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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34화 (34/237)

34화

<라데우스 무기 수여식 (1)>

라데우스의 가주가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절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리브라의 전 인원이 모여 환영식을 열었고, 신입생들은 물론 상위 기수들 모두가 성벽 및 입구 쪽에 배치되어 가주와 그 일행을 맞이했다.

네르하를 비롯한 신입생들은 모두 성벽 쪽에 배치되었는데, 그것에 대해 루시아가 의문을 제시했다.

“네르하 도련님께선 밑으로 가시지 않는 겁니까?”

네르하가 답했다.

“지금, 나는 리브라의 일개 생도일 뿐이지.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직계 대우를 받으면 오히려 내 입장이 곤란해져.”

그건 지금까지 리브라를 거친 역대 모든 직계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게다가 난 더더욱 조용히 박혀 있어야만 하는 처지라서.”

“그렇군요.”

루시아가 작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문의 지위를 벗고 리브라의 ‘일개 구성원’이 되었기에 외부의 간섭을 물리치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번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날 줄 알았던 루시아의 질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도련님의 부친이신 가주님께선 어떤 성격이십니까?”

“그건 좀 곤란한 질문이군.”

네르하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말해 주고 싶어도 딱히 기억이 없단 말이지.’

게다가 루시아의 질문은 자칫 잘못하면 라데우스의 가주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한 스파이 짓으로 비칠 수 있었다.

네르하가 보기엔 그럴 생각으로 물은 건 아닌 것 같았지만 네르하 역시 어떻게 대답하냐에 따라 처지가 크게 곤란해질 수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정석적인 답변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거대 가문의 주인은 가정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지.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야.”

그 말에 루시아는 살짝 시무룩하게 되물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까?”

“당연하지. 설사 애정을 품고 있다 해도 그것을 대놓고 표출할 수 없는 입장이다.”

네이하처럼 어린 나이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면 그것을 칭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그 이상을 넘어 개인적인 감정으로 편애를 보이는 순간, 가문 내부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개판이 나고 만다.

‘과거 한나라 말기 하북의 패자였던 원소가 딱 그랬지.’

게다가 지금의 라데우스 가문은 후계 경쟁을 하는 직계만 무려 아홉 명이나 존재하는 막장과도 같은 상황이다.

“뭐, 표현이고 나발이고 부인이 셋이나 되는데 가정적인 성격일 리가.”

“푸훕!”

아주 자그맣게 지나간 네르하의 중얼거림에 루시아가 이유 모를 폭소를 내뿜었다.

그 덕에 주변의 모든 시선이 이쪽으로 쏠려 버렸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주변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루시아 스플릿하트. 네 추태가 가주님이나 다른 본가 분들의 눈에 띄는 순간 우리 모두가 연좌제에 걸릴 수도 있어.”

역시 성벽에 같이 배치된 제크론이 눈을 부라리며 루시아를 노려보았다.

“크흠, 죄송합니다.”

루시아는 헛기침을 하며 재빨리 표정을 관리했다.

주변 시선이 좋지 않은 걸 그녀도 느꼈는지 네르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내려앉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닫았다.

‘감정 조절이 능숙하군.’

단순히 표정 변화만이 아니라 내면의 마음이 인위적으로 차갑게 가라앉히는 기술의 영역.

루시아의 은밀함이 네르하의 안목을 기만할 정도가 아니라면 아마 저건 후천적으로 익혔을 것이다.

‘살수의 기술. 여러모로 저 녀석의 가문이 궁금해지는데?’

후보군은 몇 있지만 단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네르하는 여기서 더 루시아의 가문을 추리해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상황이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라데우스의 행렬이 점점 리브라에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서 오십시오, 가주님.”

학장, 루트비히 라데우스와 부학장인 네슬렉 라데우스가 성문 앞에서 카이젤을 맞이했다.

“간만에 뵙는군요, 숙부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카이젤의 어조는 정중했다.

루트비히 라데우스는 전대 가주의 동생으로, 마법적 성취가 뛰어나 50대 초반으로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이제 일흔을 넘어섰다.

설사 가주라 해도 어느 정도 예의는 갖춰야 할 상대였다.

