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50화 (50/237)

50화

<외부 미션 (3)>

일행을 태운 두 개의 마차는 동쪽으로 전진했다.

네르하는 선배 둘과 엘림, 그리고 다른 아크의 마법사 한 명과 동승했고, 나머지 다섯은 뒤쪽의 마차에 타고 따로 움직였다.

‘잘됐군.’

네르하는 이번 외부 미션의 목적지가 그렌 타운이라는 걸 알아낸 순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잘하면 클로이아에게 줄 영초나 영약을 얻을 수도 있겠어.’

그렌 타운이라는 곳에 영초나 영약 같은 귀한 게 있을 거란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암흑가가 몰려 있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온갖 지보들이 모이는 암시장…… 즉, 블랙마켓이 형성되곤 한다.

‘양지의 단속을 피해 온갖 것들이 몰려드는 만큼 영약 같은 것도 찾아보면 나오겠지.’

물론 그걸 빼돌리려면 엘림을 비롯해 아크 녀석들의 눈을 피해야 하지만…….

‘식은 죽 먹기지, 그런 건.’

네르하는 속으로 약간의 비웃음을 머금고 엘림을 직시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순간, 엘림과 시선을 마주하고 말았다.

‘이크!’

네르하가 괜히 찔려서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엘림은 네르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네르하 라데우스, 궁금한 게 하나 있네만.”

“말씀하시죠.”

“아까 전, 자넨 얼개만이 존재한다고 했는데…… 그 얼개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그 얼개라도 말해 줄 수 있겠나?”

“아, 그거 말씀이십니까?”

난감한 질문이 나올 줄 알았던 네르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얼개는 간단합니다. 일단은 만만한 암흑가 놈들부터 조져 버리는 거죠.”

“암흑가를 조진다고?”

라데우스의 직계치고는 상당히 거칠고 천박한 단어 선택이었지만 엘림은 그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뭐가 됐든 우리가 암흑가에 진입하면 놈들은 우릴 삥 뜯기 위해 시비를 걸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응? 그게 사실인가? 아무리 그래도 밑바닥 놈들이 겁도 없이 우릴 노릴 리가…….”

“절대적인 진리죠. 믿으셔도 됩니다.”

아크의 마법사들이 입고 있는 로브가 제법 고풍스럽긴 하지만 특수작전 부대라는 특성상 화려한 문양은 일절 배제된 투박한 단색의 로브를 입고 있다.

즉, 무조건 시비가 걸리게 되어 있단 소리다.

“일단은 시비를 거는 암흑가의 조직 몇을 ‘정당방위’로 제압한 다음, 그놈들에게 막대한 돈을 뿌립니다.”

“응? 돈을 뿌린다고? 굳이?”

“네. 그게 가장 확실합니다.”

라데우스의 무력 부대가 설마 돈이 부족할 리는 없겠지.

네르하의 설명이 이어졌다.

“인간을 움직이는 건 공포보다는 탐욕입니다. 공포는 극복하기가 쉽지만 탐욕은 극복하기가 무척이나 어렵죠. 뭐, 일단 가면 두 감정을 모두 이용할 생각입니다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군.”

이 일을 행함에 있어 가장 주의해야 할 건 도시의 상층부에 자신들의 존재가 알려지면 안 된다는 점이다.

만약 그들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 준다면 놈들은 그 부를 안겨 주는 자의 정체가 뭔지 알려 하지도 않고 따를 것이다.

‘소수의 알려는 놈들은 그냥 쓱싹해 버리면 되는 거고.’

그 말을 삼킨 네르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런 식으로 암흑가에 돈을 뿌려 하나의 연결망을 구축합니다. 그 이후부터는 쉽죠. 그 망이 뿌리에 뿌리를 뻗다 보면 결국 흑마법사들에게까지 닿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놈들이 그곳에 실존한다면요.”

“그렇군!”

“그렇게 놈들을 조지면 도시 상층부와 협력한 증거물도 나올 거고, 그걸 이용해 임무를 완수하면 끝이 납니다.”

