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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45화 (45/237)

45화

<마무리 (2)>

콰과과과!

퍼억!

검은 용의 목덜미가 터지며 그 속에서 마기로 이루어진 검은 피가 뿌려졌다.

하지만 그 피는 주변을 밝히는 빛에 닿자마자 대번에 정화되기 시작했다.

“와아…….”

클로이아는 멍하니 그 장엄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마치 전설의 용사가 악의 용을 물리친다는 고전적이다 못해 식상한 옛날이야기.

그 모습이 마치 눈앞에 현실로 구현된 것 같은 광경이었다.

“앗!”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던 클로이아는 네르하의 신형이 빛을 잃고 지상으로 추락하는 것을 알아채고는 정신을 차렸다.

“이런!”

자리를 박차고 날아든 그녀는 간신히 바닥과 충돌해 피떡이 될 뻔한 네르하를 낚아챘다.

“맥없이 뭐 하는 거예요?”

“여력을 좀 남기고 싶었는데 실전에선 처음 써 보는 거라 조절이 잘 안 되네.”

“멋있었을 뻔했는데 분위기 다 깨고 말이야.”

클로이아는 아까 전 네르하가 말했던 대사를 그대로 돌려주었다.

“쩝.”

단 일격에 모든 마나를 소진한 네르하는 입을 다시며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방금 거, 진짜 멋있었는데 무슨 마법이에요?”

네르하를 바닥에 내려놓은 클로이아는 방금 전 나타났던 광경에 대해 물었다.

“마치 신의 창처럼 빛의 불꽃이 용의 머리를 꿰뚫었는데…… 무슨 동화 속에 나오는 용사님처럼 보였어요.”

네르하는 클로이아의 귓가에 아주 작게 속삭였다.

“마법과 기사들의 오러를 합친 마법이야.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해 줄게.”

‘오러’라는 말에 클로이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러도 쓸 줄 알았어요?”

“일단은 비밀로 해. 알려져 봤자 좋을 거 없고 다들, 방금 일격을 순수한 마법으로 알고 있을 텐데 다른 게 섞였다는 게 알려지면 임팩트가 떨어지잖아?”

“잘나셨어요, 정말.”

말은 그렇게 해도 클로이아의 놀람은 가라앉지 않았다.

오러.

기사의 상징인 ‘마나 소드’가 한 차례 더 응축되어 만들어지는 최강의 공격기.

네르하가 오러를 사용할 줄 안다는 이야기는 차라리 네르하의 마법이 5레벨에 이르렀다는 것보다도 더욱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이 사실이 새어 나가면 경우에 따라 입장이 상당히 곤란해질 수도 있을 거야.’

네르하에게 인생을 베팅한 클로이아로선 반드시 숨겨야 할 일이기도 했다.

“일단 나가자고. 뒷정리는 본가나 리브라 놈들이 해 주겠지.”

“그러죠. 간만에 급격히 힘을 써서 그런가 어깨가 뻐근하네요.”

“몇 살이나 먹었다고.”

네르하가 민감한 주제를 꺼내자 대번에 클로이아의 눈에 서늘한 냉기가 번졌다.

“……숨지고 싶으세요?”

빙긋 웃고 있지만 저건 절대로 장난이 아니었다.

“노, 농담…….”

“네르하 라데우스.”

네르하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젓던 순간, 등 뒤에서 무기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

긴장을 너무 놓고 있었던 탓일까.

‘방심했다!’

네르하는 기를 끌어올리며 빠르게 등 뒤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공 정령 페레스로군.”

“그래.”

여전히 눈꽃 사슴의 모습을 한 페레스는 어느새 나타나 무기질적인 눈으로 네르하를 직시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페레스는 보물전의 총관리자이기도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나타난 건 라데우스 가문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네르하와 클로이아가 긴장된 표정으로 페레스의 입을 주시할 때였다.

“수여식의 통과를 축하한다.”

“통과라고?”

“여러모로 변수와 편법이 있었지만 너는 10단계의 시련인 신수 루드라를 훌륭히 물리쳤다. 그에 따른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아니, 잠깐.”

네르하는 인상을 쓰면서 손을 들었다.

