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외부 미션 (1)>
네르하는 알페온에게 원론적인 충고를 해 주었다.
“죽기 싫으면 조금이라도 몸을 단련하고 술식을 익혀라.”
“……그건 당연한 말이죠.”
알페온은 네르하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수련하는 이는 많지 않지.”
네르하는 수련을 잠시 중단하고 알페온의 앞에 앉았다.
“전장에서 긴장하지 않는 방법은 자신감을 가지는 거다. 물론 만용은 개죽음의 지름길이지만 최소한의 자신감조차 없다면 적을 마주하는 순간 몸은 아주 쉽게 마음의 명령을 배신하고 말지.”
“……!”
끄덕끄덕!
네르하의 말에 십분 동감한 바스톤이 절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루시아 역시 그에 관련된 경험이 있었는지 어느새 조용히 경청하고 있었다.
“그 자신감을 기르는 방법은 바로 ‘내가 이 정도나 노력했는데 설마 개죽음을 당하겠어?’라고 생각할 정도로 미칠 듯이 노력하는 거다.”
“그, 그렇습니까?”
“사실, 무인이든 마법사든 나중에 어느 정도의 경지까지 이르면 쉽게 죽지 않을 거라고 애매모호한 경계선을 긋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장담하는데…… 그런 류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절대로 전장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어.”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있다.
하지만 네르하의 경험상으로는 이 방법이 가장 생존율이 높았다.
“물론 노력에도 종류가 있지. 단순히 삽질만 하는 걸 노력했다고 부르진 않아.”
“그,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네르하는 알페온을 제법 좋게 보았다.
그래서 가능하면 녀석이 미션에서 당당하게 살아남아 다시 보았으면 했다.
“바스톤, 목검이랑 대련용 스태프 좀 가져와라.”
“예. 도련님.”
“혀, 형님? 지금 무슨 짓을 하시려고?”
알페온은 순간, 무지막지한 불길함을 느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살금살금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툭!
하지만 그 후퇴는 어느새 생긋 웃는 루시아의 손길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어딜 가십니까, 알페온 경?”
“루, 루, 루시아 양? 저는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물러갈까 합니다.”
짧은 순간, 알페온과 루시아의 눈이 마주쳤다.
평소엔 이렇게 사랑스러운 눈빛이 없나 싶었지만 지금은 뭔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그건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의 눈빛이었다.
“안 되죠. 안 돼. 전 늠름한 알페온 경의 모습을 보고 싶은걸요?”
“하, 하하! 그건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그렇게 루시아가 알페온을 붙잡고 있을 때, 네르하가 알페온의 앞에 섰다.
“자, 지금부터 내가 살기를 실어 너를 공격할 거다. 그 공격은 마법일 수도 있고, 이 목검일 수도 있다.”
“혀, 형님!”
“수여식의 영수들은 기본적으로 생명체가 아닌 단순한 마나 덩어리에 인공지능이 장착된 거라 살기를 내뿜진 않지.”
그래서 그 덩치와 조우하고도 많은 신입생들이 극복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실전에선 그때의 그 영수들보다 훨씬 약한 놈들이 내뿜는 살기에도 쉽게 압도당할 수 있다.”
“그, 그 말씀은?”
“뭐, 수준 높은 살기를 계속 경험하다 보면 어지간한 기세에도 밀리지 않고 침착하게 마법을 영창할 수가 있지.”
“……!”
네르하의 의도를 완벽히 이해한 알페온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자, 내가 널 단련시켜 주마!”
“자, 잠깐! 형님! 형니이이이임!”
알페온은 지옥의 뱃사공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공포를 느꼈다.
* * *
며칠 뒤.
“……요즘, 네르하 도련님이 리브레히트 가문의 삼남을 괴롭히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던데요?”
리브라의 교수동에 마련된 한 연구실에서 클로이아가 삐딱한 시선으로 네르하를 쏘아붙였다.
“이제 곧 외부 실습인데 애꿎은 애를 괴롭히면서 뭐 하고 계시는 거예요?”
네르하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손을 저었다.
