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라데우스 무기 수여식 (2)>
무기 수여식을 이제 막 하루 앞둔 때.
리브라와 라데우스의 마법사들은 수여식이 진행되는 장소를 끊임없이 점검하며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었다.
“이쯤 하면 충분한 것 같은데…… 상층부도 너무하군요. 수여식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눈을 떼지 말라니.”
몇 날 밤은 잠들지 못해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한 한 마법사가 불만을 터트렸다.
하지만 묵묵히 그들을 지휘하던 한 노마법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수여식 도중에 사고가 나서 목이 잘리는 것보단 낫지.”
“끄응!”
그는 주변을 빼곡히 에워싸고 있는 전투 마법사들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만약 사고가 난다면, ‘호위’라는 명목으로 붙은 저 전투마법사들이 그 호위대상인 자신들을 먼저 갈아 버릴 것이다.
노마법사가 피식 웃으면서 젊은 마법사의 어깨를 두들겼다.
“지금 사고가 나면 수습할 수 있지만 수여식 때 사고가 나면 수습도 불가능해. 저기, 저놈들이 너와 나의 목을 가져갈 거다.”
“누가 그걸 모릅니까? 그냥 피곤해서 불평 한번 해 봤습니다.”
저들은 라데우스 본가에서 파견 나온 정예들.
같은 본가 소속이어도 관리에 특화된 자신들과 다르게 저들은 오래전에 이곳 리브라를 정식으로 수료한 진짜 전투 마법사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어차피 보물전 관리는 본가에서도 따로 하는 데다 여긴 그냥 소환진을 관리하는 것뿐 아닙니까?”
그 말에 노마법사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내가 지금까지 이런 어리석은 놈을 부하로 부리고 있었다니…….”
뻑!
젊은 마법사의 후두부에 노마법사의 주먹이 꽂혔다.
“악!”
“잘 들어라, 이 멍청한 놈아.”
노마법사가 엄준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아무리 본가에서 철저히 관리한다고 해도 이곳에 소환되는 게 무엇인지와는 완전히 별개인 문제다.”
“그, 그렇죠.”
“그런데 라데우스의 보물전에는 단순히 강력하기만 한 아티팩트만 있는 게 아니야. 자아가 봉인된 에고 웨폰(Ego Weapon)들도 심상치 않게 있고, 무엇보다 마기가 깃든 1급 봉인 지정 물품들도 상당수 존재한단 말이다.”
가장 위험한 건 그 둘이 섞인 경우다.
“만약 그런 물건들이 소환되면 어떻게 되겠냐. 응? 리브라 생도들 중에 변장한 마족이 있거나 우연히 사고가 터져서 갑자기 그런 게 튀어나오면?”
“지금까진 그런 적이 없었지 않습니까? ‘페레스’의 눈을 피해 가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없었다고 앞으로도 없으리란 법은 없지. 한번 터지면 감당이 안 되는 사고니까.”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관련 담당자는 모조리 사형이고, 리브라에 속한 대부분의 교수들이 옷을 벗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거다. 설사 불가항력인 사고가 터져도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 정도는 있어야 살아남을 일말의 희망이라도 생기지 않겠느냐?”
“옳은 말씀입니다.”
젊은 마법사는 풀이 죽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노마법사가 다시금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네놈은 젊고 재능이 충분하니 이곳에서 몇 년만 고생하면 보물전의 일급 관리자로 승격할 수 있을 게다.”
보물전의 일급 관리자면 라데우스에서도 나름 방계 대우를 받는 괜찮은 직책이었다.
사실상 외부 가문 출신으로는 오를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직책이나 다름없었다.
“그, 그래야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노마법사의 격려에 젊은 마법사는 그제야 힘을 얻고 작업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그래. 좋은 말이야. 지금까지 없었다고 앞으로도 없으리란 법은 없지.’
그런 관리 마법사들 사이에서 약간 음침한 인상을 지닌 한 마법사가 은근히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앞으로 벌어질 일의 첫 희생양이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야.’
열심히 마법진을 조작하고 있는 그의 손에는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은밀한 마기가 깃들어 있었다.
* * *
“후욱, 후욱!”
수여식을 하루 앞둔 지금, 최근 들어 언제나 붐볐던 단련실은 다시금 쥐 죽은 듯 조용해진 상황이었다.
‘대부분은 이제 체력을 보존하고 자기 방에서 정신을 가다듬겠지.’