“나는 정상적으로 이전 단계를 클리어하지 않았어. 그 루드라란 용 역시 그랬고. 그런데도 10단계까지 통과를 인정하겠다고?”

네르하는 순간, 무지막지한 불길함과 귀찮은 일이 동시에 벌어질 거란 직감이 들었다.

페레스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 나와 라데우스 가문은 너의 활약을 지켜보며 다시 수여식을 진행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너와 ‘가문’이 말이지?”

“후후후…….”

수여식에서 일어나는 모든 판단은 오로지 페레스 혼자서 결정한다.

그런데 페레스가 굳이 가문의 이름을 끼워 넣은 건, 실질적으로 이 판단은 페레스가 아니라 가문의 의사라는 것.

“보아라. 네가 이번 수여식으로 받을 아티팩트다.”

스스스스!

페레스의 눈앞에 전에 없던 휘황찬란한 빛이 튀어나오더니 그 빛은 이윽고 검은빛으로 반전되며 둥그런 구슬의 형상을 이루었다.

그 구슬을 본 순간, 네르하는 자신이 느낀 불길함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야, 잠깐…… 어이……! 야!”

페레스는 네르하의 말을 사뿐하게 무시했다.

“지금까지 수여식에서 10단계를 모두 통과해 보상을 받은 사례는 이백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아니, 잠깐! 멈춰!”

“자, 받아라. 이것은 충분히 제1급 레전더리에 해당하는 물건이니…… 바깥에 흘러 나간다면 거대한 피를 부를 물건이다.”

그래. 많은 피를 부르겠지.

네르하가 받아들인 건 검은 ‘마기’를 흩뿌리는 구슬이었으니까.

이윽고 네르하는 분노했다.

“짬 처리잖아!”

“단어 선택이 천박하군. 이건 가주가 신중한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이다.”

가주인 카이젤까지 들먹이자 네르하의 말문이 막혔다.

“물론 그 아티팩트는 2급 물품인 망각의 서의 코어라고 할 수 있는 물건이다. 하지만 그 멍청한 흑마법사가 봉인된 마족의 자아와 융합한 뒤 소멸해 버려 결과적으로는 순수한 마기의 힘만 남아 버렸지.”

망각의 서는 본디 위력만으로 따지면 1급에 속했다.

하지만 마족에게 잠식된다는 위험천만한 리스크 덕에 2급으로 강등되었다.

“이자카르의 자아가 사라진 이상, 그 물건은 대륙의 모든 흑마법사들이 탐낼 최고의 보물이 되었다. 설사 9레벨에 이른 자라고 해도 말이지…….”

“하지만 난 흑마법사가 아니다.”

“맞다. 하지만 이에 관해 가주가 너에게 전하는 말이 있다.”

카이젤이?

네르하는 일단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충격적인 말이 페레스에게서 흘러나왔다.

“너의 융합은 무술과 마법만이 아닌, 마나와 마기의 융합에서도 답이 있다라고.”

“……!”

그 순간, 네르하는 과거 ‘신무조’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천마의 마기와 천신문의 내공이 조화를 이루어 천지신통을 이루고 다음 단계로 진입했던 그 순간을!

‘설마…….’

카이젤이 그 경지를 알고 있다는 건 정말 놀랄 일이다.

마기는 기본적으로 다른 기운과 융합을 거부하며, 이전 생의 네르하 역시 마지막 순간 어쩔 수 없이 목숨을 걸고 시도했던 일이었으니까.

“가주는 네가 가지고 있는 항마의 힘이라면 능히 이자카르의 마기를 네 힘으로 길들일 수 있을 것이라 했다.”

“…….”

“물론 바로 모든 힘을 감당할 수는 없을 테니 네 성장에 따라 순차적으로 풀리도록 조정을 거쳐야겠지. 가주는 최고의 장인들을 불러 모아 그 구슬을 글러브의 형태로 가공해 주겠다고 했다.”

보통, 현시대에 제작되는 물건이 보물전의 물건보다 질이 떨어지는 건 보편적인 사실.

하지만 그것도 경우에 따라서였다. 이만한 재료를 가지고 딱 맞는 글러브를 만든다면 어지간한 완제품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었다.

‘끄응! 끌리긴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당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군.’

