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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39화 (39/237)

39화

<판데모니움 (3)>

‘판데모니움이라…….’

클로이아를 통해 이름 정도는 들어 본 기억이 있다.

‘쓰레기, 병신,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야 할 미친놈들의 집단…… 이라고 했나?’

그 당시, 클로이아는 아주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온갖 편견 섞인 말을 내뱉곤 했다.

덕분에 당시 클로이아의 욕설 어휘 능력이 얼마나 풍부한지 알게 되었다.

“질이 나빠 마법계에서 배척당한 놈들과 흑마법사들이 뭉쳐 나타난 집단. 라데우스의 척살 대상 2순위라고 했던가?”

“예. 정확합니다.”

그들이 척살 대상 2순위인 것은 오로지 세력이 약해서일 뿐. 기본적으로 대제국과 도시국가 수준 정도의 세력 차이가 나서 혐오할지언정 그리 심각한 위협은 아니라고 한다.

중원으로 치면 무림맹과 하오문 수준의 격차라고 보면 되려나?

“어쨌든, 작전은 간단해. 내가 던전에 숨어든 놈들을 막는다. 그 사이 놈들이 던전을 생성한 장소. 즉, 퇴로가 어디인지를 찾아내면 된다.”

놈들은 굳이 던전을 회장 내에서 진입할 필요는 없다. 리브라 어디에서라면 아공간 던전을 만들 수 있으니까.

“그, 그건…….”

“왜, 자신 없나?”

표정을 보니 자신이 없는 것 같았다.

만약 저 녀석이 불가능하다고 하면 다른 녀석을 찾아야 한다.

“가능은 하겠지만 전자전은 제 전공이 아니라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또한, 놈들의 퇴로를 찾는 순간 상층부와 연계하여 그 장소를 일거에 습격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 도련님 외엔 상층부와 연락을 맡아 줄 사람이…….”

“흠, 그건 확실히 좀 문제긴 하군.”

“게다가 세머스가 죽은 이상, 놈들이 눈치를 채서 이곳에 다시 찾아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간이 없는 데다 명확한 목적이 있으니 전부 오진 않겠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를 대비해 이곳에 최소한의 경비 병력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그 경비 병력은 세머스에 의해 전멸한 상태.

역시 즉흥적으로 세운 계획은 구멍이 송송 뚫려 있다.

네르하는 ‘끄응’ 하며 앓는 소리와 함께 고민에 잠겼다.

하지만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

“……네?”

“그 두 가지를 한번에 해결해 줄 녀석이 지금 이곳에 오고 있으니까.”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날카로운 창끝이 네르하의 머리를 덮쳤다.

홱!

제어실 바깥에서 날아온 창은 어째서인지 끝 날이 양 갈래로 갈라져 있는 기형적인 모양이었다.

네르하는 그 공격을 가볍게 피하고는 창대를 낚아채며 창의 주인을 향해 웃어 주었다.

“창술을 따로 익힌 적은 없는 거로 아는데, 제법 괜찮은 찌르기구나, 배커.”

“네르하, 이게 무슨 상황이지?”

제어실에 나타나 네르하에게 일격을 가한 이는 다름 아닌 배커 라데우스였다.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수여식 도중일 터인 네가 어떻게 여기로 온 거냐?”

“……수여식은 끝났다. 그 대가로 얻은 게 이 창이고.”

네르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배커가 얻은 창을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신기(神器)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절품.

만약 배커가 이 창의 힘을 제대로 끌어낼 수 있었다면 네르하는 창대를 부여잡는 순간 반탄기에 의해 그대로 튕겨져 나갔을 거다.

그야말로 배커에겐 많이 과분한 녀석이었다.

‘내가 창술사라면 배커를 죽여서라도 빼앗고 싶었을 정도로군.’

네르하가 한참 감탄하고 있을 때, 배커가 거칠게 창을 회수하며 말했다.

“가주께서 이곳으로 오면 네놈을 만날 수 있을 거라 하셨다. 자, 내 차례다. 지금 이 상황은 뭐냐?”

“흠, 대충 설명해 주지. 두 번은 말 안 할 테니 잘 들어라.”

네르하는 수여식에서 마기를 느낀 것에서부터, 지금 이 상황에 이르기까지 배커에게 대략적으로 설명을 해 주었다.

배커 역시 라데우스의 마법사인지 대번에 인상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다.

“판데모니움? 그 쓰레기들이 이 일에 개입되었다고?”

“쓰레기라도 실력은 무시하지 못할 놈이었다. 정면으로 싸웠으면 꽤 귀찮았을 거야.”

네르하는 자신이 시체로 만든 세머스의 머리를 발로 툭툭 차며 이렇게 말했다.

