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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9화 (29/237)

29화

<네르하 사단 (1)>

라데우스 본가, 천공의 성.

“다들, 오랜만이군.”

북방 원정을 무사히 마치고 귀환한 라데우스 가문의 가주, 카이젤 아우구스트 라데우스가 입을 열었다.

그의 앞에는 대륙을 양분하는 거대한 마법 가문 라데우스의 직계 중에서도 최고의 권력을 가진 이들이 각을 잡은 채 자리하고 있었다.

“가주님의 무사 귀환을 감축드립니다.”

카이젤의 부인들과 함께 가장 앞 열에 있던 대장로 수넨이 입을 열었다.

“이제 황실에서도 우리를 다시 보겠지요. 이런 단시간 안에 북방의 경계를 안정시켰으니 그들도 케프렌에 의지하는 현 상황을 재고할 가능성이 큽니다.”

북방의 경계 너머에 존재하는 불가해의 마물들.

일반적인 몬스터나 마수와는 본질부터가 다른 괴물들로, 북방의 추위와 험한 환경 덕분에 원래는 그리 큰 위협이 되진 않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최근 십여 년 사이, 그런 환경을 뚫고 제국의 영역에 침범하는 마물들이 많아졌는데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우리가 북방의 생태계를 책임지던 서리 일족을 굴복시키지만 않았어도, 황실이 저렇게 난리를 치는 일은 없었겠지.”

“…….”

“…….”

대장로의 표정이 대번에 거북하게 변했다.

대장로만이 아닌, 자리에 있는 라데우스 직계들 모두의 표정이 비슷했다.

“우리가 하는 건 그들을 굴복시키며 얻은 막대한 이득에 대한 리스크를 짊어진 것뿐이다.”

“죄송합니다, 가주.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카이젤은 손을 저어 대장로의 말을 물리고 다시금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고 보니, 서리 일족 하니 생각나는군. 교류의 증거로 가문 소속으로 들인 족장의 딸은 지금 뭘 하고 있지?”

그 말에 대답한 건 라데우스 내부 지원국의 국장 펠릭스 라데우스였다.

“클로이아 블루벨벳이라면 얼마 전, 자신의 보직을 변경하는 것을 요청하여 리브라로 보냈습니다.”

“리브라로?”

“네. 그녀가 먼저 리브라의 교수로 임용해 줄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뜻밖의 말에 카이젤의 눈이 잠깐이나마 가늘게 변했다.

인질이나 다름없는 그녀에게 비밀 서고의 관리를 맡긴 건 바로 카이젤 본인이었다.

“이유는 뭐지?”

펠릭스는 이번 질문엔 살짝 뜸을 들이며 답했다.

“그게, 아무래도 네르하 도련님 때문인 것 같습니다.”

“네르하라고?”

움찔!

‘네르하’라는 이름이 장내에 언급되자마자 자리에 있던 몇 명의 눈가가 대번에 꿈틀거렸다.

펠릭스는 이전, 그녀가 비밀 서고를 열었던 일. 그리고 그곳에서 네르하의 존재를 발견했던 일 등을 카이젤에게 세세하게 알렸었다.

그 말을 듣자 지금껏 감정의 변화가 없던 카이젤의 표정에 드디어 약간의 흥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설마 그 아이가 네르하를 선택했다는 건가?”

“정황상 그렇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다른 곳도 아니고 리브라로 갈 이유가 없으니까요.”

사실, 클로이아가 자신이 관리하던 비밀 서고의 논문을 빼돌린 정황이 있었지만 펠릭스는 그걸 입 밖으로 내서 스스로 화를 초래할 인물이 아니었다.

카이젤은 재밌다는 듯 묘한 웃음을 지었다.

“큭큭큭! 아르바가 들었으면 절대 네르하를 가만히 두지 않겠군.”

“…….”

아르바 세타 라데우스.

라데우스의 삼남이자 카이젤을 따라 이번 원정을 함께한 가문의 젊은 중역.

지금은 원정의 뒤처리를 위해 북방에 남아 있다지만 그가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반응이 어떠할지 예상하지 못할 이는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흠, 그래. 클로이아가 네르하를…… 그건 좀 신선하고 충격적인 사건이군.”

똑, 똑, 똑.

“무모한 도박인가, 아니면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한 진가를 알아챈 것인가?”

옥좌의 팔걸이를 두들기는 카이젤의 표정엔 어느새 작은 미소가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카이젤의 둘째 부인 유리아 예르브피엘레트 라데우스의 표정이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만, 네르하와 클로이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던 카이젤은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어차피 곧 있을 일정 가운데 리브라에 들르는 날이 있지 않던가?”

