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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49화 (49/237)

49화

<외부 미션 (2)>

리브라의 외부 미션은 모두가 같은 날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건이란 게 비슷한 시기에 한 번에 터지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본가의 행사에 리브라의 인원을 끼워 맞추는 식이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내 차례인가?”

네르하는 이미 외부 미션을 나간 바스톤과 루시아, 그리고 알페온의 빈자리를 느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부 미션은 그 내용과 일정을 절대로 타인에게 발설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어느 순간 주변 인물들이 갑자기 사라졌을 경우, 그 녀석은 미션에 투입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반갑습니다, 네르하 도련님.”

네르하가 리브라 바깥, 지정된 산의 정상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검은 로브로 전신을 가린 일곱 명의 괴인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늦었군, 네르하 라데우스.”

“아, 당신들이 선배들인 모양이군요.”

그리고 거기에 더해 리브라의 교복을 입고 있고 네르하보다 조금 더 성숙해 보이는 20대 초반의 성인 둘이 있었다.

“알고 있으면 예의를 갖춰라.”

“글세, 당신들이 내 예의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뭐라고?”

선배 둘의 눈에서 대번에 분노가 일었다.

하지만 알고도 쉽사리 덤벼들진 못했는데, 아무래도 네르하의 배경에 더해 수여식 당시 실력까지 널리 알려진 덕인 듯했다.

“거기까지 하십시오.”

그 상황을 지켜보던 검은 로브의 리더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상황을 중재했다.

“네르하 도련님, 저는 라데우스 휘하 특수작전 부대 ‘아크’의 제 1분대장, 엘림이라 합니다. 그리고 5년 전 리브라를 졸업한 몸이기도 합니다.”

“반갑습니다, 엘림 대장.”

네르하는 강자로 보이는 엘림에게 나름의 예의를 갖춰서 대꾸했다.

엘림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어조로 네르하에게 말했다.

“도련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이번에 도련님이 치르는 건 외부 미션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외부 미션 이전에 라데우스의 공식적인 행사입니다. 게다가 이제 우리들이 가야 할 장소는 다름 아닌 케프렌의 영역이 겹친 중립 지역.”

“…….”

“당연히 이 임무를 수행하려면 절대적인 위계질서가 성립되어야만 합니다.”

네르하는 피식 웃으면서 이렇게 정리했다.

“알아서 기라는 말이군요.”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사전에 반드시 조율해야 할 일이기에.”

네르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브라는 본디 실력 지상주의. 가문의 뒷배도 리브라에서만큼은 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절대적인 명제였다.

네르하 스스로가 그걸 지켜야만이 바깥의 위협에서 안전해지니까.

“좋습니다. 지금부터 저에게 반말을 해 주십시오.”

네르하는 고개를 돌려 선배들에게도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선배님들. 후배가 건방지게 선배님들께 무례를 범하였습니다. 자비롭게 용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르하의 저자세에 그들은 살짝 놀라더니 이윽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큼! 크흠! 알면 됐다.”

그들이 사과를 받아들인 걸 확인한 이후, 네르하의 시선이 다시금 엘림에게로 향했다.

엘림이 말했다.

“좋다. 네르하 라데우스, 그럼 브리핑을 시작하지.”

네르하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 * *

엘림은 지도 마법이 새겨진 아티팩트를 활성화시킨 뒤, 손가락으로 어느 한 곳을 짚었다.

“이번에 미션 대상지로 지정된 곳은 ‘그렌 타운’이라는 촌구석이다. 어떻게 도시로 인정받고 있긴 하지만 인구수는 고작 3천 미만이고 마법의 발전도나 내부 치안을 고려하면 도시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수준이지.”

그렌 타운이란 곳은 네르하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무법 지대이자 대륙을 양분하는 두 명가, 라데우스와 케프렌의 영역에 걸쳐 있는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

“하지만 그런 촌구석이라도 우린 그곳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 그 이유를 알고 있는가?”

선배 두 명이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네르하가 재빨리 답했다.

“쓸데없이 케프렌을 자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 때문에 그렌 타운은 라데우스도, 케프렌도 아닌 제3의 잡것들이 지배하고 있는 장소가 되어 버렸지.”

그렌 타운은 도시의 인명부에 적힌 인구수는 3천이 채 되지 않지만 관광도시도 아닌 주제에 유동 인구는 그 열 배를 넘어서는 기형적인 구조를 가진 도시가 되어 버렸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마족의 흔적을 조사하기 위해 그곳에 잠입해야 한다.”

모두의 시선이 엘림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사실, 잠입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문제는 그다음이다.”

엘림은 손가락을 들어 선배 두 명과 네르하를 지목했다.

“페텔기우스 소튼, 헤젤 아그라혼, 네르하 라데우스. 너희들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마족의 흔적을 찾을 것이냐?”

그 말에 두 명의 선배, 페텔과 헤젤의 표정에 당황이 일었다.

“순서대로 대답해라. 생각할 시간은 1분 주겠다.”

“아, 그……!”

페텔기우스 소튼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

“라데우스의 권위를 이용해 도시의 시장에게 협조를 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엘림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구겨지려는 순간, 헤젤이 다급하게 페텔의 말을 이었다.

“저 역시 동의합니다. 그곳이 아무리 중립지대이긴 하지만 그들을 다스리는 시장이 케프렌 소속인 것은 아닙니다. 권위를 이용하되 평화적으로 접근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흐음…….”

그나마 납득이 되는 추가 설명에 엘림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엘림의 시선이 네르하에게로 향했다.

