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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43화 (43/237)

43화

<주단 (3)>

당연하지만 네르하가 자신을 노린 자들이 가족이라 해서 봐주는 성격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 상황에선 반드시 이렇게 말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큭, 크크크큭……!”

“맹랑하군요. 자신감이 과도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보기 좋은 자신감이죠.”

네르하의 패기 있는 발언에 바깥에서 지켜보던 원로들의 표정에 미소가 맺혔다.

‘머리를 잘 썼군.’

카이젤은 네르하의 처신을 보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곳의 원로들은 후계들의 사정을 잘 알지. 어설픈 적대감으로 어리숙함을 보이는 것보단 이런 식으로 대범하게 넘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게 보기에도 좋지.’

무엇보다…….

“빚을 졌군.”

“…….”

“그 ‘가족’이 누구인지 몰라도 네르하가 이렇게 손을 내밀었는데 잡지 않는 건 멍청한 짓이지. 그렇지 않나, 로젤리아?”

멍하니 네르하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던 로젤리아는 카이젤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그, 그렇습니다.”

그녀의 반대편에 있던 유리아는 침착하게 표정을 관리하고는 있지만 동요를 완전히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이때가 로젤리아가 유리아를 공격할 절호의 기회였지만 그녀 역시 네르하의 예상외의 활약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슬슬 움직여야 할 때가 왔군. 아무래도 도망간 놈의 목적은 하나뿐일 테니까.”

“본가에 연락을 넣어 보물전을 봉인하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보물전을 봉인한다는 건 사실상 페레스를 폐기 처분하는 것과 같지. 그럼 비용도 그렇고 너무 일이 복잡해져.”

보물전의 특급 관리자, 페레스를 만들기 위해 들인 비용을 생각하면 쉽게 판단을 내릴 일은 아니었다.

“보물전의 가치를 생각하면 능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하의 계속된 반대에도 카이젤은 그러려니 하며 고개를 저었다.

“놈들의 목적이 명확한 이상, 굳이 일을 늘릴 필요는 없다. 첩자 놈들의 계정을 정지시키고 철저히 관리하라고만 전해. 망각의 서는 내버려 두고, 그 외의 사고가 났다간 모두 목을 칠 것이라는 말도 더해서.”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수하는 더 이상 반론하지 않고 고개를 조아렸다.

사실, 카이젤은 어느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든 페레스를 제외한 보물전의 모든 관리자들을 교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하들에게 이런 핑계를 댄 것은 지금 저 안에서 활약하고 있는 네르하의 역량이 어디까지인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커다래서였다.

“제어실에 몇 명을 보내 상황을 수습하도록 해. 그리고 ‘그녀’를 네르하에게 지원 보내라.”

“네.”

“놈들에게 남은 수라면 아마 그것이겠지. 하지만 그게 생각대로 될지는 의문이로군. 네르하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지 한번 지켜볼까?”

마지막 안배까지 마친 카이젤은 느긋하게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가스터를 방파제로 삼은 주단은 그대로 던전의 가장 안쪽으로 달려들었다.

“쿠오오오오!”

“꺼져라!”

가상 구현된 영수들이 주단을 막아섰지만 제어 권한을 가지고 있는 주단은 손짓 몇 번으로 영수들의 간섭을 물리쳐 버렸다.

주단은 던전의 마지막 장소를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신수 루드라, 그놈을 부활의 매개체로 삼아야 해.’

인스턴스 던전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허구는 아니다.

신수 루드라와 휘하 영수들은 어디까지나 실제 라데우스 가문에서 입수한 전투 기록과 영수의 파편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

‘망각의 서에 잠들어 있는 마기로 신수 루드라의 정보체를 현실에 구현할 수 있다면,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그 빠져나가는 인원은 주단 단 한 명으로 정해지겠지만…….

‘그분의 영혼을 회수하고 이곳에서 얻어 낸 리브라의 정보를 교단에 전달할 수만 있다면!’

살아남는 것은 물론 주교급으로 승진하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렇게 주단이 던전의 마지막 장소까지 도달했을 때였다.

