷짐을 지고 서 있는 새하얀 백발의 노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누구지?’

‘그걸 어떻게?’

네르하와 루시아는 동시에 당황했다.

네르하는 자신의 감각을 속이고 이렇게까지 접근한 노인의 강함에.

루시아는 대번에 자신의 신분을 알아본 노인의 안목에.

그런 두 사람의 시선을 받은 노인은 손을 뻗으며 두 사람을 칭찬했다.

“축하하네. 이번 ‘조별 과제’에서 최고점을 얻은 것을 말이야.”

“……!”

“다른 것들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것에 지나지 않지. 이곳에 올라와 마지막 재료를 얻는 것. 그것이 바로 이번 과제의 진짜 의도일세.”

노인은 손을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백여 평 정도의 넓이 안에 수북하게 재배되고 있는 영기를 품은 식물들이 있었다.

‘배, 백년하수오!’

스노우 폴로피아라는 영초의 정체는 그 자체로도 무림에서 준영약으로 취급받는 귀물인 백년하수오였다!

‘설마 이런 봉우리 뒤편에 이런 식으로 감추어진 공간이 존재할 줄이야.’

공간 자체가 움푹 파여 밑에서 보면 절대로 이 장소를 눈치채지 못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최소 수백 뿌리는 나오겠군.’

네르하는 직감했다. 저 밭에 있는 것들 전부가 백년하수오임을.

네르하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정중하게 물었다.

“노야(老爺)의 정체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노야라……. 허허, 라데우스의 직계치고는 엄청 정중한 태도로구먼.”

“이만한 장소를 관리하고 계시는 분의 정체가 평범할 리는 없겠죠.”

리브라의 총책임자인 루트비히 라데우스를 넘어서는 존재감.

그런 자가 절대 평범한 촌부일 리가 없었다.

노인은 껄껄 웃으며 네르하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냥 은퇴하고 소일거리를 하는 퇴물일 뿐이지. 굳이 이름을 묻는다면…… 머르딘이라 부르게.”

“예. 머르딘 님.”

“내 생에 라데우스의 직계에게 초면부터 존대를 듣는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보기보다 예의가 바른 친구로군.”

“…….”

네르하는 살짝 침을 삼켰다.

초면에 존대를 듣지 못했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다음 관계부터는 존대를 들었다는 뜻.

그 말은 노인의 정체 혹은 지위가 생각보다 훨씬 거물이라는 의미였다.

“여튼, 자네들에겐 선택지를 주지.”

자신을 머르딘이라 자처한 노인은 백년하수오가 있는 곳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원래라면 한 뿌리만 들고 가는 것이 규칙이지만 자네들은 특별히 ‘하나 더’ 얻어갈 기회를 주지.”

“그, 그게 정말입니까!”

네르하와 루시아의 표정에 대번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어차피 영약 제조에는 한 뿌리면 족하니 나머지 한 뿌리는 재주껏 처리하게나. 먹든가, 팔든가. 어떻게 하든 아무 상관 하지 않겠네.”

그 말에 네르하는 입맛을 다시며 백년하수오의 밭으로 시선을 돌렸다.

‘생각도 못 한 기회로군. 최고로 좋은 걸 찾아야 한다.’

같은 백년하수오라도 품은 영기에 따라 효험이 천차만별이다. 당연히 이 중에서 가장 많은 기운을 품은 녀석을 찾아야만 했다.

“아싸아!”

루시아는 어느새 밭으로 들어가 하수오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네르하도 뒤질세라 하수오 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 보자…….”

하나하나 뒤적거리는 건 시간 낭비다. 어차피 하수오들의 영양 상태(?)는 대지의 영맥에서 흐르는 기운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

“그렇다면 그 영맥이 가장 강하게 흐르는 쪽을 찾으면 간단하지.”

네르하는 땅바닥에 손을 얹고 그대로 마나를 흘려 넣었다.

극한까지 끌어올린 네르하의 마나 감응력은 뿌리를 내린 영맥을 샅샅이 뒤져 가장 굵은 줄기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호오?’

