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8화 (28/237)

28화

<바스톤의 사정>

루시아는 라데우스와 관련된 사람이 아니다.

네르하는 그녀와 대화하면서 그 사실을 확신했다.

그럼에도 루시아에게 자신이 고생해서 개발한 비기들을 전수해 줄 마음이 생긴 이유는.

언젠가 그녀가 라데우스의 ‘바깥’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은 일단 일단락되었고.’

네르하는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바스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바스톤, 넌 어떠냐?”

“…….”

“넌 루시아와는 조금 사정이 다르지. 오히려 넌 라데우스 소속이니까 나와는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어.”

지금껏 제대로 듣고만 있었어도 루시아의 사정 정도는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나와 함께 같은 꿈을 꿀 생각은 없나?”

같은 꿈.

그 말뜻을 이해 못 할 바스톤이 아니었다.

“협력 관계가 아닌, 주종 관계를 원하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난 내 등 뒤를 맡길 놈을 찾고 있거든.”

“그놈이 바로 저라는 겁니까?”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바스톤 페레이라.

녀석을 손에 넣겠다고 생각한 그날부터 네르하는 사미르를 통해 녀석의 뒤를 캤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문 대 가문의 족쇄가 아닌 이상 배커가 자신의 역량만으로 바스톤을 품었다고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1억 8천만 실링.”

움찔!

“그 돈이 문제인 거지?”

“제 뒤를 캐신 겁니까?”

“음, 너무 분노하진 말아 달라고. 사정 정도는 알아볼 수 있지 않나? 그거 가지고 협박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

이를 악물고 침묵하는 바스톤을 바라보며 네르하가 넌지시 말했다.

“페레이라 가문은 대를 이어 어떤 마법 체계를 개발하고 있는 것 같더군. 그것 때문에 이곳저곳 부채를 많이 끌어왔고, 그 대주주가 배커가 속해 있는 계파라고 했던가?”

“그래서 어쩌라는 겁니까? 당신이 그 돈을 전부 갚아 주시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이를 갈며 말하는 바스톤의 모습에도 네르하의 대답은 천연덕스러웠다.

“흠, 그것도 나쁠 건 없겠지.”

“잠깐만요. 1억 8천만이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옆에 있던 루시아가 한숨을 쉬며 네르하를 제지했다.

“그 정도면 설사 네르하 도련님, 당신이라 해도 쉽게 융통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니에요. 분명 대를 이어서 빚을 져 왔을 것이고, 하급 귀족이라면 영지를 모두 팔아 치워도 갚을 수 없을 정도일 겁니다.”

마법계에선 흔히 일어나는 일 중 하나다.

연구 하나에 재산, 인력, 시간 모두를 투자하는 모 아니면 도인 도박.

성공하면 최소 몇 배에서 몇백 배의 이윤을 남기지만, 실패하면 그대로 몰락하게 되는 일.

“내가 그 정도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나?”

하지만 네르하는 피식 웃으면서 손을 저었다.

“만약 이게 온전하게 이루어진 거래라면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겠지. 하지만 지금, 페레이라 가문의 문제는 단순히 빚만이 다가 아니야. 그렇지 않나, 바스톤?”

“네. 맞습니다.”

바스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알아보기로, 너희 가문의 연구는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하더군. 보통은 마법 학회나 라데우스 본가에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저작권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게 정상이겠지만 말이야.”

“그게 잘 안 돼가고 있다는 겁니까?”

“맞아. 배커의 계파는 너희 가문의 성과를 온전히 자기들이 독차지할 생각인 것 같더군.”

1억 8천만이란 빚도 원금은 아닐 것이다.

단리든 복리든 이러저러한 이유로 압박을 가해 강제로 부여한 것이겠지.

“그러니 단순히 돈 문제는 아니야. 아, 물론 돈이 가장 큰 문제겠지. 중요한 건 이놈을 거둔다는 건 페레이라 가문을 거둔다는 것과 마찬가지며, 그건 곧 배커의 계파와 척을 진다는 거지.”

“바로 보셨습니다.”

바스톤의 표정에 체념이 서렸다.

“배커 님의 계파는 방계 중에서도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직계분들이 기를 쓰고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할 정도이지요.”

배커가 지금은 바멜의 휘하에 있다고는 하나 언제든지 갈아탈 수 있는 힘과 영향력이 있다.

“그러니 저를 끌어들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배커 님을 포섭하는 것이 네르하 도련님껜 훨씬 유리할 겁니다.”

후계를 노리는 거라면 당연히 그게 정상이다.

