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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32화 (32/237)

32화

<마나 블래스트 (1)>

네르하가 알기로, 로젤리아는 상계 출신이라고 들었다.

그것도 대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대한 상회의 외동딸.

라데우스 가문, 그것도 가주와 결혼하는 이의 신분이 낮을 리가 없지만 그래도 상계 출신이라는 건 마법사들에겐 선입견 및 백안시 당하기 십상이었다.

로젤리아는 그에 대한 반동으로 라데우스 가문 내에서 권력을 얻길 원했다.

일단은 네르하가 수집한 정보는 그러하긴 한데.

‘그건 모르지. 애초에 그럴 마음으로 이 가문에 들어온 건지, 아니면 들어와서 그런 마음을 먹었는지는.’

뭐가 되었든 이 몸의 생모다.

그러니 뭐가 되었든 ‘네르하’의 업을 이은 이상 존중해 주는 것이 도리였다.

―네르하.

“네. 말씀하세요, 어머니.”

권력을 위해서라면 어떤 길이든 걷는 강철의 여인.

그것이 네르하가 이전, 로젤리아를 처음 보았던 첫인상이었는데…….

―그, 리브라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요?

“네?”

―어떻게, 수업이나 수련은 잘되어가고 있는지…….

“…….”

네르하는 묘한 위화감에 잠깐 대답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평범한 안부 인사였으나 그 말투가 전에 알던 로젤리아답지 않았다.

묘하게 조심스럽고 눈치를 보는 말투.

평소의 그녀라면 라데우스의 이름값에 어울리는 활약을 했는지, 네이하의 뒤를 받쳐 줄 수 있을 정도는 되는지, 그런 식으로 안부를 물었을 것이다.

“어머님,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아, 그건.

로젤리아의 표정이 눈에 띄게 흐려졌다.

그 모습을 본 네르하 역시 덩달아 심각해졌다.

‘이러면 용건을 꺼내기가 좀 힘든데?’

네르하는 바스톤의 속사정을 로젤리아에게 알리고 한 가지 계략을 간언할 생각이었다.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제법 괜찮은 이익과 함께 바스톤의 가문을 휘하로 들일 수 있었기에 나름 자신 있게 연락해 본 건데.

‘분위기가 이래서야.’

서로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려고 할 때, 로젤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르하.

“말씀하십시오.”

―이번 리브라에서 예정된 수여식에 대한 준비는 어떻습니까?

네르하는 피식 웃으면서 반문했다.

“준비라, 당연히 크게 가장 활약할 자신이 있습니다. 어머님께선 제가 어땠으면 좋으시겠습니까?”

생각보다 훨씬 패기 있고 자신만만한 모습.

로젤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로선 네르하의 이런 모습이 나름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자신감이…… 많이 늘었군요.

“이젠 그럴 만한 실력이 되니까요.”

―네르하.

로젤리아는 뭐가 그리 불안한지 계속해서 네르하의 이름을 불렀다.

―리브라에 들어가기 전에 스스로 동굴에 들어가 수련을 했었죠.

“그렇습니다.”

―그건…… 네르하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 나온 것이 확실합니까?

“…….”

그 말이 있고서야 네르하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 뒷사정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약간의 뜸을 들인 네르하는 살짝 가라앉은 어조로 답했다.

“당연합니다. 다시 하라면 눈앞에서 다시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거짓은 없겠죠?

“물론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어머님을 속여 무엇 하겠습니까?”

네르하의 표정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제야 로젤리아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정말로 성취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다행이에요.

“다행이라는 말씀은 만약 거짓이었다면 다행이 아닌 일이 벌어졌을 거라는 뜻이로군요.”

―눈치가 빠르군요. 정말로 예전의 네르하가 아닌 것 같아요.

정말로 아니니 그녀의 안목은 정확했다.

그녀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르하, 이번 수여식에 가주께서 참가하십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어미가 해 줄 말은 이것뿐입니다.

로젤리아의 안색은 정말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네르하는 대부분의 전말을 파악했다.

‘직접적으로 내용을 전달할 수 없는 제약을 당했군. 아마 가주가 날 직접 보고 뭔가를 시험할 생각인가?’

애초부터 이쪽을 주목하고 있었다면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네르하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아버지에게 최고의 기대감을 품게 할 것이니까.