그런 상황에서 여전히 덤벨을 들고 스쿼드로 정신 집중을 한다는 한 거구의 청년.
“후욱, 후욱!”
네르하는 눈에 핏발이 선 채로 운동을 계속하는 바스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젠 얘가 마법사인지 전사인지 좀 헷갈리기 시작하네.’
그리고 그 옆에서 비슷한 짓거리를 하는 한 소녀.
“정시이이인 통이이이일!”
손과 발에 철근 추를 달고 목검을 휘두르는 루시아.
“여긴…… 뭐 하는 곳인가요?”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기괴한 광경에 넋을 놓고 있는 클로이아.
“뭐긴. 육체 단련실이지.”
“여기가 리브라가 아니라 검의 낙원이었던가?”
검의 낙원은 최고의 검가인 케프렌에서 후원하는 일종의 아카데미로, 뛰어난 검수와 기사를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곳이었다.
즉, 리브라와는 경쟁 관계인 장소였다.
“검의 낙원? 그런 곳이 있었어?”
네르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흥미롭군. 언제 한번 가 보고 싶은데?”
“댁이 그곳에 가면 전쟁이 일어날걸요?”
거의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는 라데우스와 케프렌의 관계를 고려하면 그럴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나저나, 여긴 무슨 일이야?”
“왜긴요? 준비는 잘되어가나 궁금해서 와 봤지.”
클로이아는 단련실 근처에 마련된 의자에 털썩 앉으며 푸념했다.
“에휴, 고향에서 남자들이 군대 두 번 간다는 말에 진저리를 쳤을 땐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 그 마음을 이해하고 있군요.”
“교수가 이렇게 생도 하나 때문에 와도 돼?”
“애초에 내가 이런 촌구석까지 온 이유가 그것 때문인데요, 뭐.”
그래도 이제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시간대인 지금이 아니면 만나기가 힘들긴 했다.
“그래서, 어때요?”
클로이아의 말에 네르하는 빙그레 웃었다.
“어제 환영식에서 살짝 보니까 어머님께서도 오셨더군.”
“그래서요?”
“이제 곧 보시겠지. 자식의 달라진 모습을.”
자신감 넘치는 네르하의 말에 클로이아는 살짝 김빠진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됐으면 좋겠네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금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네르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왜 그래?”
“뭐랄까. 기분이 뭔가 뒤숭숭해서요.”
“내가 실수라도 할까 봐?”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니라…….”
약간 농담을 섞어 말해 봤지만 의외로 클로이아의 표정은 심각했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요 며칠, 꿈자리가 뒤숭숭하기도 하고.”
“…….”
그 말에 네르하의 표정 역시 덩달아 심각해졌다.
“그런가?”
“그렇죠.”
“심각하군요.”
어느새 옆에서 검을 휘두르던 루시아까지 근처까지 다가와 화제에 동감하고 있었다.
“……무슨 뜻입니까? 저만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정신을 가다듬던 바스톤이 역기를 내려놓고 뚱한 표정을 지었다.
네르하는 왕따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바스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클로이아 정도의 실력자라면 스쳐 가듯 지나가는 감각도 무시할 수 없지.”
루시아 역시 거들듯이 네르하의 말을 이었다.
“북방 서리 일족은 이전부터 마족을 때려잡는 유명한 항마(降魔) 일족으로 이름이 높아요. 그런 일족의 일원이 불안감을 느꼈다면, 어쩌면 마족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죠.”
“마족이라고?”
“물론 이곳, 리브라에 마족이 나타난다 해도 어지간한 녀석이라면 날뛰기도 전에 제압당하겠지만요.”
리브라의 무력은 전 대륙을 통틀어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정말 마왕급 마족이 나타나거나 떼거리로 쳐들어오지 않는 이상 리브라가 어떻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모든 사정을 들은 바스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그렇다는 건 교수님 본인이나 주위보단 먼 곳에 있는 누군가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다는 겁니까?”
무심코 내뱉은 바스톤의 발언에 클로이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녀에게 있어 먼 곳에 있는 누군가라면 자신의 일족들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니, 잠깐? 너무 앞서 나가는데.”
한숨을 내쉰 네르하는, 벌떡 일어난 클로이아의 어깨를 부여잡고는 다시 자리에 앉혔다.
“네가 전에 말했잖아. 가주님의 북방 원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그랬죠.”