본래 라데우스 가문은 마기와 마족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집안.

그런데 그런 집안의 가주가 네르하에게 마기를 사용해 볼 것을 권한다는 건 절대로 쉽게 넘겨서는 안 될 일이었다.

“확실히…… 좀 이상하네요.”

클로이아 역시 그 점을 인식했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이건 자칫 잘못하면 네르하 도련님이 덤터기를 쓸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이 상황을 보이고 있는 것만으로도 손해입니다.”

“그건 걱정할 것 없다. 흑마법사 놈이 루드라의 육체를 흡수하는 순간부터 바깥으로 송출되는 화면은 꺼 놨으니까.”

“……!”

“마지막에 네르하 라데우스가 보인 모습과 지금 이 상황을 아는 건 오로지 인공 정령인 나와 나의 마스터인 카이젤뿐이다. 걱정할 것 없다.”

카이젤도 지금 이 상황이 밖으로 새어 나가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밀어붙인다는 건 둘 중 하나.

‘이것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기대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단순한 실험 쥐 취급이거나.’

그런 걸 이 세계 말로 모르모트라고 하던가?

네르하의 눈이 살짝 가라앉았다.

생각에 잠긴 네르하의 말수가 없어지자 옆에 있던 클로이아가 적극적으로 말렸다.

“받아들여선 안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거절하면 가주의 눈 밖에 나겠지.”

그럼 후계 쟁탈전에선 완벽하게 탈락이다.

“그럼 너와 나의 약속 역시 자연스레 사라지겠고.”

“으읏!”

클로이아의 표정에 괴로움이 깃들었다.

아무리 그녀라 해도 이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짓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네르하는 그런 그녀를 보고 속으로 피식 웃었다.

‘뭐, 그런 표정 짓지 마라.’

네르하는 충분히 이 마기를 제어할 자신이 있었다.

다만 아무리 가주에게 잘 보이려는 목적이 있어도 이런 식으로 목줄이 차인다는 구도는 사양이었을 뿐이었다.

“페레스, 하나 묻지.”

“말해라, 네르하 라데우스.”

네르하는 페레스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지어야 할 리스크가 너무 커. 가주께선 이번 일을 해결하면 내게 선물을 주신다고 했지, 짐 덩이를 주신다고 하진 않았다.”

“그래서?”

“만약 네가 가주님과 소통할 수 있다면 너를 통해 이렇게 여쭙고 싶군. 내가 이 구슬을 받아들인다면 나에게 무엇을 보상으로 주실 것인지.”

“보상이라…….”

씨익!

네르하는 순간, 페레스의 사슴 면상이 웃음을 짓는 것을 보았다.

더이상 보기 싫을 정도로 소름 끼치는 모습이었다.

“네르하 라데우스, 현재 정식적인 소가주 쟁탈전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너도 알고 있겠지?”

네르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상 바스텔 큰형님으로 낙점된 상황이니까.”

장남 바스텔 로저 라데우스의 역량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주변 평가만으로도 그가 라데우스에서 어떠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때, 페레스가 네르하는 물론 클로이아의 눈까지 번뜩이게 할 제안을 날렸다.

“만약 네가 이번 ‘거래’를 받아들인다면 가주께서는 네가 리브라를 졸업하는 4년 후, 정식으로 후계 전쟁을 개최하실 거라 약속하셨다.”

“…….”

“아주 공평한 경쟁의 장이 되겠지……. 어떠한가? 이 정도면 너에게 충분한 정도의 보상이 되리라 보는데?”

“받아들이지.”

네르하의 눈이 희번들하게 빛났다.

“흥정 같은 건 할 필요도 없는 아주 완벽한 보상이군. 가주님께 매우 감사하다고 전해 드려.”

“……진지하게 패권을 노리고 있군. 그 점에선 아르바와 동일하구나.”

두말 없는 네르하의 확답에 페레스의 미소가 진해졌다.

“좋아. 그렇다면 그 구슬은 잠시 회수해 가겠다. 원하는 디자인이나 모양이 있나?”

“물론이지!”

그 이후, 페레스는 네르하의 세세하고 일방적인 취향을 듣느라 인공 정령임에도 진땀을 빼야만 했다.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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