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37화 (37/237)

37화

<판데모니움 (1)>

어째서 마기를 지닌 자들이 이곳에 스며들어 왔는가?

라데우스 가문과 흑마법사 사이의 역사적 관계를 고려하면, 절대로 좋은 뜻으로 기어들어 오진 않았을 것이다.

“……네르하?”

“네르하 도련님?”

대기실에서 나가는 네르하를 몇몇 이들이 불러 세우려고 했지만 그 짧은 사이 카이젤이 손을 썼는지 교관 몇몇이 신입생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당연하지만 네르하를 붙잡는 이는 없었다.

‘적이 수여식을 이용해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다면 내게 주어진 한나절의 시간을 모두 쓸 수가 없다.’

네르하는 천천히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하며 생각에 잠겼다.

‘적들의 예상 목표.’

확실하게 하기 전에 일단 예측부터 해야 시작점을 잡을 수 있었다.

일단 가능성 이전에 가장 큰 성과인 것.

‘가주의 암살, 불가능.’

이곳, 리브라가 모두 적으로 돌변하지 않는 이상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곳에 잠입한 흑마법사들이 전부 마교의 장로급이라면 모를까.

‘리브라의 붕괴, 불가능.’

같은 이유로 리브라의 붕괴 역시 불가능하다. 내부에서 무너뜨리기엔 그만한 세력이 잠입하기에도 쉽지 않고, 이미 카이젤과 그 호위들의 병력의 무력이 막강하다.

‘국지적 타격, 가능성 있음.’

타격 대상을 리브라, 그것도 생도들로 한정한다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굳이 이런 때를 고른 것은 악수다.

리브라에 혼란을 불러올 생각이라면…… 네르하 본인이라면 학기가 중순을 넘어 분위기가 살짝 풀어졌을 때 하나둘씩 사고사로 처리할 것이다.

리브라의 실전 훈련에선 충분히 사망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으니까.

‘만약 이것도 아니라면?’

현재 상황에서 가장 개연성에 적합하고 지금이 아니면 일을 벌일 수 없는 것.

‘보물전.’

멈칫!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네르하의 신형이 멈칫거렸다.

보물전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

‘보물전 전체를 노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만약 그 안에 잠들어 있는 특정한 무언가를 찾는다면?’

네르하는 방금 전 상황을 상기하며 가능성을 점쳤다.

‘가주가 데려온 전력은 지금 모두 관람석에 투입되어 있다. 리브라의 전력 또한 귀빈들과 일반인들의 호위를 위해 대부분이 수여식이 열리는 홀의 주변에 포진되어 있지.’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인스턴스 던전을 관리하는 제어실이 위험에 노출된다.

물론 그 허점을 알아채고 일을 벌이려면 리브라의 관계자 정도는 되어야 하고, 관계자라면 얼마든지 다른 방향으로 일을 벌일 수 있으니 사실상 그다지 의미가 없는 가정이긴 했다.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 일을 벌인다면 지하 제어실이겠지.’

지하 제어실은 만약에 사고가 터져도 관람석에 여파가 미치지 않게 하려고 꽤 거리가 있는 곳에 설치했다.

그런 만큼 일이 터져도 한동안 다른 이들의 눈을 가릴 수 있었다.

* * *

스스슥!

네르하의 천잠은형술(天暫隱形術)이 극성으로 펼쳐지며 제어실의 방비를 뚫었다.

“……이런.”

역시나 예상대로 제어실 입구에 설치된 알람과 방비 마법이 울리지 않았다.

아무리 네르하의 은잠술이 천하일절이라 하나 마교의 환마(幻魔)처럼 세상의 법칙을 속일 수준이 아닌 이상 마법의 감시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뭔가 이상한데.’

네르하는 휑한 내부 광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구가 뚫렸다기엔 전투의 흔적도 없고 또 지나치게 깨끗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원인을 알아차렸다.

‘내부에 배신자, 혹은 협력자가 있었군.’

아마 입구 쪽에만 이런 인위적인 모습을 연출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나 다를까, 약 5분 정도 안쪽으로 들어가자 네르하는 그제야 널브러진 시체를 볼 수 있었다.

십여 명에 이르는 경비병 및 마법사들이 차가운 시체로 변해 있었다.

