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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46화 (46/237)

46화

<마무리 (3)>

그렇게 네르하를 마지막으로 리브라의 무기 수여식이 모두 종료되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영 좋지 못했는데, 당연히 이번 수여식의 틈을 타 잠입한 흑마법사 집단 판데모니움의 존재 때문이었다.

네르하는 현재, 리브라의 가장 심처라고 할 수 있는 학장실에서 클로이아와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바깥은 난리도 아니에요. 금기인 공간 이동 마법진까지 동원해서 본가에서 인력을 끌어오는 중이더군요.”

이곳에 오기 전까지 교수로서 나름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클로이아는 피곤해진 눈가를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사과는 물론이고, 교수들 역시 모조리 소집되어 조사받는 중이에요. 그들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이들은 죄의 유무와 관계없이 모조리 결박당해 감옥에 처박혔고요.”

특히 가주인 카이젤이 직접 참관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한바탕 거대한 피바람이 불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런 너도 교수잖아? 근데 여기 있어도 되는 거야?”

리브라에 잠입한 흑마법사들과 직접 부딪치고, 또 승리한 네르하는 이번 사건에서 완전히 제외되어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리브라 전체가 혼란스럽게 돌아가는 도중 네르하가 이곳에 있는 건 카이젤 나름의 배려이기도 했다.

클로이아가 혀를 살짝 내밀며 웃었다.

“공교롭게도 전 무죄가 입증되었거든요. 가주님의 지시이긴 해도 제가 네르하 도련님의 수하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전부 아는 모양이에요.”

그녀는 학장의 책상 앞에 놓인 접객용 소파에 몸을 던지듯이 누워 버렸다.

“그나저나 정말로 놀랍네요. 설마 가주님께서 도련님에게 그런 조건을 내거실 줄은…….”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

네르하는 그 이유 중 첫 번째로 장남 바스텔의 이상을 꼽았다.

건강이든, 심경적인 문제이든 무언가 문제가 있으니 카이젤의 마음이 돌아선 것일 터다.

그게 아니었다면 뭔가 후한 보상을 하사했을지언정 ‘후계 전쟁’을 가주의 입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겠지.

“어찌 됐든 내게 불리할 건 전혀 없어. 4년이면 내 몸은 얼추 완성 단계에 이를 거고, 그러면 충분히 어지간한 놈들은 찍어 누를 수 있으니까.”

“그 어지간한 놈들이 이번 수여식에 참석했는데 누가 왔는지는 확인하셨죠?”

“뭐, 그렇지. 다들, 조용히 있었지만 그래도 전부 확인하긴 했어.”

가주 카이젤의 근처에 있던 젊은 남녀들.

그중에서도 범상치 않은 기세를 지닌 네 명.

“마하, 루드빅, 바멜, 세티안……. 전부 나이에 비해 상당히 괜찮은 기도를 지니고 있었지.”

장녀 마하, 차남 루드빅, 사남 바멜, 삼녀 세티안.

전부 네르하와 같이 진한 은갈색 머리카락이 빛나는 라데우스의 직계들이었다.

‘모두 후기지수(後起之秀) 수준은 아니었지. 전부 리브라의 교수급, 아니, 그 이상이었다.’

보통, 무림세가의 자식들이 후계자 한둘을 제외하면 다 거기서 거기인 수준이라는 걸 고려하면 굉장한 수준이었다.

‘개중 마하나 루드빅으로 추정되는 두 녀석은 클로이아보다도 강해 보였고.’

단순히 우물 안에서 수련치만 쌓은 개구리가 아니라 수많은 실전을 거듭한 전사의 냄새가 났다.

아마 저들에겐 주단같이 어수룩한 기습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모두가 적의를 보인 건 아니었어. 날 경쟁자로 여기지 않는 건지, 아니면 지금 내 수준으로는 딱히 위협으로 보이진 않았다는 건지는 몰라도 말이지.”

마하와 루드빅이 방금의 경우에 속했다.

반대로 바멜과 세티안 라데우스는 네르하에게 상당한 인상을 받은 듯 보였다.

“그 두 사람의 뚜렷한 적대감은 놓치려야 놓칠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긴 하죠…….”