사실, 전생에서도 이런 식으로 비슷한 일을 해 본 적이 있었다.

하오문이 마교에게 장악당하고, 마교가 그들을 통해 황궁 세력 일부에 손을 뻗었을 때, 마교의 계획을 분쇄하고자 무림맹의 특작대 일부가 하오문에 숨어들어 작전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신무조는 그 특작대의 부대장으로서 훌륭하게 임무를 성공으로 이끈 경험이 있었다.

‘이런 일은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쉬운 법이지.’

다만 변수가 있다면 당연히 그 지역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케프렌이란 존재다.

최강의 기사 가문.

검의 성지이자 검의 낙원.

라데우스의 영원한 숙적.

어지간해선 그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리지는 못하겠지만 세상사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

‘그놈들과 마주치지만 않으면 임무는 성공이나 다름없다.’

네르하는 이 세계의 인간들이 섬기는 운명의 여신이란 년이 부디 이쪽을 향해 웃어 주기를 기대할 뿐이었다.

* * *

일행을 태운 마차는 일주일이 지나 목표로 했던 그렌 타운에 도착했다.

“상당히 삭막한 도시로군요.”

페텔은 마차의 창문 밖을 살며시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렇겠지. 유동 인구가 많아도 이곳은 엄연히 범죄자들의 도시니까.”

바깥을 들락거리는 놈들 대부분이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그게 아니라면 대부분 가릴 필요도 없는 흉악한 놈들이나 오크나, 엘프 등의 이종족뿐이었다.

‘신기하군.’

네르하는 주변을 활보하는 이종족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실제로 존재한다고만 들었지, 마도 도시 베리타스에선 이종족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이종족과 눈을 마주치지 말게. 특히 엘프와는 더더욱.”

그때, 조용히 있던 엘림이 네르하에게 경고했다.

“바깥세상에 나와 있는 엘프들은 하나같이 산전수전 모두 겪은 베테랑들이지. 무엇보다 성질이 사납고 인간의 법을 지키는 법이 없어 눈만 마주쳐도 기습을 해 오는 경우가 많다네.”

“…….”

……뭐 하는 깡패들이냐?

네르하가 황당한 시선을 보내고 있을 때, 엘림은 이해한다는 듯 피식 웃었다.

“아마 암흑가에서도 엘프들을 마주칠 순간이 올 거야. 만약 그때가 되면 절대로 봐주지 말고 손을 쓰게.”

“명심하겠습니다.”

“내가 알기로 외부 실습에서 사망한 이들 중에 엘프들의 기습에 당해 죽은 이가 최소 열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네.”

정말 어지간한 실력자가 아닌 이상 대응하지 못할 리는 없지만 그래도 괜히 가슴이 서늘해지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 도시 안으로 들어온 일행은 셋으로 나뉘어 뿔뿔이 흩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십여 명의 인원이 몰려다니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주목을 받기 때문이었다.

네르하는 엘림과 다른 마법사 둘에게 합류해 4인 파티에 속하게 되었다.

“1박에 4실버. 방은 하나밖에 없소.”

“비싸군. 그렇게 해 주시오.”

엘림은 그래도 나름 물가를 알고 있는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여관 주인에게 돈을 지불했다.

네르하는 혹시나 싶어 엘림에게 물었다.

“자금이 많이 모자랍니까?”

“설마? 작전에 필요하다면 이 도시를 전부 사들일 정도로 끌어올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네르하의 의문에 엘림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였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이 근방에 아주 상당한 수준의 마법사가 있어.”

“……?!”

네르하는 살짝 당황했다.

‘그 정도의 기도나 마나는 느끼지 못했는데?’

현재 자신의 이목을 속일 수 있을 정도라면 라데우스에서도 충분히 최상위급의 강자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강자의 흔적을 엘림이 발견했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엘림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말이 안 돼.’

네르하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엘림이 여관의 어느 부분을 향해 살짝 턱짓을 했다.