‘기습에 당했어. 방어 흔적 하나 없이 깨끗하게 당했군.’

교전을 벌였다기엔 주변 흔적 역시 매우 깨끗했다.

즉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십여 명에 이르는 인원이 깔끔하게 당했다는 뜻.

‘마기의 질은 그렇게 높진 않아. 그래도 일격에 이들을 전멸시켰다면 방심은 금물.’

네르하는 최대한 주변을 경계하며 제어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으아아아아!”

“음?”

누군가의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를 듣고는 그대로 속도를 높였다.

“후, 아주 늦진 않았군.”

네르하는 그대로 중앙 제어실을 향해 달렸다. 주변에 뭐가 있든 상관하지 않았는데, 다행히 함정이나 경비 마법이 발동하진 않았다.

그렇게 네르하가 중앙 제어실에 도달했을 때.

“스, 스승님, 정신 차리세요!”

“오, 이런. 얌전히 목을 내밀었으면 서로 좋지 않았나, 빌.”

치명상을 입고 죽어가는 한 노인과 그 노인의 신형을 부여잡고 있는 젊은 마법사.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이번 일의 흑막으로 보이는 검은 로브의 괴인이 킬킬거리며 그들을 조롱하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배신자가!”

“아니지. 아니지. 배신자가 아니라 처음부터 적이었다는 걸 왜 똑똑한 마법사 나으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나?”

검지를 흔들며 상대를 조롱하던 괴인이 말을 이었다.

“얌전히 제어실의 남은 권한을 넘기게. 이미 가장 중요한 보물전과의 연동 코드는 우리 손에 있으니 굳이 반항해 봐야 헛것 아니겠나?”

“헛소리하지 마라!”

빌이라고 불린 마법사가 노성을 내질렀다.

“관리자들의 권한이 모두 모이지 않으면 보물전의 기능은 변경할 수 없어. 수여식이 모두 끝나고도 보물전의 기능이 닫히지 않았다는 걸 알면 리브라에서 이상을 눈치챌 거다. 그러면 너희는 끝이야!”

“잘…… 알고 있구나…….”

“스승님!”

거의 죽어가던 노인이 힘없이 말을 내뱉었다.

“절대 내어주지 마라……. 죽어도 사수해라. 그게…… 관리자의 의무이니라.”

노인의 말에 빌은 각오를 다진 자의 눈빛을 보였다.

“쯧! 그럼 죽여서 빼앗아야겠군. 귀찮게…….”

스르륵!

괴인이 손을 한 번 휘두르자 허공에 어둠으로 일렁거리는 수십 개의 창이 나타났다.

“아무리 자네가 5레벨이라 해도 전투직이 아닌 이상 이걸 막을 수는 없지. 마지막으로 묻지. 얌전히 권한을 이양하면 둘만은 살려 주겠네. 어떻게 하겠나?”

“뒈져, 개자식아.”

“아쉽군.”

어둠의 창이 빌과 노인을 향해 그 날카로운 창끝을 겨누었을 때.

“뒈져, 개자식아.”

푸욱!

“컥!”

괴인은 자신의 가슴을 뚫고 나온 누군가의 손을 바라보며 눈을 부릅떴다.

“어?”

“무, 무슨?”

갑자기 급변한 상황에 빌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경악했고.

일격에 심장이 꿰뚫린 괴인 역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을 기습한 자의 이름을 허무하게 부르고는…….

“네, 네르하…… 라데우스?”

털썩!

그대로 절명했다.

“네, 네르하 라데우스? 아, 아니, 네르하 도련님! 여긴 어떻게!”

“잘 버텼군.”

괴인을 일격에 즉사시킨 네르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저곳 관리자들로 보이는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비릿한 혈향이 코끝을 계속해서 자극했다.

“생존자는 너희 둘뿐인가?”

“아, 아? 스, 스승님! 스승님!”

둘이란 말에 빌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스승인 노인을 바라보았다.

“아, 회, 회복 마법. 회복 마법이라면 아일다 선배…….”

빌의 말이 뚝 끊겼다.

이곳 제어실에서 생존자는 단둘뿐이었다.

아일다라는 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아마 저기 널브러진 시체 중 하나일 가능성이 컸다.

