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성장 (2)>
“……지금 덤벼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바스톤의 표정에 당혹감과 의아함이 묻어났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있지.”
네르하는 팔짱을 끼며 바스톤의 얼굴을 직시했다.
“네가 단순히 마법을 익히기 위한 보조로서 체조 수준으로 끝난다면 이렇게까지 해주진 않아. 하지만 넌 무술에 제법 진지하게 달려드는 것 같아서 말이지.”
“무슨?”
“그런 엉망인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면 절로 한숨만 나온다, 바스톤.”
“어, 엉망이라니…….”
바스톤의 표정이 구겨졌다. 하지만 네르하는 진심이었다.
체계도, 깊이도 찾아볼 수 없는 바스톤의 수련을 보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타고난 육체가 아깝다. 아까워!’
사실, 아직 배커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는 바스톤에게 해주기엔 너무 과한 가르침이겠지만…….
네르하는 과거에도 자신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후학들을 매정하게 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문파의 가르침을 후학들에게 전해주었다.
당시, 무림의 상황이 한 명이라도 더 쓸 만한 전력을 양성하기 위해 가르침을 아끼지 않던 시대인 탓도 있지만 네르하의 성격 자체가 가능성이 있는 인재들에겐 상당히 관대한 성향인 것도 있었다.
“내, 장담하지. 이대로라면 넌 자신의 미래를 무참하게 망치고 말 거다.”
“무슨 헛소리를!”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지금이야 타고난 육체로 남들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겠지만 주변 놈들의 성장이 어느 정도 궤도에 타는 순간… 넌 순식간에 도태된다.”
“…….”
“그 기간은… 길게 봐줘야 3년 정도일까?”
용병으로서의 기술, 그리고 실전에서 다져진 경험.
거기에 타고난 육체와 나름 괜찮은 마법적인 소양.
분명 초반엔 주변보다 빠르게 앞서 나갈 수 있겠지.
“근본이 없는 이상 한계는 명확하다.”
“그, 근본 말입니까?”
“그래. 다른 말로는 뿌리라고도 하지.”
대저 중원의 모든 명문들에게는 무학의 뿌리라는 게 존재한다.
삼재(三才), 육합(六合), 오행(五行), 팔괘(八卦), 구궁(九宮).
끝으로 목표한 지점은 다를지라도 절대다수의 무학들이 위 다섯 가지의 이론에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는다.
이것은 마법도 마찬가지다.
가장 기본적으로 ‘서클’이라는 절대적이고 포괄적인 기준이 존재하며, 설사 서클 마법이 아니더라도 계열 마법들 역시 체계의 기원과 기준, 그리고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명확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바스톤, 네 무술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이냐?”
“목표 말입니까?”
“그래.”
네르하의 물음에 바스톤은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몇 분이 넘도록 대답하지 못하는 바스톤을 향해 네르하가 자그마한 비웃음을 머금었다.
“없지?”
“…….”
바스톤은 침묵했다. 녀석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그런 녀석을 향해 네르하가 엄하게 꾸짖었다.
“육체를 단련하는 건 좋다. 각오도 있는 건 좋다. 하지만 그런 근본도 없는 무술에 시간을 허비했다간 일념(一念)으로 마법만을 수련한 다른 놈들에게 얼마 지나지 않아 추월당하고 말 거다.”
모든 게 미숙한 지금이야 접근해서 주먹질 한 방이면 죄다 나가떨어지겠지.
하지만 몇 년 뒤에도 그렇게 될까?
“네르하 도련님의 말은 이해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바스톤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마법계의 정점에 위치한 라데우스 가문의 도련님께서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군요.”
“오호?”
고집, 혹은 아집.
뭐, 제대로 된 패배를 겪어보지 못했을 테니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리고 바스톤의 말도 딱히 틀린 건 없었고 말이다.
네르하는 손을 까딱이며 바스톤을 도발했다.
“그러니까 덤벼보라는 거다.”
“…….”
“네놈의 몸에 확실하게 알려주지. 근본이라는 게 무엇인지.”
* * *
이전, 네르하는 배커를 때려눕히고 바스톤과 대치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바스톤은 네르하와의 싸움을 피했지만 네르하가 보기엔 실력의 부족보단 ‘직계’와의 충돌을 꺼린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자극을 줬는데 열이 받지 않고는 못 배기지.’