“마침 잘됐군. 가주님께서 널 부려 먹으라고 보내신 것 같은데 시기적절하게 아주 잘 와 주었어.”

“내가 너 따위의 말을 들으라고?”

“싫으면 가주님께 가서 따지든가.”

카이젤의 이름을 팔자 배커의 입이 단숨에 다물어졌다.

네르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할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 녀석의 호위.”

네르하의 손가락이 빌에게 향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가주님과 나를 잇는 전령 역할.”

“설마, 너 혼자 놈들을 추적할 생각이냐?”

배커는 이해력이 좋아 대번에 말귀를 알아들었다.

“미쳤군. 아무리 그놈들이 쓰레기라지만, 실력은 우리 같은 초짜가 상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대번에 배커의 얼굴에 불신감이 생겨났다.

하지만 네르하는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맡아야 할 놈은 아마 셋 정도일 거다. 아마 이곳엔 많아야 한둘이 찾아올 테니 네가 알아서 잘 맡아라.”

“난 한둘인데 네놈은 셋이라고?”

“그게 현재 너와 나의 눈높이 차이지.”

대번에 배커의 눈가에 쌍심지가 켜졌다.

도발이 아주 훌륭하게 먹힌 것 같으니,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싸우겠지.

네르하는 피식 웃으며 배커에게 말했다.

“돌아가서 저 노인을 치료할 수 있는 의료진과 호위를 보내도록 조치하지. 그럼 그 사이 저 녀석의 호위를 부탁한다, 베커.”

“흥,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할 거다!”

“그래그래,”

* * *

수여식이 중간 정도 진행되었을 때, 네르하가 돌아왔다.

네르하가 카이젤에게 보고를 하기도 전에 카이젤이 먼저 네르하에게 의사를 보냈다.

―인사 담당자들을 전부 갈아야겠군. 저런 벌레들이 기어들어 온 걸 걸러 내지 못했으니 말이야.

‘역시 알고 있었나?’

라데우스의 가주인 카이젤에게 붙은 수식어는 ‘대륙 최강의 마법사’.

아무리 네르하의 기감이 초월적이라 해도, 이 시대의 최강자라고 한다면 당연히 현재의 네르하보다도 더욱 민감한 기감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벌레‘들’이란 말을 쓴 걸 보면, 아마 네르하가 발견한 자는 물론 이곳 장내에 있는 흑마법사 전원을 포착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 성과는 있었느냐?

카이젤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엔 은은한 분노가 섞여 있었다.

네르하는 자신이 알아 온 것들을 카이젤에게 전달했다.

카이젤은 네르하의 보고를 듣고는 살짝 턱을 괴었다.

―망각의 서라, 꽤 귀찮은 물건을 탐내는구나.

―아시는 물건입니까?

카이젤이 기억하고 있는 거라면 보통 물건은 아닐 것이다.

―역사서에서 읽은 기억이 있지. 이전, 마왕의 자리에 도전했던 이자카르라는 마족이 봉인된 책자다. 전성기 땐 8레벨의 마법사 두 명과 겨루어도 압도하는 실력을 가졌다더군.

8레벨의 마법사가 시대에 열을 넘지 못한다는 걸 고려하면, 이자카르란 마족은 이 세계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 강자라는 소리였다.

―풀려나면 꽤나 일이 귀찮아질 텐데…….

그런데 귀찮아진다는 말과는 별개로, 카이젤의 입에는 재미있다는 미소가 맺혔다.

―네르하, 너는 내가 어떻게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보느냐?

“……!”

카이젤의 말에 네르하는 살짝 놀랐다.

바로 움직이지 않고 대안을 묻는다는 건 이런 정보를 물어 온 네르하의 활약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일단은 침묵하고 사태를 지켜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유는?

―가문, 혹은 리브라 내부에 배신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가주께서 움직이시면 그들을 잡기 힘들어집니다.

―호오? 배신자라.

카이젤의 미소가 진해졌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지?

네르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리브라는 일반적인 도시처럼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허술한 곳이 아닙니다.

뭐, 리브라 정도 되는 기관이 대도시에 있다 해도 그 보안은 엄청난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네르하가 하고자 하는 말뜻은 이게 아니었다.

―이번 일을 벌인 예상 인원은 다섯, 혹은 그 이상. 한둘도 아니고 그 정도 숫자라면 분명 리브라 내부에서 문을 열어 준 누군가가 있을 겁니다. 그게 배신자든, 아니면 단순히 이해관계에 의한 협력 관계든 상관없이 말이죠.

네르하가 기습으로 살해한 세머스가 증거였다.

세머스가 리브라에 온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고작 ‘몇 주’ 전.

그저 우연이라 보기에는 참으로 공교로운 타이밍이지 않은가?

―너는 그 배신자를 잡고 싶은 것이냐?

―적어도 단서 정도는 얻고 싶습니다.