옆에서 기립해 있던 비서가 빠르게 대답했다.

“예. 곧 리브라에서 올해 기수에 대한 무기 수여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카이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무기 수여식만큼은 가주가 직접 가서 응원해 주는 게 오랜 전통이었지…….”

카이젤의 시선이 앞줄 가장 구석에 있는 존재에게로 향했다.

“로젤리아.”

“예. 가주님.”

조용히 침묵하던 셋째 부인 로젤리아 라데우스가 공손히 읍했다.

“요즘, 네이하의 성취는 좀 어떻지?”

네이하의 이름이 언급되자 자리에 있던 후계 중 몇몇의 표정이 대번에 불편하게 변했다.

로젤리아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아직 아이인 네이하가 얼마나 노력했다고 성취라고 할 만한 것을 이루었겠습니까?”

“말장난은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몇 레벨이지?”

그 말에 로젤리아의 표정이 조금 더 진해졌다.

“이전에 확인하셨듯이 아직 4레벨에 머물러 있습니다. 다만 얼마 전, 염화동토의 술식을 완벽하게 구현해 내었답니다.”

“호오?”

그 말은 카이젤과 몇몇 원로들에게선 놀라움을, 그리고 직계 몇몇 에겐 질시를, 그리고 다른 여러 이들에겐 두려움과 경탄을 자아냈다.

염화동토(炎火凍土)는 염열 계열과 빙하 계열의 술식이 혼합된 일종의 듀얼 캐스팅을 말함이었다.

그것도 온전한 4레벨의 술식 두 개를 엮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으니 그건 즉, 네이하의 성취가 슬슬 5레벨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열네 살에 벌써 5레벨에 근접했다라?”

5레벨이면 리브라의 졸업반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고, 바깥 마법계에선 당당하게 계파를 인정받을 수 있는 정위 마법사라 할 수 있었다.

“기대할 만하군.”

“……! 네이하도 가주님의 말씀에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인 공식적인 자리에서 가주가 직접 ‘기대’라는 말을 꺼낸 건 절대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었다.

대번에 로젤리아의 표정에 장미 같은 화사한 미소가 일어났다.

보통은 표정 관리를 하며 주변의 반응을 살폈을 그녀였지만, 그걸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카이젤의 한마디는 그녀를 기쁘게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표정은…… 카이젤의 이어진 한마디에 그대로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네이하가 그 정도라면, 네르하도 기대할 수 있겠군.”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네, 네르하……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전까진 실망만 안겨주었다지만, 그 폐관 수련도 성공적으로 끝냈고,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지 않겠나?”

“그, 그건!”

그 폐관에서 살아남은 네르하의 태도가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걸 알아챈 로젤리아였지만 가주가 관심을 둘 정도로 극적으로 달라졌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무엇보다 네르하의 그 폐관 수련에 의아함을 가진 이가 적지 않아서 말일세.”

“네? 그,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로젤리아의 표정에 어리둥절함이 생겨났다.

그 순간, 다른 직계들이 그런 그녀의 표정을 아주 유심히 살폈다.

‘저게 연기라면 주연상감이군.’

그녀는 진심으로 ‘자신은 네르하의 폐관에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실, 그게 진실이었지만 아무래도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녀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카이젤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 한번 확인을 해 봐야겠지. 네르하가 정말로 달라졌는지, 아니면 외부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한 것에 불과한 건지.”

“무, 물론 당연한 일입니다.”

그 순간, 로젤리아의 이마에 굵은 땀이 흘러내렸다.

비록 자신이 관여하진 않았다지만 가주가 직접 리브라로 가서 네르하를 평가하겠다는데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끝났군.’

‘흐응, 굳이 손을 쓸 필요도 없었나?’

‘괜히 헛일만 했군.’

짙은 그녀의 동요에 몇몇 이들이 속으로 조소를 지었다.

아마 로젤리아의 수작질이 탄로 났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럼 네르하의 성취를 한번 확인해 볼까? 만약 네르하가 날 놀라게 할 정도로 발전했다면 녀석과 그대에게 큰 상을 내리도록 하지.”

“그, 그건…….”

“다른 이들은 이 결정에 불만이 있나?”

식은땀을 흘리는 로젤리아를 향해 둘째 부인 유리아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전혀 없습니다. 자랑스런 동생이 후계를 훌륭하게 길러냈는데 오히려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 뒤를 이어 몇몇 원로들이 찬성의 뜻을 밝혔다.

“라데우스의 아픈 손가락이 씻은 듯이 나았다면 축하를 할 일이겠지요.”

연이은 찬성에 카이젤은 마지막으로 첫째 열 정중앙에 있는 귀부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엘은?”