그 말마따나 네르하와 마주하고 있는 바스톤의 머리는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설마 첫날부터 이런 모욕을 당할 줄이야.’
분명 가벼운 마음으로 단련하기 위해 찾아온 훈련장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자신의 노력이 근본에서부터 부정당할 줄이야!
‘마법이 아닌 육체 능력만의 싸움이라면 내가 당신에게 꿀릴 이유는 없다.’
이건 상대가 아무리 네르하라도 참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자신의 길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차라리 인격을 모욕하는 것이 낫다고 볼 정도로 존재의 부정에 가까웠다.
“후회하지 마십시오.”
‘너나 후회하지 마라’라는 등의 반응이 나올 거라 생각했지만 네르하의 반응은 전혀 뜻밖이었다.
“네가 왜 그때, 루시아에게 함부로 덤비지 못한 이유가 뭔지 아냐?”
“……!”
“질 것 같아서야. 어디서 굴러왔는지는 몰라도 그 녀석의 자세에는 근본이라는 게 있거든.”
“으득!”
쿵!
바스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네르하에게 몸을 날렸다.
눈빛과 움직임 하나에서부터 살기가 줄줄 새어 나왔다.
“저런 건방진!”
“어디서 살기를!”
교관들은 바스톤의 살기를 보고 언성을 높였지만 반대로 의외라는 기색도 있었다.
살기라는 건 단순히 힘을 쌓는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전장에서 구르면서 생사를 넘나든 경험이 있으니 당연한 거겠지.’
지금, 리브라의 신입생 중에서도 살기를 내뿜을 수 있는 건 다섯을 넘지 못할 거다.
“흐읍!”
바스톤은 자신보다 작은 네르하의 지척으로 접근하면서 자세를 아래로 푹 숙였다.
그러고는 손날을 모아 그대로 네르하의 두 눈을 향해 찌르기를 가했다.
홱!
네르하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찌르기를 오른쪽으로 피했다.
아무런 무리(武理)도 없이 무작정 들어오는 일격에 당해줄 네르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걸렸다!’
숙인 자세를 기둥으로 삼아 바스톤의 신형이 한 바퀴 크게 돌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피할 것을 예상이라도 했듯이 바스톤의 오른발 뒤꿈치가 그대로 네르하의 관자놀이를 향해 그대로 쇄도해 버린 것이다!
‘당신이 그렇게 무시한 근본 없는 기술에 당해보시지!’
제대로 적중한다면 사망에까지 이르는 묵직한 일격!
그렇게 바스톤의 돌려 차기가 네르하의 머리에 적중했다는 걸 확신한 순간…….
퍼억!
“컥!”
타격음과 그에 따른 비명이 어째서인지 네르하가 아니라 바스톤에게서 흘러나왔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바스톤의 복부에 발을 꽂아 넣은 네르하는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필살의 일격으론 나름 나쁘지 않은 연격이었다.”
“크아아아악!”
네르하의 반격에 바스톤의 신형이 몇 미터 이상 멀찍이 날아가 버렸다.
“어, 어떻게?”
믿지 못하겠다는 듯 복부를 부여잡은 바스톤이 흐리멍덩 눈으로 네르하를 바라보았다.
네르하는 혀를 차며 구석에 박힌 바스톤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대놓고 살기를 줄줄 흘리면 처음부터 큰 게 온다는 걸 누가 모르겠냐? 여기 있는 교관급들이라면 대번에 눈치챌 거다.”
그 말마따나 뒤에 기립해 있던 훈련장의 교관들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스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나름 실력을 인정받아 리브라에 초빙받은 고수들.
마법사가 아닌 탓에 제대로 된 대접은 받지 못하고 있어도 실력 자체는 나무랄 것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안목으로 볼 때, 바스톤의 방금 일격은 무모하다 못해 만용에 가까웠다.
“분명 넌 살아남기 위해 전장에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많이 배웠겠지. 개중에는 방금 전처럼 일격에 상대의 숨통을 끊기 위한 기술도 있을 것이다.”
네르하는 바스톤을 내려다보며 엄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실력자를 상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필살의 일격을 꽂아 넣기 위해 사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상대의 기량을 파악하고, 방어를 풀어 헤치고, 그것도 모자라 만약의 반격을 염두하고. 그런 수많은 ‘만약’을 고려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하나의 무술이며 유파라고 할 수 있지.”