머르딘은 네르하가 무슨 짓을 벌이는지 알아차리곤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엄청난 마나 제어 능력이로군!’

머르딘의 눈에는 뿌리를 내린 네르하의 마나가 영맥을 훑고 있는 모습이 선하게 보였다.

‘전해 들은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야.’

저건 절대로 2레벨에도 입문하지 못한 낙오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면 그만큼 본가의 권력 암투를 피해 자신을 철저히 숨겼든가.

눈을 감고 집중하고 있는 네르하를 바라보며 머르딘은 눈을 가늘게 떴다.

‘본가의 녀석 중에 저 아이의 진면목을 알아차린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단 말인가?’

반대로 루시아라 불린 소녀는 분명 상당히 뛰어난 실력이었지만 네르하만큼의 감응력은 보이질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네르하의 마나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머르딘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찾았다!”

“허, 허허허!”

영롱한 백년하수오들 사이로 네르하가 잡아챈 녀석은 주변에 있는 녀석들보다 크기나 질감 면에서 딱히 뛰어나다고 볼 수 없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머르딘은 네르하가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비장의 녀석을 찾아냈음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네르하는 자신이 찾아낸 결과물을 보며 감격했다.

‘천년하수오! 이걸 여기서 찾아내다니!’

준영약이 아닌, 엄연히 특급으로 분류되는 최상급 영약.

딱히 다른 백년하수오보다 뿌리의 크기가 굵거나 하진 않았지만 네르하의 눈에는 상상도 못 할 어마어마한 영기가 뭉쳐져 있는 게 보였다.

‘만년설삼까진 아니더라도 이거라면 충분한 양의 마나를 얻을 수 있을 거다.’

아쉽게도 이 녀석 외에 다른 것들은 모두 평범한(?) 백년하수오들이었다.

네르하는 허탈한 눈으로 이곳을 바라보는 머르딘의 시선을 눈치챘다.

네르하와 머르딘의 눈이 한순간 마주쳤다.

‘그걸 꼭 가져가야겠냐?’

‘주신다면서요?’

‘그래도 양심이 좀 있어야지.’

‘제 알 바 아닙니다.’

‘망할 녀석.’

실제로 말은 없었지만 대략 이런 내용의 대화가 눈빛으로 오고 갔다.

머르딘은 한동안 눈에 힘을 주고 네르하를 노려봤지만 강철과도 같은 네르하의 모습에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허, 허허허…… 대단하군. 약속대로 가져가게나.”

“감사합니다, 노야.”

크게 만족한 네르하는 조별 과제 재료로 쓸 녀석을 한 뿌리 챙기고 이곳에서의 볼일을 마쳤다.

그때, 밭에 들어갔던 루시아 역시 입을 쩝쩝거리며 백년하수오 두 뿌리를 가지고 나왔다.

“킁, 좀 아쉽네요. 상대적으로 좀 괜찮은 게 하난 있을 줄 알았는데…….”

그 괜찮은 걸 후발 주자로 들어간 녀석이 이미 챙겼다는 걸 상상하지도 못한 채 루시아는 네르하를 향해 다가갔다.

“빠르군요. 너무 대충 뒤져 보신 거 아닙니까?”

“뭐, 다 거기서 거기더군.”

“……그래요?”

옆에서 머르딘이 ‘속지 마’라고 눈치를 줬지만 아쉽게도 루시아는 머르딘의 그런 눈빛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크흠! 어쨌든 다 끝난 것 같군.”

“예. 노야의 관대함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네르하를 따라 루시아 역시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무얼. 이곳까지 찾아온 도전자들에 대한 보상이지. 그 보상에 출신은 상관없네.”

“…….”

루시아는 묵묵하게 고개를 숙여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막 헤어지려는 분위기가 조성되려는 찰나, 네르하가 머르딘을 향해 질문을 날렸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가?”

“노야께선 저희에게 이번 조별 과제 최고점이라고 하셨는데 교관이나 교수와 사적인 관계로 이 재료를 얻어낸 자들은 점수가 어떻게 됩니까?”