“어허, 그건 오해야. 난 아끼는 아우가 실습에서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훈련을 시켜 주고 있는 것이라고.”
“기숙사에 돌아오면 시체가 된 것처럼 반응도 하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그게 얼마나 유명해졌으면 교수인 클로이아의 귀에까지 들어갔는가.
“하하하, 걱정 마. 곧 성과가 나올 거니까.”
“다른 사람 신경 쓰느라 자기 수련이 늦춰지면 본말전도인 거 아시죠?”
“당연하지. 그 정도 분별력은 있다고.”
네르하의 말에 클로이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알고 계시니 더 이상 문제 삼진 않겠지만 빨리 노력해서 이 리브라를 석권해 주세요오.”
“문제는 네게 있는 거 같은데, 뭔 일이라도 있나?”
네르하는 연구실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부터 표정이 어둡다는 걸 알아차렸다.
다만 딱히 뭔가 불행한 일이 있다기보단 그냥 피로와 짜증에 찌들어서 나가떨어진 자의 눈이었다.
“딱히요. 그냥 제가 도련님의 뒤치다꺼리를 하러 왔다는 게 탄로난 이후, 제게 줄을 서겠답시고 접근하는 인간들이 많아졌거든요.”
네르하가 수여식에서 벌였던 짓은 본인들의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파급력을 낳았다.
“그럼 좋은 거 아닌가? 적당히 빼먹고 버리지 그래?”
“그래도 그게 다 인맥인데 버릴 수는 없잖아요? 이곳저곳 불려 가고 뭐 하고 지랄하고 했죠.”
마지막에 욕까지 나온 걸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사실, 이곳에 온 것이 그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단순히 찔러만 보자는 놈들도 있지만 진지하게 네르하 도련님이 후계 자리에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자들도 제법 있거든요.”
아무리 피곤하고 짜증 나도 그런 자들까지 막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빨리 성장해서 리브라를 집어삼켜 주세요. 그러면 그러면 제가 굳이 이렇게 일일이 상대할 필요도 없어지니까~.”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몇 년 후면 현실이 될 거니까.”
“후후, 단순히 노력한다는 말로 퉁 치지 않는다는 점이 좋다니까.”
모르는 곳에서 클로이아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걸 보니 새삼 네르하의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게다가 이렇게 늦은 밤까지 마나 연공법의 개발까지 병행하고 있으니 그녀의 피로가 얼마만큼이나 쌓여 있는지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외부 미션에 나가면 영초 같은 거라도 하나 챙겨다 줘야겠군.’
네르하는 서서히 잠들기 시작하는 클로이아를 업고 연구실에서 나왔다.
클로이아가 서리 마법의 천재라 불리며 고레벨의 마법사로 명성을 떨치고는 있지만.
사실, 그녀의 마나 절대치는 동급의 라데우스 직계나 방계들과 비교하면 크게 손색이 있었다.
‘아직 육체가 미성숙한 나와는 다르게 육체가 완성 단계에 있으면서도 대마법 하나를 유지하는 데 크게 부침이 있었지.’
어릴 적부터 온갖 영약을 처먹어 마나에서 부침이 있을 리가 없는 라데우스 혈족들과는 다르게 클로이아는 혹독한 환경의 북방에서 태어나 인질까지 되는 박복한 삶을 살아왔다.
당연히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성장의 폭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걱정 마라, 클로이아. 날 선택한 걸 절대 후회하지 않게 해줄 테니까.’
새근새근.
네르하는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뱉는 클로이아를 업고 그녀의 숙소로 향했다.
* * *
“간만이군, 네르하 라데우스.”
“안녕하십니까, 바하레스 교수님.”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고.
네르하는 기본 마법 교육 담당인 바하레스 교수의 부름을 받았다.
바하레스 교수는 자신의 집무실에 들어온 네르하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우선 내 동기를 구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군.”
“무슨 말씀이신지?”
바하레스 교수의 말에 네르하의 눈에 의문이 새겨졌다.