“그런 상황에서 너희 일족에게 해가 될 일이 뭐가 일어나겠어?”
“…….”
“설사 만에 하나 일어난다 해도 네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야.”
클로이아가 네르하를 노려보았다.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군요. 제가 당신을 따르는 가장 큰 이유인데.”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일이 생긴다면 네가 해야 할 건 걱정하고 슬퍼할 게 아니라 확실하고 철저하게 복수를 계획하는 거다.”
“…….”
마치 직접 겪어 봤다는 듯 느껴지는 생생한 감정에 클로이아는 잠시 말문을 잊었다.
“그래도 정보 정돈 알아봐야지. 너와 내 힘이라면 북방의 정보 하나 알아보는 것 정도는 쉬울 거다.”
“그렇군요. 제가 경솔했어요.”
클로이아는 쓴웃음을 내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설마 아르바, 그 작자는 아니겠지?”
“응? 무슨 소리냐?”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클로이아는 다급히 손을 저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 도련님 말씀대로 정보 좀 알아보러 가 볼게요. 내일 있을 수여식엔 반드시 참석해서 활약을 지켜볼 테니 좋은 모습 보여 주세요.”
“그건 걱정 말라고.”
네르하는 손을 흔들며 클로이아를 배웅했다.
* * *
다음 날.
천여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든 가운데 리브라의 일대 이벤트, 무기 수여식이 열렸다.
네르하는 주변을 빼곡 메운 인파를 보며 생각했다.
‘많기도 하군.’
마법사들만이 아니라 리브라에 있는 모든 이들이 몰려든 것 같았다.
마법사는 아니더라도 이들 모두가 라데우스 가문과 연을 맺고 있는 이들인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네르하는 그들 중에서 나름 젊은 층들이 몰려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저들이 윗기수인가?’
리브라는 4년제이며 매년 입학생을 받아들이지만 정작 신입생들이 윗기수를 직접 본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네르하는 그들의 표정을 살피고는 살짝 의아해했다.
‘딱히 눈빛이 호의적이진 않은데?’
그들이나 저들이나 딱히 만난 적이 없을 텐데도 오히려 적대감이 느껴지는 시선이다.
‘어째서 윗기수와의 접촉을 의도적으로 막는지는 몰라도, 뭔가 이유가 있겠군.’
네르하의 전투적인 시선이 그들 모두를 담았다.
‘언젠간 너희들도 전부 잡아먹어 주지.’
네르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바스톤이 한숨을 쉬면서 주변을 바라보았다.
“이건 완전 공개 처형이 따로 없군요.”
거대한 원형경기장 안에 마법으로 된 열 개의 화면이 존재했고, 그곳 하나하나에 이번 수여식에 참가하는 신입생들의 모습이 담길 예정이라 한다.
“글쎄다?”
다수의 이목을 받아본 경험이 적은 바스톤과는 다르게, 네르하의 의견은 달랐다.
“누군가에겐 기회의 장이 되겠지. 이렇게 가문의 상층부가 한 번에 모인 자리는 절대 흔하지 않을 테니까.”
리브라를 졸업하고 라데우스 가문에 소속되는 건 어디까지나 끝이 아닌 시작이다.
여기서 상층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뻥 뚫린 출셋길이 열릴 수도 있었다.
“누군가에겐 어쩌면 평생에 단 한 번 있을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
“딴엔 그렇군요.”
“너흰 자기 걱정이나 해라. 저기 있는 멍청이들처럼 괜히 긴장했다가 수여식 말아먹지 말고.”
주변에 있는 신입생들 중에는 과도한 압박감에 호흡을 제대로 고르지 못하고 기절 직전에 처한 녀석들도 있었다.
네르하의 말에 근처에 있던 루시아가 피식 웃음을 내지었다.
“절 뭘로 보고.”
“네 가능성은 인정한다만 그래도 아직은 애송이지.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변수에 삼켜지기 딱 좋은 시기야.”
네르하 나름의 정성이 담긴 충고였다.
“명심하죠.”
네르하는 고개를 끄덕이는 루시아에게서 시선을 돌려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마침 첫 차례가 너로군.”
카이젤과 루트비히의 독려 연설과 기타 잡다한 일정이 지나고, 드디어 무기 수여식의 시작을 알리는 첫 타자들의 차례가 왔다.
-루시아 스플릿하트
-배커 라데우스
그들 중에는 루시아, 그리고 배커의 이름이 있었다.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