“어머님.”

―말하세요.

“만약 제가 이번 수여식에서 방해를 뚫고 가주님의 눈에 든다면,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시겠습니까?”

-……!

‘방해를 뚫고’

로젤리아가 조금 감탄한 어조로 말했다.

―가능한 것이라면 뭐든 들어주죠.

“어머님께도 딱히 손해는 아닌 일일 겁니다.”

이건 굳이 늦게 말해서 초를 칠 이유가 없었다.

네르하는 바스톤과 관련된 정보, 그리고 배커의 계파에 대한 추측을 로젤리아에게 전달했다.

네르하의 말이 끝나자, 대번에 그녀의 표정이 흥미롭게 변했다.

―과연 그 추측이 사실이라면 둘째 형님의 세력에 타격을 가할 수도 있겠군요.

“진실을 알아보는 것에 대해선 그리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그건 이 어미가 책임지고 해결하죠. 네르하는 앞으로 있을 수여식에 모든 심력을 다하세요.

이것으로 바스톤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었다.

로젤리아라면 충분히 페레이라 가문을 안전하게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페레이라 가문에 신경 쓸 수 없을 정도로 바멜 일파를 뒤흔든 다음 주머니에서 물건 빼내듯 빼 오겠지.

―몇 번이나 강조하는 거지만 네르하, 그대에게 닥친 시련은 정말 심각한 정도입니다. 부디 허세나 거짓이 아니길 바랍니다. 평소라면 이 어미가 손을 써 주겠으나…….

“아무래도 그건 무리겠죠. 가주께서 직접 오시는 것일 테니.”

―…….

“네이하에게 안부나 전해 주세요.”

로젤리아는 순간, 네르하에게 뭐라 말하려고 입술을 오물거렸지만 곧이어 한숨을 내쉬며 네르하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렇게 모친과의 면담을 마친 네르하는 피식 웃었다.

“일이 재밌게 돌아가네?”

“누군가가 가주에게 충동질을 한 모양이네요?”

지금껏 숨어 있던 클로이아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마법을 본격적으로 익힌 지금이라면 알 수 있었다.

그때, 네르하가 해제한 결계는 고작 3레벨 정도가 아니었음을.

‘아마도 어림잡아 5레벨 수준. 가주가 이 사실을 보고받았다면 당연히 어이가 없었겠지.’

뭐, 그렇게 급한 사안은 아니니 시간이 얼추 지난 지금에서야 겸사겸사 확인해 볼 생각일지도 모른다.

“어머님이 상당히 좋아하시겠는데?”

“어째서요?”

“내가 가주의 마음에 쏙 든다면, 정확히는 가주가 보고받은 내용이 타당하다면 당연히 역풍을 맞은 놈들이 생길 테니까.”

그놈들의 정체는 십중팔구가 아니라 그냥 십으로 네르하의 적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의 ‘작업’ 역시 충분한 탄력을 받겠지.’

계산을 끝낸 네르하는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이거, 어머님을 생각해서라도 대충하면 안 되겠는데?”

“언제부터 그리 효심이 지극하셨다고?”

“천하제일의 효자임을 증명할 기회가 왔군.”

사악하게 웃는 네르하를 바라보며 클로이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그 이후의 리브라 생활은 그리 큰 굴곡 없이 평탄한 나날을 이어갔다.

학사는 내, 외부적으로 수여식에 대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생도들 역시 나름대로 준비를 해 가며 큰 사고를 치지 않고 수련에만 몰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여식까지 고작 일주일을 앞두고 제법 큰 이벤트가 발생하였는데.

‘왔군.’

제법 고생해서 재료를 얻어 내었던 영약, ‘마나 블래스트’가 완성된 것이다.

‘다행히 장난친 부분은 없는 것 같군.’

청아한 박하 향이 네르하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단순히 향에만 그친 것이 아닌,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공정을 거쳐야 나타나는 화려한 영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피어올랐다.

사방이 마법적인 처치로 밀폐된 공간.

그곳의 유일한 입구에서 범상치 않은 인상의 노인이 네르하를 향해 주의를 주었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밖으로 빼돌렸다간 설사 자네라도 중벌을 면치 못할 거야.”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마나 블래스트의 가치가 가치인 만큼, 이것의 전달자는 다른 교수나 조교도 아닌 무려 부학장인 네슬렉이었다.