네르하의 질문은 루시아 역시 궁금해하던 것이었다.

두 남녀의 강렬한 눈빛을 받은 머르딘이 갑자기 껄껄 웃으며 폭소를 내뱉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그래. 그게 궁금하겠지!”

머르딘은 네르하와 루시아의 눈앞에 손바닥을 펼치더니 그대로 손가락을 접으며 주먹을 쥐었다.

“0점일세.”

“……네?”

“0점이라고. 이번 과제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편법으로 해결하려는 놈들은 점수를 받을 자격이 없지.”

그냥 포기하고 베이직 엘리멘탈을 선택한 조보다 훨씬 가혹한 결말이었다.

“게다가 그놈들이 얻어 낸 스노우 폴로피아는 여기 있는 것에 비하면 효과가 엄청나게 떨어지는 것들일 거야. 아마 다른 선택 재료와 비교해도 별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그렇습니까?”

“애초에 학사도 교수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 겉으로 보면 그냥 수작질이 걸린 거라 교수들에게 뭐라 항변도 못 해! 그런 건방진 녀석들을 등쳐 먹기를 원하는 교수들도 몇몇 존재할 정도지. 크헐헐헐!”

악마다. 악마가 여기 있다.

“만약 자네가 자네를 따라온 그 서리 일족의 여아에게 부탁했다면 자네는 다른 녀석들과 같은 결과를 맞이했을 걸세.”

“……!”

머르딘은 클로이아의 존재, 그리고 그 목적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더 질문할 게 있는가?”

“그럼 마지막으로…….”

네르하는 기회가 온 김에 다음으로 궁금해하던 것을 물었다.

“이 재료들로 만들어진 ‘영약’은 저희에게 지급되는 물건입니까?”

“클클클, 맞네. 잘 알고 있군.”

“……!”

역시나 네르하의 예상대로였다.

머르딘이 말을 이었다.

“자네들이 찾은 재료로 제조되는 영약은 라데우스의 비전 영약 중 하나인 ‘마나 블래스트’일세. 말 그대로 마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해서 붙여진 별명이지.”

“그렇군요.”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등급의 영약을 먹느냐에 따라 이곳, 리브라에서의 5년이 끝날 땐 그야말로 천지 차이의 결과가 나타날 거야.”

물론 리브라에 입소한 이들 중에선 어릴 때부터 영약을 밥 먹듯이 먹은 녀석들이 즐비할 것이다.

하지만 뭘 먹었다고 해도 최고의 마법 명가인 라데우스의 비전 영약과 비교할 수 있는 건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최고 수훈자인 너희 둘에겐 다른 조원들이 먹는 것보다 훨씬 질 좋은 영약이 지급될 게야. 고생한 녀석들이 더 큰 보상을 받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끄덕끄덕.

네르하와 루시아는 머르딘의 말에 동의했다.

하긴, 타인이 보기엔 이 둘이 최고의 개고생을 했으니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보상 심리도 당연했다.

“자, 물어볼 게 없으면 이만 내려가게. 사실, 마나 블래스트만큼 대단한 기연이 바로 이 절벽을 등반하는 것이긴 한데 자네들도 이곳까지 올라오며 충분하게 느꼈을 테니 그거에 대해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다음에 등반할 때도 이번처럼 효과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은근한 기대가 담긴 네르하의 말에 머르딘은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꿈 깨게. 이만한 ‘마법진’을 발동시키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나 천문학적인데? 다음엔 국물도 없어.”

“쩝, 아쉽군요.”

네르하와 루시아는 입맛을 다시며 천천히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그렇게 두 사람이 사라지고.

“이제 나오게. 갔으니까.”

머르딘은 지금까지 쥐 죽은 듯이 숨어 있던 자의 이름을 언급하며 고개를 돌렸다.

“네슬렉.”

저벅, 저벅.

머르딘의 부름에 따라 리브라의 부학장 네슬렉 라데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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