“네르하 라데우스, 그대의 생각은 어떻지?”

“선배들의 의견에도 나름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게 다인가?”

엘림의 표정에 실망이 새겨지려던 순간, 네르하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다짜고짜 시장에게 먼저 접근하는 것은 악수입니다.”

“계속 말하게.”

“중립 지역에 있다는 건 언제든 다른 한쪽에 붙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 순간, 평화는 깨지고 기껏 만든 체계는 부서지겠지만 그 이상의 이득이 있다면 얼마든지 갈아탈 수 있는 게 중립이라는 위치죠.”

“그래서?”

“제 생각이지만, 만약 그렌 타운의 시장에게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한다면 그 시장은 아주 기꺼이 우리를 대접하며 적극적으로 협력할 겁니다.”

네르하의 말에 두 선배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하지만 네르하의 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러고는 우리가 온 사실을 케프렌 쪽에 은밀히 알려 막대한 정보료를 타 먹겠죠. 그렇게 되면 사실상 임무는 실패한 셈이 됩니다.”

“……윽!”

“호오?”

페텔과 헤젤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고, 반대로 엘림과 다른 마법사들의 표정에는 큰 흥미가 돌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전에 질문드릴 게 있습니다.”

네르하는 엘림을 직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도시에 나타났다는 마족의 흔적은 정확히 어떤 종류의 흔적입니까?”

“그게 중요한가?”

“네. 중요합니다. ‘흑마법사’들이 이 일에 개입했는지에 따라 대응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크하하하!”

엘림이 갑자기 폭소하기 시작했다.

페텔과 헤젤은 갑작스러운 엘림의 행동에 의아함을 표했고, 네르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실소를 지었다.

“아주 정확히 맞혔군. 그래. 이번 임무는 마족의 흔적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야. 정확히는…….”

“도시의 상층부가 흑마법사들과 공조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서겠죠.”

“정답일세!”

“……!”

그 순간, 두 사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도시의 시장을 직접 찾아가자는 의견은 대놓고 일을 파탄 내자는 뜻과 진배없었다.

엘림이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계속 의견을 듣고 싶군. 이제부터 우리는 뭘 해야 하지?”

“가장 밑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가장 밑이라면?”

“암흑가, 혹은 빈민가.”

네르하의 말은 확신에 차 있었다.

중원의 무림인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찾아가는 집단은 오직 세 곳뿐이었다.

개방.

하오문.

그리고 살막.

이들의 공통점은 구성원들 전부가 ‘밑바닥’ 혹은 ‘어둠’에 속해 있다는 점이었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그들은 무조건적으로 양지의 권력자와 인연을 맺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서로가 돈이라는 매개체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그게 무조건 양방향으로 굴러가는 건 아닙니다. 특히 위로 올라갈수록 그렇죠.”

예를 들자면, 권력자는 아랫놈들이 돈만 바치면 그 아랫놈이 바뀌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경우.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도시의 상층부가 아닌 흑마법사들입니다. 암흑가와 빈민가를 이용해 흑마법사의 단서를 찾고, 그들을 이용해 도시의 상층부를 끌어내야 합니다. 그들이 눈치채고 케프렌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은밀하게 말이죠.”

“훌륭하다.”

짝! 짝! 짝!

엘림과 다른 마법사들에게서 박수가 쏟아졌다.

“책상머리에 앉아 펜대만 굴리는 놈들에게선 절대 나올 수 없는 발상이야.”

“감사합니다.”

“원래라면 우리 역시 도시 상층부를 이용해 흑마법사를 꾀어내려고 했다. 다만 놈들이 케프렌과도 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조금 과격한 방법을 쓰려고 했지.”

“……과격한 방법이라면?”

“정신계 마법이다.”

흠칫!

네르하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옆에 있던 선배들 역시 표정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당연한 일이다. 정신계 마법은 대륙 협약으로 인해 사용이 금지된 마법으로, 사실상 흑마법으로 취급되는 위험한 계열의 마법이니까.

“하지만 네르하, 너의 방법이 제법 그럴듯하다고 느끼고 있으니 이 방법은 최후의 최후까지 아껴 둘 생각이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네르하는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내면의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저들 중에 정신계 능력자가 있을 수도 있겠군. 조심해야겠어.’

만약 특정되지 않은 정신계 능력자가 가문 내의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고 기습을 해 온다면?

‘대처하기가 엄청 난감하겠군. 특히 정신계 마법은 상대해 본 적이 없으니까.’

일단은 천원무극신공의 저항력을 믿긴 하지만 어쨌든 방심은 금물이었다.

엘림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네르하 라데우스의 의견대로 진행하지. 혹시 자세한 계획이 있나?”

네르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얼개뿐이지만 시간을 주신다면 확실하게 완성시켜 보죠.”

“좋아. 도착까지 일주일 정도 걸릴 테니 그 안에 확실히 계획을 완성시키도록. 혹시 다른 반대 의견, 없나?”

있을 리가 없었다.

페텔과 헤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다른 마법사들은 애초에 의견을 낼 생각조차 없는 듯 보였다.

“좋아. 그럼 출발하도록 하지. 산을 내려가면 마차가 준비되어 있다.”

엘림이 네르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 너의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면 가주님께 직접 보고서를 올려.”

“감사합니다.”

네르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등 뒤에서 엄청난 질시의 시선이 네르하의 등을 찌르기 시작했다.

헤젤과 페텔의 시선이었다.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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