게다가 복용 장소도 기숙사 같은 곳이 아니라 모든 신입생들이 분리된 아공간 내부였고, 이곳에 격리되어 복용이 끝날 때까지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네슬렉이 네르하에게 말했다.

“특히 자네와 루시아의 조는 십여 년 만에 나온 최상급 마나 블래스트의 복용자들이지. 중요한 데이터를 확보할 기회라 특히 세심하게 관찰한다는 점을 이해해 주게.”

“…….”

네르하는 거부하고 싶었지만 학사 규칙까지 들먹이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아마 저게 이유의 다는 아니겠지.’

마나 연공법. 즉, 운기조식의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은 단순히 실력을 보이는 것과는 입장이 다르다.

특히 영약을 복용한 직후에 보이는 운기조식은 복용자의 ‘미래’를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

리브라는 아마 이번 기회에 신입생들 개개인이 가진 재능의 척도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생각일 것이다.

‘어쩔 수 없지. 기운은 나중에 천천히 흡수할 수밖에.’

네르하는 자신에게 배정된 좁고 어두컴컴한 공간에 틀어박혀 가부좌를 틀었다.

현재의 실력을 보일 수는 있어도 미래의 밑천까지 털릴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해야지. 적당히.’

지금은 절반 정도만 흡수하고, 나머지는 세맥 곳곳에 보관해 두었다가 나중에 때를 봐서 흡수한다.

네르하는 그런 생각과 함께 마나 블래스트를 입에 넣었다.

* * *

“시작됐군요.”

약 몇 분간의 간격이 있고 나서야 신입생 전원이 자신들에게 지급된 영약을 입에 넣고 연공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몇 명이나 되는 ‘후보’를 건지게 될까요?”

그리고 대부분의 교수들이 그런 그들의 감시 겸 보호를 위해 아공간 제어실에 모였다.

파괴학 마법 교수, 레이첼 루비아이가 눈을 빛냈다.

“설사 리브라 출신이라 해도 본가의 진신 무력 부대에 배속되는 이는 극소수. 저들은 과연 그 사실을 알고 있을런지.”

리브라를 어떻게든 졸업하면 라데우스 가문에 중용받는다고 알고 있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백여 개로 나뉜 화면을 관찰하고 있던 다른 교수가 그 말을 받았다.

“모르지. 바로 윗기수는 열 명 정도가 나왔었는데 이번 기수는 어떨지. 싹수를 알 수 있다면 지금일 텐데…….”

물론 그 열 명이 모두 예상대로 성장하는 것도 아니었다.

최종적으로 본가에 직행할 수 있는 이는 한 기수에 다섯 명 이내.

그때, 갑자기 환영학 담당 교수인 일루엔이 나지막하게 불평을 터트렸다.

“바빠 죽겠군. 이번에 교체된 라데우스 본가의 관리자들을 접대하느라 시간을 또 허비하고 말이야.”

그 말에 대놓고 동의는 없었어도 긍정의 침묵이 잠깐 교수들 사이에 맴돌았다.

“그런데 괜찮을까? 원래 본가에서 따로 관리자가 나온 적은 없었잖아?”

원래 리브라의 심처에는 라데우스 가문의 비고와 연결된 장소가 있었다.

수여식이 진행되는 장소인 만큼 평소에도 라데우스에서 파견된 실력자들이 관리를 하곤 하는데, 어째서인지 수여식을 앞두고 관리자들이 싹 교체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본가 지침이라는데 어쩔 수 없죠.”

“꺼림칙하군. 신분은 전부 확실하다 못해 유명한 이들이 맞는데 왜 굳이 안 하던 짓을 하는지 모르겠군.”

교수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그런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레이첼이 화제를 전환할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눈을 빛냈다.

“잠깐. 저것 좀 봐 봐요.”

“응?”

레이첼의 지적에 교수들의 눈이 한곳으로 향했다.

“……엥?”

“저거, 뭐야?”

레이첼의 손가락이 가리킨 화면을 바라본 교수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곳엔 허공에 붕 떠서 공중 부양을 하고 있는 네르하가 있었다.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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