“아, 안 돼…….”

빌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려던 찰나.

네르하는 한숨을 내쉬면서 빌의 신형을 밀어내었다.

“비켜 봐라.”

빌을 밀어낸 네르하는 노인의 상세를 살폈다.

다행히 노인은 기절했을 뿐 아직 죽은 것은 아니었다.

‘급소는 피했지만 출혈이 너무 심하군. 이대로 내버려 두면 10분 안에 죽는다.’

수여식이 진행되는 장소엔 당연하지만 회복 마법이 전문인 마법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그곳에 데려가기만 하면 노인을 살릴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리하면 네르하의 계획은 물론 모든 일이 엉망이 돼버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옮기는 동안 노인의 생명이 버틸지도 미지수였다.

‘할 수 없지.’

네르하는 그대로 손가락으로 노인의 혈도 몇 군데를 점혈했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노인의 상처 부위에서 흘러나오던 핏물이 멎기 시작했다.

“스, 스승님!”

“조용히.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네르하는 자신의 손을 펼쳐 노인의 장심에 얹었다.

‘원래 이러면 뒷감당을 할 수 없긴 하지만.’

중원이 아닌 이곳이라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쩌저적!

네르하의 손이 시퍼렇게 물들면서 빙백신공(氷白神功)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허, 허억?!”

순간, 어마어마한 한기가 몰아닥치더니 노인의 몸이 순식간에 얼어 버렸다.

빌은 그것의 본질을 알아차리곤 노인이 얼어 버린 것보다도 네르하가 펼친 수법 자체에 경악했다.

“이, 이건 마나의 성질 변환? 어, 어떻게?”

“잘 들어라.”

빌이 놀라든 말든 네르하는 녀석을 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바로 이 노인을 치료할 순 없다.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지. 지금은 이대로가 최선이다. 이해했나?”

빌 역시 라데우스에 속한 마법사.

곧장 네르하의 말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죽은 이 녀석의 정체가 무엇인지, 목적이 뭔지 네가 알고 있는 건 전부 말해라. 그래야 다음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예, 옙! 전부 말하겠습니다.”

빌은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자는 제 라데우스 입단 동기인 세머스라는 자입니다.”

“동기라고?”

“예. 빌레우스 학파 소속인 4레벨의 마법사에, 암호 마법에 두각을 보여 3급 서고 관리자로 특채가 되었죠.”

빌레우스 학파가 뭔지는 몰라도 아마 제법 이름 있는 학파일 거라 짐작이 되는데, 그게 이 녀석의 진짜 정체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2년 전에 저와 함께 보물전의 2급 관리자로 승진했고, 몇 주 전에 수여식 담당자 중 한 명으로 리브라에 파견 나왔습니다.”

“본가의 인사 담당자들을 모조리 물갈이해야겠군.”

“저, 저도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이놈이 사실, 정체를 숨긴 흑마법사였을 줄이야.”

그것도 4레벨 정도가 아니라 5레벨. 어쩌면 6레벨일 가능성도 있었다.

“이놈이 혼자 일을 벌이진 않았을 텐데? 다른 놈들이 더 있었나?”

“네, 네! 관리자와 호위들을 기습한 세머스 외에 외부에 동조자가 세 명이 더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여식을 감시하고 있는 한 명이 더 있다고 했습니다.”

“일단은 다섯인가?”

소수로 일을 벌이기엔 딱인 숫자이긴 했지만 그 이상의 인원이 있을 거란 가정하에 움직여야 했다.

“이놈 외에 다른 놈들은 어디로 갔지?”

“수여식이 진행되는 장소로 갔습니다. 보물전의 소환 권한은 아직 전부 빼앗기진 않았지만 인스턴스 던전의 제어권을 가져갔으니 그 안에서 일을 벌일 겁니다.”

네르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놈들의 목적이 뭐길래 던전 안에서 일을 벌인다는 거지?”

빌의 입에서 예상은 했어도 막상 들으니 짜증 나는 적들의 목적이 흘러나왔다.

“보물전에 잠들어 있는 아티팩트 중 어느 마왕급 마족이 봉인된 ‘망각의 서’라는 것의 봉인을 풀어 그 마족을 세상에 내놓을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