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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51화 (51/237)

51화

<아녜스 (1)>

“이 빌어먹을 바보 천치 놈들 같으니!”

1층으로 내려가자마자 쩌렁쩌렁한 분노가 고막을 때렸다.

“네놈들이 지금 무슨 실수를 한 것인지 알고나 있느냐?!”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페텔기우스 소튼, 헤젤 아그라혼.

두 선배는 그야말로 대역죄인이 되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기사? 하필이면 기사와 엮여? 이 도시에서 기사가 버젓이 돌아다니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놈들이!”

엘림의 부하로 보이는 마법사 둘은 그야말로 극대노 하며 두 사람을 갈구고 있었고, 나머지 역시 전혀 호의적이지 않은 눈빛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이런 천하의 머저리 같은 놈들!”

“…….”

“…….”

이곳, 그렌 타운은 범죄 도시로 유명한 만큼, 어지간한 실력자가 아니라면 대놓고 활개치며 돌아다닐 수 없었다.

특히 기사라는 존재는 고급진 물품들을 떡칠하고 다니는 만큼 범죄자들의 목표 1순위나 다름없었다.

겉으로만 딱 봐도 기사라는 걸 알 수 있는 데다 금속제 갑옷이나 가죽, 체인 메일, 혹은 허리춤에 찬 검만 훔칠 수 있어도 얻는 수익이 은이 아닌 금 단위에 달했다.

‘이런 도시에서 대놓고 기사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놈들의 정체야 뻔하지.’

정말 어수룩한 애송이, 혹은 시비가 걸려도 모두 떨쳐낼 자신감이 있는 진짜 실력자.

아무래도 이 둘이 건드린 것은 후자에 속한 모양이었다.

“일단, 정확한 사건 정황을 들어봐야 할 것 같군요.”

네르하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아무리 이 둘이 공을 세우는 데 급급하다 해도 아무 생각 없이 기사들에게 시비를 걸 정도로 진짜 머저리인가?

“그, 시작은 오히려 저희가 도움을 주려고 했었습니다.”

그렇게 페텔과 헤젤, 두 사람의 변명이 시작되었다.

* * *

그렌 타운 거리에서 특이 사항을 체크하라는 첫 번째 임무.

두 사람은 의기충만한 모습으로 눈을 부릅뜨고 임무에 임했다.

그렇게 처음 한 시간 정도는 긴장의 끈을 꽉 조이며 임무에 임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의 긴장감은 점차 풀어지고 있었다.

“끄응! 그 자식이 세운 계획이 그대로 달성된다면 우리 평가 점수는 절대 높지 않을 게 분명해.”

“확실히 그렇긴 해.”

그렇게 잡담이 시작되면서 그들의 대화 방향은 이번 작전을 입안한 네르하에 대한 불평으로 이어졌다.

“네르하 라데우스. 덜떨어진 직계 주제에 직계라는 이유로 온갖 편애를 받다니.”

“젠장! 냉정하게 임무에 수행해야 할 선배들이 볼 때마다 그놈의 눈치를 살피고 있더군.”

페텔의 푸념에 헤젤 역시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곧 썩어도 직계는 직계다 이거지. 적으로 돌리면 무척이나 피곤해지니까.”

확실히 두 사람의 말엔 틀린 게 없었다.

이번 작전을 함께한 아크의 일원 중에서 대장인 엘림을 제외하면 모두가 슬금슬금 네르하의 눈치를 보고 있었으니까.

이것엔 지난 무기 수여식 당시, 네르하가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가주의 극찬을 들었다는 것이 주효했다.

라데우스 직속 무력 부대인 아크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솔직히 그놈의 계획을 뒤엎는 건 불가능해. 겉으로 보면 나름 타당성도 있어 보이고 무엇보다 시도 자체가 모험이야.”

몇 가지 계책과 진언이 맞아떨어지면서 네르하는 엘림의 절대적인 신임을 사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계책을 올리는 건 엘림이 만든 네르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며, 정말로 확실하고 기막힌 방법이 아닌 이상 역풍을 맞을 게 뻔했다.

“네 말이 맞아. 다른 부분에서 공을 세워야 해. 계획은 놈이 했더라도 활약에선 가장 빛나는 부분을 차지하면 되는 일이야.”

“뭐라도 좋으니 특이 사항을 발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군.”