지금도 네이하를 지원할 세력을 늘리기 위해 친모인 로젤리아가 물밑에서 암투를 벌이고 있으니까.

하지만.

“미안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너거든?”

“……?”

“배커의 계파 따윈 아무런 관계없어. 그딴 놈들과 철천지원수가 되어도 상관없지.”

“그, 그게 무슨!”

“내가 원하는 건 하나다. 변치 않을 너의 충성. 그것만 내게 맹세한다면 네 가문에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모두 해결해 주지.”

“……!”

“어때? 꽤 구미가 당기는 제안 아니냐?”

바스톤의 표정에 당혹이 피어났다.

“어째서 제게 그렇게까지 해주시는 겁니까?”

“당연히 내가 라데우스의 정점에 오르기 위해서다.”

“헛!”

옆에 있던 루시아가 경악에 찬 눈으로 네르하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자신의 야심을 대놓고 드러내는 건 여러모로 위험한 짓이다.

바스톤이 의외라는 기색으로 이렇게 물었다.

“네이하 아가씨가 아니었습니까?”

“네이하는 네이하고, 나는 나지.”

어머니 로젤리아는 네르하가 네이하의 방파제로 기능하길 원하지만 그런 걸로 만족할 네르하가 아니었다.

“세력이란 눈덩이를 굴리는 것과 비슷하지. 어떻게든 궤도에만 올릴 수 있다면 그 크기를 불리는 것은 쉽다.”

천마신교가 고작 1만도 안 되는 세력으로 중원에 진출하고 고작 3년이 지났을 때.

중원의 절반을 먹어 치운 그들의 규모는 무려 30만이 넘어갔다.

“하지만 내실을 다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눈덩이를 굴려봤자 아무리 거대해져도 그것은 발길질 한 방에 터져나갈 솜뭉치나 다름없지.”

그렇게 백 년은 지속될 것 같던 그들의 그 30만의 세력은, 별다른 구심점도 없던 탓에 무림맹의 대대적인 반격 한 번으로 풍비박산나고 말았다.

“타인이 준비해 주는 세력은 필요 없어. 내가 직접 내 눈에 차는 인재들을 모아 대권에 도전할 거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설사 모자라도 상관없다.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많으니까.

“당장 선택을 강요하진 않겠다. 앞으로 나와 함께 훈련을 진행하면서 한번 차분하게 고민을 해보도록 해.”

지금 당장 가진 것은 배커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좁힐 수 있고, 또 뛰어넘을 자신이 있었다.

“난 내 그릇을 너에게 보여 줄 테니, 그럼에도 내가 네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그때는 두 번 다시 네게 권하지 않겠다.”

그렇게까지 말하자 바스톤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바스톤을 바라보며, 네르하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맺혔다.

“일단은 강해지는 데 초점을 맞춰 보자고. 위로 올라갈수록 보이는 게 많아질 테니.”

* * *

그렇게 바스톤과 루시아, 두 사람과 본격적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다.

이번 시험으로 인해 나오는 영약이 한 달의 시간이 걸린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다음 리브라의 과제 역시 한 달 후에 이루어진다는 것.

즉, 앞으로 한 달 동안 충분히 실력을 쌓을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무게중심이 불안정하다, 바스톤.”

“크, 크윽!”

네르하는 이어진 연격에 균형이 무너진 바스톤의 다리를 후려쳤다.

바스톤은 대번에 대지에 발을 디디지 못하며 꼴사납게 널브러졌다.

“뭐가 됐든 하체부터다. 하체가 부실하면 뭘 해도 헛것이야.”

“아, 알겠습니다.”

“자, 그럼 한차례 대련이 끝났으니 다시 자세를 잡고 ‘시작’하자고.”

네르하가 저 너머에서 마법 술식을 공부 중인 루시아에게 향했다.

고개를 돌린 바스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대번에 식은땀을 흘렸다.

“으음!”

“끅, 끄으으으!”

앞길이 창창한 소녀에겐 못 할 말이긴 한데, 아무리 봐도 마치 출산 직전인 임산부마냥 괴로운 신음을 흘리는 게 영…….

“끄응! 끄으윽!”

루시아는 지금 팔목과 발목에 강철로 된 두툼한 구속구를 낀 채로, 네르하가 알려 준 초식들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정면에 빼곡하게 새겨진 구결을 익히면서 마나 운용을 병행하는 중이었다.

즉, 지금 그녀는 무려 세 가지나 되는 훈련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루시아는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네르하에게 말했다.

“꼬, 꼭 이래야 합니까? 이러면 제대로 된 집중이 될 리가!”