“그 말이 사실이라면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첫째 부인이자 대부인(大夫人), 시엘 라데우스까지 조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카이젤은 고개를 숙인 로젤리아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남겼다.

“아주 기대되는군.”

덜덜덜!

로젤리아의 등이 공포로 인해 떨리고 있었다.

* * *

네르하는 자청해서 지옥 굴로 들어온 알페온에게 친한 척 어깨동무를 했다.

“어서 와라. 새로운 도전자는 언제나 환영이니.”

“아, 네, 넵!”

“헌데.”

네르하는 살짝 의심스러운 눈으로 손가락을 들었다.

“저 녀석들을 보면 알겠지만 내 훈련은 절대로 쉬운 게 아니야.”

네르하가 가리킨 손가락의 끝에는 여전히 마보 자세로 괴로워하고 있는 루시아와 바스톤이 있었다.

“꿀꺽!”

알페온의 목젖 부분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기초 체력도 없는 네게 처음부터 저렇게 시키진 않지. 하지만 어느 정도 각오는 해야 해. 난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거든.”

“무, 물론입니다, 형님!”

알페온이 주먹을 꾹 쥐었다. 녀석의 표정엔 묘한 열망이 깃들어 있었다.

“요즘, 신입생들 사이에 소문이 하나 돌고 있습니다.”

“뭐를?”

“이번 기수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그리고 낼 것이라 평가받는 이가 형님과 루시아 양이라는 것을요.”

“호오?”

누가, 그리고 언제 그런 소문을 낸 건지는 몰라도 평가 자체는 꽤 정확했다.

“그,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지금 하고 있는 지옥 같은 단련이라고…….”

“지옥이라고 알려져 있긴 하네.”

저 옆에서 루시아가 이런 말을 작게 중얼거렸다.

네르하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끝을 흐렸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세 명의 단련은 딱히 시간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오후 일과 시간이 끝나면 고산지대인 이곳, 리브라 곳곳을 누비며 다양하게 두 녀석들을 굴려 대었다.

어떨 때는 권력을 이용해 외출증을 끊고 절벽 등반까지 수시로 다녀왔으니까.

가히 외부에서 보면 지옥이란 말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그걸 보고도 같이할 생각을 했단 말이지?’

네르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알페온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응? 이 자식?’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지만 알페온의 눈이 어느 순간, 루시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설마…….’

이전, 입학 시험 당시 루시아에게 치근덕거린 것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이놈, 설마 불순한 동기로 찾아온 것이었나?!

루시아를 바라보는 녀석의 눈에 꿀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다.

진실을 알아챈 네르하는 묘한 눈으로 알페온을 바라보았다.

‘아니 뭐, 딱히 상관이 없긴 해.’

오히려 동기가 불순한 편이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놈도 나름 재능은 나쁘지 않아. 다만 그렇다 해도 지금부터 시작해서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군.’

하지만 앞으로 품어야 할 이들은 이런 알페온보다도 더 신체 조건이 열약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자신이 이곳 리브라에서 ‘네르하 사단’을 만들 생각이라면, 기초조차 없는 이들까지도 궤도에 올릴 수 있는 체계화된 로드 맵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었다.

즉 이곳, 리브라에서의 교육만이 아니라 자신을 따르면 다른 녀석들보다 확실하게 강해질 수 있다라는 그런 확신을 심어 줘야 한다.

‘이 녀석이라면 어쩌면 좋은 본보기가 되어 줄지도.’

거기까지 생각이 든 순간, 네르하는 알페온의 어깨를 꽈악 붙잡았다.

“좋아. 각오만 되어 있다면 널 이번 기수 최상위권으로 만들어 주는 건 일도 아니지.”

“저, 정말입니까!”

“물론 좀 괴롭긴 하겠지. 허나 그걸 잘 참아내 근육이 알차게 붙으면, ‘이성’에게 인기도 많아지지 않겠어? 특히 넌 얼굴이 제법 반반한 편이니까.”

“……!”

‘이성’이란 한 마디에 알페온의 눈이 돌아갔다.

그것으로 네르하는 녀석이 완전히 넘어왔다는 걸 알아차렸다.

“형님!”

“오냐!”

“절 강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좋다. 나만 따라와라! 네가 바로 나, ‘네르하 사단’의 첫 번째 훈련병이 될 거다!”

루시아와 바스톤을 제치고 왜 첫 번째인지가 의문이었지만 알페온은 지금 그걸 크게 신경 쓸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

“쯔쯔쯧.”

“악마.”

루시아와 바스톤은 열정을 불태우는 알페온을 향해 측은한 시선을 던졌다.

그것은 제 발로 지옥으로 걸어 들어온 불쌍한 중생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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