그 어디보다 거대한 공동 내부에선 보물전의 실질적인 최고 관리자인 인공 정령 페레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보물전 2급 관리자 주단, 무슨 일로 찾아왔지?”

페레스는 주단을 2급 관리자로 인식했다.

스파이라고는 해도 정식으로 얻은 권한이니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주단은 당당하게 페레스를 향해 목적을 밝혔다.

“수여식 참여자 권한으로 클리어 보상을 요구한다.”

“…….”

페레스는 당장 대답하지 않았다.

조급해진 주단은 강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정당한’ 권한으로 10단계, 영수 루드라까지 클리어했다. 그에 따라 수여식에 참석한 자의 권한으로 아티팩트의 수여를 요구하겠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군.”

흠칫!

페레스의 말에 주단의 얼굴에 당황이 물들었다.

‘설마 실패인가? 하지만 페레스는 절대로 거부하지 못할 텐데?’

인공 생명체라 하지만 페레스는 어느 정도 감정의 표현까지 가능한 라데우스 최고 걸작 중 하나.

하지만 보물전이라는 금고의 관리자로 기능하려면 어떻게든 입력된 명령과 철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행히 그 빈틈을 꿰뚫은 주단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네놈이 룰을 어그러뜨렸다 해도 그것 역시 룰의 일부가 되었으니.”

‘됐다!’

꾸욱!

주단은 터져 나오려는 표정과 감정을 관리하기 위해 주먹을 꾹 쥐었다.

지금 이 순간, 리브라에 잠입한 동지들의 희생과 시간이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6레벨의 흑마법사, 강령술과 강신술, 그리고 소환술까지 두루 연마했군.”

페레스는 주단의 고유 계통을 대번에 꿰뚫어 보았다.

“본가에서 벌써 손을 쓴 것인가. 하나를 제외하면 모두 금제가 걸려 있군. 너에게 줄 만한 것은 이것, 단 하나뿐이다.”

페레스의 눈앞에 검은 안개가 일렁이는 책자 하나가 나타났다.

대충 보아도 무지막지한 불길함이 느껴지는 마물.

‘망각의 서!’

주단은 페레스에게서 망각의 서를 받아 내며 웃었다.

“크크큭, 아주 쉽군. 아주 쉬워!”

네르하 라데우스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격을 얻어맞았지만 결국엔 이렇게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페레스는 무감정한 어조로 주단을 향해 말했다.

“본가의 녀석들이 부르는군. 그건 꽤 위험한 물건이니 악용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그러고는 그대로 모습을 감추고 사라졌다.

“큭, 내가 무슨 짓을 할지 알고 페레스를 빼돌린 건가?”

모든 목적을 달성한 주단은 페레스가 사라진 자리를 향해 피식 웃어 주었다.

“하지만 상관없지. 애초부터 내 목적은 장악하지도 못할 인공 정령 따위가 아니었으니.”

주단은 관리자 권한을 이용해 던전 내부에 목표로 했던 녀석을 생성시켰다.

“나와라, 신수 루드라.”

지이잉!

주단의 조작에 따라 거대한 실버 드래곤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지만 나타난 건 어디까지나 자아가 없는 형태에 불과했을 뿐.

빈껍데기에 불과한 루드라는 침묵한 채 조용히 관리자의 명령을 기다렸다.

“위대한 존재시여, 지금 해방해 드리겠나이다.”

주단은 망각의 서를 펼치며 해주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이런 종류의 아티팩트는 다루기가 어려울 뿐, 봉인된 존재를 바깥으로 내보내는 건 아주 쉬운 작업이었다.

쿠오오오오!

대번에 망각의 서에 걸려 있던 봉인이 풀려나가며 그 안에서 소름끼치는 귀곡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캬아아아아악!

“위, 위대한 존재시여! 저의 인도에 따라 저 신수의 육체를 차지하시옵…… 크으윽! 왜 갑자기?!”

주단은 당황했다.

망각의 서에서 튀어나온 마족의 자아는 주단의 예상과는 다르게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그저 원초적인 본능만이 남아 살아 있는 생명체를 침식하고자 할 뿐.