“베다 솔라스터. 자네가 전신을 꽁꽁 얼려 냉동 인간으로 만들었던 노인을 말함이네.”
“……아아.”
네르하는 그제야 바하레스 교수의 말을 이해했다.
설마 그 노인이 바하레스 교수와 친분이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었다.
“베다의 상처는 그야말로 목숨이 경각에 이른 치명상이었다더군. 자네가 그 녀석의 몸을 얼리지 않았다면 아마 구조대를 부르러 갔다 오는 도중에 목숨이 끊어졌을 거라 하더군.”
“솔직히 어느 정도는 도박이었습니다. 리브라의 의료술이 뒷감당을 잘해 준 덕분이죠.”
“그런가? 그래도 자네가 녀석의 목숨을 구해 준 사실엔 변함이 없네.”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자신을 부른 것일까?
네르하가 그런 의문을 담고 바하레스 교수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놈의 제자인 빌의 말로는 네가 6레벨의 전유물인 속성 변환을 사용했다던데?”
“…….”
네르하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바하레스 교수는 씨익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아주 흥미롭긴 하지만 그 부분은 그리 깊게 파고들지 않겠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내가 너를 부른 건…… 다름 아닌 외부 미션 때문일세.”
“……!”
“나는 기본 마법 교육 담당이지만 리브라 신입생들을 총괄하는 위치이기도 하지.”
바하레스 교수는 네르하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건 네르하에게 배정된 외부 미션의 내용과 그 미션을 함께할 이들의 이름이 적힌 목록이었다.
“원래 이런 식으로 내가 직접 생도에게 통보하는 경우는 없지만 이번엔 좀 특이한 케이스라서 말이야.”
바하레스 교수의 말은 네르하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네르하에게 배정된 미션의 ‘이름’ 때문이었다.
“자네에게 배정된 이번 외부 미션은 ‘마기 조사’일세.”
“…….”
“그곳에 적힌 장소에서 뜬금없이 마족의 흔적이 발견되어서 말이지.”
“마족…….”
“흔적도 흔적이지만 위치가 참으로 골치 아픈 곳이야. 무려 라데우스와 그 케프렌의 영역이 겹친 중립지대이네. 원래라면 신입생들이 따라가기엔 힘든 미션이지만, 라데우스 상층부에서 자네를 짚어 이 미션에 포함시켰네.”
“그렇습니까?”
“그래. 이전, 수여식 때 자네의 활약이 참으로 인상 깊었긴 했네.”
무려 5레벨의 흑마법사를 정면에서 쳐 죽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원래 미션에 참여하는 신입생들에겐 나름의 역할이 주어지지만 이번만큼은 자네의 역할이 딱히 정해지지 않았네.”
“저에게 ‘조커’의 역할을 기대하시는 거군요.”
“엄밀히 말하자면 그렇네. 다른 아이들처럼 단순히 살아남아 경험을 쌓는 것 이상을 원할 테지.”
네르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오히려 바라던 바다.
마족(魔族).
선천적으로 마기를 타고난다는 상위 종족인 그놈들이 과연 천마신교의 그 마인들과 비교해서 얼마나 잘났는지 한번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으니까.
* * *
외부 미션은 본가의 전투부대, 상위 학년, 하위 학년의 조합으로 총 열 명 내외로 이루어진다.
원래 리브라의 생도라면 의무로 해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외부 미션은 일반 생도들에겐 하나의 기회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바로 ‘본가’의 ‘전투 마법사’들에게 직접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기 수여식만큼 높으신 분들과 함께하진 않지만 그래도 실무와 실전을 담당하는 본가의 전투 마법사들에게 좋은 인상을 받으면 차후, 리브라 졸업 후에도 든든한 인맥을 가지게 되는 셈이었다.
게다가 미션 자체에 가산점과 특혜가 조건으로 걸렸기에 어떻게든 생도들은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실전을 벌인다.
“반갑습니다, 네르하 도련님.”
그렇게 네르하의 눈앞에 검은 로브로 전신을 가린 본가의 특수 전투부대 중 하나, ‘아크’의 일원들이 나타났다.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