페텔과 헤젤은 눈을 빛내며 다시금 임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했다.

“수상하군.”

“수상해.”

두 사람의 눈에 뜨인 건, 매우 화려한 하프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한 소녀였다.

가죽옷과 치마라는 기본적인 조합에 팔다리와 상체 일부에 판금을 덧댄 제국 여기사들의 보편적인 활동 복장.

하지만 이 도시 내에서라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복장이기도 했다.

“……저렇게 입고 혼자 돌아다니는 건가?”

“엄청 수상한데?”

풀 플레이트라면 몰라도 저렇게 맨살이 일부 드러나는 하프 플레이트는 저런 소녀가 입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저 갑옷은 철저하게 벗겨져 암시장에 팔리고, 소녀 역시 험한 꼴을 당하고 노예시장이나 매음굴에 넘겨져도 이상할 게 없다.

독, 암습, 최음, 함정 등등. 나이 어린 소녀 하나를 무력화시킬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설마 저런 복장으로 돌아다녀도 무사할 정도의 실력자인 건가?”

“쫓아가 보자.”

그 소녀는 마치 무언가를 찾듯, 자그마한 종이 조각 하나에 의존하며 도시 내부를 휘젓고 있었다.

살금! 살금!

거의 30여 분이 넘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나름 주의하면서 쫓아가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주변의 인기척이 드물어지고 있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나오시죠.”

“……!”

그렇게 주변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그늘진 뒷골목에서.

소녀는 자리에 우뚝 멈추며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부터 계속 제 뒤를 졸졸 쫓아다니고 계신 듯한데, 용건이 있다면 쥐새끼처럼 숨지 말고 나와 주겠습니까?”

울컥!

페텔과 헤젤은 미행이 들켰다는 부끄러움보다 자신들을 쥐새끼라고 멸칭하는 것에 더욱 분노를 느꼈다.

금발을 단정하게 정리한 녹안의 소녀.

그녀는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을 향해 정중하게 물었다.

“왜 저를 쫓고 있는지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하지만 페텔과 헤젤은 그 정중함에 답할 이유를 찾질 못했다.

‘그냥 모습이 수상해 보여서’라는 것이 답이었지만 그걸 변명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궁색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우물쭈물하자 처음엔 정중하게 나오던 소녀의 입가가 급격히 뒤틀리기 시작했다.

“뭐, 병신 같은 마법사 놈들이 다 그렇죠. 그렇게 다 들킬 정도로 대놓고 뒤를 밟는데 이유랄 게 뭐가 있겠나요?”

“뭐, 뭣이!”

“이 망할 년이 지금 뭐라고?!”

그 고운 얼굴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폭언!

소녀는 검 손잡이를 잡고 검집째로 두 사람에게 겨누었다.

“이 주변에서 저에게 껄떡이는 쓰레기들은 다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마법사가 직접 나왔을 정도면 그래도 조금 높은 쓰레기라고 봐도 좋겠죠?”

“…응?”

페텔과 헤젤은 순간, 멈칫했다.

이미 저 소녀가 자신들이 발견하기 전에 한따까리 했다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아무래도 저 소녀는 자신들의 정체를 아주 오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부하들은 어디다 두고 두 사람만 나온 거죠? 아, 하긴 허접쓰레기들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챌 때도 되었죠.”

“이봐, 잠깐. 지금 무슨 터무니없는 오해를…….”

그래도 두 사람에겐 나름 이성과 판단력이 있었다.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 여부는 둘째 치더라도 여기서 소란을 피우는 건 임무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쯤은!

저벅! 저벅!

하지만 두 사람이 상대에게 뭔가 협상을 시도해 보려고 하기도 전에.

“어, 어느새……!”

십여 명의 기사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페텔과 헤젤은 그제서야 저 소녀가 저런 복장으로 돌아다닐 수 있었는지 이해했다.

저런 호위를 두고 있으면 이 도시의 누가 쳐들어와도 무사할 게 분명할 테니까.

“어떻게 할까요, 아녜스 아가씨?”

단정하게 턱수염을 기른 중년의 기사가 소녀에게 정중히 물었다.

“일단 제압하세요. 죽일지 말지는 그다음에 결정하도록 하죠.”

아녜스라고 불린 소녀는 별 감흥이 없는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자, 잠깐! 우리는 그런 잡배가 아닌…….”