클로이아 역시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네르하의 지원 역으로 카이젤에게 부름을 받았을 때, 그들이 죽일 듯이 노려봤던 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그래도 조심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율법상 리브라 내부에선 손을 쓸 수 없어도 바깥에선 얼마든지 방법이 있으니까요.”

네르하는 대번에 그 말뜻을 알아들었다.

“외부 미션을 말하는 거군.”

“네. 수여식이 끝나면 자연스레 바로 외부 미션으로 이어지니까요.”

외부 미션은 외부 실습과는 다른 것으로, 실제 라데우스 가문의 행사에 끼어들어 실전을 겪는 것이다.

라데우스 가문에 속한 전투부대나 연합 가문에 배속되어 타 세력 간의 분쟁을 중재하거나, 혹은 정면으로 충돌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아무리 외부 미션에서 리브라의 생도는 거드는 정도에 불과하다 해도 매해 사망자가 열 명 이상씩 나오는 건 명백한 사실이에요.”

현재, 초년 차 신입생들의 숫자는 120여 명.

그에 비해 졸업반이라 부를 수 있는 4년 차 생도들의 숫자는 고작 70여 명에 불과하다.

“리브라의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도태되는 자들도 있지만 그들보단 미션에서 사망한 이들의 수가 훨씬 많죠.”

게다가 가장 많은 숫자가 희생되는 때가 바로 처음 배치되어 미숙하고 약한 신입생 때다.

‘확실히 그때가 작업을 치기 가장 적절한 때이긴 하지.’

마하, 루드빅, 바멜, 세티안.

이 중 바멜과 세티안과는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다.

아마 외부 미션에서 수를 쓰는 이가 있다면 저들이 될 가능성이 컸다.

‘아무리 이번에 둘째 어머니에게 은혜를 입혔다 해도 패권을 노리는 자가 그 정도로 움츠러들 리가 없겠지.’

어설프게 건드려 주면 그것도 나쁘진 않다.

반대로 상대의 패를 알고 전력을 깎아 버릴 기회이기도 하니까.

생각을 마친 네르하는 이참에 클로이아에게 궁금한 걸 물어봤다.

“그나저나 윗기수들이 우릴 보는 시선이 별로 좋지 않은데 뭔가 이유가 있나?”

“그거야 당연히 네르하 도련님, 당신 때문이죠?”

“……응?”

클로이아의 말에 네르하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그녀의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리브라의 혹독한 환경에서 1년을 버티고 생존했다면 어지간해선 라데우스 본가의 누군가에게 별도의 지원을 받게 되요.”

“아, 그래서였나?”

“굳이 방계가 아니더라도 보통, 가문 내의 여러 파벌들과 연관된 이들이 리브라에 많이 입소하죠.”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내게 호의적이지 않지.”

그 파벌들 대부분은 다른 직계들을 지지하고 있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사실, 이번 기수가 이상한 거예요. 보통은 그런 이들이 많이 들어오는 편인데…… 이번 기수는 배커와 제크론 라데우스를 제외하면 딱히 라데우스 본가와 관련된 이들이 유독 적어요.”

“흐음.”

네르하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걸 우연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가 미리 작업을 쳐 놨다면…….”

그렇다면 범인은 하나뿐이다.

“어머니일까?”

“로젤리아 3부인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가능성은 크겠네요.”

지금으로선 딱히 범인을 추적해도 의미가 없는 일이긴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쩝, 외부 실습에서 조금 골치 아파질 수도 있겠군.”

“그러게요.”

외부 실습은 딱히 한 학년으로만 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리브라 전체가 함께 움직이는 일이다.

보통, 하위 기수와 상위 기수가 함께 투입되며, 상위 기수는 하위 기수를 다독이고 이끌며 생존 확률을 최대한 높여 주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그건 네르하에겐 그다지 적용되지 않는 말일 수도 있었다.

“뭐, 일단 나중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지금은 수여식을 마무리하고 얻은 것들을 수습하는 것에 집중해야지.”

끄으응!

네르하는 어깨를 넓히며 기지개를 켰다.

‘마나 블래스트를 먹었어도 내력이 부족한 건 여전히 약점이군.’

물론 상대가 특이한 경우이긴 했다.

그런 거물(巨物)을 상대하는 건 쉬이 있는 일이 아니니까.