네르하의 직감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만약 가문 내부에 이번 일을 사주한 자가 있다면 그건 무조건 자신의 적이 분명할 것이라고.

―재밌군. 타당한 추론이다. 만약 배후가 있다면 놈들을 이용해 너를 저격하기 위함이겠지.

“……!”

카이젤이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던 네르하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계획이 있다면 말해 보거라. 한번 전적으로 수용해 줄 테니.

― ……가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감히 계책 하나를 진언하겠습니다.

네르하는 아까 빌과 배커에게 말했던 계획을 그대로 카이젤에게 읊었다.

그 계획을 모두 들은 카이젤은 폭소를 내질렀다.

―하하하! 맹랑하군. 너는 녀석들을 이길 자신이 있느냐?

“가주님?”

“가주? 뭔가 재미있는 일이라도?”

“아, 아무것도 아니오.”

카이젤의 웃음에 주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을 저으며 상황을 진정시킨 카이젤은 다시금 표정을 관리하며 네르하에게 시선을 주었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회의에서 중진들에게 너를 시험한다 천명했다.

―그렇습니까?

―이전, 많은 이들이 네가 동굴 속에 스스로를 가둔 것을 두고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내게 어필하려는 수작이라고 말했지.

― …….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분명 ‘네르하’가 폐관에 든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었으니까.

―네가 빠져나온 건 어디까지나 로젤리아의 은밀한 도움이 있었다고 봤다. 그때는 그녀가 내 직속 정보 단체의 눈까지 속일 정도로 은밀했다고 생각했다만…….

씨익!

―이제 보니 그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구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해라. 가능한 최소한의 피해로 일을 해결할 수 있다면 네게 괜찮은 선물을 주마.

―알겠습니다.

네르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런 태도에 오히려 카이젤은 네르하에게 더욱 흥미를 느꼈다.

―선물이란 말에 반응하지 않는군. 욕심이 없다고 어필하는 것이냐?

―그 선물이 무엇이든 가주님의 관심보다 중요하진 않습니다.

이 말은 진실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이 물질적 보상보단 가주의 눈도장을 얻기 위해서였으니까.

‘지금이 아니면 리브라를 졸업할 때나 볼 수 있겠지. 가능한 강렬한 인상을 남겨 놔야 한다.’

카이젤은 네르하의 속뜻을 알아듣고는 모호하게 웃었다.

―후후, 맹랑한 발언이군. 네 의도를 알 것 같구나.

“…….”

―좋아. 이 일을 해결하면 선물에 더해 네 뜻 역시 기억해 두고 있겠다.

―감사합니다, 가주님.

―그럼 난 떡밥이나 한번 던져 볼까…….

카이젤이 말한 떡밥이라는 건 내부의 배신자나 협력자를 찾기 위한 행위를 일컬을 터다.

네르하는 가만히 있기를 진언했지만 이번 사건을 가문 내의 권력 투쟁으로 본 카이젤의 생각은 달랐다.

직접 움직이지 않더라도 의미심장한 말 한두 마디면 충분히 배후를 추측할 수 있을 거라 여겼으니까.

* * *

수여식이 벌어지고 있는 곳 근처에 위치한 리브라의 어느 관저.

“준비는 끝났다. 이제 인스턴스 던전을 생성해 잠입하면 모든 일이 끝난다.”

“세머스가 늦는군.”

리더의 말에 한 근육질의 남성이 인상을 썼다.

“보나 마나 제어실의 옛 동료 놈들을 가지고 놀며 죽이고 있겠지. 일의 경중도 파악하지 못하는 천치 같은 놈…….”

“그게 아니라면 제어 권한을 장악하느라 시간이 걸리고 있을 수도 있지.”

그들 모두 세머스가 당했을 가능성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모두가 몰려가 제어실과 그 병력들을 직접 ‘청소’했고, 외부에 그 사실이 흘러나가지 않게 나름 섬세하게 위장까지 했다.

“세머스의 실력과 특수 능력이라면 기습이 아닌 이상 라데우스의 가주가 와도 몸을 뺄 수 있을 정도는 될 거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시간이 너무 걸리는 건 사실이군.”

리더의 시선이 노인에게로 향했다.

“굴락, 네가 가서 세머스를 재촉해라. 어물쩡거리고 있다면 엉덩이를 걷어차 버리도록.”

“헐헐헐, 그러도록 하지요.”

“계획은 막바지다. 마쿠스의 보고로는 네르하 라데우스의 차례는 거의 마지막 순번일 것 같다더군. 우리도 슬슬 이동하도록 하지.”

리더는 차가운 시선으로 입술을 뒤틀었다.

“그 불행한 도련님에게 죽음을.”

“죽음을.”

“크흐흐흐, 죽음을.”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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