“허허허, 저야 소일거리나 하면서 어린 녀석들이 크는 걸 지켜보는 낙으로 살고 있지요.”

고개를 끄덕인 카이젤이 옆을 바라보았다.

“네슬렉 부학장도 간만에 뵙는군요.”

“가주님의 은덕 덕분이지요.”

카이젤과 네슬렉의 시선이 한순간 허공에서 부딪쳤다.

하지만 그 시선은 아주 짧게 지나갔을 뿐이었다.

한차례 서로 공치사를 한 루트비히와 네슬렉은 카이젤을 리브라 안으로 안내했다.

카이젤이 리브라 안에 들어서자 그 뒤로 둘째 부인 유리아와 셋째 부인 로젤리아, 그리고 직계에 속한 이들과 그들을 호위하는 은색 로브를 뒤집어쓴 이백여 명이 뒤를 따랐다.

‘엄청나군.’

네르하는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기세를 느끼며 감탄했다.

‘하나같이 기도가 정갈하고 날카롭게 벼려져 있다. 저게 바로 가주 직속 라데우스 가문의 최정예들인가?’

마치 대문파의 장로급 이상들만 모였던 대마교전 결사대가 떠오를 정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선 가주.’

네르하는 슬쩍 눈을 돌려 루트비히의 안내를 받고 들어가는 카이젤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역시 지금으로선 그 강함이 읽히지 않는군…….’

머르딘이란 노인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머르딘이 원숙한 느낌으로 기도를 가렸다면, 그는 머르딘보다도 훨씬 강렬하고 야성적인 투기로 자신의 힘을 숨겼다.

결론적으로는 현재 네르하의 역량으로는 카이젤의 진짜 힘이 어느 정도인지 예측이 되지 않았다.

‘……!’

그때, 카이젤이 고개를 홱 돌려 성벽 쪽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의 끝에 네르하가 있었다.

‘내 시선을 읽었다 이거지?’

한순간 네르하와 카이젤의 눈이 마주쳤다.

지금, 네르하는 가문 특유의 은발을 가리는 모자를 쓴 탓에 카이젤이 그 시선을 네르하라고 단정하고 쳐다보진 않았을 것이다.

그 말인즉,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에서 탐색의 의미를 정확히 낚아챌 정도의 실력자라는 소리였다.

씨익!

카이젤이 네르하를 향해 한차례 웃어 주었다.

빙긋!

네르하 역시 약간 입꼬리를 뒤틀어 마주 웃어 주었다.

“무슨 일이시오, 가주?”

카이젤의 그런 기행에 옆에 있던 루트비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조금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을 따름이지요.”

“그렇죠. 이번 수여식은 꽤 재미있을 겁니다.”

“……?”

옆에서 부학장 네슬렉이 맞장구치자 루트비히의 표정은 더욱더 알쏭달쏭하게 변해갔다.

카이젤은 속으로 누군가를 불렀다.

‘넥스.’

―예. 가주님.

카이젤과 심령이 연결된 백령대의 수하 한 명이 가주의 부름에 답했다.

카이젤은 간단하게 용건을 말했다.

‘이곳 리브라에서 네르하가 어떻게 지냈는지 자세히 알아 오너라.’

―명을 받듭니다.

스스슥!

행렬에 참가했던 흰색 로브를 입고 있던 자들 중 누군가가 귀신같이 홀연히 사라졌다.

‘이 나와 눈을 마주쳤는데도 움찔하는 기색 하나 없이 마주 웃다니.’

이전의 네르하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장족의 발전이었다.

마치 내면의 영혼이 다른 이로 바뀌었다고 생각될 정도의 변화.

‘건방진 놈이로다.’

하지만 네르하를 타박하는 카이젤의 입가엔 오히려 은은하게 미소가 맺혀 있었다.

* * *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창 카이젤과 본가의 사람들을 환영하고 있을 때.

어둠이 가라앉은 리브라의 어느 지하에서 불청객 몇몇이 자리를 마주했다.

“라데우스의 가주가 왔다.”

서로 로브를 뒤집어쓴 탓에 생김새를 파악할 수 없었지만 그들은 서로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 수는 모두 다섯.