다만 고작 강기에 마법 몇 개 섞어서 썼다고 대번에 단전이 거덜 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물론 파괴력은 제법 만족스럽게 나왔긴 했지만 수법을 가다듬든지 마나의 절대치를 더 늘리든지 대책을 세우긴 해야 했다.

“마나 연공법을 완성시키는 것도 여전히 숙제로군.”

“아, 마나 연공법!”

클로이아의 얼굴빛에 대번에 화색이 돌았다.

리브라에 들어오기 전부터 네르하와 클로이아는 마법과 무술을 융합하는 자가 사용할 마나 연공법의 개발에 박차를 가했었다.

물론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는 나와서 그걸 네르하가 지금 익히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고작 몇 달간의 연구로 마나 연공법을 완성한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었다.

“일단 수여식이 끝났으니 다음 외부 미션까진 여유가 있겠지.”

마나 연공법의 연구에 눈을 빛낸 클로이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교수들은 자신들의 연구에 생도를 참여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어느 정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페널티가 있긴 해도…….”

“그거 좋군. 날 지목하도록 해.”

대번에 말을 자르고 일을 진행하는 네르하의 모습에 클로이아는 피식 웃었다.

“페널티에 대해선 전혀 신경 쓰지 않으시는군요.”

“페널티를 먹을 이유가 없으니까.”

“네이, 네이. 그러시겠지요.”

클로이아의 비웃음에도 네르하는 여전히 당당했다.

* * *

그렇게 네르하와 클로이아가 잡담을 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

“…….”

라데우스의 중요 인사들만이 머물 수 있는 리브라의 귀빈실에는 어느 젊은 남녀가 서로를 마주 본 채 오랜 시간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남녀가 모인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얼마 전, 자신들의 ‘동생’이 보였던 충격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슬슬 이 유치한 기 싸움은 그만하는 게 어때?”

그 침묵이 30분을 넘어서자 지친 은갈색의 남성이 백기를 들었다.

“딱히 기 싸움은 아닌데? 우리 바멜 오라비는 조용한 걸 싫어하나 봐?”

“비꼬지 마라, 세티안.”

바멜 라데우스는 자신의 친동생인 세티안을 향해 인상을 찌푸렸다.

“네르하가 설마 그 정도까지 성장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이건 정말로 예상 밖의 일이야.”

바멜의 말에 세티안 역시 장난스러웠던 웃음을 지웠다.

“확실히, 마지막엔 갑자기 화면을 꺼 버려서 끝까지 보진 못했어도, 그 전의 전투만 해도 네르하의 전체적인 기량은 절대로 우리의 아래가 아니야.”

‘마법’만으로는 분명 자신들의 아래다.

계열을 각성한 자신들과는 달리 네르하의 마법적인 소양은 아직 많이 모자랐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네르하가 마법적인 한계를 탈피하고 무술을 마법과 접목시켜 폭발적인 전투력을 내었다는 것.

늙은 흑마법사와의 전투는 바멜과 세티안의 상식을 깨부수기에 충분한 일전이었다.

“마법과 무술의 융합은 어디까지나 그 한계가 뚜렷하다. 그게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이었지…….”

“좋게 생각하면 그 상식이 아직도 유효할 가능성도 있어. 네르하가 선전한 이유는 기습과 의외성을 충분히 활용한 덕도 있었으니까.”

“그건 그렇지.”

바멜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뼛속까지 스며든 선입견을 깨는 건 천재라 불리는 그들이라 해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보인 모습만으로도 네르하를 무시할 수는 없어. 뭔가 손을 쓰긴 해야 할 텐데…….”

“오라비의 밑에 배커와 제크론이 있잖아? 그 녀석들을 이용할 순 없어?”

세티안의 말에 바멜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한번 실패했다. 그리고 그 녀석들만으로는 네르하를 어찌할 수 없어.”

배커의 잠재력은 바멜로서도 꽤나 의외인 일이었다.

이전, 바멜 본인의 바로 아래 단계까지 치고 올라왔을 정도면 앞으로 하기에 따라서 라데우스 직계들과도 어느 정도 대등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공식적으로’ 10단계를 모두 통과한 전무후무한 업적을 이루어 낸 네르하에게 먹힐지는 의문이었다.

바멜은 눈을 감으며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역시 윗기수들을 쓰는 수밖에 없나?”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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