“변명은 일단 맞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묵직한 건틀렛이 태양 빛에 반사되어 맑은 빛을 발했다.

그렇게 아크의 마법사들이 상황을 발견했을 때는 둘은 완전히 묵사발이 나서 기절해 있던 상황이었다.

* * *

“그 기사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소녀는 우릴 보자마자 자신이 상황을 잘못 판단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책임자끼리 만나 이 사태를 마무리 짓자고 하더군요.”

상황을 수습했던 마법사의 말을 마지막으로 짧은 에피소드가 끝났다.

상황을 모두 보고받은 엘림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함정에 걸렸다고는 해도 외부 미션은 어디까지나 실전. 실패는 용납할 수가 없다. 만약 이번 일로 미션이 실패한다면 너희는 벌점이 문제가 아니라 리브라에서 퇴출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

엘림의 서늘한 말에 페텔과 헤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때, 엘림의 뒤에 있던 네르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참작의 여지는 있습니다.”

“참작의 여지? 말해 봐라.”

“일단 결과는 좋지 않아도 임무를 위해 노력했다는 것. 두 번째는 아직 우리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 즉, 선배들이 끝까지 마법을 사용하진 않았다는 것이죠.”

만약 두 사람이 반항하면서 마법을 사용했다면 대번에 목이 잘려 나갔을 테고, 상대가 정말로 기사가 맞는다면 그때는 임무가 문제가 아닌 상황이 되어 버린다.

또한 이런 도시에 갑자기 정규 기사급이 십여 명이 넘게 함정을 파고 있다는 것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으니.

한마디로 페텔과 헤젤은 운이 매우 나빴다고 볼 수 있었다.

“네, 네르하……!”

네르하의 변호에 다른 모두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개중 페텔과 헤젤은 매우 감격한 눈으로 네르하에게 그렁그렁한 시선을 보냈다.

“그렇다 해도 쉽게 용서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어차피 그들과 교섭을 하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두 선배의 처우를 결정하는 건 그 결과가 나온 뒤에 해도 늦진 않을 듯싶습니다만.”

“흐음.”

네르하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엘림도 더 이상 둘을 추궁하진 않았다.

“좋다. 두 사람에 대한 일은 그들과의 만남 이후에 결정하겠다.”

“가, 감사합니다!”

“고마울 것 없다. 상대의 정체가 만약 케프렌이라면 너희들의 퇴소 처분은 그대로 결정될 테니.”

그 말마따나 만약 페텔과 헤젤이 조우했던 기사들이 케프렌의 기사들이라면, 그리고 그들이 우리의 정체가 라데우스라는 걸 알아차렸다면 그 순간, 임무는 끝이다.

* * *

그들은 의외로 네르하 일행이 있는 여관으로 먼저 찾아왔다.

함정에 빠져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인지, 아니면 애초에 이쪽의 전력을 개무시하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뭐가 됐든 우리 편이 개 처맞듯이 맞은 상황인지라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아녜스라고 합니다.”

여관으로 찾아온 인원은 모두 열둘.

전부 한 덩치 하는 기사들의 선두에서 자신의 이름을 아녜스라고 밝힌 소녀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왔다.

“엘림이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성은 밝히지 않았다.

“이번 일은 참으로 유감이라고 볼 수 있소. 그대들의 ‘착각’으로 인해 우리 쪽의 소중한 후배들이 상해를 입었으니.”

“착각이라. 그게 착각일지 아닐지는 아직은 모르는 일이지요.”

서로 정체를 밝힐 생각이 없는 이상, 아녜스의 말엔 아직 설득력이 있었다.

아녜스는 아직 성숙하진 않지만 당돌한 눈빛으로 엘림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저는 ‘책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했습니다만?”

“……내가 책임자이오만?”

“그런 기만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뭐지?

아녜스는 마치 무언가를 확신하듯 엘림을 노려보았다.

“진짜 책임자는 뒤에다 숨겨 두고 2인자인 당신이 나와 간을 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척!

아녜스의 손가락이 그대로 엘림의 뒤에 있던 네르하에게 향했다.

‘응? 나?’

엘림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자 아녜스는 그 표정에서 자신감을 얻은 듯 확신을 담아 외쳤다.

“나오세요. 부하를 앞에 두고 비겁하게 몸을 피하는 건 우두머리로서 할 일이 못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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