개중 리더로 추측되는 사내가 정보를 풀었다.

“호위로 백령대 일부를 데리고 왔더군. 일가도 제법 데리고 왔고. 참 언제 봐도 화려한 양반이야.”

“놈의 위치를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다.”

“크흐흐, 원수가 눈앞에 왔구만.”

불구대천의 원수.

그들이 속한 조직이 지난 세월, 라데우스에 시달려 온 걸 생각하면 이 표현은 당연했다.

“클클클, 그럼 암살할까?”

노인으로 추측되는 자의 입에서 ‘암살’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몇몇이 눈살을 찌푸렸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고작 이 전력으로 어설프게 움직였다간 카이젤의 근처에 가기도 전에 리브라에 감지되어 추살당할 거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위해 우리 셋은 이곳에 자리 잡으려 10년을 쏟아부었다. 그 세월을 헛수고로 만들 셈인가?”

주변의 타박에도 노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후계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지.”

“…….”

이게 바로 노인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 순간, 짧은 침묵과 함께 다른 이들이 노인의 말에 진지하게 가능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더는 단호했다.

“우리가 지금 암살 따위나 하러 이곳에 잠입한 게 아닐 텐데?”

그럼에도 노인은 집요했다.

“둘째 년의 도움 덕에 임무 자체는 거의 성공 단계 아닙니까? 일이 터지는 순간, 우리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럴 바엔 거하게 사고 하나 더 치고 화려하게 가는 게 좋죠. 크흐흐흐!”

“흐음…….”

노인의 말이 의외로 정곡을 찔렀는지 리더로 추측되는 사내가 살짝 침음을 흘렸다.

그제야 그도 노인의 말에 귀가 솔깃한 듯했다.

“어떻게, 누구를 노릴 생각이지? 목표를 잘못 노렸다간 오히려 후계 구도가 더욱 단단해질 수도 있다.”

“그건 바스텔이나 루드빅이 아닌 이상 누구든 마찬가지. 후계 구도를 망가뜨린다기보단 자라나는 새싹을 잘라 낸다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노인의 말에 리더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지금 상황에서 ‘자라나는 새싹’이 가리키는 이는 단 하나뿐이었다.

“네르하 라데우스를 말하는 건가?”

“가장 최고는 네이하 라데우스지만 그 여아는 이곳에 온 것 같지 않으니……. 그나마 접근하기 수월한 쪽이 더욱 좋겠죠.”

그 말에 다른 이들이 동의했다.

“확실히 가문에서도 내놓은 놈이니 뒤탈도 그나마 적겠지.”

물론 아무리 병신이라도 직계를 암살하면 라데우스 가문이 미쳐 날뛰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그래도 다른 이들보단 그나마 뒤탈이 적었다.

회의의 주제가 어느새 네르하의 암살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네르하 라데우스를 노린다면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굳이 놈을 죽일 필요도 없지.”

한 사내의 말에 주변에 있던 자들이 씨익 웃었다.

“나도 방금 그 방법이란 게 떠올랐는데 말이야.”

“‘그분’에게 놈의 육체를 숙주로 바치자는 것 말인가?”

이들이 이번에 리브라에 잠입한 건 무기 수여식과 관련이 있었다.

정확히는 라데우스 보물전에 잠들어 있는 ‘누군가’를 깨우기 위해서였다.

“네르하 라데우스는 분명 이번 수여식에 참가할 게 분명할 테고.”

“놈의 수여식 도중에 그분이 깨어나도록 유도할 수 있다면.”

“놈의 실력으로는 절대 그분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

“라데우스 직계의 육신이라면 그분도 흡족해하실 거다.”

“자기 자식이 잡아먹히는 걸 아비의 눈앞에서 보여 주는 재밌는 여흥이 되겠지. 큭큭큭…….”

상상만 해도 즐거운지 그들은 하나같이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크, 크흐! 아주 재밌고 획기적이군. 그대로 진행하자고.”

“케프렌 놈들만 좋게 만들어 주는 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악마전(Pandemonium)의 강림을 위하여.”

“위하여.”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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