그녀의 항의에도 네르하는 냉정했다.

“당연히 그래야지. 우린 명색이 마법사 아닌가? 상식적으로 두 길을 걸으려면 시간이 촉박하니 부족한 시간은 어떻게든 쪼개서 활용해야지.”

“무, 무슨 도박장에서 수학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어허, 그런 것과 비교하면 안 되지. 그리고 우린 일반인이 아니라 마나를 다루는 자. 끊임없이 마나를 운용해서 순환시키면 뇌는 강제로 활성화되게 되어 있어.”

“끄아아앙!”

루시아는 비명을 내지르며 필사적으로 버텼다.

몇 번이고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정작 자신에게 이런 짓을 시킨 네르하는…….

‘저건 뭐 하는 괴물이야!’

뒷덜미에 자신의 몇 배가 되는 덤벨을 부여잡고, 스쿼트를 하면서 벽에 붙여 놓은 술식들을 공부하고 있었다.

“후욱, 후욱!”

자신은 그저 버티는 데만 급급한데 상대는 그걸 넘어 한술 더 뜨고 있었다.

루시아는 이를 악물었다.

‘저러면서도 테스트에선 항상 만점을 받았지.’

기본적으로 몸 쓰는 것과 머리 쓰는 것은 양립할 수 없다. 이게 세간에 알려진 보편적인 사실이었다.

하지만 네르하는 그런 사실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상식을 뒤집으면서 행동하고 있었다.

‘육체의 상태와 눈앞의 지식. 극한의 상황에서 둘 모두를 세밀하게 신경 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는데 말이야.’

사실, 네르하가 바스톤과 루시아에게 가르치는 것은 다름 아닌 무당파 양의심공의 기초 수련법이었다.

마음을 두 가지로 나눈다는 양의심공은 원래 육체의 고통 속에서도 마음의 명경지수를 유지하기 위해서 시작한 공부법이었다.

그것이 무공의 방향으로 개량되면서 두 가지 무공을 동시 시전하는 방법으로 발전했지만 양의심공의 진짜 진수는 이런 식의 활용에 있었다.

네르하는 전신에 땀을 줄줄 흘리는 루시아와 바스톤에게 엄중히 말했다.

“버티는 것도 못 해서야 시작은 꿈도 꾸지 못해.”

“끅, 끄으윽!”

“후욱! 후욱!”

“물론 너희가 단순히 마보 자세로 버틴다고 치면 하루도 충분하겠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 모든 신경을 제어해 가는 버릇을 들이지 못하면 마검사나 마권사라는 길은 꿈을 꾸는 거나 마찬가지다.”

마법사는 상체만 신경 쓰면 되지만 무술을 접합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육체의 제어가 완벽해지면 발가락으로도 술식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지. 각법(脚法)과 융합한 수법을 개발 중이긴 한데, 만약 개발된다면 필살의 수단으로선 꽤 유용할 거다.”

그 누가 발바닥에서 파이어볼이 날아오는 걸 생각하겠는가?

조금 형태가 괴상해지긴 해도, 전장에서 그런 식의 수법을 쓸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목숨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네르하가 두 사람에게 일장 연설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저, 저기.”

“응?”

나름 화려한 복장의 한 소년이 우물쭈물하면서 단련실 입구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그 소년은 네르하도 익히 알고 있는 녀석이었다.

“알페온이군.”

리브레히트 가문의 삼남. 처음엔 꽤나 재수 없는 도련님이었지만 지금은 상당히 공손해져 네르하에게 형님이라 존칭하는 지경까지 왔다.

“무슨 일이지? 운동을 하고 싶다면 저기, 교관들에게 가봐. 친절하게 알려 줄 테니까.”

“그, 그게 아니라…….”

겸손하게 변했어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던 알페온은 답지 않게 꽤나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곧 결심을 했는지 눈을 부릅뜨며 이렇게 외쳤다.

“네르하 형님, 저도 형님과 같이 수련하고 싶습니다!”

“뭐?”

“저도 강해지고 싶습니다!”

잠시 알페온의 말을 곱씹던 네르하는, 이윽고 씨익 웃으며 눈을 빛냈다.

이건 또 무슨 호구…… 아니, 강해지고자 열망하는 후기지수의 표본이 굴러왔는가!

“자, 잠깐!”

“오, 그렇단 말이지?”

바스톤과 루시아는 제 발로 지옥으로 기어들어 온 미친 ㄴ…… 아니, 무모한 녀석을 말리려고 했지만, 네르하의 행동이 더욱 빨랐다.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