“서, 설마…… 너무 오랜 봉인으로 자아가 사라져 버린 것인가?”

당황해하는 주단의 등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게 좀 신중했어야지.”

저벅, 저벅.

느긋한 발걸음 소리가 주단의 신경을 자극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는 역시군.”

“그게 무슨 소리냐, 네르하 라데우스?”

어느새 가스터를 처리하고 이곳까지 찾아온 네르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확실히 조금 의문이긴 했어. 그게 정말로 위험한 물건이었다면 과연 가주가 내게 처리를 맡겼을까 하는 의문이 말이야.”

“……!”

“너희는 그 안에 봉인된 존재의 격을 절대적으로 믿었겠지만…… 애초에 그 물건의 이름에 왜 ‘망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지 좀 생각을 해 봤어야지.”

“그, 그건!”

뭐, 그들이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건 아닐 거다.

다만 설사 봉인된 마족 이자카르가 현재까지 자아와 존재를 유지하고 있을 거란 믿음이 그 생각을 뛰어넘어서였겠지.

네르하는 자신의 추측을 주단에게 들려주었다.

“애초에 그 책은 단순히 봉인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던 거야. 봉인한 존재를 ‘그런 상태’로 만들기 위해 특수하게 제작된 물건인 셈이지.”

그러니 카이젤이 네르하에게 기회를 준 것일 터다.

“가스터는…… 어떻게 되었지?”

“내가 이곳에 온 것을 보면 모르나? 당연히 죽였지.”

“……그렇군.”

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르하는 그런 주단에게서 포기한 자의 눈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포기가 아닌, 이제 더 이상 앞뒤 생각하지 않기로 한 자의 눈이기도 했다.

“이런 상태로 조직에 돌아가 봐야 그들에게 피해만 주겠군.”

“…….”

“그렇다면 차라리…… 네놈과 함께 지옥으로 가겠다.”

망각의 서에서 풀려난 마족의 망념은 시시각각 주단의 몸을 잡아먹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리브라 어딘가에 숨어 있는 본체에까지 영향을 줄 것이고, 대번에 그 위치가 들통날 것이다.

“그 안에 네놈을 죽여주지.”

네르하는 주먹을 꾸욱 쥐었다.

“할 수 있으면.”

그러고는 무적권신으로서 활동하던 시절처럼 권격 자세를 잡았다.

“해 봐라.”

* * *

상황은 이제 막바지에 도달했다.

수여식은 이제 마지막을 향해 갔고, 바깥의 상황 역시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후우.”

그렇게 네르하와 주단이 수여식의 마지막을 장식하려던 때.

“괘, 괜찮으십니까?”

제어실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빌은 입구에서 헉헉거리며 주저앉은 배커를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다, 당연히, 괜찮지! 내, 내가 누군데!”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배커의 옆에는 이젠 시체가 된 노인 하나가 엎어져 있었다.

그는 판데모니움 소속의 흑마법사로, 시간을 끌던 세머스를 지원하려고 왔던 자였다.

배커는 그 노인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가공할 흑마력을 상기하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괜찮진 않아. 이 창이 아니었다면, 난 진즉 저 늙은이에게 당해 죽었을 테니까.”

“…….”

“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싸움이었지만 이렇게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만족해. 이게 바로 실전이군.”

배커의 창끝이 은은히 떨리고 있었다.

간신히 전투의 여파를 가다듬은 배커는 이윽고 정면을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그런데 저 괴물놈은 왜 이렇게 멀쩡해? 난 전투 한번 치르고 이렇게 넝마가 됐는데…….”

배커의 눈앞엔 주단과 대치하고 있는 네르하의 모습이 보였다.

“그, 글쎄요?”

빌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관리실에서 네르하의 모습을 지켜본 두 사람은, 무려 5~6레벨의 흑마법사로 추측되는 이들과 연전을 벌이고도 쌩쌩한 네르하의 모습에 이젠 숫제 두려움마저 느꼈다.

‘젠장, 따라잡을 수 있을까?’

막상 생각했지만, 눈으로 본 생생한 격의 차이에 배커는 아득함이란 감정을 생생하게 느꼈다.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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