그 시선의 끝에는 네르하 역시 생전 처음 보는 뭔가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진 시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마법진이다. 탐색하기 힘들도록 삼중으로 기척을 가린 방범용 마법진. 나도 마법진의 문양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아.”

기척이나 기도가 아니라 마법진이라면 이해가 간다.

엘림은 살짝 긴장한 채로 말을 이었다.

“못해도 7레벨 이상의 고위급 마법사야. 흑마법사는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누구지?”

“흑마법사가 아닌 이유가 있습니까?”

“흑마법사라면 굳이 저럴 필요가 없으니까. 마계의 은신형 소환수 아무거나 불러서 방범을 맡겨도 충분한데 굳이 저렇게 공을 들일 필요가 없지.”

무엇보다 마법진에 사악한 기운이 없고, 마법진의 수준이 높을지언정 그 기능은 단순한 방범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문제는 그 장본인이 흑마법사가 아니더라도 이 정도 수준의 결계가 왜 이런 여관에 존재하냐는 거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은 그대로 있는다. 우리 셋이라면 충분히 7레벨 이상의 강자와 겨루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그리고 우린 라데우스다. 상대가 누구든 절대 피하지 않아.”

엘림은 그 말을 끝내고 2층에 짐을 풀었다.

“바로 움직이실 겁니까?”

“아니, 첫날은 가벼운 순찰이다. 도시의 분위기를 보고 동선을 파악하는 것을 중점으로 하지.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건 그다음이니 너는 동선을 보고 어떻게 시작할지 계획을 수립해라.”

엘림과 네르하는 일부러 뒷골목이 아닌, 일반적인 시민들이 들락거리는 곳을 위주로 길을 기억해 나갔다.

‘역시는 역시군.’

이곳저곳에서 흉흉하고 탐욕스러운 시선이 느껴진다.

문제는 그 사이사이에 성적인 욕망이 느껴지는 더러운 시선이 섞여 있다는 점이었다.

순간적으로 두개골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싶을 정도로 더러운 시선.

‘넌 기억해 뒀다. 나중에 반드시 걸려라. 아주 두 알을 작살내 버릴 테니까.’

네르하는 자신을 음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 근육질 남성(!)에게 시선을 주며 이를 갈았다.

* * *

그렇게 한차례 바깥을 탐사하고 다음 날이 되었다.

“일어나라, 네르하 라데우스.”

네르하는 바깥을 순찰한답시고 나갔던 엘림이 갑자기 돌아오자 의아해하며 눈을 떴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사고를 쳤다. 네 선배 놈들이 말이야.”

“…….”

네르하는 그 말에 실소를 내지었다.

처음 만남 이후로 네르하에게 물 먹은 이후로, 그들이 노골적으로 불태우는 공명심은 분명 사고를 치는 놈들의 그것과 매우 유사했다.

‘놈들이 사고를 칠 줄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수습 가능한 정도라면 좋겠는데 말이야.’

다만 산전수전 다 겪은 엘림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있는 걸 보면 보통 심각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어떤 사고 말입니까?”

“놈들이 공에 눈이 멀어 작전 시간도 되기 전에 주변을 들쑤시다가 기사들과 충돌한 모양이다.”

“기사라고요?”

이 도시에서 기사라는 걸 광고하며 다닐 수 있는 세력은 정말로 몇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들 역시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경비병이 오기 전에 자리를 피하는 덴 성공했어. 케프렌은 아닐 가능성이 높아.”

“그래도 방심은 금물입니다. 그들 역시 우리처럼 비밀 임무를 맡고 왔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네르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일단은 사태를 수습하러 가야겠군요.”

“그렇지.”

엘림은 두통이 이는지 이마를 짚으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내려가 있겠다. 준비를 마치고 바로 나오도록.”

엘림은 그 말을 내뱉고는 빠르게 1층을 향해 내려갔다.

리더인 입장에서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가 필요할 테지.

그렇게 엘림이 사라지고, 네르하 역시 뻐근해지는 뒷덜미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운명의 여신이 웃어 주긴 했군.”

그 웃음이 비웃음이라서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자, 재미있는 상황이 온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이용한다?”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