끄덕끄덕!
뒤에 있던 교관들이 네르하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론 바스톤 역시 그런 사실들을 인지는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인지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풀어낼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알진 못할 것이다.
그게 바로 네르하가 바스톤의 움직임에 근본이 없다고 비난한 이유였다.
“…….”
“그래. 그것만으로는 납득하지 못하겠지?”
네르하는 바스톤의 눈에 새겨진 혼란, 그리고 불신을 읽어냈다.
“그러니 계속 덤벼봐라. 네가 납득할 때까지 놀아주지.”
뚜둑! 뚜둑!
팔다리의 관절이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바스톤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래야 내가 점찍어둔 인재이지.’
말 한마디에 손바닥처럼 태도를 바꾸거나 억지로 납득하는 것이 아닌, 자기가 진정으로 상대의 말을 인정할 때까지 들이받는 기개.
물론 그 과정까지가 좀 많이 아프고 험난할 테지만 바스톤은 진정으로 한 꺼풀 벗어던질 수 있을 거다.
* * *
꿈틀! 꿈틀!
“으음……!”
교관들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바스톤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바스톤은 그야말로 맞고 죽을 기세로 네르하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바스톤의 주먹은 단 한 번도 네르하의 육체에 정타로 꽂히지 못했다.
동귀어진을 노리고 죽자 살자 달려들어도 네르하는 바스톤의 수법을 모조리 파훼하며 그때마다 무자비하게 바스톤의 육체를 두들겼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
바스톤은 그야말로 반송장이 되어서 지렁이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때. 이제 좀 이해가 가냐?”
“그, 끄그극……!”
“힘들 텐데 말로 하지 않아도 돼.”
…끄덕끄덕!
바스톤은 힘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르하는 그런 바스톤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름 패는 것도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말하지. 두 길을 파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다고.”
마검사(魔劍士)라고 했던가? 이 세계에서 어중이떠중이의 대표적인 길로 불리는 것.
“하지만 그건 두 길을 파는 난이도가 어려울 뿐이지 결코 그 길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렇, 습니까?”
아직 고통이 다 가시지 않은 바스톤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간신히 대답했다.
네르하는 그런 바스톤을 향해 피식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도 너처럼 두 길을 파는 동지니까 말이다.”
“……!”
그 순간, 바스톤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두 길을 파는 동지라고 했다.”
네르하는 주먹을 들어 마나를 불어넣었다.
뼈와 혈관을 타고 마나가 주먹에 감돌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만 한다면 단순히 육체 강화에 지나지 않지만…….
단순히 피륙에 떠도는 마나를 바깥으로 끄집어내어 유형화할 수 있다면…….
“그, 그건!”
네르하의 주먹에 금빛이 감도는 것을 본 바스톤의 눈은 숫제 찢어질 기세로 커져버렸다.
“그래. 너희가 오러라고 부르는 거지.”
마법의 명가 라데우스의 후손이 기사의 상징이라 부르는 오러를 발현했다?
당장 라데우스 본가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본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를 정도의 거대한 사건이었다.
“마법과 무술은 양립할 수 있다. 그리고 조화를 이룰 수도 있지. 지금까지 두 길을 판 놈들 대부분이 어정쩡한 건 내 추측이지만 단순히 수련의 난이도가 어렵다기보단 상황과 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추측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세상에 어느 유파가 자신의 유파 외에 다른 것을 배우는 것을 용납할까?
세상에 어느 마탑이 무술을 배우겠다고 하는 제자를 인정할까?
만약 제자가 그런 뜻을 내비친다면 사부는 곧바로 그 제자를 파문시키거나 설득을 위해 두들겨 패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뭐, 그런 면에서 보면 난이도가 어려운 건 사실이긴 하지. 두 길을 파기 위해 두 곳에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거든.”
필사적으로 한 길을 숨기거나, 아니면 그걸 인정해 주는 스승을 찾거나.
어느 쪽이든 쉽지 않은 길이었다.
네르하의 시선이 단련실의 입구로 향했다.
“안 그러냐, 세 번째?”
“……?
바스톤은 의아해하며 네르하의 시선을 쫓았다.
그러고는 의외의 인물을 발견하곤 눈을 깜빡였다.
그곳엔…….
빼꼼 고개를 내밀고 이쪽을 바라보는 루시아가 있었다.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